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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용일
하느님의 뜻과 같이 하느님 그늘 아래에서 일생을 봉헌하며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겠습니다.
김윤기 베드로
영어에는 이런 말이 있다.
“we are all ears". 곧 ”우리는 열심히 귀 기울여 듣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마음으로 들으려 하지 않으면 귀가 두 개씩 있어도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조선 중기의 학자 화담 서경덕도 무현금명, ‘줄 없는 거문고에 새긴 글’ 에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십자가 위에서 기꺼이 우리를 위해 모숨도 내어놓은 착한 목자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으려면 주님께 우리의 안녕과 구원을 온전히 내어 맡기는 ‘주님의 가난한 자들’인 ‘아나빔’이 되어야 한다, 귀로만 들으려 하면 주님의 말씀은 우리 속을 까맣게 태울 뿐이다.
강양석 미카엘
주님
사람들은 매일 숨 쉬는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매일 먹는 밥의 고마움을 모르고, 매일 함께하는 아내의 고마움을 모르고, 매일 함께 한다는 이유로 남편의 고마움을 각인하지 못합니다, 함께하는 것이 세상의 모든 작은 것과 평범함이 삶에 얼마나 소중한 의미인지 모릅니다.
주님! 모든 이들에게
평범함의 감사함과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삶이 우리의 삶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임을 깊이 깨우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또한 사제들의 삶과 수도자들의 삶과 사랑이 자신을 버린 희생이라 사랑에 대한 헌신임을 모든 이들이 가슴깊이 새기도록 이끌어 주소서.
삶에 대한,
그들의 아픔과 고뇌를, 함께 느끼고 함께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아픔과 고뇌가 헛되지 않도록 하여 주소서,
그들로 인해 사랑이 밥과 같이 공기와 같이 평범함속에 끊임없이 행복과 평화가 이루어짐을 알게 하소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임병준 마태오
탄생과 죽음과 부활
오늘도 성경을 보며 필사를 합니다,
구세주 주님께서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생각하면서, 그날의 세상은 어떠했을까? 머리 숙여 숙고하여봅니다.
그 당시엔 베드로도 요한도 가롯유다도 바울도 없었지만, 그러나 준비된 예수님의 제자로 선별된 인물들이였지요,
로마 황제 카이사르는 어땠습니까? 동방 박사들 귀에다 유다 왕으로 태어난 아기를 찾으면 알려다오 찾아보아 경배하겠다고 속셈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그 속을 알고 자기들의 땅으로 말없이 돌아갔지요, 구세주는 고난의 시간 속에 초라한 곳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세주는 탄생과 죽으심으로 어둠(죄)의 빛(사랑)으로 이 땅에서 다 이루시고 다시 부활하심을 천하 만민에게 보여 주시고 승천까지 완성 하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우리주 그리스도님 이젠 무거운 저희들의 죄를 내려놔 놓으십시오,
그리스도 하느님 부활의 영광을 받으옵소서!,,, 아멘!
장인규
하느님을 믿고 따르면 악에서 구하실 것이고 헛된 유혹에 현옥되지 않을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위대하신 우리 아버지 당신의 삶을 또 당신의 말씀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서철웅 바오로
이제 따스한 봄날이 돌아왔습니다, 모든 만물이 생기 속에 숨 쉬며 새롭게 단장을 하고 한겨울에 움츠렸던 그동안 인내했던 순간들을 떨쳐 버리고 상생의 활기 속에 새싹의 기운을 세상 밖으로 나올 채비를 하는가 봅니다.
이렇듯 우리의 마음도 새로이 단장을 하고 주님 앞으로 나아갈 준비와 채비를 깨끗한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더욱더욱 정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 동안의 생활을 뒤돌아보며 동료들과의 함께 보낸 순간순간들이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잘 따라갔는지도 돌이켜 봅니다만 많은 부족함속에 순간적으로 주님의 말씀에 배반했으며 많은 죄를 지었다 느껴집니다, 수양 부족인 탓이며 내 어찌 주님을 향해 다가선다는 것이 부끄럽기 한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코자 온갖 고난 속에 괴롭힘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시어 우리 곁에 계십니다. 이 부활시기에 좀 더 마음을 다져 정진할 것을 묵상합니다.
