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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자본주의를 위한 경제교육’을 넘어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주의 교육은, 값비싼 사교육의 모습도 부자들을 위한 특권 학교의 모습도 아니라, 모두가 자본가, 투자자가 되려 하고 학교에서는 이를 위한 교육을 하려고 하는 풍경으로 현실이 되었다. 자산 소득이 노동 소득을 넘어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각종 투기 자산의 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나자 너도나도 자산 투자/투기에 나서는 게 당연한 지경이 되었다. 이제 교육계에도 이 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해, 또는 ‘성공’을 위해 경제교육이란 이름으로 이러한 투자와 재테크에 관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늘의 교육》은 올해 기조로 ‘자본주의 교육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설정했다. 그리고 오늘날 자본주의의 생생한 모습과 그 속에서 교육이 요구받는 역할을 잘 보여 줄 수 있는 주제로 이번 호는 ‘경제교육’을 다룬다. 채효정은 한국 사회에서 불로 소득과 금융에 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돌아보는 한편, 경제교육이 과연 어떤 목적으로 필요한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경제교육의 이름으로 금융·투자교육이 성행하는 현실을 넘어서는 반자본주의적 경제교육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진냥의 〈지금의 경제교육 논의가 놓치고 있는 것〉은 먼저 현재 경제에 관한 말들이 돈을 둘러싼 관계의 측면이나 가치와 윤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의 문제를 말한다. 나아가 민주시민교육과 마찬가지로 ‘경제시민교육’으로서 경제교육은 왜 필요하고 어떤 것을 다루어야 하는지 제시한다. 특집에 이어지는 경제교육을 실천해 온 교사와의 인터뷰 역시 ‘사회에 대한 문해력’ 차원에서의 경제교육에 대한 고민의 단초를 남긴다.
하금철의 〈‘초라한 경제교육’을 위하여〉는 자산 투자를 다루는 TV 예능이나 언론을 통해 소개된 경제교육 사례를 살피며, 그런 예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세계인지를 질문한다. 물론 불평등한 경제 구조 앞에서 교육의 역할은 초라한 것에 불과하지만, 이를 고민하는 것은 꼭 필요하고, 이는 이미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 어떻게 투자할지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윤승의 글은 이 문제 앞에서 학교와 교사의 현실과 고민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한국 사회 안에서 일정 이상의 소득을 가진 직업군이자 투자자로서의 교사들의 모습과, 그들이 교육에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는지를 성찰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경제교육’이란 이름하에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케 하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분명 온당하지 않다. 끝없는 경제 성장의 신화가 허구일 뿐 아니라 생태계를 멸종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노동, 돌봄, 재생산 등 삶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가치를 평가 절하하고 차별과 착취를 외면하도록 조장해 왔다. 자본주의 경제교육은 흔히 학생들의 현실에 밀접하다는 이유로 지지받지만, 사실 현실의 가장 근원적이고 치명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개인의 지식 축적과 미래에의 과감한 투자로 작금의 살얼음판을 딛는 듯한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는 허황된 결론으로 치닫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날 자본주의 교육의 대두는 체제 모순 속에서 구성원으로서 노동과 참여, 상호 부조를 실천하는 것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게 된 민중의 거대한 불안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 편집부
▶ 《오늘의 교육》 67호는 근래의 금융·투자교육, 경제교육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대해 검토, 논의해 본다. 나아가서 경제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 어떤 목적과 관점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다양한 제안을 꺼낸다. 이혁규의 《한국의 교사와 교사 되기》에 이어지는 여러 교사들의 교사 성장과 양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특별 기획은 한국 교직 사회의 과제를 보여 주고 있다. 연속 기획 지면에서는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의 현실과 실천, 동물과 함께하는 교육 경험 등 오늘날 교육 현실에서 함께 나누어야 할 고민을 전한다.
