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교발(敎發) 제2호
경계(敬啓) 이번 4월 5일 천일(天日)기념을 기하여 우리 교(敎)의 합동(合同)이 성립된데 대한 의의는대회성명서에 의하여 철저히 인식되었으리라 믿으므로 여기에는 간단히 천사명우(天師冥祐)118)에 대한 감은과 동덕 제위의 성의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뜻으로 일언을 경정(敬呈)고자 하나이다.
저희들은 본래 빈유박덕(貧遺薄德)의 인격으로 감히 신기관의 요직에 취임케 된 것은 참으로 황송불감(惶悚不敢)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믿는 바는 안으로 천사의 영감과 밖으로 동덕 제위의 편달(鞭撻)에 의하여 일편단심의 성의로써 교화와 교무에 당코자 맹세할 뿐입니다.
돌아보건대 금일의 세계는 과연 전고미증유(前古未曾有)의 신기운이 전개되는 시대라 할 수 있고 전고미증유의 창조 성업이 시작되는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책운과 그 성업의 광명은 동방으로부터 일어나 점차 전 세계에 파급되리라 믿나이다. 동아 신질서건설, 도의적 신세계 창조, 팔굉일우의 사상 등은 우리 신국(神國) 일본의 정신으로서 이 정신은 세계 어떤 인류의 이성에도 적합한 보편타당한 이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는 위로 이 정신을 봉대(奉戴)하고 안으로 신앙통일, 규모일치를 견고히 하여 영육(靈肉) 쌍전(雙全)의 생활을 도모하며 나아가 교화를 주(主)로 하여 포덕천하(布德天下)의 기초를 확립함으로써 교회의 이상을 삼고자하나이다.
이상의 이상(理想)을 달성하는 과정에 있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하나도 동귀일체(同歸一體)119),
118) 冥祐: 모르는 사이에 입는 신(神)의 도움.
119) 천도교에서 인간의 정신적 결합을 뜻함. 곧 사람이 ‘한울님’의 큰 정신(精神)에 하나로 합치면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라’는 지경(地境)에 이르게 되어 세상의 모든 악한 다툼과 분열이 없어지고 한결 같은 정신으로 통일되어 한 신체가 한 생명에 결합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둘도 동귀일체(同歸一體), 동귀일체 그것뿐이 만사여의(萬事如意)120)의 생명이 될 줄 믿는 점에서 우리는 다만 합동 그것뿐으로 만족하지 말고 나아가 국민으로 동귀일체, 신앙으로의 동귀일체, 포덕으로의 동귀일체를 다 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믿나이다.
만천하 동덕이시어 삼가 동귀일체의 정신으로써 동방의 신광명, 교회의 신광명을 키워주소서.
1940년 4월 일(포덕81년)
천도교총부
당주선도사 정광조(鄭廣朝)
동 최준모(崔俊模)
동 이돈화(李敦化)
교령(敎領) 이종린(李鍾麟)
부교령 최안국(崔安國)
교화관장 천곡정(天谷正)
동 관서 김종현(金宗炫)
동 관정 이연숙(李演鷫)
교무관정 박석홍(朴錫洪)
동 관서 이종식(李宗植)
경리관정 전의찬(全義贊)
동 관정 이우영(李宇英)
동 관서 정용증(鄭用增)
관장 이근섭(李根燮)
관장 김병제(金秉濟)
관장 학천완(鶴川浣)
관정 이 단(李團)
고문 이인숙(李仁淑)
고문 오상준(吳尙俊)
감사원장 손재기(孫在基)
<출전: 「總部彙報: 敎發第二號」, '新人間' 145호, 1940년 5월, 38~39쪽>
120) 모든 일이 뜻하는 대로 잘 됨.
30) 지방 순회에 관한 건
교화발 (제2호)
1940년 5월 23일(포덕 81년)
천도교총부 교화관장(敎化觀長) 천곡정(天谷正)
천도교교구장 도하
지방 순회에 관한 건
금번의 순회는 지난 4월 4일 합동대회에서 성명한 삼강령(三綱領)을 철저히 인식케 하며 이에 대한 실행 방법을 주지시키기 위해서의 순회이오니 귀 관내(管內) 교인으로 하여금 아래 일시, 장소에 원만(圓滿) 집회하도록 준비하심을 경요.
− 다음 −
제1구(區) 순회원(巡回員) 선도사 이돈화(李敦化) 씨
6월 3일 오전 10시 청진교구(淸津敎區)
동월 5일 동시 길주(吉州)교구
동월 7일 동시 성진(城津)교구
동월 9일 동시 단천(端川)교구
동월 11일 동시 이원(利原)교구
동월 13, 4일 동시 북청(北靑)교구
동월 16일 동시 홍원(洪原)교구
동월 18일 동시 함흥(咸興)교구
동월 20일 동시 정평(定平)교구
동월 22일 동시 고원(高原)교구
동월 24일 동시 원산(元山)교구
제2구 순회원 교화관장(敎化觀長) 천곡정(天谷正) 씨
6월 1일 오전 10시 희천(熙川)교구
동월 3일 동시 전천(前川)교구
동월 5일 동시 강계(江界)교구
동월 7일 동시 자성(慈城)교구
동월 9일 동시 후창(厚昌)교구
동월 11일 동시 위원(渭原)교구
동월 13일 동시 초산(楚山)교구
동월 15일 동시 벽동(碧潼)교구
동월 18일 동시 창성(昌城)교구
동월 20일 동시 삭주(朔州)교구
동월 22일 동시 구성(龜城)교구
동월 24일 동시 태천(泰川)교구
동월 26일 동시 운산(雲山)교구
