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이 말하는 악이 우리의 현실이다!
처음 ⌜반지의 제왕⌟을 읽었을 때 책의 분량이 너무 많고 등장인물들이 요정족, 반요정족, 티롤, 오크, 반인족, 인간족, 엔트, 난쟁이에다가 골룸, 마법사 등이어서 저자의 저작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시대적인 배경도 인간의 역사와 완전히 다른 태고의 제 3기 그리고 공간도 완전히 허구여서 전쟁의 폭력을 판타지로 그려낸 전율과 공포, 스릴과 서스펜스로 독자를 사로잡은 대중소설로 치부하였다. 분명히 선악을 주제로 한 소설이지만 너무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이어서 마음의 울림이 그다지 없었다.
악으로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사루만과 사우론의 군단과 그 악의 폭력을 제거하려는 간달프와 엘론도, 아라고른의 연합부대의 물리적 충돌과 사람의 마음을 제압하여 노예로 부리는 마술사의 심령 폭력, 아홉 기사 유령들의 위협과 추적, 괴상한 파충류 새들의 위협과 파괴로 ⌜반지의 제왕⌟은 피비린 내, 불안과 공포, 신음과 비명의 고통으로 얼룩져 있다. 악과 폭력의 극적인 대립과 투쟁의 스토리를 읽는 것이 지루하고 피곤하고 마음이 심히 불편하였다. 책에 나오는 악과 악인에 대한 불쾌감과 혐오감이 커서 멀미를 하며 책을 겨우 읽고난 후 보이지 않는 구석에 두었다.
그런데 청천의 벽력같은 비상계엄으로 말미암아 ⌜반지의 제왕⌟이 말하는 악의 세력 실체를 현실에서 목도하면서 ⌜반지의 제왕⌟이 인간들의 악을 고발하는 예언자적인 소설이라는 사실에 눈을 떴다. 저자는 20세기의 중병인 냉전의 대립 속에 있었던 광란의 인간 대학살! 그 악의 실체를 판타지소설로 극명하게 보여주고자 하였던 것이다.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해제되는 과정과 대통령의 변명,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발언과 태도, 정치집단의 교묘하고 해괴한 움직임 그리고 그들을 무조건 옹호하는 종교와 언론과 법조인 집단은 우리사회가 악과 폭력에 심각하게 오염되었음을 보여주었다. 합법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배후에 서있는 사람들이 히틀러와 친위대, 스탈린과 KGB 망령에 집힌 것처럼 느껴져서 모골이 송연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반지의 제왕⌟은 도저히 승산이 없었던 약하고 부족한 선의 승리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선의 승리는 저절로 오지 않았다. 악의 세력의 확장과 음모를 알아채고 선의 세력을 연합시켜 함께 대응하며 평화를 지키고자하는 엘론도, 간달프, 아라고른, 빌보와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각 족속의 대표인 영웅들 김리와 레골라스, 보로미르 그리고 평범한 호빗족의 프로도와 샘 간지, 피핀과 메리와 수많은 무명의 군인들의 생명을 건 희생과 불굴의 투지로 가능하였다.
2권에서 절대 권력의 상징인 '유일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운명의 산 오로드루인에 가져갈 9명의 원정대를 뽑을 때 엘론드가 한 말이 오늘 우리 현실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어느 쪽에 서있든지 간에 권력중독자들은 유일반지를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비록 선하였닷할지라도 중독자들은 반지의 힘을 이용하여 쉽게 악의 무리를 청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이 슬그머니 권좌에 앉아 청산의 대상이 되고만다는 것이다.
