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토포필리아의 언덕에 서린 삶의 원형에 대한 희구
- 당선작 <귀소본능>을 읽고 -
문학평론가 권대근
제 10회 부산수필문학상으로 이학락 수필가가 선정되었다. 이분은 문예시대로 등단하여 본회 부회장과 부산문학상 운영위원장을 맡아 협회 발전에 기여한 바 크다. 이번 부산수필문학상은 선정 기준에 있어서 수필의 작품성뿐만 아니라 수필가로서의 문단 기여도 등이 크게 반영되었다. 일제 강점기와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죽을 고비를 용하게도 네 번이나 넘겨왔기에 남들의 몇 생을 살아온 셈이라 여기는 이학락 수필가는 평생을 교육 일선에서 후학을 길러온 분으로 수필을 쓰면서 늘 하늘을 울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고 아래로 인간에 대하여 수치스러움이 없었는지 되돌아보는 자신의 성찰적 생활을 수필에 반영해온 분이라 하겠다.
당선작인 <귀소본능>은 작년 2010년에 출간한 토포필리아의 서정이 녹아 있는 제2 수필집 <애환이 서린 언덕>에 실린 수필이다. 이미 제목에서 암시된 바와 같이 이 작품은 금수를 포함해서 세상의 제 만물은 죽을 때가 되면 고향을 찾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경험과 관찰을 통해 주제의식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그의 다른 여타 작품들에 비해 서정성이 매우 짙다. 대상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로부터 나오는 정이 바탕이 되어 만물을 껴안는 작업이 서정의 힘이요, 그 서정의 그늘에서 미를 심는 작업이 <귀소본능> 속에 잘 그려져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서정성은 문학의 밑거름이 될 정도로 모든 문학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야 할 바탕으로서 문학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다. 사람은 누구나 막연히 동경하고 있는 세계가 있다. 작가는 그곳을 한 평생 가슴에 지니고 산다. 오래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리라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작가는 자기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고, 신념어린 삶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 수필을 따라가다 보면, 푸른 대숲, 서리가 내린 아침 우렁차게 우는 황소의 울음소리, 뒤꼍에 옹기종기 앉은 장독대, 뒷산 능선에 층층이 모셔진 선산들 등 인정 많은 시골의 토속적인 정취를 만날 수 있다. 어릴 적 작가의 집은 백 마지기가 넘는 대농가로 항상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고 한다. 작가의 조부 칠형제 후손들이 대단위 마을을 이루어 한 집처럼 서로 도우며 오순도순 정답게 살아왔던 인정어린 고향의 풍경이 작가에게 그리움으로 남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겠다. 개발 바람으로 한가롭던 촌락이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는 문맥을 통해서 작가는 자연 속에는 삶의 모범이 되는 실천 덕목이 내재되어 있음을 말해주고자 한다. 단순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 화로 같이 따뜻한 훈기를 느끼게 하는 자연의 숨소리와 맥박을 발견해서 깨달음으로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는 차원에서 이 수필은 문학성을 갖는다.
작가에게 있어 고향은 자신의 체취가 배어 있는 곳이다. 현대화의 물결로 친족들이 뿔뿔히 흩어졌던 상황을 외면할 수만은 없어서 문친들이 고향에 전당을 세워 조상을 추모하는 행사를 열고 있고, 작가는 가족들과 함께 그 모임에 참여하면서 고향의 원형이 없어진 데에 대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작가에게 있어 고향의 모습은 마을 사람들이 한 식구처럼 느껴졌을 정도로 인정이 넘쳐났던 곳이다. 정겨운 이웃의 영상은 고향이 인간의 영원한 안식처임을 말해 준다. 인간이 돌아가야 할 최후의 장소라는 토포필리아의 정신을 수필에 잘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짧은 기간 머물렀지만 그곳은 운명 지워진 것으로 가득 차 있어, 그것들은 반추해 되새기면 하나같이 보석이 되고 별이 된다. 이 같은 사실을 작가는 금수들도 때가 되면 고향을 찾는데, 하물며 인간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는 사실을 설의법으로 강조하고 있다. 해운대 아파트 단지에서 창문을 열면 시야에 들어온 까치집의 관찰을 통해 인간과 다른 동물의 귀소성을 구체적 사례로 들어 주제의식을 잘 뒷받침한 구성이 돋보인다.
이런 이학락 수필의 향토적이고 토속적 분위기는 건강한 생명에의 표식들로서 자연과 인간과 생명, 나아가 존재하는 모든 것에로의 회향을 바라는 작가의 무의식에 내재한 꿈의 그림자 형상들이라 하겠다. 낭만과 순수를 머금고 있는 고향의 땅과 분위기를 잊지 않으려는 노 작가의 귀소본능에는 자연 사랑의 정서와 인간 사랑의 정서가 점철되어 있어 싱그러운 풀냄새를 풍긴다. 모든 것이 인간의 상관물이요, 인간 자신의 투영일 수밖에 없는 문학의 본질적 속성을 꿰뚫는 작가의식은 그의 수필 속에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으로 승화되고 있다. 인위적이며 인공적인 구조물에 둘러싸여 사는 이 시대적 삶에 비켜서서 까치가 집을 지을 때부터 알을 까고 새끼를 키워 날려 보낼 때까지 빠뜨리지 않고 지켜보면서 고향을 그리워 한 것은 생명에 대한 경외이며 진정한 삶의 원형에 대한 희구를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이학락의 ‘귀소본능’은 삭막한 도회 생활의 혐오이면서 건강한 삶에 대한 갈구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그는 자연을 간직한 고향이야말로 삶의 마지막 보루이자, 생명의 젖줄이라는 것을 다양한 종의 귀소본능적 특성을 예시로 해서 구체화함으로써 이를 문학적으로 잘 표현했다. 수필 <귀소본능>에는 귀소본능의 대상으로서 고향이야말로 진정한 우리들 영혼의 안식처라는 사실과 또 하나, 자연을 잃어버린 도시인에 대한 연민과 역설적으로는 문명 비판과 자연친화 사상이 담겨있다고 하겠다.
심사위원 : 황정환, 이병수, 강영환, 권대근, 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