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회개와 구원은 무엇인가?(눅19:1-10)
갈등
1. 2023년 백상 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TV 부문 교양 작품상에‘어른 김장하’가 선정되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최고 이변이라고 평가했어요. 넷플릭스의‘나는 신이다’를 이기고 수상했다고. 김장하 어른은 진주에서 오랫동안 한약방을 운영해오며, 1,000여 명에게 장학금을 주었어요.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다가 10년 만에 국가에 기증도 했어요. 운동장과 건물, 체육관 등 학교 일체만 아니라 본인이 소유했던 건물, 예금까지 다 내놓았습니다. 1991년에 100억 원. 30여 년이 지난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이후에도 엄청난 재정을 교육-예술-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 기부했어요. 이분을 소개하는 다큐메멘터리 제목이 어른 김장하입니다.
요즘 사회-교육-정치-경제계에 어른이 없어요. 종교계도 그렇고요. 이분의 이야기가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 분 때문에 진주에 관광객들이 몰려온답니다. 영어 제목으로 A man who heals the city. 진주시를 치료하는 사람이에요. 이분의 재물관은, 돈을 모아두면 똥이 되고 흩어버리면 거름이 된다. 돈도 주변에서 나눠야 꽃이 핀다. 이분을 7년간 취재한 기자가 책을 출판하며 제목을, 『줬으면 그만이지』.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는 분을 붙들고 취재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김장하는 의인, 진정한 어른, 이 시대의 예수라고 불립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자가 된 후에 호의호식하지 않고-자동차도 없이-평생 남에게 주며 살았어요. 그분을 닮고 싶은데 도저히 닮을 수가 없다는 한 사람의 고백이 감동을 주었습니다.
2. 오늘 누가복음 본문에 김장하와 같이 감동을 주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삭개오였어요. 삭개오는 정의, 순결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50여 평생을 이름답게 살지 못했어요. 이름과 반대로 남에게 피해를 주고 비난을 받으며 돈을 모아서 큰 부자가 되었어요. 이렇게 큰 부자였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놀라운 선언을 했습니다. 8절,“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자신이 평생 모아온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했어요. 또 남에게 피해를 준 경우에 네 배로 배상을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어요. 내 재산을 내놓는 것도 쉽지 않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배상해주겠다는 것은 참 보기 드문 일입니다. 일본인들이 세월이 가도, 못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배상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삭개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기에 세상에서 보기 드문 그의 인생에서 대반전이 일어났을까요? 그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갈등 심화
3. 오늘 본문 전후의 상황은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일입니다. 앞서 주님은 여리고 인근에서 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어요. 이 맹인의 이름이 바디메오(디메오의 아들)였습니다. 그가 평생 기다리고 바라던 일이었어요. 하지만, 바디메오가 주님께 나아가서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때 바디메오가 소리를 질렀습니다.“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그가 소리를 지르니까,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책망했어요. 바디메오는 절박한 마음 가운데,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이 바디메오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바디메오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어요. 주님이 맹인인 바디메오를 향해서 이렇게 물은 것은, 그가 얼마나 간절히 보기를 원하는지 듣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바디메오는 기회가 왔다고 여기고,“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주님이 바디메오의 마음을 아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선언하셨어요. 바디메오 평생의 소원, 눈이 보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주님은 이어서 여리고 성으로 들어가셨습니다.
4. 여리고에 바디메오 만큼이나 예수님을 기다리고 만나기를 원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삭게오에요. 삭게오는 여리고의 세리장이었고 부자였어요.(2절) 바디메오가 주님을 만나고자 해도 어려웠듯이, 삭게오에게도 주님을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바디메오는 소리를 크게 외쳐서 주님을 만났는데, 삭게오는 어떻게 주님을 만났습니까? 바디메오에게도 사람들이 많은 것이 장벽이었는데, 삭게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삭게오는 키가 작았습니다.(3절) 삭게오도 바디메오처럼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삭게오는 사람들보다 앞서서 달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습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배는 불룩 나온 사람이 나무에 올라갔으니 우스꽝스러운 연출되었어요. 이때 예수님이 삭게오가 나무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어요.“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주님이 파격적인 말씀을 하셨어요. 세리는 당시 창녀들과 더불어 죄인들을 대표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제일 미워하고 증오심을 나타내는 사람이 세리였어요. 주님은 여리고를 떠나서 곧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곧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5.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만나줄 수 있는 시간이 이제 별로 없었습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의 위성 도시 같은 곳입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성전 제사를 담당하지 않을 때, 이곳에서 거주하며 대기했습니다. 여리고, Jericho는 세계 역사에서 농업이 최초로 이뤄진 곳이기도 합니다. 여리고는 이렇게 좋은 땅(옥토)이었고, 아주 오래된 성이었어요. 무역이 발달하기도 해서 부자들도 있었어요. 여리고에는 종교 지도자들이나 전문 직원인들도 여럿이 있어서 주님이 만나볼 만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주님은 그들을 외면하고 왜 죄인 삭개오의 집에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실마리
6.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면, 다시는 맹인 바디메오나 세리장 삭개오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바디메오와 삭개오가 당시 주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다시는 올 수 없는 기회였어요. 두 사람은 그들 생애에서 마지막 기회를 잘 잡았어요. 오래전에 부흥사 한 분이 이 본문을 설교하며, 주님이 그냥 지나가게 하지 맙시다. 참 인상적인 제목이라 제가 평생 잊지 못합니다. 두 사람 앞에는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주님은 두 사람이 자기를 만나기를 갈급하게 기다리는 줄 아셨습니다. 주님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마음을 아세요. 주님이 바디메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삭개오야 그 나무에서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으로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신학대학원 시절에, 과외도 하고 영어 번역 알바를 했어요. 스포츠 광고를 하는 분을 도왔어요. 당시는 팩스 문화라, 지금처럼 이메일이나 SNS가 없었고요. 팩스가 해외에서 영어로 오면 제게 전화가 와요. 그것을 우리 말로 번역해서 주고, 답신을 보낼 때 우리 말 내용을 제게 주면 영어로 번역해서 팩스로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한 번은 제게 아랍에미레이트의 두바이에 가서 바이어를 만나고 오라고 했습니다.(1992년)
7. 당시 중동 지역 비자를 받는 것이 까다롭고 오래 걸렸는데, 호텔 예약을 하면 임시 비자를 내주는 일이 있었어요. 단독으로 가는 첫 해외여행이었어요. 밤 비행기를 타고 방콕을 경유해서 두바이에 아침 일찍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면 호텔에서 비자를 갖다 놓을 것이라는 약속을 듣고 갔는데, 제 비자가 없었어요. 다행히 공항 안에 무료로 전화를 쓰도록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호텔에 전화를 했더니, 제 이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만날 영국 사람이 머무는 호텔에 전화를 했어요. 그곳에서 비자를 해주면 내가 오늘 그 호텔에 머물겠다고. 전화하며,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밤새 비행기를 타고 왔고, 아침도 못 먹고 배는 고프죠.
