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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 새 비젼
창 37: 23-27
계속해서 꿈의 사람 요셉이라는 한 인물을 성경에서 찾아서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일찌기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아주 평범하고 고생을 모르는 그리고 조용하고 온화한 환경속에서 자랐습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꿈을 심어주십니다. 형제들의 볏단, 추수한 곡식단이 자기의 곡식단을 향해서 절을 하는 모습을 보았으며 해와 달과 별과 모든 별들이 형제들의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마음에 심겨주신 꿈인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장차 좋은 일이 일어날것을 기대하고 부푼 가슴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생각지 않은, 꿈과는 전혀 다른 계속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형제들을 만났더니 그 형제들은 저의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그리고 건져서 팔아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에 심었는데 왜 현실은 축복과 달리 저주가 임했으며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야곱이 에서를 속여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합법적으로 받고 이제 아버지를 발빠르게 움직여서 어머니와 합쳐서 눈어두운 아버지에게 영적인 축복까지 받는 저에게 이제는 다 되었다고 생각할 그가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서 밧단아람으로 갈때 베델에서 들판에서 찬 베개를 베고 이슬을 맞으며 밤을 지나야 되는 외로운 밤을 만나야 되는 것 처럼 요셉도 꿈 많은 젊은이가 꿈과는 달리 시련과 역경의 긴 파란만장한 여정을 시작하는 것으로 오늘 얘기는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꿈을 심은 사람은 그 꿈 때문에도 반드시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오히려 그 어려움이 그 사람을 꿈으로 인도해 주는 과정이고 도구라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었는데 왜 이렇게 어려움이 많으냐?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니까 왜 이렇게 시험이 많으냐? 뭐 이런 얘기를 자주 듣는데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또 어려운 일은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 어려움이 오는 것은 오히려 축복이다. 하나님 말씀 어기고 자꾸 길로 가지 아니하고 길 아래로 다니면 이것은 문제입니다. 거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은 시련이 아니고 그것은 시험에 걸린 것입니다. 문제를 만든 것이고 고생을 자처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도 어려운 시련이 오고 문제가 있는 것은 연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Training 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연단을 받을 때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된다는 것을 성경에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다 세상에 있는 찬란한 채색옷을 벗어야 될 시간이 올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그 고운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을 벗기고 어느 형제가 자기가 입었던 외투를 그에게 입혔다는 말이 없습니다. 아마 거의 벌거벗은 몸으로 부끄러운 모습으로 서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저를 잡아서 웅덩이에 던졌다 그랬습니다. 웅덩이라는 것은 대단히 답답한 곳입니다. 시편 40:1에 보면 다윗이 기가 막힌 웅덩이에서 나를 건지시고, 수렁에서 나를 건져서 든든한 바위에 나의 발을 세우셨다 이렇게 고백했는데 다윗도 이런 경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살던 마을에는 마을 가운데 큰 샘이 하나 있었습니다. 깊고 아주 큰 샘인데 온 동네 사람들은 거기와서 물을 길어다가 집안의 빨래도 하고 음식도 만들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일년에 두 번씩 그 우물을 치기 위해서 물을 다 퍼내고 그 다음에 사람을 빠게쓰에 줄을 매 가지고 줄을 타고 내려가게 해서 그 타고 간 사람이 허리에다 호미를 차고, 호미로 거기에 있는 모든 깡통이나, 던져놓은 돌, 흙 같은 것을 긁어서 이 빠게쓰에다 놓으면 올라가고 내려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샘 나는 곳을 잘 파서 샘이 콸콸 나오도록 해야 물이 맑고 차고 시원한 것입니다. 일년에 두 번 하는데 한해는 제가 걸렸어요. 내려가는 것을 내려다 보니까 보통 문제가 아니예요. 써늘해요. 한 삼복에 들어갔는데 들어가 보니까 써늘해요. 그런데 사방이 막힌 거예요. 위만 뚫려 있는데 위를 보니까 새까만 거예요. 그래서 아래서 다 파서 올려놓으면 올라가고 내려오고 그런데 자꾸 걱정이 오는 거예요. 저 사람들이 나를 골탕 먹일려고 놔두고 가면 어떻게 되나? 그러면 내가 거기서 춥고 물이 올라오고 그러면 죽을거 아녜요. 그래서 겁이나서 자꾸 위만 쳐다보는 것예요.