차례
10 읽은 이야기 | 김소혜
특집 ‘자본주의를 위한 경제교육’을 넘어
18 자본주의 교육을 넘어선 경제교육은 가능한가 | 채효정
33 지금의 경제교육 논의가 놓치고 있는 것 | 진냥(희진)
- 금융, 투자가 아닌 경제시민교육을 위해
46 ‘초라한 경제교육’을 위하여 | 하금철
56 막아도 들려오는 ‘돈벌이’ 소리 | 이윤승
- 학교와 교사에게 ‘투자’와 ‘돈’에 대한 고민
인터뷰 | 경북 경주여자고등학교 한승민 교사
69 시민을 위한 문해력교육으로서 경제교육을 고민하며 | 진냥(희진)
연속 기획 | 변방에서 온 편지 – 충북 옥천, 울산 상북면
82 우리는 학교를 ‘만들고’ 있습니다 | 오정오
- “만남이 곧 백신”인 옥천 징검다리학교
95 ○○ 선생님께 | 김미진
- 울산 상북으로의 초대장
연속 기획 | 동물과 함께 삶, 배움
109 우리는 어떻게 동물권을 이야기하게 되었는가 | 김규림(똘추), 박혜진(노랭)
- 성미산학교와 삶에서 만난 동물들
후속 | 법의 생태적 전환
122 법을 통해 시작된 자연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 | 이재영
특별 기획 | 예비 교사에서 정년까지, 교사는 성장하고 있는가
135 한국의 교사 성장은 무엇에 가로막혔나 | 이혁규, 이범희, 윤상혁, 김종원, 한희정, 정진선
168 교사의 성장과 교사 되기 | 이상대, 정용주, 박채연, 이광현, 정은균, 최수경, 강성규, 최원혜
에세이
217 코로나19 속 작은 학교가 살아온 1년 | 박옥주
227 텃밭에서 서로의 삶을 응원하다 | 허당(이상대)
- 대장동농(農)커뮤니티 10년을 돌아보며
240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다 | 이정은
-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을 맞이하며
연재 누구를 위해 ‘특수’ 교육은 존재하는가 마지막 회
245 누구를 위해 ‘약물’은 존재하는가 | 윤상원
- 약물 권하는 학교 사회 비판
함께 보는 교육 연구 ①
265 ‘가짜 뉴스 판별하기’, 그 이상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 이선미
영화와 아이들
275 좀비가 된 아이들, 좀비였던 아이들 | 김종구
-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지금 우리 학교는〉
리뷰
292 발달한 자본주의가 ‘번아웃 세대’를 낳았다 | 공현
- 《요즘 애들》
304 그들에게 ‘참교육’이란 무엇인가 | 성상민
- 웹툰 〈참교육〉
318 파스텔 톤의 ‘출구 없는’ 세계 | 채태준
-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
328 오늘, 읽기 | 최경미, 공현
332 내가 밀고 있는 단체 큐앤에이 | 이윤승
책 속에서
근본적 비판 없이 금융 경제 원리와 투자 기술을 실용적인 교육, 경제교육이란 이름으로 이렇게 각자의 방식대로 교육해도 되는 것일까? 무엇보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이런 경제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경제를 상상하지 못하도록 봉쇄한다는 것이다. 계획 경제도 사회주의 경제도 실패한 것으로 규정되어 왜 실패했는지를 성찰하며 다시 도전해 볼 기회조차 박탈해 버린다. 시장은 제2의 자연처럼 주어져 있는 것으로 전제되어 개혁도 개선도 그 안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 본문 29-30쪽, 채효정, 〈자본주의 교육을 넘어선 경제교육은 가능한가〉
지인 간에 무이자로 이루어진 부채가 아닌 이상,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돈을 빌리는 사람 때문에 이윤을 남긴다. 그런데 왜 돈을 빌린 사람이 을이 되고 돈을 빌려준 사람이 갑이 되는 건가? 이런 질문들은 경제교육이 아니라 도덕의 영역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이름으로든 필요한 고민이고, 고민할 계기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경제교육 중에 금융교육만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금융교육을 ‘투자법 트레이닝’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너무 조야하다. 금융을 삶에서 어떻게 여기고 다루며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더불어, 금융 역시 사람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이 글에서 ‘빚짐’이라고 표현한, 돈을 둘러싼 관계성 역시 교육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 본문 38-39쪽, 진냥(희진), 〈지금의 경제교육 논의가 놓치고 있는 것〉
학생들이 선생님이 만들어 준 가상 공간을 벗어나 ‘진짜 빈부 격차’를 마주했을 때, 이것 역시 ‘스스로 돈 관리를 하고, 쓰고 싶은 것도 참아서 형성된’ 정당한 빈부 격차라고 답해 줘야 할까? 실제 아이들의 ‘생존’을 결정하는 요소는 물가, 환율, 세금, 투자에 대한 개인의 이해도 수준보다는 바로 이런 순수 경제 논리 외부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불평등한 경제 구조 앞에서 교육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매우 초라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나 역시 이 지면을 통해 교육이 불평등한 경제 구조에 저항하는 주체화를 시도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나는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동화 또는 저항이라는 말로 포착될 수 없는, 기존의 ‘경제교육’이라는 프레임을 통해서는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는 짜투리 같은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 본문 51쪽, 하금철, 〈‘초라한 경제교육’을 위하여〉
왜 그렇게 근무 시간에 겸직 금지 원칙을 위배하면서까지 노동 소득 이외의 수익을 추구할까. 학교 교사들조차 교육보다는 자본이 더 중요한 삶의 가치라고 느끼고 있는 걸까. 비단 교사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중의 절대다수가 이미 ‘주식 개미’의 삶을 살고 있으니, 교육도 거기에 발맞추고 있는 것일까. 주식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 ‘삼프로 TV’의 구독자 수와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더라도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본과 금융의 세계에 푹 빠져 살고 있는지 알 것 같다.
