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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시에서 보이는 부모의 말
엄마가
거제고현중 1년 박미경
공부 안하고 핑핑 논다고
엄마가 잔소리 한다
애써 못들은체 무시하고
게임만 갈긴다
화가나신 엄마가 말씀하신다
공부 싫으면 적당히하다가
엄마처럼 힘들게 살라고
엄마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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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안하고 게임하고 있는 미경이에게 어머니가 잔소리를 합니다. 잔소리가 안 통하니 이제 화를 내면서 말씀을 합니다. 공부하기 싫으면 적당히 하다가 엄마처럼 힘들게 살라고. 미경이가 어머니의 얼굴에서 어머니의 쓰린 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어머니 말씀을 듣고 미경이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어머니는 당신의 삶이 너무 지치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신세를 한탄하는 것 같습니다. 살면서 자식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것들 가운데 하나가 힘겹게 살아가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힘들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직접 듣는 것이겠지요. 힘든 삶을 비관하거나 자신의 고달픔을 말하는 부모로부터 감동 받는 자식이 얼마나 있을까요?
시에 나오는 어머니 말씀을 들으면 당신 자신을 깎아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식구들은 하나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 당신을 깎아내리면 식구들 모두를 깎아내리는 것과 같겠지요. 공부하기 싫으면 적당히 하다가 나처럼 힘들게 살라는 말을 뒤집으면 공부 열심히 해서 엄마처럼 살지 말라는 말이겠지요. ‘엄마의 삶’이 있었기에 내가 있는데 ‘엄마의 삶’을 이렇게 무참히 깎아내립니다. 제 생각엔 이런 말을 늘 듣고 자란 아이는 엄마처럼 사는 것은 못난 것이다, 안 좋은 것이다. 바람직한 삶이 아니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엄마처럼 살지 않는 어른이 되었을 때 더는 엄마의 삶을 애써 들여다 보지 않는 자식이 될까봐 겁이 납니다. 엄마의 삶을 낮추어 보는 어른이 될까봐 겁이 납니다. 자식 잘되길 바라는 부모 마음은 알겠지만 아이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부 버리니까
거제고현중 2년 임가희
여름 휴가때 나는
할머니 댁으로 갔다
할일이 없어 놀 때
큰아빠께서 밭에 가자고 했다
나는 밭을 따라가
풀뽑고 심부름하고 약줄도 잡고
힘들어서 꾀도 좀 부렸지만
그래도 즐겁기만 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따라가
힘들어 죽을 상을 하자 큰 아빠는
"저기저, 까희는 이렇게 안 힘들라면
공부 열심히 해야 안되겠나, 그지?"
그러나 큰 엄마는 내가
공부보다 농사일을 더 잘할거랬다.
그러시면서 니는 커서 농사일하라고
그래도 나는 크면 절대로
농사일은 하지 않을꺼다
남은 힘들어 죽겠는데
힘들게 지은 그 땀들을
먹기 싫다고 전부 버리니까.
(2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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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희가 방학 때 큰 아버지와 함께 밭일을 합니다. 풀도 뽑고 잔심부름도 하고 약줄도 잡고 힘들어서 꾀도 부리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합니다. 큰아버지를 도와 즐겁게 일하는 가희 모습을 보니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교실에서 교과서 한두 쪽 더 외우는 공부보다 훨씬 더 값지고 귀한 공부라는 생각도 들구요. 큰 아버지는 가희한테 이렇게 힘든 일 안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합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힘든 농사일 같은 것을 하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땅 1500만 노동자, 350만 농민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들 대부분은 노동자와 농민의 자식이고 또 앞으로 노동자와 농민의 삶을 살고 자식을 낳을 것입니다. 이런데도 부모가 되면 너도 나도 이런 얘길 합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우리처럼 살지 말라고. 큰 어머니는 가희가 학교 공부보다 농사일을 더 잘할 것 같다고 커서 농사일을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희는 농사일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가희는 농사일이 얼마나 힘든지. 또, 땀 흘려 힘들게 지은 먹을거리들을 함부로 버리는 사람들 모습을 보면서 농사일이 고생한 만큼 대접 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가희 눈에 비친 우리 사는 모습에 가슴이 뜨끔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음식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노동과 자연이 들어있는지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밥을 하늘로 섬기고 살았는데 지금은 하늘이 아니라 그냥 돈 몇 푼으로 사면 그만인 ‘무엇’이 되었습니다. ‘농자천하지대본’은 잊혀진 낱말이 되었고 귀한 일 한다고 반만년 동안 대접 받던 ‘농사꾼’은 이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갈수록 가난해지고 빚에 눌리고 장가도 못가고 쌀 시장 개방으로 벼랑 끝까지 밀린 천덕꾸러기 불쌍한 직업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문화방송에 ‘노인들만 사는 마을’ 이런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지금 농촌을 지키고 있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우리 농촌은 이대로 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는 남아서 우리 농업과 농촌을 지켜야 하는데 나라에서 앞장서서 농업과 농촌을 깔아뭉개고 우리 사회도 젊은이들한테 힘든 일은 그만 두고 편한 일만 하고 살라고 자꾸 부추깁니다. 땀 흘려 일하고 사람답게 살라고, 돈은 조금 벌어도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살라고 해야 할 텐데 정작 농사 짓는 농사꾼, 일하는 노동자는 되지 말라고 합니다. 누가 이렇게 우리 노동자와 농민을 스스로 깎아내리게 했을까요?