제3구 순회원 교령 이종린(李鍾麟) 씨
6월 3일 오전 10시 영변(寧邊)교구
동월 6일 동시 박천(博川)교구
동월 7일 동시 가산(嘉山)교구
동월 9일 동시 정주(定州)교구
동월 10일 동시 곽산(郭山)교구
동월 12일 동시 선천(宣川)교구
동월 14일 동시 철산(鐵山)교구
동월 16일 동시 용천(龍川)교구
동월 19일 동시 신의주(新義州)교구
동월 21일 동시 의주(義州)교구
동월 23일 동시 안주(安州)교구
동월 25일 동시 평양(平壤)교구
제4구 순회원 전서(典書) 이근섭(李根燮) 씨
6월 10일 오전 10시 개천(价川)교구
동월 12일 동시 덕천(德川)교구
동월 14일 동시 영원(寧遠)교구
동월 16일 동시 맹산(孟山)교구
동월 18일 동시 양덕(陽德)교구
동월 20일 동시 성천(成川)교구
동월 23일 동시 강동(江東)교구
동월 25일 동시 강서(江西)교구
동월 27일 동시 함종(咸從)교구
동월 28일 동시 용강(龍岡)교구
동월 30일 동시 진남포(鎭南浦)교구
7월 3일 동시 상원(祥原)교구
동월 4일 동시 중화(中和)교구
동월 5일 동시 황주(黃州)교구
제5구 순회원 사회부장(社會部長) 학천완(鶴川浣) 씨
6월 2일 오전 10시 전주(全州)교구
동월 3일 동시 임실(任實)교구
동월 4일 동시 남원(南原)교구
동월 6일 동시 금구(金溝)교구
동월 7일 동시 김제(金堤)교구
동월 8일 동시 정읍(井邑)교구
동월 10일 동시 옥구(沃溝)교구
동월 11일 동시 익산(益山)교구
부(附) 순회요강(교회합동 3요강)
1. 우리는 팔굉일우(八紘一宇)의 신념으로써 동아 신질서 건설의 성업을 익찬함
1) 국민정신총동원연맹운동의 강화
2) 황기(皇記) 2600년 기념 저금
3) 지원병의 인식
4) 씨창정(氏創定)의 인식
5) 식량 및 물자 절약
2. 우리는 신앙통일, 규모일치하에서 영육쌍전(靈肉雙全)의 생활 확립을 기함
1) 제인질고(濟人疾苦)의 신앙
2) 성령출세(性靈出世)의 신앙
3) 단체적 덕업(德業)의 신앙
4) 오관(五款) 실행의 철저
5) 부동산 정리 및 갱생계(更生契) 장려의 건
3. 우리는 교화에 주력하여 포덕천하(布德天下)의 이상 실현을 기함
1) 내수회(內修會) 조직 및 교양의 건
2) 청소년 교화의 건
3) 합동기념포덕(合同紀念布德)의 건
<출전 : 「總部彙報: 敎化發第二號-地方巡回에 關한 件」,'新人間' 146호, 1940년 6월, 27~28쪽>
31) 황기 2600년 기념 저금에 관한 건
교무관발(敎務觀發) (제158호)
1940년 7월 19일(포덕 81년)
천도교총부 교무관장 박석홍(朴錫洪)
도하
황기(皇紀) 2006년 기념 저축에 관한 건
1세기에 단 한 번인 황기 2600년. 1억 국민이 한가지로 경축하는 이 해를 기념하기 위하여 일반적저축 이외 교회적으로 기념 저축을 실시하게 되었기에 이에 앙함(仰函)하오니 조량하신 후 귀관 내 전반 교호(敎戶)에게 일일이 주지하시어 두루 실행케 하심을 경요.
기(記)
1. 금액은 각 교호마다 매월 10전 이상으로 할 것
2. 기간은 1940년 7월부터 12월까지
<출전 : 「總部彙報: 敎務觀發제158호-皇紀二千六百年紀念貯金에 關한 件」,'新人間' 148호, 1940년 8월, 30쪽>
32) 연맹 역원 개선에 관한 건
천연발(天聯發) (제1호)
19740년 11월 18일
국민총력천도교연맹 이사장 서원종린(瑞原鐘麟)
군연맹이사장 전(殿)
연맹 역원 개선(改選)에 관한 건
본 연맹기구 개조에 반하여 아래와 같이 역원을 개선하였기 이에 통지함.
이사장 서원종린(瑞原鐘麟)
이사 천곡정(天谷正), 학천완(鶴川浣), 송본붕행(松本朋幸), 이상 3인 상무, 천본석홍(天本錫洪),손재기(孫在基),
천안의명(天安義明), 금강병제(金岡秉濟), 대원덕중(大原德重), 복산근섭(木山根燮), 금전실(金田實), 덕전실(德田實),
천전우영(天田宇英), 궁전장(宮田藏), 정용증(鄭用增), 임문호(林文虎), 하상태(河相台), 평강동수(平岡東洙),
김득모(金得模), 마기상(馬驥賞),청산양신(靑山陽信), 구미명선(龜尾明宣)
평의원 천상광조(川上廣朝), 백산일웅(白山一熊), 오상준(吳尙俊), 최단봉(崔丹鳳), 평천군오(平川君五), 김진팔(金鎭八), 민석현(閔奭鉉), 최인식(崔藺植), 대림준모(大林俊模), 중산가백(中山家伯), 화전흠오(和田欽五), 안상덕(安商悳),
양두환(梁斗煥), 차상찬(車相瓚), 덕산종식(德山種植), 이두용(李斗鎔), 천상광자(川上廣子), 김숙(金淑), 서원정자(瑞原貞子), 송본정자(松本政子), 송본학자(松本鶴子)
<출전 : 「總部彙報: 天聯發第一號-聯盟役員改選에 關한 件」,'新人間' 151호, 1940년 12월, 29쪽>
33) 연맹기구 개조에 관한 건
천연발 (제2호)
1940년 11월 18일
국민총력천도교연맹이사장 서원종린(瑞原鐘麟)
군연맹이사장 전
연맹기구 개조에 관한 건
금회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기구 개조에 순응하여 본 연맹은 별지와 같이 규약을 개정하고 기구를 개조하였사오니 군연맹에서도 별지규약을 준용하여서 개조하심을 경요하나이다.
− 주의 −
1. 명칭은 부군지방을 기입하여 국민총력천도교 ○○연맹이라 함. 예, 국민총력천도교 평양연맹
2. 애국반조직은 본 교회 교약의 부제(部制)와 흡사하므로 해당 부제 기관을 그대로 애국반으로 대용
하거나 또는 신설함.
