< 이달의 명상 >
아주 어려운
‘슬기씨말씀
(般若心經)’ 이야기
글 | 법현스님
무상법현(無相法顯);스님
- 서울 열린선원 선원장
- 일본 나가노 아즈미노시 금강사 주지
-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그래도,가끔> 지은이
한국불교의 모든 법회와 새벽예불 그리고 시식에서 읊고 있는 당나라 현장 삼장 번역의 반야바라밀다심경에 관해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경전의 이름 곧 제목에 관해서 알아보자. 보통 우리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반야심경 또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이름이 말하는 뜻은 무엇일까? 반야심경의 심(心)이 마음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어서 ‘반야의 마음에 관한 가르침’이라 알고 있는 것 같다. 반야는 한자어로 지혜(智慧)라고 할 수 있다. 지혜는 순 한글로 하면 슬기라고 할 수 있다. 경(經)은 경전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 보통이다. 경전(經典)은 말씀 또는 가르침이라는 뜻을 가진 두 글자의 모음이다. 경(經)도 전(典)도 같은 뜻이다. 말씀 또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역 전 앞처럼 이중적인 뜻으로 묶인 말이다. 훌륭한 분의 가르침을 경 또는 경전이라고 한다. 심(心)은 본디 마음, 심장(心臟)이라는 뜻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마음보다는 핵심, 씨앗의 뜻으로 쓰인다. 그러면 반야심경은 ‘슬기씨 말씀’ 또는 ‘슬기 씨 가르침’ 또는 ‘슬기 씨 경전’이라는 뜻으로 옮겨야 옳다. ‘슬기마음말씀’이나 ‘슬기마음경전’으로 옮기면 맞지 않는다. 조금 더 풀이하자면 (큰)슬기로 정토(슬기,깨달음)에 이르는 핵심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혜를 얻어 벗어나(解脫)고, 깨끗해지며(淸淨,vimutti) 열반(涅槃)하는 가르침이라고 풀 수 있다.
슬기 씨 말씀(玄奘本般若婆羅蜜多心經, 무상법현 옮김)
관세음보살께서 깊이 이룬 슬기(般若婆羅蜜)를 실천할 때
다섯 쌓임(五蘊) 다 빈 것을 비춰 보고 괴로움과 재앙을 다 건넜네.
사리불이여, 물질(色)이 공성(空性)과 다르지 않고
공성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곧 공성이요 공성이 곧 물질이니
느낌 생각 지어감과 의식(受想行識) 또한 그러니라.
사리불이여, 모든 법(法)은 공성이라
나지도 없어지지도,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네.
그러므로 공성에선 물질도 없고
느낌생각지어감과 의식도 없다네.
눈 귀 코 혀 몸과 뜻도 없으며,
빛과 소리 냄새와 맛 감촉 현상도 없어서
눈의 경계와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다네.
무명도 무명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 없으며,
괴로움과 그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다네.
얻을 것이 없으므로 보살은 이룬 슬기(般若婆羅蜜) 의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도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 아주 떠나 완전 열반 들어가네.
3세 모든 부처님도 이룬 슬기(般若婆羅蜜) 의지하여
가장 높고 고르고 바른 깨달음을 얻는다네.
그러므로 이룬 슬기(般若婆羅蜜)는 가장 신비하고 밝고 높은 말씀이며
어느 것도 견줄 수 없는 말씀이니 괴로움을 다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네.
슬기로운 말씀(般若婆羅蜜多呪)은 곧 이러하네.
"가니가니 건너가니 저쪽으로 건너가니 깨달음을 이루나니"(3)
글자 수를 줄이기 위하여 내가 만든 옮김 말이 ‘이룬 슬기’라는 말이다. 보살행을 통해 이미 이룬 슬기라는 뜻이다. 보살행이 바라밀다이고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바라밀 가운데 마지막 지분인 지혜바라밀이 이룬 슬기다. 이룬 슬기의 바탕은 변하지 않는 실체는 없다는 토대 위에서 모여서 이뤄진 것들 곧 나(몸,마음)라고 생각하게 하는 다섯 쌓임(五蘊)이 언젠가는 없어질 허망한 것임을 아는 것이라는 가르침이 핵심이다. 현재 있어도 그것이라고 특정할 만한 정체성은 없다. 그저 그 시절 그 곳 그 사람들이 그것이라고 느끼고 알며 인식한 것일 따름이다. 이렇게 아는 것이 곧 슬기의 씨다. 슬기 씨가 흙에 심어지면 여러 요소들이 결합하면서 싹이 나고 줄기와 가지와 잎이 되고,꽃이 되면서 열매가 되기도 한다. 누구나 아는 이것이 싹도,꽃도,줄기도,가지도,꽃도,열매도 변화된 모습일 뿐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다 알게 되고 평온,고요해진다. 특별한 욕심이 또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이 슬기,이룬 슬기다. 어렵다고 써 놓았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느낄 것이다.
햇빛깔(吳斌 ,拉開窓簾 陽光只有一種顔色)
“커튼을 젖히면 햇빛은 한 가지 빛깔뿐이지만/그대가 좋아하든 말든 상관없이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의 모임이라네/자연스런 감정 자체에는 잘못이 없으나
감정은 색안경처럼 세상 사물을 나누어 보게 한다네/기쁨 또는 슬픔으로 물들이거나 뒤틀린 모습으로
그런데도 그대는 무심코 손가락질로/이건 밉고 저건 아름답다고 말하지
이성과 슬기를 절대 놓치지 말게/감정을 안개라 한다면/그 안개가 진리의 경지를 가린다는 걸 잊지 마/감정을 달빛이라 한다면/그 빛은 햇빛의 되쬠일 뿐/그 스스로의 빛이 아니네/감정이 자꾸 속인다는 말이 아니라/느낌에는 늘 진실하지 않은 면이 있다네
그대의 두 눈을 자주 잘 닦아서/이성과 슬기가 휴가가지 않도록 하게/
커튼을 열면 암초가 똑똑히 보일 터이니 /그에 맞춰 돛을 잘 조절하여서
바람이 멎을 때면/진리의 해안에 이를 수 있으리라 “
<한비자세난(韓非子說難)>에 나오는 지자의린(智子疑鄰) 이야기와 관련하여
중국의 대학입학자격 주관식 작문 문제에 고3에 해당하는 학생이 쓴 글(위 글은 나의 옮김)이라고 한다. 원 문제는 글자 수를 800자 이상으로 지정해주었으나 한글로만도 그 만큼 되지 않으니 한자어로는 4분의 1정도 글자 수밖에 안 되는 글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채점관들이 모여서 회의한 결과 만점을 주었다고 한다. 그 어떤 특성도 없다는 것을 알면 이미 모든 어리석음 곧 고통과 액난에서 벗어났으니 다른 공부가 별도로 필요치 않다는 반야심경의 주제 또한 마음의 변형이나 선입견 또는 편견의 위험성을 살피게 하는 글이어서 함께 읽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