위에서는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래서 다 하고 나서 이제는 나 다 끝났다. 그러니까 줄로 올려줬어요. 그때 들어가 보고 이것 다시 안들어가야 될꺼다.
이 요셉이 얼마나 놀랬겠어요. 뭐 백자씩이나 파는 우물이 있고 우물에 물이 안 나오는 곳에 던져져서 냄새나고 지저분하고 어두운 그곳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다가 화려한 채색옷을 벗을 때도 있고 밝은 세상에서 잘 살고 사랑받다가 어느날 외롭고 답답한 웅덩이 속에 빠질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꿈을 지녔기 때문에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요셉이 체험한 첫번째 여정이었습니다. 결국 던짐을 받고 종이 되어서 팔려 갑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열한, 열두 형제 중에서 열한 형들에게 날 제발 살려 주십시오. 내가 잘못했습니다. 날 용서해주십시오. 날 좀 건져주십시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손을 묶고 그리고 약대 끝에다가 묶어서 종으로 끌려가는 그 요셉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형제들은 멀리 가는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꿈꾸는 놈 잘 없어졌다. 그렇게 웃으며 돌아앉아서 희희락락하는 그들을 보고 마음에 얼마나 절망과 배신감과 낙심과 외로운 마음과, 섭섭함과 슬픔이 그 마음에 있었겠어요. 이런 꿈이 있는 사람에게도 시련이 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팔려가서 남의 집 살이를 하고 종살이하고 감옥살이 하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게 된 과정을 보니까 아주 어렸을 때 교회에서 자랐습니다. 주일학교도 하고, 성가대도 하고 그리고 청년회도 하고 다니면서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다가 어느날 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어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어요. 십자가의 의미를 알게되었어요. 그래서 제 마음속에 하나님의 그 은혜가 감격해서 이제는 주님을 위해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청년회에 들어가서 청년회에 봉사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청년들이 보니까 나처럼 다 사업에 실패하고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기도할 때 보면 뭐 잇슈가 거창해요. 오늘은 한국, 내일은 세계, 그때 1960년대인데 해외에 나간 사람은 그 많은 사람 중에 조용기 목사님 밖에 안계셨어요. 조용기 목사님도 미국에 몇 번 오셨지 그렇게 많이 안가셨어요. 최자실 목사님도 해외에 나가신다고 그래서 보니까 일본에 갔다 오신것이지 그렇게 멀리갔다 오신게 아니예요. 그런데 다 모여서 기도하는데 오늘은 한국, 내일은 세계 막 그러고 기도를 해요. 그래 나도 하나님이 그런 꿈을 주신것 같애요. 그래서 나도 같이 붙어서 기도를 한참 했지요. 여러번 기도하고 그런데 기도 끝나면 문제가 있는데 뭐냐 하면 배가 고픈 거예요. 그때 회장하시던 신동수 목사님을 제가 기도 끝나고 만나서 눈으로 쳐다보는 거예요. 저는 부회장을 했으니까, 회장 부회장이 늘 같이 다녔는데 얼굴을 쳐다보면 눈이 딱 마주치면 무슨 얘기인줄 알아요. 돈있냐? 없다. 그럼 금식하자. 2-3초면 다 통해요. 그래서 없으면 금식하고 있으면 먹고 그때 라면이라는게 생겼는데 그렇게 맛 있을 수가 없어요. 지금도 밥보다 라면이 더 맛있어요. 거기다 만두를 하나 넣으면 기가 막힌거예요. 일년에 설렁탕은 두 세번 밖에 못 먹고 주로 라면을 가지고 살았어요. 그 라면이 없어서 배가 고파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어떤 사람이 오늘은 한국, 내일은 세계, 그러니까 세계는 그만두고 라면이나 잘 먹어라. 그런 사람도 있었어요. 우리한테.