3. 개조한 역원 명부는 속히 본 연맹에 보고함.
− 국민총력천도교연맹규약 −
제1조 본 연맹은 국민총력천도교연맹이라 칭함.
본연맹의 사무소는 경성부 경운정 88번지 천도교총부 내에 둠.
제2조 본 연맹은 국체의 본의에 의하여 내선일체의 실을 거하며 각기 직역에 있어서 멸사봉공의 성
을 봉하여 협심(戮力)으로써 국방국가체제의 완성과 나란히 동아 신질서의 건설에 매진함을목적함.
제3조 본 연맹은 경성부내에 거주하는 천도교인으로써 조직함.
제4조 본 연맹에 좌의 피원을 둠.
이사장 1명, 이사 약간 명(내상무이사 약간)
평의원 약간 명, 반장 약간 명
제5조 이사장은 천도교총부교령으로써 이에 충당함.
이사장은 본 연맹을 대표하며 본연맹의 사무를 총리함.
이사장이 유고 시는 이사장이 지명한 이사가 이를 대리함.
제6조 이사는 이사회를 조직하고 본연맹의 실적 사항을 심의하며 이를 처리함.
제7조 평의원은 평의원회를 조직하고 이사장의 심문에 응함.
제8조 이사회 평의원회는 이사장이 이를 초집함.
제9조 본 연맹은 적당한 인원으로써 애국반을 조직하고 일치 결속하여 제2조 목적의 실적을 기함.
제10조 애국반에는 반장을 두고 이사장이 이를 지명함. 반장은 반원을 통솔함. 반장이 유고 시는 반장이 지명한 반원이 이를 대리함.
<출전 : 「總部彙報: 天聯發第二號-聯盟機構改組에 關한 件」,'新人間' 151호, 1940년 12월, 29쪽>
34) 선서식에 관한 건
교발 (제3호)
1941년 1월 7일
천도교교령 서원종린(瑞原鐘麟)
도하
선서식에 관한 건
1940년 12월 24일 인일(人日)기념을 기하여 중앙교당에서 임시교인 대표대회를 개최하고 천도교신체제에 대한 선서식을 행한 것은 천하주지의 사실이거니와 이를 전교회적으로 철저화하기 위하여 이에 선서문(별지) 및 식순을 좌(左)와 같이 반포하오니 조량하신 후 이번 1월 18일 도일(道日)기념을 기하여 귀 교구에서는 관내 일반 도인을 일제히 군교당에 집합하여 선서식을 거행하시도록 하심을 경요.
− 선서식순 −
1. 개식(심고)
1. 궁성요배
1. 국가봉창
1. 묵도
1. 식사
1. 선서문 낭독
1. 황국신민서사제창
1. 천황폐하만세봉창
1. 폐식(심고)
선서
금년은 우리 신국일본의 황기 2600년인 동시에 조선에 있어서는 시정 30주년의 역사적 기념의 해이다.
밖으로는 세계 신질서건설의 거보가 착착 진행되며, 안으로는 국내신체제의 운동이 당당히 결정되었다.
생각하건대 이러한 내외 혁신적 대업은 오로지 신국일본의 황도정신에 의해서만 건설되며 대화혼(大和魂)의 발양을 통해서만 실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때에 국민으로서 번연대각(飜然大覺)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은 억조일심(億兆一心),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으로서 존엄무비(尊嚴無比)한 황실에 귀일하여 받들고 신도실천(臣道實踐) 즉 충의를 발휘하는 것이다. 우리 천교도는 원래 동양정신의 결정으로서 영육쌍전(靈肉雙全)의 주의하에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신조로 한다.
이 교의(敎義)는 팔굉일우(八紘一宇) 사상의 현현(顯現)121)인 동아 신질서의 이상, 대정익찬정신(大政翼贊精神)의 발
양인 신체제의 출현 무엇보다 혼연 기맥상통하는 점은 천하동덕과 같이 감격하는 바이다.
이에 황기2600년의 가년(佳年)을 기하여 좌의 4개조로써 천하에 선서함.
− 다음 −
− 우리들은 우리 신국대일본의 만세일계의 신통(神統)적 국체의 봉대를 무상 영광으로 함. 이를 신의에 체(體)하여 절대 신조로 함.
− 우리들은현인신이신천황폐화께충의를다하는것이야말로진정한국가적복지(福祉)임을신앙함.
− 우리들은 대정익찬의 정신을 체하여 신도 실천으로써 보국안민의 신조를 현현하게 함.
− 우리들은 팔굉일우의 황국정신에 기하여 세계 신질서건설로써 포덕천하 동귀일체 이상도달을 확신함.
1940년 12월 24일
천도교총부
<출전 : 「總部彙報: 敎發第三號-宣誓式에 關한 件」, '新人間' 154호, 1941년 3월, 43~44쪽>
121) 명백하게 나타나거나 나타냄.
35) 교발 제4호
황기 2600년 즉 구년(舊年)은 세계 역사상 획기적 기념의 해로서 그가 가졌던 진정한 이상, 원대한포부, 장엄한 계획은 ‘사시지서성공자거(四時之序成功者去)’란 진리에 의하여 후계자인 신년에 넘겨 맡기고 그 거적(巨跡)은 비장하게도 영원히 사라졌다.
황기 2601년 이 신년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물론 미래란 미지에 속한 것이라 바람(風)이랴비(雨)이랴.
그는 인지(人知)로서 경단(輕斷)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가지 확신하는 진리가 있다.
무엇이냐 신의(神意)가 간섭하는 곳에 성공이 있고 도의가 존재한 사실에 덕업이 건설된다는 것이었다.
현재 우리의 눈앞에 제시된 모든 신현상이란 것은 천지공도로부터 현현된 신의의 계시임이 분명하고 팔굉일우(八紘一宇)의 황도로써 발양된 도의의 전개임이 명백하다. 이 의미에서 세계최후의 성공은 신국 대화혼의 도의적 결정으로 완성될 것을 확신한다.
