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숙한 믿음은 감사입니다
23: 14-17
14.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
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
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17.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찌니라
=====================================================================
한 어린이가 발걸음도 가볍게 주일학교에 늦지 않도록 종종 걸음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기분이 좋은 날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께서 헌금하도록 늘 주시던 동전 이외에 덤으로 또 하나의 동전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덤으로 주신 동전을 가지고 무엇을 할까 이것저것 즐거운 궁리를 하다보니 시냇가에 당도했는데 시냇물을 건너다가 순간 실수하는 바람에 동전 하나를 그만 물 속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어린이가 스스로에게 한 말인즉 하필이면 헌금할 동전이 물에 빠져버렸네.
참으로 맹랑한 어린이가 아닙니까? 자신의 실수로 두 개의 동전 중 하나를 물에 빠뜨렸으면 우선 순위로 보건대 남아있는 동전은 당연히 본래의 목적대로 헌금해야겠지요.
이 맹랑한 어린이의 영악스러운 모습 속에서 숨겨져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평상시에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최고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립니다고 하면서 막상 큰 손해를 보아야 할 경우가 생기면 하나님은 사랑이신지라 내 형편과 사정을 다 아시지요. 죄송해요 하나님 하면서 내가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숙한 신앙의 소유자라면 맹랑한 어린이가 한 행위의 반대로 다행이군. 하나님의 것은 물에 빠지지 않아서 라고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 아닙니까? 죄에서 구속받은 성도들의 당연한 의무는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매 주일 예배드리는 것도 모두 감사의 표현이요 은혜를 받기위한 방편이고 보면 자원하는 심령과 기쁨으로 예물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교회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인데 왜 이 절기를 지켜야 하는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 맥추감사절이란 무엇입니까?
16 “맥추절(麥秋節)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맥추절이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생활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보리농사를 하여 얻은 첫 열매를 하나님께 감사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민족은 보리나 밀을 주식으로 삼았으므로 보리농사의 첫 열매를 거두어들인 날을 가장 즐거운 감사절로 지켰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맥추절 외에 또 다른 말이 나오는데 바로 초실절과 칠칠절과 오순절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명칭은 달라도 다 통일한 날을 의미하는데 제가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초실절(初實節)이란 처음 익은 열매 중 가장 탐스러운 것을 따다가 하나님께 드리면서 찬양으로 감사를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칠칠절(七七節)이란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하나님께 복을 받은 대로 자신의 능력을 헤아려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은 유월절의 무교절 기간 중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로서(레 23:15) 무교절의 첫날이 안식일이므로 결국 무교절의 둘째 날이 됩니다(레 23:07).
오순절(五旬節)이란 글자 그대로 50일을 계산하여 지키는 절기로서 칠칠절의 다른 말입니다
골 02:0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0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렇게 말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목사님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지 않습니까? 맥추감사절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절기 아닙니까?
우리가 이 절기를 꼭 지켜야만 합니까? 그렇게 부정적으로 묻는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지요.
성도 여러분은 신구약 성경을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요. 그러면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고 합니까?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합니다(살전 05:18).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것도 범사에 감사하는 부분 중의 하나로서 영적 이스라엘 백성 된 우리가 이러한 의무를 지키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한국교회에 이 절기가 도입된 것은 일년 중의 상반기의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목을 찾아 드리는 절기의 성격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2005년 오늘 우리가 감사의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으니 하나님 앞에서 감사의 정신을 찾아 은혜로서 이 맥추감사절의 예물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맥추감사절에 참여하는 나의 신앙자세가 어떠해야 합니까?
어느 신앙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록수는 날씨가 변해도 항상 푸르다. 찌는 듯한 여름에도 겨울의 혹한에도 푸르다.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그래야 한다. 주변 사정이 아무리 변화무쌍해도 그것에 영향 받지 않는 변함없는 감사가 이어지는 생활이어야 한다.
이 말씀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명령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이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찌 감사할 일만이 있겠습니까? 불평이 더 많은 세상,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항상 감사하는 상록수와 같은 감사가 될 수 있을까요? 여기 네 가지 감사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①얻어서 하는 감사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사람은 무언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을 때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는 법이죠.
우리가 얻어서 하는 감사를 배우려면 열심히 문을 두드려서 응답 받는 재미를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이 감사를 많이 경험하게 될 것이고 반대로 적게 구하거나 거의 구한 것이 없는 사람은 얻은 것도 없으니 감사도 적을 것입니다.
②비교해서 하는 감사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은 어려웠던 때를 잊지 않고 늘 기억하는 데서 나오는 감사입니다.
가난했던 과거와 그런대로 살만한 지금을 놓고 비교하는 것이며 건강한 지금과 병약했던 과거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사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과거를 잊지 말라고 누누이 당부했습니다(시 103:02).
③만들어서 하는 감사를 실천해야 합니다.
누구나 감사할 수 있는 일만 가지고 감사한다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범사의 감사는 불가능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려면 감사할 수 없는 것들까지 감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만들어서 하는 감사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고차원적인 감사라 사람의 힘으로는 잘 안되기 때문에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하겠지요?
송명희 시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왜 날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하나님께 원망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 분이 왜 나를 이렇게 만드셨는지를 깨닫고 나서부터 감사를 하게 되었다. 인생이 얼마나 장수하는가? 얼마나 가지고 누리는 가에 참된 가치가 있지 않고 어떻게 사느냐에 달린 이상 나의 장애가 결코 감사 못할 선물이 아님을 알았다.