- 본문 62쪽, 이윤승, 〈막아도 들려오는 ‘돈벌이’ 소리〉
몇 년 전에 학생들에게 진로를 조사하면 경제학과, 경영학과 간다는 학생들도 있고, 또 회계학과 간다는 소수 학생들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모두가 경영학과를 가겠다고 하고, 경제학과를 가겠다는 학생 자체가 많이 줄었다. 이제 경제학도 여타 사회과학처럼 취업이 안 되는 학문 중 하나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 같다. 반면 경영학이라는 건 취업이 잘되는 학문이자, 정말 우리가 ‘이재학’이라고 부르는, 부와 연결되는 하나의 기술 영역이라는 걸 모두가 알게 된 것 같다. 엄청난 시대적 반영이다.
- 본문 74쪽, 진냥(희진), 한승민 인터뷰, 〈시민을 위한 문해력교육으로서 경제교육을 고민하며〉
산업화가 가속화하면서 농촌은 급격히 붕괴되어 갔고 서울로, 도시로 떠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지요. 그 현상을 부추긴 일등 공신이 교육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가라 했고, 그렇게 서울로 가서 성공하는 것이 부모에게는 효가 되었고, 그래야 국가에서는 인재로 인정받았던 거죠. 시골은 떠나야 하는 곳으로 여기고 농업과 농촌을 무시하는 사회에서 교육은 아니 대학 졸업장은 면죄부가 되었습니다. 공부만 하면, 엘리트만 되면 다 허용이 되는 미성숙한 사회로 성장해 왔지요.
- 본문 97쪽, 김미진, 〈○○ 선생님께〉
교사마다 역량의 차이가 있고, 기질의 차이도 있다. 그러나 교사라면 위에서 인용한 교사처럼 누구나 좋은 교사가 되고 싶은 ‘선의’가 있다. 교장은 그런 의지를 잘 발견하고 발굴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 시설과 안전, 행정을 잘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사들의 선의를 다독여 교원학습공동체를 통해 깊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 교장이 갖춰야 할 첫째 덕목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교원 양성 과정이 빈약한 터에 학교라도 ‘교사 성장 학교’로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 본문 172쪽, 이상대, 〈교사의 성장과 교사 되기〉
약물은 민재를 잠재움으로써 망상 증세의 일시적 소거에는 효과가 있었을지 몰라도, 민재가 망상 증세를 가지고 어떻게 타인과 함께 부딪히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장기적인 삶의 지혜 내지는 앎을 얻을 기회는 박탈하였다. 또한, 조현병이라는 병명은 민재와 만나는 주요한 한 타인으로서 내가 민재의 망상적 행동의 원인을 개인 내의 생물학적 기질 탓으로 돌리기 딱 좋았다. 그렇게 민재의 행위는 더 이상 교육적 영역이 아닌 의료적 영역의 문제가 되었다. 정신병 진단은 학생의 삶의 경험 속에서 그들의 행위를 해석하고 이해하고자 애써야 하는 교사로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면죄부가 되어 주었다.
- 본문 256쪽, 윤상원, 〈누구를 위해 ‘약물’은 존재하는가〉
등장하는 사건 대다수가 어떠한 입장에서 바라보든 심각한 사회 문제이자 사건인 것은 분명하다. 또한 그 사건들은 인권 존중 수준이 낮은 한국 교육과 사회의 문제점이 불거져 나온 것들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 〈참교육〉은 매우 간편한 해답을 택했다. 권선징악이라는 간명해 보이는 구분법과 작품의 제목에 담겨 있는 함의이기도 한 ‘나쁜 일을 저지른 녀석들은 때려서라도 교정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는 정서를 모두 합쳐 내, 작품 속에서나마 잘못을 저지른 이들을 마구 때려 곤죽을 만들고 싹싹 손바닥을 비비며 용서를 구하게 하는 장면에서 독자들은 통쾌함을 얻는다. 실제 현실에서도 가해자들이 이에 준하는 엄격한 응징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작품을 감상한 독자들 사이에서 점차 싹터 오른다.
- 본문 310쪽, 성상민, 〈그들에게 ‘참교육’이란 무엇인가〉
힘을 주고 부모의 죄를 고하는 만큼이나, 그 죄를 사하는 프로그램은 ‘다만 몰랐을 뿐’을 뒷말로 붙인다. 문제의 사회적인 계기들은 봉합되고, 부모의 책무는 아이를 대하는 능력을 ‘계발’하는 일로 정초된다. 그러나 시청자는 여타 관찰 예능에서 그렇듯 상징적 질서 내로 봉합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주인공의 일상 속 흔적들을 본다. 이른 새벽 출근한 부부가 퇴근한 시간, 성별에 따라 불평등하게 분배된 육아의 몫, 화면 모퉁이에 담긴 빛바랜 벽지, 가구와 옷. 계층, 계급, 성별이라는 사회적 범주들이 문제와 깊이 관계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징후들은 전문가와 진행자에게 언급되지 않지만 삭제되지도 않는다. 〈금쪽〉에는 ‘육아의 성공과 실패는 개인의 앎과 노력의 문제’라는 스스로의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는 요소가 있다.
- 본문 325쪽, 채태준, 〈파스텔 톤의 ‘출구 없는’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