우리는 지난 인일(人日)기념 시 사대조문을 천하에 선서한 바 있다. 문의(文意)는 비록 간략하나 저 속에는 신의와 도의가 충분히 포함되었다 확신한다. 위로 만고무비의 국체를 봉대하고 현인신이신 천황폐하에게 충의를 다함으로써만 국민전체의 행복을 향수(享受)하리라 신념하며, 아래로 신도 실천의 도를 다하여 신체제의 완성을 기하고 나아가 신동아 건설을 적극적으로 익찬한다는 선서는 국민적 정신으로서 지당한 심정인 것은 물론, 더욱이 보국안민(輔國安民) 포덕천하(布德天下)의 신조를 가진 우리 도인으로서는 영세불망의 대의임을 확신한다.
만복의 창조는 유일의 실천에 있다. 신년은 실천의 해이다. 우리들은 삼가 선서대의를 실천하여 크
게 국가의 대은을 보답하며 널리 교운(敎運)의 융성으로 보답하여서 지상광명 무량광대(無量廣大)의 천
의(天意)에 어기지 말지어다. 삼가 일언으로써 신년의 축복을 드리는 동시에 천하동덕의 경복을 비는
바이다.
1941년 1월 일(포덕 82년)
천도교총부 직원일동
<출전 : 「總部彙報: 敎發第四號」, '新人間' 154호, 1941년 3월, 44쪽>
36) 순강에 관한 건
교화발 (제6호)
1941년 1월 21일(포덕 82년) 천도교총부 교화관장 천곡정인
교구장 도하
순강(巡講)에 관한 건
금번 순회는 지난 12월 24일 선서식을 거행하고 따라서 교발 제3호로 선서문을 발포하였으나 의의를철저히 인식케 하기 위하여 순강하기로 결정하였으니 조량 후 귀 관내 도인으로 하여금 아래 시일, 장소에 원만히 집회하도록 준비하심을 경요.
− 다음 −
△제1구 강사 상주 선도사 백산일웅(白山一熊)
감사 정환석(鄭煥奭)
2월 9일 의주(義州)
동 11일 신의주(新義州)
동 13일 용천(龍川)
동 15일 선천(宣川: 鐵山)
동 17일 정주(定州: 郭山)
동 19일 안주(安州: 肅川, 平原)
동 21일 개천(价川)
동 23일 덕천(德川)
동 25일 영원(寧遠)
동 27일 맹산(孟山)
3월 2일 순천(順川: 慈山, 殷山)
동 4일 양덕(陽德)
동 6일 성천(成川)
동 8일 강동(江東: 三登)
동 10일 상원(祥原: 遂安)
동 11일 중화(中和)
동 14일 강서(江西: 咸從)
동 16일 진남포(鎭南浦: 龍岡)
3월 18일 순안(順安)
3월 20일 평양(平壤)
△제2구 강사 부교령 화전흠오(和田欽五)
도훈(道訓) 김덕연(金德淵)
2월 19일 구성(龜城)
동 21일 대관(大館)
동 23일 삭주(朔州)
동 25일 창성(昌城)
동 28일 벽동(碧潼)
3월 2일 초산(楚山)
동 4일 위원(渭原)
동 6일 전천(全川)
동 8일 강계(江界)
동 10일 자성(慈城)
동 13일 후창(厚昌)
동 16일 희천(熙川)
동 18일 영변(寧邊)
동 20일 운산(雲山)
동 22일 태천(泰川)
동 24일 가산(嘉山)
동 25일 박천(博川)
△제3구 강사 감사 백천풍조(白川豊造)
사교부장 학천완(鶴川浣)
2월 23일 황주(黃州)
동 24일 신천(信川)
동 27일 안악(安岳)
3월 2일 해주(海州)
△제4구 강사 상주 선도사 대림준모(大林俊模)
감사 백천풍조(白川豊造)
3월 8일 춘천(春川)
3월 10일 홍천(洪川)
동 12일 원주(原州)
동 14일 횡성(橫城)
동 16일 평창(平昌)
동 18일 정선(旌善)
동 20일 제천(堤川)
△제5구 강사 신인간 사장 금강병제(金岡秉濟)
유병준(劉秉俊)
2월 1일 북청(北靑)
동 3일 이원(利原)
동 5일 홍원(洪原)
동 7일 함흥(咸興)
동 9일 장진(長津)
동 11일 하갈(下碣)
동 13일 신흥(新興)
동 15일 동상(東上)
동 17일 정평(定平)
동 19일 원산(元山)
△제6구 강사 상주 선도사 천상광조(川上廣朝)
사교부장 학천완(鶴川浣)
3월 8일 임실(任實) (진안, 남원, 장수)
동 10일 전주(全州) (고산, 금구, 순창)
동 12일 익산(益山) (옥구, 여산, 김제, 정읍, 고창)
△제7구 강사 상주 전도사 천상광조(川上廣朝)
교무관장 천본석홍(天本錫洪)
3월 14일 장성(長城) (광산, 나주, 영광)
동 16일 강진(康津) (영암, 완도)
동 18일 해남(海南) (목포, 진도)
동 20일 장흥(長興) (순천, 담양, 광양)
동 22일 부여(扶餘) (논산, 강경)
동 24일 예산(禮山)
동 26일 서산(西山) (안면, 태안)
△제8구 강사 상주 선도사 대림준모(大林俊模)
관정 송본붕행(松本朋幸)
2월 16일 양평(楊平)
동 20일 음성(陰城)
동 22일 여주(驪州)
동 24일 이천(利川)
동 26일 광주(光州)
동 28일 수원(水原) (시흥, 평택, 용인)
3월 3일 양주(楊州)
<출전 : 「總部彙報: 敎化發第六號-巡講에 關한 件」, '新人間' 154호, 1941년 3월, 45~47쪽>
37) 전체 이사장회 경과의 건
국력총연발 (제4호)
1941년 1월 10일
국민총력천도교연맹 이사장 서원종린(瑞原鐘麟) 인
군연맹이사장 전
전체 이사장회 경과의 건
1940년 12월 24일 인일(人日)기념을 기하여 중앙교당 내에서 국민총력천도교연맹 전체 이사장회를개최하고 국민총력신천요항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동시에 아래와 같이 결의안이 통과되어 이에 앙통하오니 조량하신 후 귀 연맹에서도 일반연맹원에게 일일이 통지하시어 철저 여행하게 하심을 경요.
