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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9일(성령강림절 후 19번째 주일)
로마서 5:1~5
환난 중에 갖는 소망
하늘사랑교회 주일오전예배 설교문
연역적 대지설교형식
김규태 목사
혹시 여러분은 스네일 피쉬(Snail fish)라는 물고기를 아십니까? 이 물고기는 지금까지 밝혀진 어종 중에서 가장 깊은 해저 약 8,000m에서 살고 있습니다. 최첨단 기술로 설계된 잠수함도 수압 때문에 해저 6,500m 이하로는 내려가지 못합니다.
해저 8,000m 깊이에서는 1평방미터를 자그마치 8,000t의 압력이 짓누릅니다. 강철 잠수함도 뒤틀리고 쭈그러지는 엄청난 입력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얇은 피부를 가진 스네일 피쉬가 그런 강한 압력을 견디며 살아간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확실하게 설명하지 못하지만, 이 물고기 안에 외부의 압력에 대응할 "내부 저항력"이 있기 때문임은 분명합니다.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가시가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질병으로, 경제적인 압박으로,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로 인해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남겨 놓으신 고난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우리를 다듬으시고, 더 큰 축복을 주시려는 도구입니다.
-출처: 박희석, 「은혜는 내일 오지 않는다」(국제제자훈련원, 2020); 「생명의 삶 플러스」(두란노, 2025년 7월호), 21쪽에서 재인용.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3절과 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환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에서 자신이 겪었던 고난을 다음과 같이 나열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도다(고전 4:11~13).”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환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고난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과연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로,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환난이 인내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이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는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이 인내를 이루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야고보 사도도 야고보서 1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많은 분이 환난을 겪을 때, 불평하거나 낙심합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심한 고통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고난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선한 뜻이 숨어 있습니다.
동방의 의인이었던 욥을 생각해 봅니다.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큼 온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욥 1:8).
그러나 욥은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자녀들과 재산과 건강을 잃었습니다. 더구나 욥은 주변 친구들로부터 조롱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욥이 고난을 겪는 이유가 그의 죄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그에게 회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당한 고난이 욥의 죄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욥기의 주제는 고난에 대한 이유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까닭 없이 고난을 겪을 때, 고난에 맞서는 우리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인내’라고 가르칩니다. 그는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듯이, 우리에게도 인내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약 5:7).
1921년에 이 세상을 떠났던 벤자민 워필드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34년간 미국의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던 세계적인 신학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스물다섯 살 때 사랑했던 애니라는 여성과 결혼하여 독일로 신혼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여행 중 예상치 못했던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신부가 벼락을 맞아 영원히 장애인의 신세로 살아야 했습니다. 이 일로 두 부부는 평생 고통 속에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까닭 없이 당한 고통보다 더 놀라운 것은 남편 워필드의 희생적인 사랑과 수고였습니다. 워필드는 장애인인 아내를 위해 39년간이나 헌신적인 병간호를 했고, 결혼 생활 동안 두 시간 이상 집을 비운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훗날 아내를 먼저 천국으로 보낸 워필드는 로마서 8장 28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좋은 것일 수밖에 없다. … 그분이 모든 것을 통치하시므로 우리 각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로부터 오로지 선한 것들만을 수확해야 한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듣고 무엇을 느끼십니까? 하나님은 내가 겪는 고난을 통해서도 선을 이룰 수 있는 분이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선’이 우리가 기대하는 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혹시 고통 중에 계신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바라며 인내하십시오. 환난은 인내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인내는 연단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말대로, 환난을 인내를 이루고, 인내는 연단을 이룹니다.
순금은 뜨거운 풀무 불 가운데서 연단을 받아야 비로소 순금으로 탄생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구슬도 날카로운 도구로 쪼개지고, 갈리는 연단을 받아야 비로소 아름다운 구슬이 됩니다.
일반 철도 뜨거운 불 속에서 일곱 번 단련을 받을 때야 비로소 강철이 되어 나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도 고난이라는 풀무 불에 들어가 연단을 받을 때만 비로소 정결하고 고결한 신앙인으로 설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가 경기 중에 ‘꽈당’ 넘어지면 굉장히 아플 것 같은데, 실제로는 통증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상처에서 “나 아파요”라는 ‘통각 시그널’이 올라와도, 중요한 경기를 마쳐야 하니까 스스로 통증을 차단해 버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경기를 마친 뒤에야 운동선수는 비로소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목표와 열정이 있는 사람은 웬만한 상처에도 끄덕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더 큰 믿음을 소망한다면 연단 받아서 단단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 시험을 면제해 주지 마시고 이길 힘을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미래에 완성될 비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미래 지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조정민, 「답답함」(두란노, 2022); 「생명의 삶 플러스」(두란노, 2024년 9월호), 191쪽에서 재인용.
셋째로,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연단을 소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말대로, 환난을 인내를 이루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며, 연단을 소망을 이룹니다.
꿈의 사람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온 세상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겪었던 연단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의 위대함은 13년간 연단의 과정 중에도 그가 입술로 죄를 범하지 않고 성실하게 연단의 과정을 통과한 점입니다.
그는 애굽의 최고 자리에 올랐으나 함부로 형제를 해하려 했거나 스스로 교만하여져서 자신의 사명을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요셉은 임종 시에 자신의 유골에 대해 유언함으로, 그의 삶이 어떠한 소망 위에 세워져 있었는지를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50장에서 요셉은 다음과 같이 유언했습니다.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하라(창 50:24~25).”
요셉은 비록 젊은 시절에 연단을 받았으나, 연단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리라 약속했던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던 요셉이 이 세상의 명예와 부귀 앞에 교만해질 이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해골에 대해 유언함으로써 자신의 소망이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 즉 우리가 앞으로 들어가게 될 영원한 천국에 있음을 밝혔던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은 인내를 이루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며,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2절). 또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으로 인해 부끄러워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5절).
루마니아가 공산 치하에 있을 때 범브란트 목사님은 14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가 14년간의 출옥 생활을 마치고 쓴 책이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감옥에서 보낸 햇수가 내게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홀로 독방에 있으면서도 믿음이나 사랑을 넘어선 어떤 기쁨을 하나님 안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기쁨이란 이 세상 그 어느 것에도 견줄 수 없는 아주 깊고도 특이한 황홀경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는 마치 수십 리에 뻗쳐 있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시골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정에서 갑자기 평지로 내려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은 감옥생활이라고 하는 환난 중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기독교 변증가였던 C. S. 루이스는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기쁨은 대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삶입니다. 또한, 진정으로 신뢰할 만한 기독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상을 흔들어 놓는 기독교는 그 중심에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세상은 여전히 힘들고,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했을지라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환난을 인내를 이루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며, 연단을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에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러한 기쁨을 충만히 내려주시길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