어느 날 예배를 마치고 밤에 나와서 버스 정거장에 섰는데 서로 쳐다 봤어요. 너 돈있냐? 나 돈없다. 둘다 없다. 그렇게 결론이 내렸어요. 그럼 가자. 뛰자. 왜냐하면 서대문에서 구파발까지 가려면 한참 가야돼요. 통행금지는 되니까 부지런히 걸었어요. 홍제동 고개를 넘어가는데 벌써 12시가 가까이 된 거예요. 마지막 버스가 막 지나가는 거예요. 그런데 멀리 보니까 홍은동 삼거리에 지금도 주유소가 있는데 그때 그 주유소에 누가 돈 100원짜리를 떨어 뜨린것 같애요. 하나님이 주셨다고 주워 가지고 둘이 버스를 타고 내려서 집에 간적이 있었어요. 그 뒤로 나는 땅을 보기 시작했어요.
1974년에 해외를 정말 꿈같이 뉴욕에를 오게 됐는데 뉴욕에 오는날 42가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돈이 34전 밖에 없는 거예요. 전화하고 나니까 34전 있는데 Subway를 타고 브루클린 Ocean Pkwy까지 오라는 거예요. 토큰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35전이래요. 그래서 다 뒤져보니까 34전 있고 1센트 짜리는 필라델피아쯤 오다가 하나 주운것 있었는데 그걸 합치니까 35전이예요. 그래 두번째 땅에서 주워서 내가 살은 사람이예요. 그래서 지금도 페니가 땅에 있으면 절대로 주워야지 그냥 버리고 가지 않아요. 미국 속담에 페니를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은 페니 때문에 우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 말이 있어요.
그래서 아무튼 그런 시절을 보냈는데 다 꿈을 기도하면서 전부 개척을 나갔는데 가는데 마다, 사람마다 다 고생이 오는 거예요. 저는 충청도 한 산골에 들어갔어요. 거기는 교회도 없고 또 교인도 없고 여름에 가보니까 애들 몇 사람 모여서 전도하고 그래서 제가 그 국민학교 분교를 빌려서 예배를 드렸어요. 그래 여름에는 뽕을 치고, 누에를 기르고, 그 다음에 밭에다가 고구마를 심어서 좀 양식을 하고 그러면서 교회를 하나 지었는데 교회를 짖는데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요. 성도님이 주일날이면 며느리 몰래 밀가루를 좀 갖다 주면 그것가지고 수제비를 끓이고 그런데 좀 넉넉히라도 가지고 올거지 이틀 수제비 먹으면 똑 떨어져요. 그러면 이제 월,화 먹고 수,목,금,토 나흘은 굶어야돼요. 주일날 또 좀 가지고 오시면 호박 가지고 오시면 호박, 혹 감자 갖고 오시면 감자 먹고, 그 할머니들이 지금까지도 기억이 나요. 그렇게 며느리가 무서웠든지 아주 가만히 갖다가 부엌에다 놓고 가시는데 그걸 먹고 살았어요. 얼마나 배가 고픈지 몰라요. 쌀이라는 걸 구경을 못했어요. 어느 집에가서 보니까 집사람이 쌀밥을 가지고 이렇게 가는걸 보니까요 저런게 뭐 먹고 싶다 그런것은 이미 초월해 버렸어요. 왜 하도 많이 굶으니까 저게 쌀밥인가 보다 그렇게 하고 그냥 보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세월에 업친데 덮친다고 애까지 아픈거예요. 애가 아프니까 처음에는 괜찮겠지 그래서 좀 기다려 보고 기다려 보는데 안됐어요. 그래 애를 업고 병원을 가서 살려달라고 하기 시작하니까 돈 있느냐고 먼저 물어보는 거예요. 돈이 없으니까 먼저 좀 입원을 시키고 돈은 어디서 구해다 줄 테니까 좀 입원을 시켜달라고 하니까 안된다는 거예요. 그 아이를 업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데 병원마다 가는데 마다 안된다고 배척을 하니까 며칠을 지난 다음에 아이를 갖다가 병원에 돈을 구해서 갔다 놓았는데 늦었다는 거예요. 