− 결의조 −
− 근로 배가 잉여 노력 활용에 의한 소득을 국방금으로 헌납할 것.
− 수납 기한은 1941년 6월 말일 이내로 할 것
− 헌납기한은 7월 7일 지나사변(支那事變)기념일로 할 것
주의 : 송금은 천도교총부경리관 진체(振替)122) 경성 1363번으로 하되, 필히 국방헌금이라 명기할 것.
<출전 : 「總部彙報: 國力天聯發第四號-全體理事長會經過의 件」,'新人間' 154호, 1941년 3월, 47쪽>
38) 천덕송(天德頌)에 관한 건
교발 (제6호)
1941년 4월 25일
천도교교령 서원종린(瑞原鐘麟)
교구장 도하
122) 振替: 대체(對替).
천덕송에 관한 건
년 1941 4월 5일 발행된 천덕송은 금월 23일부로 압수된 바 이에 감하여 1939년 4월 5일 재판 발행된 즉 현재 천덕송 중에도 아래와 같이 구절 또는 전편을 삭제할 부분이 있사오니 귀 교구 관내에 분포되어있는 천덕송(天德頌)은 초판, 재판을 물론하고 교구로 일체 회수하여 초판은 귀당국의 처치에 따라 행하고 재판은 3판이 발행되기 전까지 당분간 아래에 준하여 진묵도말(眞墨塗抹: 먹으로 새까맣게 칠함)한 후 다시 분포하심을 앙요.
− 다음 (삭제부분) −
1. 제1장. 안심가 3절, 6절
2. 제4장 봉종로소문답가 전편
3. 제15장 □□□□생기념가 전편
<출전 : 「中央彙報: 敎發第六號-天德頌에 關한 件」, '新人間' 156호, 1941년 5월, 33쪽>
39) 시일(侍日) 예식시간 변경에 관한 건
교발 (제9호)
1941년 6월 10일(포덕82년)
천도교교령 서원종린(瑞原鐘麟)
도하
시일예식 시간 변경에 관한 건
40년간 규칙적으로 준수하여 오던 시일예식 시간을 하루아침에 변경한다는 것은 의절(儀節)에 관한 문제인 만큼 필히 총회의 결의가 아니고는 불능한 일이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절급필요(切急必要)한 성질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구한 관례(慣例)와 수속에 구속되어 시의를 놓치거나 득당(得當)123)을 잃는 것은 비상시 총력전인 금일의 신체제가 이를 용허치 않는다.
우리 교회의 일체 의식시간이 오전 11시로 관행되어진 것은 이를 규정하던 그 당시의 시간적 편의를 취한 것이요 여기에 무슨 부동의 근거와 필연의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며, 또 시간의 변경됨에 따라서의식의 그 의의와 절차가 변경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시간 그것을 필요에 의하여 임시 변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현재 우리들이 준행하는 오전 11시라는 시간은 해 그림자 장단(長短)의 관계도 있거
123) 이치에 맞아 아주 마땅함을 뜻함.
니와 우리들의 백만 신도는 십에 팔구가 농민인 만큼 농번기의 시일(侍日) 시간은 사실문제의 시간이다.
오전 11시의 이 시간을 준행하자면 그 하루는 직업상으로 무위의 공일이 되어버리고, 직업 때문에 이 시간을 거른다면 신앙상으로 양심적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시일시간을 변경하게 된 이유이고 동기이다.
총력전 신체제하에 호흡하는 우리들은 한사람이 한 시간 노동을 더하면 그만큼 국력이 부유해지고 한사람이 한 시간 노동을 덜하면 그만큼 국력이 감해진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한사람 한시간 노동의 가감에 전 국력의 손익이 달려있는 이때에 있어서 백만 농민의 우리 신도가 농번기의 그귀중한 하루를 공일로 소비한다는 것은 국책 상으로 대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령 시간 변경으로 인하여 의식 그 자체에 다소 결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들은 이를 주저할 수 없거든 하물며 의식에 하등관계가 없는 일이랴. 하물며 또 용시용활(用時用活)의 신훈(神訓)을 보국제세(輔國濟世)의 요결(要訣)로 일거이양득전(一擧而兩得全), 병행이불상패(竝行而不相悖)124)의 이 실행을 주저하랴.
위와 같은 견해와 판정에서 감연(敢然)125) 좌와 같이 변경하였으니 각위는 의심 없이 이에 곧 준행하여 시간적 신체
제를 확립할지어다.
<출전 : 「敎發第九號-侍日禮式時間變更에 關한 件」, '新人間' 157호, 1941년 7월, 2~3쪽>
40) 교역자(敎役者) 양성 하기강습회에 관한 건
교화관발 (제58호)
1941년 6월 28일(포덕 82년)
천도교총부 교화관장 대리 금강병제(金岡秉濟)
도하
교역자 양성 하기강습회에 관한 건
제목의 건에 관해서는 중앙 지방을 통하여 다년간 숙제일 뿐 아니라 현하의 급무이므로 이번 하기를 이용하여 이를 실현하고자 아래 방법을 구하여 이에 앙함 하오니 조량 준행하시어 성황을 기하도록 하여주심을 경요.
− 다음 −
− 기간 21일간 (8월1일로부터 동 12월 1일까지)
− 장소 : 중앙교당
− 과목
1) 국체관념의 명징, 내선일체의 이념
124) 두 가지를 병행해도 서로 해가 되지 않는다는 뜻.
125) 과감하고 용감하다. 결단하여 실행하는 모양을 뜻함.
2) 천도교의, 동경대전강의, 교회상식, 천덕송
3) 국민총력지도정신, 체위훈련
− 강습회원의 자격 : 20세 이상 50세 이하의 독신자
− 강습회원의 선발 : 도훈, 직접교훈 관내에서 각 1인씩
− 경비 : 각자 연원(淵源) 관내에서 부담함.
