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어렸을 적으로 기억한다. 초딩 3-4년이나 됬을까? 할무니손잡고 할머니 친정집엘 잔치(혹은 제사)지내러 사나흘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이었다.
아침부터 눈이 나렸나? 아님 전날부터 내렸나.. 눈발은 함박눈으로 연신 쏟아져내리는 길에.. 중장터 가는 버스를 타고 오는데...
운적굴 비탈을 차가 오를수 없단다. 할무니 손잡고 걸어서 넘는밖에...
기억엔 꽤 추웠던거 같다. 근데 추운 기억은 없고... 운적굴 올라가는 길가에 어느 허름했을 가게집....
그 가게에서 먹었던 "시래기국"(실가리국)
지금도 생각난다. 실가리국이야.. 뜬물에 된장넣고, 무우 잎사귀로 만든 실가리 넣은 것 말고 무에 있겠느냐만은....
그때 할머니는 막걸리 한잔정도 드셨을것이고, 나는 할머니 옆에 앉아 그 실가리국 ... 두번인가 세번인가 더 달래서 달게 먹었던거 같다. 그때 그 맛을 못 잊어서인지 가을이면 난 시장에 나가 통무우 팔고남은 잎사귀를 지성스레 집엘 가져온다. 뭐 그냥 가져가란 집들이 많지만.. 그 알찐 실가리를 가져오는데 그냥 가져오기 뭐해 천원짜리 몇장 드리면.. 연신 고맙다고 하는게 시장 인심이다.
그 무우 잎사귀 가져다가 깨끗한것으로 손질해서 큰 솥에 삶아내면 가을내 먹을 시래기가 완성되는것이요....
남은 시래기를 짚으로 엮어놓으면.. 또한 겨울 양식이다(요즘 짚 구하기가 쉬운일은 아니지만... 비닐끈으로 묶으면 그냥 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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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 나리던 날 시래기국 먹었던 곳이 어디쯤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가끔 고향집 가다보면 도암삼거리쯤 되는거 같다. 운주사 조금 못미쳐 면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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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는 광주에서 가면은 순환도로가 끝나는 광주대학교 앞 5거리에서 광주대학교쪽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면 된다. 그 길로 쭈욱가면 3-40분이 안되어 운주사 초입인 도암삼거리가 나오고 거기서 운주사쪽으로 지금은 많이 좋아진 산비탈을 넘으면 운주사 입구, 용강리 마을 초입이 나온다. (예전엔 꽤 골짜기가 깊었지만 지금은 산을 많이 깎아내려서 길을 내선지 그리 깊은 골짝이 아니다)
그 용강리 마을은 여느 사하촌과 다르게 마을앞 뜰이 넓고 뒤편으로 산골짝이 그리 가파르지않아 밭농사도 상당한 마을이다. 예전에도 먹고 살만한 동네였는지 그 마을 앞으로는 열녀문이 몇채 있기까정 한다.
그 마을을 들어서기 바쁘게 운주사는 우측으로 꺾인 들길(지금은 포장되어있음)을 만들어낸다. 여기가 운주사 입구다. 예전엔 이 입구에서부터 사찰이 이루어져 불상 불탑이 각기 천불천탑을 이루어졌지만.. 지금은 몇기 안보인다.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예전부터 운주사 쇠락한 후....주변 마을 사람들이 탑신을 가져다 집지을 주춧돌로 사용하고 더러는 깎아서 확(절구통보다는 속이 깊지않고 돌로 만들어졌으며 주로 김치담글때 고추 가는 용도로 사용했음)을 만들거나 소 먹이는 여물통으로 만들어 썼다고 한다. 아주아주 옛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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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운주사를 막 들어가면 매표소, 매표소 지나 좌측으로 주차장을 끼고 산비탈에 낸 길을 가자면 선돌같은 부처님 몇분 바위아래 기대고 서 계신다. 겨울날 처마밑에서 해바라기하는 70년대의 아이들마냥 천진하고 남루하게...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들어서면 널찍하니 운주사 나온다. 원탑, 부처님 두분이 등을 맞대어 좌선하는 위로 지붕, 벽면을 만들어 놓은 돌집너머로 새로 차린 요사채며 대웅전이 보인다. 새로운 요사채와 대웅전은 내가 대학을 졸업했을당시까지도 없었으니 ... 10년은 안되었을거다. 예전에 가봤던분들은 아시겠지만 지금의 대웅전 자리 바로 앞쪽에 기와집같은 대웅전겸 요사채가 있고 그 좌우측으로 방을 들이고... 건너편으로는 대문겸 행랑채가 있었던...