⌜사루만을 보시오. 만약 현자 중 누군가가 이 반지를 갖게 된다면 그 자신의 지혜를 써서 모르도르의 군주를 물리칠 수 있겠지만, 그 다음에 자신이 사우론의 권좌에 앉게 될 거요. 그러면 또 다른 암흑의 제왕이 탄생하는 셈이오. 그것이 반지를 파괴해야 할 또 다른 이유인 것이오.⌟2권 87쪽
간달프는 '반지를 나르는 자'를 영웅호걸에서 찾지 않았다. 권력과 아무 관련이 없는 일상을 즐기며 성품이 좋고 겸허한 사랑의 사람을 염두에 두었다. 그는 영웅호걸이나 왕, 비범한 사람들은 야망과 탐욕에 사로잡혀 그들 자신이 반지를 차지하여 반지의 노예가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사리사욕이 없는 사무사(思無邪)의 민초, 민중, 보통 사람,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말은 ‘촛불’ 시위에 참여하는 평범한 우리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이 원정은 강한 자만큼의 희망을 품은 약한 자가 해야 하오. 사실 종종 세상의 수레바퀴를 움직인 것은 이런 업적 때문이었소. 강자의 시선이 다른 곳에 쏠린 사이에 작은 손들이, 꼭 그래야 했기 때문에, 그 일을 했던 거요. ⌟ 2권 90쪽
간달프는 반지를 나르게 되는 프로도를 위하여 지혜가 있는 요정보다 그를 사랑하는 우정으로 맺어진 친구들을 세운다. 이 또한 우리 현실에 적용해야 할 충고이다.
⌜엘론드, 이 일에서는 대단한 지혜보다도 차라리 이들의 우정을 믿는 편히 좋을 것 같소. 당신이 설혹 우리를 위해 글로르핀델 같은 고귀한 요정을 선발해준다고 해도 그가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암흑탑으로 돌격하거나 화염산으로 난 길을 뚫어줄 수는 없을 것이오.⌟2권 100쪽
원정대가 출발할 때 아라고른은 어느 지점에서 원정대를 떠나 미나스 티리스로 가서 사우론의 공격으로 위기에 빠진 곤도르왕국을 구하기로 하였었다. 그러나 모리아에서 간달프가 사라진 후, 그는 프로도를 보호하며 운명의 산으로 가야할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에 실망한 곤도르의 섭정왕의 아들 보로미르는 아라고른을 반지로 쉽게 악을 제압하자고 설독하였다.
⌜당신이 그 반지를 파괴하고 싶은 거라면 전쟁과 무기는 별 소용이 없을 거요. 미나스 티리스의 인간도 도움이 되지 않을 테고 말이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암흑 제왕의 무력을 분쇄하고 싶은 거라면, 무력도 없이 그 자의 영토 안에 들어가는 건 어리석은 짓이오. 그렇게 내팽개치는 일 역시 어리석은 일일 테고.⌟2권 244쪽
아라고른 설득에 실패한 보로미르는 반지를 가지고 있는 어리고 약한 프로도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당신들의)선한 힘이 반지를 사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사악한 힘이 이용한다는 생각만 하잖소. 당신 말대로 세상은 변하고 있소이다. 반지가 있는 한 미나스 티리스는 멸망할 수도 있소. 하지만 그 이유는? 그 반지가 마왕의 손에 들어가면 그렇다는 거요. 하지만 그것이 우리 손에 있는 거라면?⌟
⌜당신도 회의에 참석했잖소? 우리는 그 반지를 쓸 수 없소. 반지로 하는 일은 사악한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이니까 말이오.⌟ 프로다가 말하였다.
⌜진실한 인간은 타락하는 법이 없소이다, 우리 미나스 티리스인들은 오랜 세월 시련을 받아왔소. 우리가 원하는 건 마법사영주들의 힘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 정의의 힘뿐이오. 그런데 보시오! 정말 필요한 때에 힘의 반지가 나타나지 않았소. 그건 선물이오. 모르도르와 대항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란 말이오. 그 반지를 쓰지 않는 건 미친 짓이오. 적의 힘을 이용해서 그 자를 쳐부숴야 하오. 용감하고 무자비한 자들만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소. 전사라면, 위대한 지도자라면 바로 이순간 무슨 짓을 하지 않겠소? 아라고른이라면 무슨 짓을 하지 않겠소. 그가 그러지 않겠다면 보로미르가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소? 그 반지는 내게 지배력을 줄 것이오. 내가 모르도르 일당을 몰아내고 나면 모두들 내 깃발 아래 모일 거요!⌟ 보로미르의 설득은 비난이 되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내팽개치라고 하다니! 난 그걸 <파괴한다> 고 말하는 게 아니오. 그럴 희망이 있다면 그 편이 좋을 거요.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오. 우리가 세운 계획이란 것은 고작 반인족 하나가 무작정 모르도르에 들어가 적의 손에다 갖다 바치는 꼴이니 절말 멍청한 짓이라구! 당신은 그걸 모른단 말이오, 친구?⌟2권 288쪽
⌜어째서 내게 그토록 반감을 갖고 있는 거지? 난 도둑도 아니고 사냥개도 아냐. 진실한 인간이라구.이제 너도 알게 되었지만, 난 네가 갖고 있는 그 반지가 필요해. 하지만 내가 아주 가질 생각은 없다고 약속하겠어. 내 계획을 시험해볼 수 있도록 해주지 않겠나? 반지를 내게 빌려줘!⌟ 보로미르가 외쳤다.