(식비는 매일 1인 50전 가량)
단 자비청강도 허함.
추고(追告)
여러 가지 준비 상 청강자 총수를 예지할 필요가 있사오니 선발회원, 자비회원을 막론하옵고 늦어도오는 7월 25일까지는 반드시 교화관으로 통지하여 주옵소서.
<출전 : 「彙報: 敎化觀發第五八號-敎役者養成夏期講習會에 關한 件」,'新人間' 157호, 1941년 7월, 40~41쪽>
41) 7월 7일 국방헌금에 관한 건
국력천연발 (제6호)
1941년 6월 9일
국민총력천도교연맹 이사장 서원종린(瑞原鍾麟)
군연맹이사장 전
국민총력천도교연맹으로서 금년 7월 7일 지나사변 제4주년 기념을 기회로 하여 고도국방국가(高度國防國家)의 신체하에 국방금을 헌납하기로 한 것은 1940년 12월 24일 본 연맹 전선(全鮮) 이사장대회로서의 통과된 안건인 바 이 실행방법은 금년1월 10일 본 연맹 발첩 제4호로써 좌와 같이 규정하였던것이다.
− 국방금 각출 방법 : 근로배가의 소득
− 동 수납 방법 : 본년 6월 말 이내
− 동 송금 장소 : 천도교총부경리관
− 동 헌납 기일 : 7월 7일
단, 금액을 표시하지 아니한 것은 이를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것보다는 각자 성의에 임하는 것이 도리어 신성(神聖)하다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고도국방국가체제익찬의 헌금인 만큼 적어도 매호(每戶)당1원 이상은 하여야 된다는 것이 불문적으로 공지된 점.이상 수납기한인 6월 말일이 더욱 박근하여오는 때에, 각위의 명심 차제에 대한 준비가 충분할 것은 믿는 바이나 본임의 책무 상 일언을 다시 올리는 바이오니 각위는 귀연맹의 총력을 총동원하여 직역봉공의 정성을 사실로써 거양(擧揚)케 할지어다.
<출전 : 「彙報: 國力天聯發第六號-七月七日國防獻金에 關한 件」,'新人間' 157호, 1941년 7월, 40~41쪽>
42) 성전(聖戰) 완수에 관한 건
교발 (제10호)
성전 완수를 위하여 우리들 신자로서 행할 바 그 길은 오로지 신앙보국을 철저히 함에 있다.
안으로 성심성의를 다하여 신명의 명우(冥祐)126)를 받는 일과 밖으로 실천궁행에 힘써 국민적 정신을 발휘하는 데 있다.
보라. 시국은 일층 심각화해지고 있다. 더욱더 초비상의 경애(境涯)127)에 들어가는 이때에 우리는 그저 평범한 국민적 행위로써 이에 자약(自若)128)하여서는 아니 된다. 시국이 심각화 하니 정비례로 노력과 실행을 다하여야 한다. 하물며 보국안민을 신조로 한 우리 교단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만사(萬事) 이론의 시대는 지나갔다. 오직 실행실천이 있을 뿐이다. 이에 다시금 전시신앙보국에 대한 실천요강을 아래와 같이 앙포하오니 성지우성(誠之又誠)하여 전보다 배의 노력을 하심을 경요.
1. 수도(修道)를 철저히 하자
수도생활을 하시(何時)를 막론하고 우리 교인의 정신적 생명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현하와 같은 초비상시국에 있어서는 한층 신의 명우와 신의 감응을 받음으로서 위로는 국가의 융성(隆盛)을 기하고 아래로 각자의 행복을 구하는 성경신(誠敬信)의 수행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반 동덕은 삼가 안심 입명하여 하늘의 명호(冥護)를 받도록 성력(誠力)에 성력을 다할 것.
2. 성전 완수의 기도를 하자
성전 완수는 대동아공영을 기필(期必)하는 천명인 동시에 팔굉일우의 황도정신으로 전 세계의 행복을창조하는큰사명이다.
우리는이성전의목적이속히완수되도록신명(神明)의앞에기원을드리기위하여 별지(別紙)와 같은 특별 기도를 행하게 되었다. 제위는 삼가 신명의 감응을 받도록 지성 봉행할 것.
3. 황도정신을 선양하자
황도는 세계에 짝이 없는 우리 일본 황국의 팔굉일우(八紘一宇)적 도덕이며 광명이다.
우리는 이와같은 한 세계무비(世界無比)의 국체를 봉대함에 있어서 항상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현인신이신 천황폐
126) 모르는 사이에 입는 신의 도움.
127) 처해 있는 환경이나 처지.
128) 큰일을 당해도 놀라지 않고 보통 때처럼 침착한 태도를 뜻함.
하의 대은 을 입음에 대하여 (大恩) 부단한 감사의 뜻을 올리는 동시에 궁성요배, 신사참배, 묵도, 기원등의 행사로써 거도실천의 본을 삼을 것.
4. 무엇보다 당국을 신뢰하자
국민총력조선연맹본부로부터 발표된 전시국민생활체제강화에 관한 것은 신인간 8월호에 게재하였거니와 폐일언(蔽一言)하고 현하 시국행사는 불언실행(不言實行)을 주로 하되 무슨 일이든지 당국의 지도를 안심 신뢰할 것.
5. 고도국방의 역량을 고도로 발휘하자
사변 이래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국방성미(誠米), 국방헌금, 노임헌금, 유기(鍮器)헌납, 기타 폐품 회수, 저축, 절약 등등에 걸쳐 응분 진력한 것은 「무물(無物)이면서 불성(不誠)」이라고 이것이 우리 성력(誠力)이 표현된 일단이었다.
원컨대 현하의 시국은 일층 더 긴박해졌다. 금전보다도 기재가 필요한 이때에 있어 유기 헌납 폐품회수 같은 것이야 말로 더욱 필요한 것이며, 그외 국채매입(제종중 각자 가능한 정도의 액면), 공한지(空閑地이용(利用)등, 이것이 비록 영쇄(零碎)한 것이나 직접 간접으로 고도국방국가 건설에 없어서는안 될 것이다.
