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날의 추억
케네스강 (글무늬 문학사랑회)
35년간의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었다. 어릴때 기억으로 흰옷을 입은 어른들이 동구밖에서 어선 선착장에서 그리고 오일장 어귀에서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평난났다고 기뻐 소리치며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고 조선총독부의 항복을 받아낸 다음 미국 군정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전, 미군정 총사령관은 존 리드 하지 장군 General John R. Hodge (1893-1963) 이라고 배웠다.
국민학교에 입학하였는데, 국어 셈본 (산수) 사회 그리고 과학 국정교과서는 겉장에 군정청 학무국 (문교부) 발행 이라고 되어 있었다. 책을 펴면 석유냄새가 나고
어름어름 중간 페이지는 ㄱ 멍이 나 있었다. 그런데 그 냄새가 좋아서 우리는 책을 펴서 코를 박고 킁킁거렸던 기억이 난다. 국어책에는 철수와 영희가 주역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철수야 놀자 영희야 놀자 등등.
예닐곱살이 되니 식구들이 나를 미운 일곱살이라 불렀다. 이빨이 빠지려고흔들거리면 할아버지는 참실을 이빨에 걸어 확 잡아당겨서 뽑은 다음 지붕 위에 던지곤 하셨다. 그때 이빨을 왜 지붕에 던졌는지 무슨 미신이 분명히 있었는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니는 건넌방에서 누에를 기르셨다. 나는 누나들을 따라 뽕잎을 따러 뒷산으로 많이도 다녔던 기억이 난다. 뽕잎을 딸때 달콤하던 그 열매 오디를 잊을 수 없다. 처음엔 초록에서 빨간색인데 익으면 검은색으로 변하고 물기도 많아서 최상의 간식거리였다. 누에가 작은 애벌레에서 큰 누에로 커 가면서 고개를 돌리며 뽕을 점점 더 많이 먹어 치우는것이 신기하였다. 누에들이 마침내 몸을 숨기고 고치속으로 다 들어가면 그것들을 삶아서 명주실을 만드는데 그 과정이 참 복잡했다. 고치가 된 번데기를 우리는 많이 주워 먹었다. 가난한 시절이라서 단백질이 많다하여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많이 권장했던 기억이 난다.
명주실이 완성되면 그것을 배틀에 걸어서 베를 짜는데 그 일은 나보다 20년이나 나이가 많은 고종사촌 누나의 담당이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과 함께 뒷산으로 칙을 캐러 다니기도 하였다. 큰 칙뿌리 하나를 힘들게 캐면 그날은 횡재하는 날이다. 대여섯명이 나눠 가져가야 하는데 이때 도끼가 반드시 있어야한다. 칙의 단맛을 맛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칙을 논해서는 않된다.
칙을 캐러 산에 올라가는 중에 가끔 산토끼를 만나기도 한다. 산토끼는 아래서 위로 쫓아서는 절대 잡을 수 없다.
산토끼는 위로 달릴 때는 날렵하게 도망한다. 하지만 위에서 아래로 몰면 헛발을 디디면서 넘어짐으로 쉽게 잡힌다. 언젠가 산토끼 한마리를 잡아서 힘들게 집으로 집으로 가져와서 얼기설기 토끼집을 지어서 그 속에 넣고 먹을것과 물을 주며 키웠다. 그런데 도망갈 생각만 여간 분주한 것이 아니라서 나중에 결국 도망치고 말았다.
비가 많이 내린 다음 개울물이 풍성하면 작은 형과 함께나무를 깎아 배를 만들기도 하였다. 보통 딱딱한 나무로는 만들기가 어렵고 보들보들한 나무로 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그 너무 이름을 잊어버렸고, 아무튼 예리한 칼끝으로 배 밑창과 선미와 선수 갑판을 정교하게 깎아야 한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동네에서 작은 형과 또 몇몇 형들밖에 없었다.
또 농촌에서는 집집마다 일할 수 있는남자 수대로 지게가 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자가용 자동차가 집집마다 있는 식이다. 지게를 영어로 에이 프레임 (A-frame) 이라고 하는데 지게를 앞에서 보면 영어의 A 자처럼 보이기 때문에 미군정때 미군들이 지어낸 단어이다.
제게 위에 얹는 바지게 라는 것도 있었다. 가는 싸리나무
가지들을 엮어서 지게 크기에 맞춰 마치 조개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모양으로 만든다. 바지게는 주로 봄 여름에 논이나 밭 그리고 야산에서 베어온 잡초를 한데 모아 썩게 만들어서 다시 논밭으로 옮겨 퇴비로 쓰는것인데, 이때 바지게가 그 역할을 한다.
자가용 승용차만 타고다니는 우리 손주들에게 지게를 지고 뒷산에 올라가서 잡초를 한바지게 베어오라고 내가 부탁한다면 과연 어떤일이 벌어질까 생각만해도 절로 미소가 떠 오른다. 젊고 아리따운 여성들이 배꼽을 훤히 내놓고 짧은 핫팬츠만 입고 미끈한 다리를 자랑하며 휴대폰을 들고다니는것을 만일 우리 할머니 가 보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