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황제의 무덤과 대만 고궁 박물관에서, 상형문자를 보고서 나는 고대의 세계로 돌아가는 듯했다.
이집트 황제의 무덤 속에서 보았던 상형문자엔 영혼을 지닌 자연의 형사이들이 숨쉬고 있었다. 새가 날개를 펼쳐 나는 모습,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 나무가 하늘로 가지를 뻗어가는 모습을 그려놓은 것이 상형문자였다. 글자 한 자씩에 사물 한 가지의 골격이 축약돼 있었다. 글자 하나씩이 절묘한 그림이었다.
하늘, 달, 별, 물, 나무, 사람…등을 첫눈에 척 알아볼 수 있게 해놓은 솜씨가 기막혔다. 단번에 알아차리게 디자인해 놓았다. 사물에 대한 깊은 관찰과 해석이 없이는 이렇게 탁월한 조형미와 감각을 얻을 수가 없을 듯하다.
일행들은 안내자를 따라서 이곳을 그냥 스쳐갔다. 나만은 꼼짝없이 상형문자 앞에 얼을 뺏긴 채 서 있었다. 인간이 처음 사용한 문자의 형태미에 취해 떠날 수가 없었다.
상형문자는 나를 상상의 숲으로 끌여들였다. 온통 상형문자로 채워 놓은 무덤 속 한 벽면은 무엇을 전하려고 한 것인가? 황제의 치적을 기록한 것일 테지만, 그의 일생이 거대한 벽화로 남겨져 있었다.
상형문자 하나씩이 하나의 별 같았다. 상형문자들이 한덩어리가 되어 성좌를 이루고, 성좌들이 모여서 하나씩의 은하계를 이루고 있었다.
상형문자 벽면에 홀려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무와 해가 만나고, 나무와 물이 만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늘과 해가 만나면 무엇이 되는가. 상형문자는 자연계의 현상과 순환을 담아 놓은 듯했다. 자연법칙과 이치와 순리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세상살이와 자연 세계의 모습을 담은 신비한 그림이었다. 보는 것만으로 사물의 형상이 되살아나서 교감하고마는 문자가 상형문자일 듯했다. 관계 맺음이 소통이었다. 하늘과 땅이 만나고 시간과 공간이 만나는 소통과 교감의 세계였다.
무덤의 주인은 상형문자 벽을 보면서 영원을 생각했을까. 수천 년이 지났건만, 고대의 상형문자에선 자연의 열기가 남아있는 듯했다. 컴컴한 무덤 속이 상형문자로 말미암아 해, 달, 별이 빛나고 있으며, 봄이면 새싹을 피우며 부활하는 나무가 있어 빛깔과 향기를 내고 있었다.
상형문자 벽면은 신비를 담아놓은 거대한 벽화였다. 우주와 자연의 모습을 형상화시킨 신비도神秘圖였다. 망자는 죽음을 맞았지만 그의 영혼은 우주에 닿아 있었고, 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고궁 박물관에서 내 눈을 현혹시키는 것은 인간이 남겨 놓은 미美의 창조품보다도 상형문자였다. 중국 대륙에서 가져온 상형문자 유물을 보면서, 황하 문명의 기운을 느끼게 했다. 우주와 자연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 어떤 사실화나 시보다도 자연 그대로의 영혼을 느끼게 했다. 자연의 열기와 영감을 얻게 만들었다.
나는 무슨 뜻인지 해석할 수 없는 상형문자가 더없이 좋았다. 정확, 단정, 확인이 아닌 생명 질서의 발견과 삶의 이치에 대한 공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상형문자에선 우주 음音, 자연 율律이 있고, 균형과 조화가 있었다.
상형문자를 보면서 나는 고대인들이 발견했던 영원을 보았다. 상형문자의 발견은 곧 영원의 발견이며, 이로써 고대인들은 우주와 대화를 가질 수 있었다.
시, 공간을 초월하고 죽음을 넘어 영원의 세계를 열어주는 문자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상형문자에선 고대의 햇살이 넘치고 별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글자가 개미 같고 새처럼 보였다. 물고기인 양하고 풀 같았다. 자연물들이 그대로 글자가 되어 중얼거리고 살아서 움직이는 생생한 세상을 보았다. 먼 기억처럼 사라져버린 고대문자 속의 세상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