전행(前行)에 있어 광명의 희망에 불타는 우리들은 최향(最向) 차시(此時) 모름지기 진력(盡力)의 의용을 고무하여서 유시유종(有始有終) 충실한 일군이 될 것.
특별기도
− 시간 : 9월 7일(시일)로부터 동월 27일까지, 21일간
− 시간 : 매일 오전 5시
− 장소 : 각지 자택
− 청수 봉전 : 소향(燒香)
− 기도 심고 : (대동아공영국확립, 세계신질서 건설의 성전목적을 하루 바삐 완수케 하여지이다)
− 주문 :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105회 묵송
− 도장을 청결히 하고 전 가족이 일치 봉행할 것
유기 헌납, 폐품 회수
− 기간 : 10월 1일부터 1주간
− 수합 장소 : 교구 또는 전교실
− 헌납 수속 : 교구, 전교실은 각자 소재지 경찰서, 또는 주재소를 통하여 할 것
단 교구에 있어서는 관내헌납총점수를 필히 교무관에 보고할 것
1941년 9월 일
<출전 : 「敎發第十號-(聖戰完遂에 關한 件)」, '新人間' 159호, 1941년 9월, 1쪽>
43) 기념교화의 요령
교발 (제4호)
1942년 7월 21일
천도교교령 천상광조(川上廣朝)
도하
기념교화의 요령
1. 도념(道念)과 탈겁(脫劫)
‘남진원만북하회(南辰圓滿北河回) 대도여천탈겁회(大道如天脫劫灰)’ 이것은 대신사께서 우리에게 주신 ‘도념(道念)’입니다.
이 도념은 본래 만대고금을 통하여 불변의 진리인 것은 물론이나 그러나 특히 우리가 처한 금일의 시운에 있어 일층이 도념을 확충 활용할 필요가 있다 생각됩니다.
남진과 북하란 것은 천문의 성진(星辰)을 형상한 것으로서 천도(天道)의 원만무결(圓滿無缺), 무위자재(無爲自在)적 본
질을 상징한 것이며, ‘겁회(劫灰)’란 것은 시간 공간의 무상제한성을 바로 지적한 것이므로 ‘탈겁회(脫劫灰)’ 세 자는 즉 인간들의 시공의 제한성에 자수(自囚)된 고집, 편견, 완고 등의 응념(凝念)을 해탈하라는 뜻이니 이것이 곧 도념과 탈겁이란 것입니다.
원래 수도(修道)란 것은 항상 인간의 정신을 비약 정진하게 하는 때에 산 교화가 됩니다.
천도가 건건불식(健健不息)하여 낡은 겁회(劫灰)를 벗고 새 우주를 창조하는 것과 같이 우리 인간의 도념도 떳떳이 지나간 겁회를 해탈하면서 새 세상과 새 인간을 달관하는 데서 도성덕립(道成德立)의 대업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이제 탈겁회 세 자의 실례를 시대적으로 일언하면 가령 우리가 과거에 가졌던 반도라 하는 조그마한 시공적 관념의 겁회를 벗어버리고 일약 대일본신국의 황민으로서의 세계적 대인이 되었다는 경애(境涯)를 상념하든지 또는 황국신민의 일원으로서 대동아 건설의 중추(中樞)분자가 되어야 능히도의적 신세계 창조의 직임을 부담하였다는 이념에 상도(想到)129)하고 보면 우리들의 과거의 가졌던 관념의 겁회가 얼마나 구구(區區) 악착(齷齪)한 것을 반성할 수 있는 동시에 현재 및 장래의 포부인 탈겁회의 도념이 얼마나 광대자재인 것을 각오할 수 있지 않은가. 더구나 우리가 가진 이와 같은 도념은 보통인이 보통상식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은 평범한 추측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적어도 우리의 신조인보국안민, 광제창생(廣濟蒼生)이라는 신앙적 도력으로 나온 것을 상념하여 보라.
그리하여 우리의 교회가 국가의 힘과 시운의 세를 통하여 대이상 실현의 세계적 진출을 상념하여 보라.
우리는 모름지기 인고단련의 중에서 수무족도(手舞足蹈)130)의 법열(法悅)을 가지고 천지의 신기운을승출할 수 있지 않은가. 요컨대 이 시운은 우리로 하여금 탈겁회의 사리를 보여주었고 우리는 탈겁회적수도로서 이 시운을 타야한다는 말입니다.
제위(諸位)는 이 뜻을 잘 음미하고 부연(敷衍)하여 교우들의
129) 생각이 미침.
130)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뜀.
도념을 일신 정진시키도록 하시기를 바라나이다. ‘일거월래신일래(日去月來新日來) 천지정신령아효(天地精神令我曉)’.
2. 감은(感恩)과 계선(繼善)
우리는 신인(神人)합일의 도념하에서 모름지기 천지자연과 동화하고 국가사회와 동화하고 인류동포와 동화하여야 합니다.
동화는 곧 기화(氣化)를 의미한 것으로서 기화생활이야말로 수도공덕의 제1위가 된다.
그러면 동화생활의 입문은 무엇이 될까? 감은과 계선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이 천지우주가 천주신령의 대은심(大恩心)으로 화생(化生)된 것을 음미하여 봅시다.
우리는 우리의 국가가 현인신이신 천황 폐하의 대은심으로 생장하는 것을 체득하여 봅시다.
우리는 인류 및 만유(萬有)가 기화적 본능의 대은심으로 결합성장하는 이치를 음미하여 봅시다.
은(恩) 한 자는 천지생명의 절대 실재입니다.
우리는 이 절대 실재인 대덕에 대하여 이론과 비판을 가하는 것은 우주신령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저 감사합니다’하는 일언이 있을 뿐입니다. 즉 감은 일념으로써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의 동화생활에 도달할수 있습니다.
생각건대 우리들의 불평불안, 번뇌, 우수 등등의 모든 불행복이란 것은 배은망덕으로 일어나는 부작용입니다.
그저 ‘감사합니다’하는 감사의 일념에서 평화, 안온, 명랑, 법열, 포시(布施), 봉공,성경(誠敬) 등의 복덕(福德)이 솟아나오는 것입니다.
