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사물 사전] 털실과 코바늘 ⓒ이현경 |
제가 나고 자란 집은 작은 읍내 시장 근처에 있어요. 어쩌다 보니 지금 그 집에 다시 와 살게 되었죠. 제가 나고 자란 그 집에, 다시 돌아와 산다는 것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인생도 인연도 결국 기나긴 끈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삼대가 모여 살던 우리 집에는 색색의 털실이 참 많았어요. 할머니 털실이랑 엄마 털실이랑 제 털실이랑. 털실에 의한 털실의 혈연, 신기하면서도 징글징글했던 그 털실들. 그것들은 어떤 때에는 동글동글 사람의 머리 같았어요. 빨간 머리, 파란 머리, 털이 곱슬곱슬한 머리, 주먹만 한 머리, 눈에 코바늘이 박힌 머리…….
이상하게도 저는 그 털실을 견딜 수가 없었어요. 동그란 머리통으로 이 방 저 방 먼지를 쓸며 굴러다니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지요. 털실 뭉치는 왜 둥글둥글하지? 왜 세모도 네모도 아니지? 없애버려야겠다. 뭐든지 해서, 뭐라도 해서, 저 먼지투성이의 복잡하고 불안한 머리통을 다 지워버려야겠다!
그 뒤로 저는 쉬지 않고 짜댔던 것 같아요. 털실은 짜기만 하면 없어지니까요. 엄마는 털실 귀신이랑 코바늘 귀신이 세트로 붙었다고 야단을 치시고, 설거지도 방 청소도 제쳐두고 코바늘에 코를 박고 있다고 꾸중을 하셨어요. 그래도 저는 뭐든 짰어요. 목도리든 양말이든 모자든 스웨터든 아무거나 막 짰어요. 게이지도 무늬도 모티프도 다 내 깜냥대로 지어내서요. 어제는 마스크, 오늘은 모자, 또 내일은 벙어리장갑, 이렇게요.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수상한 제 집착도 한몫했어요. 완전히 식음을 전폐하고 짜댔거든요. 코바늘을 한 번이라도 잡아본 사람은 그 기분 알 거예요. 코를 한 단씩 두 단씩 늘리다 보면 겨울밤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버리는지……. 코를 한 코씩 두 코씩 늘리면서 나를 하얗게 잊어가는 재미는 또 얼마나 쏠쏠하고 쓸쓸한지…….
도대체 그 깊고 어두운 밤의 털실들은 어디에 숨었다가 그렇게 또 슬그머니 나타났던 걸까요. 짜고 또 짜고 또 짜도 그 털실은 좀처럼 없어지지를 않았어요. 왜냐면, 짜는 즉시 다 풀어버렸으니까요. 다 짜고 나면 풀고, 다 풀고 나면 또 짜고. 뜨개질은 풀어버리기 위해 뜨는 거였으니까요. 손때가 타서 까매지고, 보푸라기가 생겨 더 이상 쓸 수 없어질 때까지. 털실이 더 이상 털실이 아닐 때까지. 도대체 저는 무엇이 불안해서 짜고 또 짜고 풀고 또 풀고, 그 난리굿을 벌였던 걸까요.
불안과 부정의 완전체로 엉키고 헝클어진 내 머릿속 털실들…….
생각이 나요. 시하루 시오타의 검은 털실 말이에요. 그의 큰 방을 가득 메운 검은 털실은 거미줄이고, 올가미고, 사슬이고, 검은 탯줄이었죠. 실제로 그는 자신의 탯줄을 털실에 섞어서 짜기도 했다는데요. 검은 공기 같기도 하고, 검은 구름 같기도 한 검은 털실 숲에서 태연히 잠자고 있는 행위 예술가들이 저 자신 같기도 했어요. 어차피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보고, 보이는 것만 믿잖아요. 그래서 자기가 서 있는 공간이 어디인지, 자기가 누구인지도 영원히 모른 채 살다가 죽어가잖아요. 모른다는 것도 모르고요(다행인지도 모르죠). 일본 오사카 출신으로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설치미술을 하는 그의 머릿속도 엉키고 엉킨 검은 털실 뭉치일 겁니다. 모르긴 해도 그 역시 불안하고 불완전한 자신을 견디고 견디기 위해서 검은 털실을 이리 엮고 저리 걸고 뜨고 거미줄처럼 얽어매는 걸 거예요. 그 누구도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요.
어쨌거나 찌그러지고 헝클어진 불안으로 짜고 시치고 쓰고 꿰맨 모든 것들은 위태위태 위험해요. 그것들은 다 없애버려야 해요.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면서 쓴 긴 글처럼요.
제가 문제였어요. 제가 저를 견디지 못했던 것이지요. 털실과 코바늘은 다 핑계고 변명이었어요. 까닭 없이 스스로를 부정하고 스스로를 불안해하는 제 머릿속의 털실이 가장 큰 문제였어요. 페르난두 페소아가 그랬던가요. “나는 내가 가둔 자이며 나는 나를 가둔 자다.” “나는 나의 영원한 숙적”이고 삶이란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실은 “내가 누구인지를 망각해야 하는 여정”이라고. 그래서 “나에게 위선 아니면 위악만을 가르치는 감독인 나, 그래서 무엇을 하며 살아도 어딘지 모를 불안과 불쾌감을 그림자처럼 질질 끌고 다녀야 하는 나”, “그런 나와 결별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라는 사실을 포기하는 것만이 방법”일지도 모른다고요.
그래요. 그래서 누군가는 깊고 깊은 산속에서 혼자 수십 년 동안 돌탑을 쌓고 또 쌓고 또 쌓아요. 또 누군가는 아무도 없는 산길을 밤부터 밤까지 평생을 걷고 또 걷고요. 또 누군가는 빙벽을 오르고 또 오르고요. 또 누군가는 글을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다가 스스로도 지워버리지요. 아무것도 없어서 더 아름다운, 불모의 사막을 만나기 위해서요.
그러니까 제겐 이 한 줄기 긴 직선의 실(絲)은 필생의 업으로 써 내려가야 하는 기나긴 문장이고, 한 단 한 단 올라간 뜨개코들은 깨알 같은 글자이자 행간이고, 코바늘은 한 자루 만년필 같은 존재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모티프 몇 개를 더 떴어요. 많고 많은 모티프가 제 방 안에 흩어져 있군요. 수십 개의 제가 매우 불안한 패턴으로. 너무나도 다양한 제가 긴뜨기와 짧은뜨기로 엮어져 있어요. 아, 제가 얼마나 많은지요! 파란 모티프와 노란 모티프 사이의 공간, 어제 모티프와 오늘 모티프 사이의 시간, 그 사이, 저와 저 사이를 이어야만, 모르고 또 모르고 다르고 또 다른 저를 만날 수 있겠지요. 어떤 저 자신을 만나든지 간에 그 즉시 또 이별해야겠지만요.
오늘 밤은 내내 털실과 코바늘과 놀려고요. 겨울밤은 뜨개질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에요. 제가 털실을 뜨는지 털실이 저를 뜨는지 모르겠지만요.
조민(시인) |
조민
2004년 <시와사상>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조용한 회화 가족 NO. 1》이 있다.
_ 한겨레 문학웹진 <한판> 2015.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