④예수님이 좋아서 하는 감사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감사로서 히브리서 기자가 권유하는 믿음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당시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매우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습니다.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견디기 어려울 만큼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히브리서 기자는 항상 찬미의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현실의 고난이 견디기 어려워도 흔들리지 아니하는 감사와 찬양을 쉬지 말고 드리라는 말씀인데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예, 예수님으로 인하여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활도 예수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좋아서 하는 감사는 세상의 것을 모두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감사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합 0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3. 맥추감사절에 참여하는 나는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신 16: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정성과 기쁨으로 예물을 드리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최상의 것으로 최대의 정성을 다 쏟아서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 열납 되는 감사의 예물이 됩니다.
시 56: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존 헨리 조엣.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예방주사와 같고, 항생제와 같고, 방부제와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찾아드는 모든 질병이나 불행, 고통, 슬픔, 괴로움 등 이런 것들을 예방하는 것은 현실의 생활에서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은혜요 은총으로서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요 믿음의 훈련에 의해서 되어지는 겁니다.
성도들도 감사에 대한 훈련을 잘 해야 하고 자녀들에게도 이 감사의 훈련을 잘 시켜야만 축복의 통로를 이탈하지 않습니다.
사실 큰일을 감사하기는 쉽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 평범한 일에는 감사를 잊기가 쉽고 그것이 감사의 조건인 것조차 모르고 지나치기가 일수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인생에도 세 종류가 있는데,
①첫째는 받은 것이 많음에도 감사는 지극히 적어 그 감사를 눈으로 볼 수 없는 인생으로서 이러한 사람은 소위 영적 불감증에 걸린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②둘째는 받았으니 감사하는 인생으로서 이러한 사람은 그저 평범한 보통이 아니겠습니까?
③셋째는 지금까지는 받지 않았지만 앞으로 받을 것을 믿고 미리 감사하는 인생으로서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요 장래의 축복을 나의 것으로 소유하는 복된 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작은 감사 거리도 큰 감사의 조건이 되며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을 감동시키게 됩니다.
영국 격언에 지옥이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 찬 곳이고 천국이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시 96:08“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 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 지어다 09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 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감사는 인간의 본분이며, 감사는 축복의 통로이며, 감사는 축복을 채우는 그릇이며, 감사는 신앙의 척도이며 감사는 기적을 만드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2005년을 맞이하여 지금 이 순간까지의 삶을 뒤돌아보십시오. 어떤 일들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까? 감사의 제목들이 있습니까?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심으십시오. 감사는 감사를 낳습니다.
그런데 지내오면서 감사 대신 진리문제 아닌 것 가지고 범사에 불평하며 지내지는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회개의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감사의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불평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감사의 마음을 회복하십시오. 남들은 은혜의 자리 축복의 자리에 있는데 나 혼자서 은혜와는 거리가 먼 곳에서 서성이고 있지는 않는가 돌아보십시오.
시 50: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혹 지금까지 살아 온 자신을 돌아볼 때 힘들었던 순간이 떠오릅니까? 그러시다면 오늘 맥추 감사 주일에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집에서 인색한 마음으로 인해 적게 가지고 나왔습니까? 체면치레로 가지고 나왔습니까? 한 가정에 수입은 수백만 원 인데 온 가족이 절기헌금에 일 만원 하나도 못 드립니까? 아슬아슬하게 일 만원에 겨우 통과하십니까?
그러면서 자신들의 육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잘 쓰십니까? 이 시간 다시 믿음으로 작정하십시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의 심정으로 돌아가십시오(막 12:41~44).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감사는 마게도냐교회의 성도와 같은 감사가 되기 바랍니다.
고후 08:0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0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0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말씀을 맺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04:06)고 했는데 무엇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까?
믿음 주신 것을 감사합시다. 생명 주신 것을 감사합시다.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주신 것을 감사합시다. 감사의 자리에 있게 하신 것을 감사합시다.
살전 0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도 여러분! 아무래도 감사는 좀 구체적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①마음을 드려 감사합시다.
마음을 드리는 것이 우선이요 마음을 드리지 않음은 형식이요 위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②몸을 드려 감사합시다.
바울은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06:20) 했습니다. 사실 우리들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기에 우리의 몸을 전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③물질을 드려 감사합시다.
예수님은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마 06:20)고 하였고 시편에는 예물을 가지고 궁중에 들어가라(시 96:08)고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말로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 감사의 생활을 합시다. 감사는 땅속에 깊게 묻힌 보화와 같아서 쉽게 발견되는 것이 아니나 자신을 돌아 볼 줄 아는 사람의 눈에서는 쉽게 발견됩니다.
좀 더 놓은 영적 안목을 가지고 미래지향적인 감사생활을 하면서 살아갑시다. 감사가 떠나면 매사에 불평 거리만 찾게 되고 그리하여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부정적인 말들만 하게 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장미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며 감사가 없는 사람은 가시가 많아서 틀렸다고 한다고 하죠? 감사하는 사람은 국화 꽂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데 감사가 없는 사람은 쑥 냄새가 나서 틀렸다고 하죠?
어떤 감사 할아버지라고 별명이 붙은 노인이 모처럼 고기 한 근을 사 오다가 그만 넘어지는 바람에 뒤에 따라 오던 개가 그 고기를 물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도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한 젊은이가 할아버지 넘어져서 다치고 고기까지도 잃었는데 뭐가 감사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이 사람아 건강해서 그래도 입맛은 남아 있네 하더랍니다.
남들은 고기가 있어도 입맛 잃고 못 먹는 사람이 있는데 거기에 비하면 감사하다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