아주아주 작고 단촐한 살림살이였던 사찰이었다. 그래도 거기 샘물 한바가지 떠먹을수 있는... 수도꼭지 있어... 참 좋았다.
지금의 대웅전을 들러 부처님께 예불드리고 우측으로 난 길을 가자면.. 예전에 밭으로 일궜을곳에 지금은 밭은사용하지않아 빈터에 항아리같이 생긴 탑이 있다. 그 탑을 우측으로 보면서 산엘 오르면 운주사가 전면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봉우리 혹은 낭떠러지가 있는 전망대(?)가 있다. 그 전망이 좋은 곳 위쪽으로 우리나라에 제일 좋다는 묘자리가 있단다. 그 묘자리에 묘를 쓰면 석석삼년 가뭄이 든다고....
예전에 우리 어머니들은 가뭄이 심하게 드는 해이면... 운적굴 그 묫자리 찾아 손으로 땅을 팠단다. (지금은 거기 어딘지 모르지만.. 아마 동네 어르신들은 다 알것이다. 언제 아버지 모시고가서 한번 구경이라도... 해봐야지... )
그 절벽위에 서서.. 운주사를 보면은... 훤하니.. 전경이 나려다 보인다. 옴팍 들어와서 널찍허니 평평한게 참 좋은 절터다. 우측으로 내려뻗은 산줄기로 제법 잘 보존된 탑신들이 소나무보다 큰 키로 드러나 보인다. 그 아랫쪽으로 누워계신 부처님(와불)도 계시리라.
절벽을 에돌아 길을 내려서 지금의 요사채쪽 뒷편으로 자그마한 개울이 있고 그 개울을 넘는 다리(다리가 있던가? 예전엔 돌 몇개 징검다리였던거 같은데..)건너서 얖은 산허리를 올라서면 거기 와불님 계신다. 예전에 부처님 조성할당시 너럭바위에 부처님 양각으로 새기고 아랫부분을 홈을 파서 거기 나무를 박아... 물을 주면 그 나무가 팽창해서 바위가 갈라지면서 부처님상을 완성했던듯한 ... 자욱이 역력하다.
초등학교때 소풍가서 선생님 말씀하시길... 예전 어느 스님이, 하루밤새에 이 운주사 천불천탑을 완성하면 나라의 수도가 이 운적골이 되는데... 남은게 이 와불이었단다. 새벽이 머잖은때에... 이 와불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옆에서 일 도와주던 종놈이 꼬끼오하고 닭우는 소리를 치는 바람에 그만 놀라서... 일을 그르쳤다는...얘기가 .....
그 와불 등성이를 그냥 넘어가면 세작골이라는 밭이 많은 골짝이 나오고 그 세작골 골짜기에서 더 들어가면 도적골이란 골짝도 나온다. 물론 길이 없어서 넘어갈수는 없지만... 그 너머로 하만산이 나오고 그 산 너머로 나주호 지금은 썩어버린.... 제법 커다란 다목적 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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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불을 보고 아랫쪽으로 내려오면 칠성바위(테레비에 나왔는데 그게 북두칠성의 방위와 밝기(크기)가 똑같단다. ) 지나서... 운주사 나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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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를 나와서 용강마을 아랫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중장터 타온다.
중장이라 했다.. 어렸을적엔...
장에 들어서면 중들 대가리만 햇살에 번쩍번쩍했다고... ㅎㅎ(스님 지송) 중장이란다.
어렸을적만해도 중장에는 쇠전이 있었고 근동 장꾼들 모두 장을 보던 제법 커다란 5일장이었다. 지금은 장도 안서고... 조그만 면소재지도 못되지만.... (하긴 광주에서 화순, 능주,중장터오는 화순군내버스와 광주에서 남평이나 나주를 거쳐 나주호를 끼고돌아 중장터 오는 나주버스 종점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
그 중장터에서 골짝으로 더 들어가면 산촌마을들이 나타나는데... 장군바위, 말바위등등의 지명들이 지금도 남아있는... 예전 백제 유민들의 전투훈련소쯤 되는곳으로 추정되는....