그런 세월을 지나면서 또 집에 오면 집사람은 폐결핵에 걸려서 잘 먹지 못하고 고생을 하니까 폐결핵이 들어가지고 제가 원래 뚱뚱한 사람을 좋아해요. 그래서 결혼을 했는데 이 사람이 40Kg가 된 거예요. 얼마나 말랐는지 피골이 상접했어요. 그래서 선교사가 와서 보더니 안되겠다고 입원을 시켰는데 그러기 전에 보면 매일 집에 들어가면 코에다가 숨을 쉬는지 안쉬는지 손을 대봐야 알아요. 완전히 시체같이 일어나지를 못해요 기운이 없어서. 숨이 딱 끊어진것 같이 보이는데 겨우 숨을 유지하고 있어요. 8개월 동안 매일 시체가 나가는 결핵 병동 무료병실에서 그곳에서 고생을 하고 있었어요. 사람이 배고픈것 참 어려운 거예요. 병든 것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배고프고 병들고 외로운 것, 이것 참 힘든거예요. 내가 그때 기도했어요. 하나님 기회가 되면 제가 이런 아픔과 고통을 깨달았는데 체험했는데....
저 어렸을 때 고생 안했어요. 딸이 여섯에 뭐 아들 났으니까 얼마나 귀하겠어요. 고생 안시켰어요. 그런데 고생을 하다 보니까 내가 고생이 뭔가 가난이 뭔가 질병이 뭔가 외로움이 뭔가 고통이 뭔가 이런 것들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때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하나 배운게 있어요. 동냥은 안 줘도 쪽박은 깨지 말아야 되는데 꼭 쪽박을 깨는 거예요. 울면서 돌아오면서 한 결심이 있는데 사람에게는 손을 벌리는게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니 하나님께만 구해야 된다.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세월이 지났어요. 어느날 하나님께서 너 이제 밥 먹는것 걱정 안해도 된다. 나는 내 일생에 그렇게 기쁠수가 없었어요. 밥 먹는것 걱정 안해도 되는 것은 내 일생에 최대의 Good News였어요. 왜냐하면 먹는게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어요. 옛날말로 이사갈 때 솥뚜껑이 붸아오나 봐라 그랬다는 거예요. 솥이라는게 시커먼데 뚜껑을 열어놓고 넣을게 없으면 그게 무서워 보이는 거예요. 하도 가난하고 하도 굶주렸기 때문에. 그래서 가난이라는게 얼마나 힘들고 어렵다는 걸 배웠어요. 하나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나님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이 날 용서해 주셨고 구원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 내가 이것 절대로 의심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믿겠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고 사랑하시고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아버지다. 아버지 지금 어렵지만 주님께 맡깁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 주실줄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그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날 이제 더 이상 밥 먹는 것 걱정하지 않고 밥은 걱정하지 말라.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어요.
