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2장]
36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말하는 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긴 바 되었다 하는 이 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37 보라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 38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3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40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41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4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 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43 너희가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없으며 갈대아인의 손에 넘긴 바 되었다 하는 이 땅에서 사람들이 밭을 사되 44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방과 유다 성읍들과 산지의 성읍들과 저지대의 성읍들과 네겝의 성읍들에 있는 밭을 은으로 사고 증서를 기록하여 봉인하고 증인을 세우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포로를 돌아오게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설교]
느부갓네살의 침공으로 멸망 위기에 처한 예루살렘을 향해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내용이 죄에 대한 심판이었다면, 이번에는 남 유다 백성의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죄에 대한 경고 – 심판 – 회복> 이러한 패턴은 선지자들의 메시지의 기본 형태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죄에 대해 경고하시고 심판하시되, 그것으로만 그치는 게 아닌 것입니다. 그 뒤에는 반드시 회복이 따르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아무리 회복에 관한 말씀이 뒤따르더라도, 결국에는 <죄에 대한 경고와 심판>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도 보십시오. 본문 3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말하는 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긴바 되었다 하는 이 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남 유다 백성의 회복에 관한 말씀을 하려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항이 있지요. 지금 이 말씀, 예레미야 32장이 주어질 때, 남 유다의 상황은 어땠습니까? 아직까지 바벨론 왕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정복당하기 전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 현재 남 유다에게는 아직까지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사실상 그분의 계획을 중단시키지 않습니다. 사실상 36절에서는 이미 예루살렘의 패망을 기정사실화하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긴바 되었다!’ 넘긴바 되었다는 말 그대로 사실 확정입니다. 이미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확정되었고, 더 이상 이 일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상태에서 이제 회복에 관한 말씀이 주어집니다.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회복에 관한 말씀은 반드시 죄에 대한 통렬한 깨달음이 있은 뒤에야 비로소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제 죄로 인해 완전히 패망한 백성, 남 유다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본문 37절, “보라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 명명백백히 포로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세 번에 걸친 ‘분노’에 관한 말을 씀으로써, 하나님께서 남 유다의 죄에 대하여 품으신 마음이 어떠한지를 알려주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동시에 회복에 관한 말씀을 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아무리 분이 치밀고, 분을 참기 어렵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끝내 자기 백성을 향한 사랑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계속해서 본문 38절에는 유명한 문구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이것은 구약의 전형적인 언약 공식 문구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인하여 패망한 자기 백성과 다시금 언약을 맺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혹 비유하자면 이런 뜻입니다. 남편이신 하나님을 떠나 아내인 남 유다가 불륜을 범했습니다. 그런 후에 아내는 완전히 망가져버립니다. 불륜을 범했더니, 도리어 불륜이 난 상대가 아내를 몰락시킨 것입니다. 쫄딱 망해버렸죠. 그러니 어떻습니까? 본래 자신의 진짜 남편을 떠난 아내 입장에선 사실 할 말이 없습니다. 자신이 범한 죄 때문에 지금 이 꼴이 났는데, 아내 입장에선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남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이토록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간 아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기어코 이 아내를 맞아주십니다. 본문 38절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 속 ‘언약’이란 기본적으로 ‘혼인’을 전제로 합니다. 때문에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너는 내 백성, 나는 네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함축합니다. 혼인 관계의 회복! 남편이신 하나님과 아내인 남 유다의 언약 관계가 다시금 회복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함축한 것이 바로 38절입니다.
때문에 계속된 말씀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39절을 보면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겠다!”고 말씀합니다. 이때 ‘한 마음과 한 길’이란 지금껏 둘로 나뉘었던 마음이 다시금 하나로 봉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상, 둘을 겸하여 양다리를 걸쳤던 저들의 마음이 이제 온전히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40절도 마찬가지입니다. 4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때 이 약속은 곧 ‘영원한 언약’이라고 명명됩니다. 그리고 이 ‘영원한 언약’이란 앞선 예레미야 31장에서 보았던 ‘새 언약’과 동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 유다의 남은 자들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시는데, 이 언약은 곧 겉으로 드러난 돌판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마음판에 직접 새겨져, 영원토록 보존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이러한 사실을 직접 우리 마음판에 새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이 고귀한 말씀이 만일 우리 마음판에 새겨진다면 어떨까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이토록 고귀한 말씀, 영원한 언약이 오늘날 동일하게 우리 마음판에도 새겨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 영원한 언약은 결국 우리 마음판에 새겨졌습니다. 말씀이 마음판에 새겨졌으니, 이 말씀을 무시한다는 것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더욱이 마음판에 새겨졌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서 더 이상 요원하지 않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디 있는가?’ 이렇게 방황하며 몸부림칠 필요 없이, 어느 때나 우리 마음 가운데 계신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오늘 하루도 온 성도님들의 삶에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은혜로서 오늘 하루, 영원토록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함께 거하시는 복된 성도님들 되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