마음이 답답했죠. 모든 승객이 다 나가고 혼자 공항 출입 관리국 앞에서 답답한 가운데 다시 또 전화를 시도하는데 누군가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Soo! 호텔 직원이 온 것입니다. 제 이름을 부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전화기를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전화기가 문제였겠습니까, 내 이름을 부르고 비자가 왔는데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삭개오를 부를 때, 저는 그때 일이 떠오릅니다. 삭개오가 기쁨으로 즐거이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밖에서 사람들은 주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비난했어요. 죄인의 집에 들어간다고요. 주님은 그들의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으고 삭개오와 함께 식사와 교제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8. 삭개오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좋았는지, 그는 주님과 사람들 앞에서 기가 막힌 선언을 했습니다.“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나이다.”삭개오가 이 결단을 한 것은, 즉흥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일은 결코 쉬운 결단이 아니에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변화가 이것이에요. 성경에도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중병에서 고침받아 살아난 자들 가운데도 삭개오와 같이 행한 경우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삭개오가 어떻게 이 말을 했을까요? 그는 세리장이 되고 부자가 되어 평생을 살아왔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는데 하면서도 사람들은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삭개오가 양심에 부딪쳐 괴로워할 때, 예수님의 제자 중에 마태가 변화된 이야기가 들렸어요. 주님은 세리나 어떤 죄인들과도 친구가 되어주고 만나주신다. 언제 주님이 여리고에 오시면 나도 만나보아야지. 나의 잘못된 인생의 굴레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어. 이런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주님이 여리고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주님을 만나러 나갔습니다. 주님이 자기 이름을 부르고, 자기 집까지 오실지는 상상도 못했는데 꿈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그는 그동안 괴로웠던 삶을 오늘로 종지부를 찍으려고 했습니다.
9. 예수님은 삭개오의 상황과 그 마음을 이미 다 아셨습니다. 주님은 삭개오의 말을 듣고 선언하셨어요.“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9절) 주님은 삭개오의 진심을 아셨어요. 진정 회개하는 자에게 주님은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은 회개하는 자를(회개하거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라고 공생애 중에 이미 말씀하셨어요.(눅17:3) 탕자의 비유에서도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 아버지는 아무 조건 없이 그를 받아주고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삭개오에게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복음 제시
10.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며“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10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주님이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신다고 비난할 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의사는 건강한 자가 아니라 병든 자에게 필요하듯이,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말씀하셨습니다.(눅5:30-32) 세상에 의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시편 14편과 이사야 53장을 인용하면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롬3:10-12)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3-24절) 바울이 복음을 요약해주었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바울의 말이 일치되는 복음입니다.
기대
11. 예수님의 공생애 3년간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시며, 여러 동네를 순회하시면서 구원 사역을 베푸셨습니다. 주님은 말씀으로만 가르치지 않고, 실제 시범과 모범을 보여주셨어요. 주님을 만난 자는 삭개오와 같이 변합니다. 내가 변하지 않는다면, 내가 진정 주님을 만난 것이 아니에요. 오늘 한국교회의 약한 점 가운데 하나는 삭개오와 같은 회개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직분자들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기업인들 가운데)
교회가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지는 못하고 되레 해악을 끼치는 경우도 있어요. 신천지 교회나 이단만 그렇지 않아요. 최근, 서울의 사랑제일교회-터무니없는 보상비를 요구하며 지역 개발을 가로막고 세월을 끌었어요. 그 지역에 전도가 되겠습니까? 이런 뉴스를 보는 이들이 교회에 갈 마음이 생기겠어요? 삭개오와 같이 주님을 온전히 만나지 못한 자들이나 교회입니다. 주님을 만났는데, 어떻게 회개하지 않습니까? 주님을 만났는데, 왜 변화되지 않습니까? 가짜에요.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서 찬양하며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삭개오와 같이 변화되도록 기도합니다. 한국교회도 진정한 변화가 있도록 중보기도합니다.(오늘 찬양: 주 안에 있는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