그런데 월남으로 또 선교사로 가게 되었어요. 가서 달라트라는 도시에 미국 선교사님이 저를 갔다 내려놨어요. 거기 집이 하나 선교사님이 쓰시던게 있었는데 월남 말을 배워가지고 선교를 도와달라 그래서 미국 선교사들이 요청을 해서 여의도 교회에서 선교사로 보냈는데 가서 달라트라는 도시에 가서 언어학교에 있는데 선교사들이 여러 가정들이 그쪽에 다 살았어요. 그래서 저를 갔다 내려놓고 다 청소해주고 내려갔는데 하루저녁 자고 그 다음날 보니까 사람들이 선교사들이 다 나가 버렸어요. 하나도 없어요. 수 백명 있었는데 다 그 도시에서 나갔어요. 그래서 급히 나가보니까요 선교사들은 다 나가고 비행기도 마지막 비행기가 한대 남았는데 피난민으로 가득차고 자리가 꼭 하나 남았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거라도 사야 되겠어요. 사 가지고 집에 와서 집사람에게 표가 하나밖에 없고 선교사들이 다 나갔는데 이제는 오늘 나가지 않으면 기회가 없겠다. 그러니까 당신하고 애들하고 먼저 나가라.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가능성이 전혀 없으니까 왜냐하면 도시가 포위되면 그냥 그날로 끝나니까요. 집사람하고 앉아서 얘기를 하면서 보내려고 했더니 이 사람이 안가는 거예요. 어떻게 자기가 나를 혼자 놔두고 그냥 가겠냐는 거예요. 그래서 그 표를 놓고 몇 시간을 놓고 야단을 하다가 죽어도 자기는 안 간다는 거예요. 같이 죽으면 죽고 살아도 살지 그래서 그 표를 할 수 없이 월남 청년 한사람에게 주고 그리고 우리는 포기했어요. 그 말은 살기를 포기한 거예요. 그래 그날 저녁을 거기서 지내는데 밤새도록 포성이 나고 총소리가 나는데 언제 어느 시간에 베트공이 들어와서 우리를 죽일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한국사람이지요, 예수 믿는 사람이지요, 또 선교사니까 말 할 거 없이 당장 그 자리에서 총살시키는 거예요.
사람이 죽음 앞에 딱 서니까요 심각해 지더라구요. 밤새도록 기도하면서 하나님 내 생명을 주님께 부탁하고 살고 죽는것도 하나님 손에 있는데 내가 이제 다 살았으면 데려가시고 나를 살려서 일할게 있다면 살려주시고 하나님 손에 맡깁니다. 그 기도를 마출 때 까지 그게 어려웠어요. 주님이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뭐 땀이 변해서 피가 되었다는데 이해가 돼요. 밤새도록 지나서 그 다음 아침에 보니까 입술이 완전히 하얀 뭐 뱀 껍질 같은게 하나가 벗겨졌어요.
새벽이 되었는데 벨이 울렸어요. 우리는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하나는 죽음, 하나님이 천국으로 오라고 부르시는 소리 아니면 도움이 왔다고 생각했어요. 떨리는 손으로 창을 열어보니까 선교사 한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가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 사람이 선교사들 다 떠났는데 자기 혼자 떨어진 거예요. 병원 인수인계를 하는 일이 다 못다 맞추었기 때문에 혼자 하루저녁을 더 자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오후 4시에 자기가 특별히 미국 군부대에 부탁해서 조그마한 비행장으로 비행기가 올테니 그리로 나오시오. 4시에 나오되 이 비행기를 놓치면 당신은 영원히 이 도시에서 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뒷길로 해서 몰래 그 비행장에 도착을 해서 가보니까 벌써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었어요. 군인가족, 고위장성들가족, 다른 사람들이 가뜩이 왔습니다. 그 사람들도 군용비행기가 와서 가기를 기다리는데 비행기는 오지를 않아요. 4시에 온다는 비행기가 3시간 뒤에 도착을 하는데 엘리야가 하늘을 자꾸만 7번 봤다는데 나는 70번은 더 봤을 거예요. 기도하고 나가서 또 보고 그런데 저쪽에서 손바닥만한 구름이 오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가만히 보니까 그게 조그마한 소형비행기가 오더라구요. 비행기가 마치 잠자리처럼 살짝 내리고 그리고 그분과 우리 식구들을 태워 가지고 살짝 뜨는데 거기서 비행기를 타고 보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가실 시간이 아직 안되었나보다 그래서 나트랑으로 해서 사이공까지 넘어왔습니다. 그때 왜 그런 경험이 필요한가 생각을 했는데 제가 맹호부대도 아니고 백마부대도 아닌데 왜 월남을 가서 그 고생을 했나 아무래도 이해가 안돼요. 지금 뉴욕에 와서 그게 필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뉴욕에 살다보니까 별사람 다 있어요. 날 죽인다는 사람도 있고, 나를 무슨 신문에 어떻게 한다는 사람도 있고, 무슨 별 소리 공갈 협박이 다 있어요. 그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 나 월남갔다 왔소. 내가 백마부대, 백호부대는 아니라도 내가 월남가서 죽음을 면전에 두고 생사 앞에 섰던 사람이오. 이 말 하니까 웬만한 사람은 알아들어요. 좀 stupid 같은 사람은 그 말이 뭔지 몰라. 아는 사람은 알아요. 그래서 제가 월남 다녀왔다면 조심한다구요. 