김관이 루카
고령자 사동에서 만성질환을 치료받고 있는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 많으신 주님!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의 지병으로 온갖 고통과 아픔 속에 생활하고 있는 고령자 형제들에게
주님의 크신 자비와 은총으로 우리 형제들이 앓고 있는 지병을 주님의 손으로 치유하여 주시고
우리 형제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어 지병을 다스릴 수 있게 하시여 남은 인생을 아픔의 고통 없이
주님 안에서 편안하게 살다가 하느님 아버지께서 부름을 받을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양재동 발렌티노
성부이신 하느님! 작은 것을 위하여 자주 넘어지는 못난 저를 지켜주소서 오직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가 되도록
이끌어 주소서 이 죄인도 주님의 사랑받는 일꾼이 되도록 도와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부섭 미카엘
4월11일
나보다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저 자신은 그 언변을 배우려고 하는 자세를 가지기에 앞서 반감과 질투와 시기가 앞섭니다, 분명히 나와의 대화 속에서 그 상대방의 말이 옳은 줄 맘속에 알면서도 저 자신은 그 진실 된 말들을 인정할 수가 없고 화만 자주 나는 속 좁은 사람의 모습으로 괜히 그 사람을 미워합니다,
입장을 바꿔서 그 사람은 나를 얼마나 답답한 존재로 보이고 안타까울지를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기려는 마음에 내색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들이 하루 이틀 쌓이고 지금에 와서 보니 저는 거짓투성이의 저만의 고집과 질투의 방에 갇혀 살고 있었습니다, 언쟁 중에 생겼던 잘난 마음은 이제 담아 둘 데가 없이 포화된 상태로 쓰레기장처럼 어지럽혀져있는 상태이기에, 하나하나 옳은 일들을 바르게 잡고 내 맘속에 쌓여서 저를 가두어 놓은 쓸모없는 자존심과 시기심과 질투심을 비워야 하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저 자신의 마음속에 진정한 지혜와 덕으로 충만할 것을 저 스스로가 생각하며 고쳐나가는 일로 인한 저의 삶이 빛이 날 것 같습니다.
<욕심의 창고>
“부섭아, 이건 주인의 사물함에 좀 넣어 놔줘, 잠깐 어디 갔나보다,” 하고 동료가 부탁을 하기에 저는 “응, 그러마.”하고 사물함에 물건을 넣어주려 문을 열어보니, 보는 순간 제 눈은 휘둥그레졌습니다, 아니, 보름 전에 시켜놓은 귤 한 봉지가 곰팡이를 피우며 썩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전 그 친구가 무안해 할 걸 생각해 말없이 얼른 그날 온 구매 물을 넣어두고 문을 닫아 주었습니다, 그리곤 볼일이 끝나 돌아온 그 친구에게 살며시 다가가 귓속말로, ‘야, 너 저 귤 봉지 썩고 있어, 빨리 어떻게 좀 해야겠다?’ 하며 살짝 다른 사람 보지 않게 사물함을 다시 열어 보여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부끄럽고 무안한 표정이 아닌, 몹시 당황해하고 화가 난 모습으로 “아니 누가 남의 사물함을 함부로 열어 보는 거야.” 하는 그 모습에 저는 너무도 놀라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소동이 있은 후 가만히 않아 그 친구의 의미 없는 욕심에 한심해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돌이켜 생각해보았습니다, 나 또한 저 친구의 사물함처럼 나만의 욕심이 담긴 곳이 있지 않은지 생각했습니다, 내가 편하고 즐겁게 지내기 위해 미리 채워놓은 내 욕심의 창고가 과연 몇 개가 있을까? 한심한 저 친구의 사물함속의 썩은 귤보다 더 지독한 악취가 풍기는 무언가의 욕심들이 어디선가 쌓여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가만히 생각했던 때를 오늘 이 성경 말씀 속에 떠올리고 다시 한 번 저 자신의 욕심과 아무 쓸모없는 것들에 대해 뭘 잘못했는지 깊이 헤아려 반성해 봅니다, 그리고 또한 제 영혼의 양식을 쌓기 위해 어떤 일들의 씨앗으로 저만의 열매를 사랑으로 맺고 있는지도 생각해봅니다.
4월12일
살신성인의 길은 무엇일까요?