⌜그것은 안 될 말이오! 회의에서는 내게 그 반지를 맡겼소.⌟ 프로도가 외쳤다.
⌜마왕이 우리를 쳐부순다면 바로 우리의 우둔한 탓일 거야.⌟ 보로미르가 외쳤다.
⌜정말 화가 나는군! 이 멍청이 같으니! 고집스러운 바보! 제멋대로 사지에 뛰어들어 우리를 파멸시키려 드는 군. 남약 그 반지 소유권이 인간에게 있는 거라면 그건 반인족이 아니라 누메노르인의 것이라야 해. 어떤 불운으로 네놈에게 떨어진 것뿐이다. 내 것이 될 수도 있었어.아니, 내 것이 되어야만 해. 반지를 내놔!⌟2권 290쪽
프로도는 보로미루가 다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떨리는 손으로 줄에서 반지를 빼어 재빨리 손가락에 끼었다. 보로미르는 입을 딱 벌리고 놀란 눈으로 그가 있던 자리를 쳐다보다가는 바위와 나무 사이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프로도를 찾았다.
⌜이 괘씸한 사기꾼 같으니 !⌟ 보로미르가 악을 썼다.
⌜내 손에 걸리기만 해봐라! 이제야 네 속셈을 알겠다. 넌 그 반지를 사우론에게 갖다 바치고 우리 모두들 팔아넘길 작정이었지. 네놈은 우릴 곤경에 빠뜨릴 기회만 노리고 있었던 거야. 네놈과 모든 반인족에게 죽음과 암흑의 저주를 내리겠다.⌟
다음 순간 보로미르는 돌부리에 발이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2권 291쪽
보로미르는 곤도르제국의 왕자로서 선과 정의, 평화의 편에 서있는 장래가 촉망되는 용장이며 영웅이다. 그러나 그는 사우론의 모르도르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곤도르제국의 위기를 자기 힘으로만 지키려는 영웅심리와 욕망에 사로잡혀 자국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유일반지를 차지하는 길뿐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반지 원정대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반지를 사용하고자 엘론드, 간댤프 그리고 후에는 아라고른을 설득하였다. 그들이 자신의 요구를 거부하자 그는 프로도를 설득하려고 단 둘이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작고 힘이 없는 그를 설득하고 회유하다가는 화가 치밀어 급기야는 협박하고 저주하면서 자기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반지의 힘으로 절대 권력을 얻고자하는 야욕을 품었던 것이다. 결국 보로미르는 프로도가 자기 뜻에 굴복하지 않자 강제로 반지를 강탈하기로 하였다. 감각으로 본능적으로 그의 흑심을 알아챈 프로도는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보로미르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의 오랜 정치 현실 뿐 만아니라 지금의 이 순간에도 선의 옷을 입고, 의를 가장하며, 애국애족을 앞세우며, 번영과 평화를 위한다며 보로미르 같은 힘이 있는 자들이, 유명한 자들이, 돈 줄과 조직을 가진 자들이 작은 자들, 힘없는 사람들, 보통사람들 약한 사람들을 설득하며 회유하며 협박하며 저주하는 자들이 있지 않은가? 양가죽을 쓴 이리의 모습으로! 강포한 악인들과 악인들의 음모와 계략이 활개치는 세상 속에서 선은 얼마나 무능하며 무기력하며 초라한가! 무려 9개월 동안 국민들을 기만하며 '계엄'을 준비해온 무리들은 사루만의 집단이며 사우론의 아류가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야욕과 지식과 꾀에 빠져서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였다.
저자의 말대로 지금 초긴장 상태에 있는 한국은 '강한 자 만큼 희망을 품은 약한' 보통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고 있다.
선의 승리. 희망을 품은 약한 자의 승리를 확신한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25년 1월 16일 목 인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