그 산골짝은 깊어서 차로도 3-40분 들어간다. 그 끝에는... 산으로 막혀있지만 그 산(국사봉이라고 부른다.지도상에는.. 다른이름)을 넘어가면 분토(땅을 나눈다는 뜻)가 나오는데... 나주군,화순군,장흥군,영암군이 분토에서 갈라진단다. 또 어른들 말씀으로는 그 산 정상부근에 일제시대때 굴을 뚫어서... 영암쪽에서 물이 그 굴을 통해... 흘러내린다고한다. 물론 사람들도 그 굴을 통해 영암쪽으로 넘어가기도하고...
흠.. 그 굴 한번 가보고 싶어라 여름에도 찬바람 솔찬히 차갑다는... (지금도 외가쪽 산소는 그 굴 너머에 있어... 얼마전까지만해도 추석때 성묘는 그 굴을 넘어 갔다고 한다)
흠... 차로 가도 3-40분이 족히 거리는 그 거리를 아버지는.. 6.25로 피폐해진 산들을 너머 그 높다란 산에까정 나무(땔감)를 하러 다니셨단다. 그 나무하러 산 넘어가서 울 어무니 꼬셨나? 암튼 어머니는 그 산 너머 영암군...분토가 고향이시다.
또 그쪽 너머엔 장흥 보림사가 있단다. 지금은 차로돌아가면 2-3시간은 족히 걸릴것 같다. 근데 산 넘으면 금방이란다... 예전길과 지금길은.... 개념부터서가 달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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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에서 다시 중장으로 내려와 버스정류장쪽으로 내려서면 조그만 개울이 나오고 그 개울을 넘으면 나주군 다도면이다. 지금도 집과 논과 밭과... 부모님이 계시는 나의 고향땅 다도.
몇해전에 심은 벗나무 가로수를 동무삼아 아스팔트 달리면 우측으로 나주호 상류가 보이고 그 뒷편으로 보이는 산이 하만산(그 뒤편으로 도둑굴,세작굴이고 그 옆골짝이 운적굴 운주사다.
조금더가면... 불회사 나온다. 비자림이 울창한 덕룡산자락에...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불회사 오르는 산길에 나무들이 참 좋다. 주차장에 차 세워두고 가는길이 일품이다. 나무들이 내뿜는 신선한 공기여...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얼마나 상쾌한지...
10여년이 넘도록 늙은 스님 한분 계셨던 쇠락했던 천년고찰 불회사는 대흥사에서 오셨다는 젊은 스님 두분이 오시고부터는 아주 좋아졌다. 다만 불사를 다시해서 대웅전깨끗해지고 요사채며 각각의 전각들 다시 세워서 좋아진것만이 아닌.....
절집이 절집 다워졌다고나 할까. 신행단체도 만들고, 법회도 자주 열고 절집이 아주 활기차지고 내실있어졌다. 예전 나이드신 주지스님, 끼니를 학생들 하숙쳐서 해결하신거 같은데.... 지금은... 하숙도 안치고... 아주 절 다워졌다.
그 불회사 골짝에 야생차는 또한 일품이다. 유서깊기도 하고...
하긴 불교가 중국에서 들어왔을당시... 차 나무도 들여왔으니... 비교적 한반도 남단에 있는 불회사에 차도 같이 들어왔을터... 지금은 등산,출입금지가된 불회사뒷편 불일암가는 골짜기에 야생차가 간간히 보인다.
지명이 다도면 茶道 다. 물론 차 마시는법 다도를 칭해서 다도는 아니고 예전에 다소면과 도천면의 다와 도를 합해 다도면이라 했지만 어쨋든 그 다 茶짜는 차다
차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역사에 보면.. 간혹 불회사 보인다. 차가 유명하긴 한 모양이다. 지금도 불회사 가면 차를 팔기도 하는거 같은데... 불회사골짝에서 채집한 차인지는 모를일이다. 왜? 차밭을 난 못봤으니..
예전엔 으름이며 정금이며 지천이었을 불일암 가는 골짜기 길, 계곡이 발달되지 않아 그리 멋이 없는 등산로지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골짝이어서인지..... 나무들이 참 좋다. 기회있으면 불회사 뒤편으로 불일암(지금도 있나?) 한번 오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