저 자신은 스테파노의 위대한 죽음의 희생이라고 생각하며, 제 삶에서 어떤 희생정신으로 살아야 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너무나도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서 그들의 고통을 나누어 주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되겠지만, 우리 형제들에게 나의 장점 하나를 퍼뜨려 행복을 주는 것 또한 희생임을 느꼈습니다, 저는 항상 웃는 것이 장점입니다, 하지만 저는 누군가가 내 웃음에 하루가 즐겁고 그나마 어두운 마음에 한줄기 얇은 빛이자 목마름의 한 컵의 물이 되어 형제들이 있는 이 방안에 제가 존재함으로 기쁨이 되는 것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한 날 한 형제가 제게 다가와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오늘, 너의 그 해맑은 웃음이 없으니 힘이 없고 우울하다”, 하면서 “너는 웃는 게 내겐 큰 힘이 되어주는거야, 되도록 나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도 평소 웃는 너의 모습을 비춰줘서 위안을 가지게 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말입니다. 저는 저의 장점 하나를 남에게 보임으로 이렇게 까지 힘이 된다는 것에 감사하고 그들의 행복함이면 그 웃는 모습은 언제든지 보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되도록 웃으며 삽니다.
나의 웃음에 고마워하고 위안을 가지는 형제들에게 줄 수 있는 저의 유일한 희생이자 기쁨이기에 오늘도 저는 세상에서 제일 값진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하루 30분씩 운동을 합니다.
그러고 나면 숨이 가쁘고 목이 마릅니다, 얼른 물 있는 곳에 가서 그 물 한 잔을 컵에 받아 마시면 너무도 상쾌함과 동시에 숨이 가쁜 제가 속이아주 시원 합니다, 그 만큼 제게 있어서 물은 시원함과 상쾌함을 줍니다, 여름이 되면 더욱더 물이 많이 먹힙니다, 더운데다가 가만히 있거나 목이 메는 음식을 먹고 난 다음에도 물을 찾게 됩니다, 하루를 지내는 중에 항상 우리주변에 가까이 물이 있어야 우리는 삽니다, 영원히 살아갈 영혼의 양식 또한 물입니다. 그 물은 오직 하느님의 생명의 물이 되고 하느님을 통한 유일한 영원한 양식이 됩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자주 찾고 없으면 살지 못하는 우리가 그 생명의 물을 오염시키고 먹지 못하게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그 물을 정화 시키며 살기를 노력하고 생명을 향한 달리기를 하고 나면 한 모금 마시는 그 생명의 물은 저에게 영원하고 목마르지 않고 상쾌한 물이 될 것이기에 오늘도 저는 생명의 운동장을 뛰고 있습니다.
4월13일
힘들고 고단할 때 저는 집에 가서 쉴 때가 있지만 가끔 어딘가에서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곳은 저만의 위안이되어주는 공간이고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누구나가 한 곳 쯤은 자기만의 쉼터와 보금자리 같은 곳이 있습니다, 작은 언덕이 있는 벤치일수도 있고, 강가에 우뚝 서있는 바윗돌 위일 수도 있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그 곳 주변 공원이나 한강일 수도 있습니다, 그곳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리도 힘들고 고된 나를 바람을 맞고 달랩니다, 하지만 나는 잊고 있습니다, 그 장소를 만들어준 분에 대해 감사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위안을 받고 상쾌한 바람을 맞고 집으로 돌아가는 곁에는 항상 예수님이 있어 행복하고 즐거운 일상인 것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나를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기쁨을 주시는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저는 오늘도 행복하게 마무리합니다, 오늘 이렇게 기분 좋은 선물을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저는 기차여행을 좋아합니다.
가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보면서 지난 저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목적지인 여행지에 도착을 합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저의 추억을 돌이켜 보면 그 풍경이 보지 좋고 예뻐 보입니다. 내가 그 추억 속에서 행복한 순간들만이 떠오르기에 그렇습니다, 제가 가는 여행지 주변에도 물론 꽃들이 피어있고, 예쁜 청녹빛으로 물든 강가도 있습니다만 그전에 보는 풍경을 거쳐 온 도착지에서는 기쁨이 두 배입니다, 그러한 기쁨들을 맛보기 위해 저는 기차여행을 가는 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삶의 자리에서 일탈하여 찾아가는 아름다운 장소에서 나의 지난 추억을 찾은 것처럼 제 앞에 와서 서있는 예수님의 구원열차에 탑승해서 추억보다 더 값지고 좋은 풍경도 보고 영원한 생명이 피어있는 그 곳 영혼의 축제가 기다리는 곳에서 살아온 저의 진짜 행복의 나날들에 감사하며 기뻐 뛰놀고 싶은 마음입니다.