장갑
거제고현중 2년 박정국
몇 주전 가족 모두 시골에 벌초하러 갔다
아빠는 그날 엄청 열심히 일하셨다
나도 장갑을 끼면서 일을 하였다
회사에서 가져온 튼튼한 장갑이다
그런데 이건 손가락이 엄청 아프다
질기고 껄끄럽고 불편한 그 장갑을 꼈다
정말 아프다
그리고 며칠 뒤 아빠가 내게 말했다
공부 못해서 그 장갑끼고 일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해서 편한 곳에서 일을 하라고
장갑이 아픈만큼 아빠의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
(2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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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이가 벌초하러 가서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합니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끼는 질기고 껄끄럽고 불편한 장갑을 끼고 일을 합니다. 정국이가 아버지께 손가락이 아프다고 불편하다고 말을 했겠지요. 며칠 뒤 아버지가 공부 못해서 그 장갑 끼고 일하지 말고 공부 잘해서 편한 곳에서 일하라고 말해줍니다. 정국이는 날마다 그 아프고 불편한 장갑을 끼고 일하실 아버지를 생각하며 가슴 아파합니다. 시에서 힘들게 일하는 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이 잘 드러납니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참 씁쓸합니다.
아버지가 당신의 일을 자랑스레 들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왜 많은 부모들이 자기 자식만은 고생을 시키려하지 않을까?, 부모님들이 말하는 ‘공부’는 어떤 공부를 말하는 것일까?, 아버지는 왜 당신이 하는 일을 아들에게는 하지 말라고 할까?, 그러면 아버지가 하는 일은 도대체 누가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좋은 대학가서 편하고 좋은 직업 얻어서 돈 많이 벌고 높은 자리 올라가고 그러면서 사는 것” 이것이 부모님들이 바라는 자식들의 삶인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시겠지만 노동자와 농민이 되지 않는 공부, 편하고 좋은 직업, 돈 많이 버는 직업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공부가 부모님들이 말하는 공부인 것 같습니다.
돈이 안되더라도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보람 있는 일을 찾아 가는 그런 공부를 하라고, 가난하더라도 부지런히 일하고, 착하고 정직하게 다른 사람 도우면서 사는 것이 훌륭한 삶이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식들한테 궂은 일 하지 말고 살라는 말에는 일(노동)과 일하는 사람(농민과 노동자)을 보는 잘못된 생각이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역사와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겠지요.
열심히 일했지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당하고만 살아온 시간들이 뼛속깊이 새겨져 내 자식만은 이런 대접을 받게 하지 않으리라. 힘들게 농사지어봤자 제값도 못 받고 빚만 쌓이는 현실이 한이 되어 그 아픔을 되물려 주고 싶지 않아서, 대학 나오지 않았다고 좋은 대학 나오지 못했다고 차별 받아온 시간들이 가슴 속 멍이 되어 내 자식만은 대학을 가야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그래야 사람대접 받는다고, 당신들이 받은 설움을 씻어내려는 마음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겠지요.
일하는 사람들을 짓밟는 사회구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박탈감, 자기 비하. 열등감, 피해의식을 갖게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부모님들이 생각하기에 이 험한 세상에서 부자도 아니고 좋은 학벌도 없고, 힘든 일을 해야 하는 당신들은 자식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기만 합니다. 못 나고 못 배워 나는 이래 살았지만 그래도 너희들만은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열에 아홉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부모님들이 자기 자식이 고등학교만 마친 노동자, 농민이 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들처럼 차별받으며 힘들게 살 것 같아서 그런 것이겠지요. 저도 마찬가지구요.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이 천박하고 유치하고 추한 차별과 편애와 불평등의 논리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고,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무엇이 진짜 행복인지, 어떤 것이 더 바른 마음인지 다시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런 잘못된 생각들도 조금씩 바뀌어 가겠지요. 아이들하고 이야기도 해봐야겠습니다. 일하는 부모님의 삶을 어떤 눈으로 보아야 하는지, 공부를 왜 하고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지,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2006.1.21.
첫댓글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아닌지 알면서 틀린지 알면서 이해하고 용서하고 그래서 살만하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도 그게 있어 그 아이의 삶이 있는 것은 아닐까... 약간 허무한 생각을 합니다.
주중연 선생님 설 연휴 마치고 시간되시면 술한잔 하실래요?
예 선생님. 그럽시다. 시간 되는 사람 모으면 더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