왜 총을 베트공하고 맞대고 죽느냐 사느냐 사경을 매일 저녁 넘긴 사람은요 눈빛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거예요. 그래서 죽음이 와도 생명을 주님 앞에 내 놓을 수 있다는 이런 연단이 필요해서 맹호부대도 아닌데 월남까지 가서 죽음을 여러번 지나게 하시고 그런 생각을 해보면서 이런저런 연단 아니 아직도 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더 무엇인가 맡기실 일이 있어서 아직도 연단이 끝나지 않았고 이런 내적인 괴로움과 외적인 문제와 여러 가지 시련들이 우리에게 있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시는줄 믿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오늘은 한국, 내일은 세계인데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지내야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다음에 그 수많은 사람들은 세계만방 여러곳에 가서 선교사로, 목사로, 목회자로, 전도자로 하나님께서 꿈대로 사용하시고 사명과 비젼을 주신대로 쓰시고 계시다는 것을 볼 때 그 회장하던 분은 회장이 돼서 그런지 미국의 수도에 와서 살고 있어요. 나는 뉴욕에밖에 못살고. 그런데 아마 뉴욕에 국제적인 사람이 많으니까 할 일이 더 많은가봐요. 그분이 나보다 나이가 좀 위에요. 내가 더 룬었으니까 더 일을 많이 하라고 뉴욕에 보내신 것 같아요.
오늘 왜 이 말씀을 드립니까? 요셉이라는 사람이 꿈이 찬란한 것, 그 아름답고 찬란한 시간에 채색옷을 벗고 물이 없는 구렁텅이에 던져지고 손이 묶여서 짐승의 뒤에 쫓겨 노예처럼 팔려가는 그 과정이 그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있을 수 있고 우리에게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시고 연단하셔서 하나님의 일에 쓰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배우고, 사실 성경은 좋은 일, 그른 일 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써요. 생사고락을 다 썼어요. 파란만장한 사람의 삶을 다 썼어요. 왜냐하면 여기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냐 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배우면 그 말씀대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하나님이 동일하게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이 귀한 사명을 주시고 공동체에게 비젼을 주셔서 이제 굶주린 사람들, 헐벗은 사람들을 헐벗고 굶주리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우리가 생명의 떡을 나누어 줄 수 있도록...
중국의 고아원을 지으면서 유명한 화가 네 분이 그림을 몇 점을 내주시고 문화원에서 장소를 제공해 주셔서 전시회를 갖게 되는데 서문을 써달라고 해서 생각에 잠겨있을 시간이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다시 오기 전에 외로운 눈망울과 배고픔과 외로움에 눈물 젖은 눈에 눈물을 씻겨준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이 일을 한다면 그대 눈물을 씻어 주는 것처럼 귀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 말을 제가 쓴 적이 있습니다. 아마 우리에게 세계를 선교하는 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그리고 연단을 우리에게 주실 수도 있고 시련이 우리에게 올 수도 있습니다. 그늘이 올 때는 아버지가 멀리 있기 때문에 그늘이 오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오기 때문에 그늘이 온다고 말했습니다. 부모가 멀리 있을 때는 그늘이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올 때 얼굴에 그늘이 잠시 지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때는 가까이 왔을 때입니다. 그래서 행여나 우리 삶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채색옷 처럼 찬란한 우리의 지난 과거를 다 벗겨야 될 때도 있습니다. 하늘만 열리고 사방이 다 막힐 때도 있을 것입니다. 기가 막힌 순간, 기가 막힌 어려움, 웅덩이에 빠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 주님이 같이 하셔서 반드시 그 연단을 통해서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공동체를 통해서, 여러분을 통해서 이루어 가시게 될 줄 믿습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피곤하지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여러분을 통해서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