4월14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있어서 서로 인사를 합니다, 그 인사 중에 남자들끼리는 악수를 하며 서로의 눈을 마주칩니다, 하지만 인사를 할 때 우리는 이사람 저 사람을 가려가며 인사를 합니다.
저 자신도 그런 인사를 많이 합니다, 저와 마주치며 눈인사라도 하는 사람의 시선을 피한다던가. 일보는 척 하며 고개를 다른 데고 돌릴 때도 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서 한번이라고 생각을 했더라면 조금이라고 신경을 쓰고 답해주었을 것을 후회하게 됩니다, 저 자신의 만남이 이렇게 이것저것 비교해가며 만나는 발걸음으로 길들여져 있으니, 누구도 저를 신뢰하지 않게 되는 약점이 된다는 것을 이제야 후회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은 나처럼 이사람 저사람 가리지 않습니다, 항상 기쁨의 말씀을 나누기위해 서로의 눈길을 피하지도 않고 다가가 저를 안아줍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을 즐거워하는 이들처럼 저 또한 행동을 이렇게 바꾸고 신뢰를 두는 서로간의 소통은 물론, 예수님의 사랑의 실천을 모두와 함께 나누며 감사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깊이 반성해 고치도록 할 것을 마음에 새깁니다.
한참을 뛰어놀고 들어오면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 밥상이 생각납니다, 꼬질꼬질한 얼굴을 닦고 손을 씻고 앉아 밥을 먹고 있으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웃어주는 어머니의 모습에 따뜻한 밥이 더욱 맛있고 배가 부릅니다, 그리고 그런 밥 들을 하루 이틀 그리고 한 달 두 달이지나 한해 두해 그리고 여기까지 무럭무럭 자라왔습니다, 하지만 저의 따뜻한 영혼을 배부르게 했던 예수님의 밥 덕에 나는 행복한 것을 모르고 지나칠 뻔했습니다, 항상 옆에 계시며 웃어주시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신 예수님의 손길을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제가 일과가 끝나고 먹던 행복한 저녁 식사처럼, 세상의 일을 다 마치고 주님이 계신 곳에 가게 되면 생명의 빵을 주신 예수님께서 또 생명의 밥상을 차려 놓고 기다려 주실 것입니다, 매일 저희에게 주시는 생명의 빵을 우리는 감사히 받아먹고 무럭무럭 오늘도 영혼의 살을 찌우며 사랑의 실천을 배워갑니다.
4월17일
무슨 말을 이해하고 배우기란 너무도 힘든 일입니다, 항상 남을 설득하기위해 여기저기 찾아 가야하고, 되도록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어서 그 말대로 따라 줘야 합니다, 저희 마음속에 다른 계산을 가지고 다른 일만 생각하고 이야기하길 원한다면 도저히 이야기 할 수없는 상황이 됩니다, 차라리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못한 삶을 살지도 모릅니다, 영원한 생명의 길에 앞장서 계시는 우리의 예수님의 목소리를 따르고 길 하나 잃지 않는 우리의 방법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복음을 따르는 것 그것뿐입니다.
임병준 마태오
법과 사랑과 부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법의일, 사랑의 일, 두 일은 한가지라고 지키지 않고 행하지 않으면 그 소중함은 우리 인간에겐 쓸모없는 쓰레기 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던 사도요한은 갈릴레아 호숫가에 서 계신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알아 는 보았지만 한발 늦게 예수님께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그분에게 먼저 달려갔습니다, 이의 말씀은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그 말씀을 항상 가슴에 상고하고 있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예수님께서 세 번째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실 때 시몬 베드로는 슬픈 목소리로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 양을 돌보아라! 명령하셨습니다, 하면 요한의 법은 사랑만이 상징되었고 베드로의 법은 질서 맨 앞에서 상징되었음을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상징성을 심중에 품고 질서 앞에 먼저 행함을 드러낸 시몬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며 권위를 인정하신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만 명이 달렸으나 그 중에 제일은 하나뿐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리하여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몬 베드로는 첫째 교황자리에 임명된 후 현 교황 프란체스코까지 266대에 걸쳐 천주교회는 사도들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그리스도 부활의 역사를 미사를 통해 봉헌 헌신하고 바치는 이런 일이 법과 사랑과 부활의 영광으로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될 것입니다, 참 그리스도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