신령이 미소를 주고 만유가 손길을 잡아줍니다. 그리하여 무진장의 정신적 행복이 솟아 나오는 것입니다.
아 크구나 ‘감은(感恩)이여’하는 실감에 들어가는 도념을 가져야 합니다.
감은생활은 다만 관념으로뿐만 할 것이 아니라 행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감은을 행위로써 나타내는 선행을 계선이라 합니다. 계선이란 것은 그 자의와 같이 선을 계속시킨다는뜻입니다.
자기라는 존재가 우주의 중심에 흘립(屹立)131)하여 가지고 우주의 선이 자기에게 집중되었다는 대웅(大雄)적 도념하에서 우주의 선을 인간에게 전하여 주고 성자의 선을 중인(衆人)에게 계승시키며 과거의 선은 현재에, 현재의 선은 미래에 계승시키는 덕행을 이름입니다.
조선(祖先)의 선을 미래자손에게 계승하게 하며 신성의 심법을 후생에게 계승하게 하는 덕행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신성한 책임입니다.
그리하여 이 계선의 도념은 감은의 원리를 철저히 각오하는 때에 화출자연으로 되는 덕행입니다. 사람은 이 도념을 가지는 때에 처음으로 장생불멸의 대복(大福)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사구(四九)기도
이번의 지일(地日)기념을 위시하여 49일 청신(淸晨)기도를 실행하기로 되었습니다.
기도에 대한 방법은 하기한 바와 같거니와 여기는 우선 기도관념을 일언(一言) 하고자 합니다.
이번 지일기념은 대동아전쟁132) 후 첫 기념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대동아전쟁은 유사 이래 공전(空前)의 성전입니다. 우리는 이 ‘성전의 필승’을 위하여 천주신령에게 기원을 올리는 것이 기도의 특수적목적입니다.
131) 산이 깎아 세운 듯이 높이 솟아 있음을 뜻함.
132) 태평양전쟁을 뜻함.
그런데 다른 교의 기도는 모르되 우리 교의 기도에 있어서는 그 기원의 목적이 항구불변의 것과 특수사정의 것이 있는데 이 두 가지 것을 아울러 기원함으로써 기도의 효과가 생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항구불변의 목적이라는 것은 기도자 자기의 ‘정념’을 이름입니다.
정념이 박약하다든지 정념을 착각한다든지 하는 기도는 아무 효과를 내지 못합니다. ‘비도심지(非徒心至) 유재정심(唯在正心)’이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면 항구불변의 기도적 정념이 무엇이냐 하면 ‘내유신령(內有神靈)의 정념(正念)’입니다.
즉 자아의 본질이 신령인 것을 각오하고 자아의 일념을 내유 신령화 시킨다는 도념입니다.
‘시천주조하정(侍天主造化定)’이라는 뜻을 그저 쉬운 말로 하면 ‘사람의 본질은 신령이다.
신령의 마음을 가지고 신령의 덕에 합일 하겠나이다’ 하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이 이 정념을 잃어버리고 낙공(落空)적 상태에 빠지면 안 됩니다.
‘일념재자만사여의(一念在玆萬事如意)’라는 일념이 곧 내유신령을 존상(存想)하는 일념입니다.
즉 ‘나는 신령이다. 나는 신령이다’하는 자기의 본질을 잊지 말라는 일념입니다.
그리하여 기도의 결과 자아가 신령화되고 신령의 마음, 신령의 덕에 합일하는 지경이되면 만사여의(萬事如意)는 자재기중(自在其中)입니다.
요컨대 기도에는 반드시 내유신령의 일념을 붙잡고 심고(心告), 송주(誦呪), 묵념 등 기도를 봉행하라는 일언을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방식
− 기간 : 1942년 8월 16일부터 동 10월 3일까지(49일간)
− 시간 : 매일 오전 5시
− 장소 : 자택 또는 교당 (특히 도장을 정결히 함)
− 청수 봉전(세면, 세수, 분향)
− 주문 : 105회 묵송(37자)
− 심고(대동아성전 필승, 대동아공영권 확립, 세계신질서 건설의 기원, 포덕천하 광제창생의 발원)
<출전 : 「總部彙報: 敎發第四號-紀念敎化의 要領」, '新人間' 169호, 1942년 8월, 23~25쪽>
44) 교발 제6호
연두교발(年頭敎發)로서 대동아전쟁 제2년 즉 결전의 해를 맞이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새의기와 새 결의를 가지고 지성봉공(至誠奉公) 지성수도(至誠修道)의 두 가지를 철저히 수행하자는 요강을 명시하여 드린 바 있거니와,
특히 지성봉공에 있어서는 단 한 가지라도 물심양면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그 효과를 얻는 것이 있어야만 비로소 이것이 곧 성(誠)의 결정이요 힘의 표현입니다.
즉 이론이 아무리 훌륭하고 이념이 아무리 풍부하다할지라도 자기가 맡은 바 각기 직장에서 한 마치를 성심으로 두드리고 전답(田畓)에서 한 이랑을 성심으로 매고 책상에서 한 페이지를 성심으로 읽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므로 현하 국민연성 대방침하에 있어서 우리로서 급무에 급무적이오. 당행(當行)에 당행적인 국어133) 보급과 시일헌성(侍日獻誠) 이 두 가지를 단행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겠습니다.
이에 관하여 단적으로 말씀하면 황민화(皇民化)는 그 제목이오. 국어 해득은 그 순화이며 시일헌성은 전력 증강에 있어서 적어도 무물불성(無物不誠)의 표현입니다. 고로 실행 기일(其一)로 국어강습에 관하여 그 학습 방법 및 장소 설치에 대한 방침과 실행 기이(其二)로 우리의 중성(衆誠)을 집결하는 표준하에 매 시일(侍日) 1인 1전씩 수합 헌납하자는 방법을 아래와 같이 앙포(仰哺)하오니 우리는 유일의 성(誠), 유일의 근(勤), 유일의 원(願)을 다하여 철저히 실천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1943년 3월 3일
천도교교령 천상광조(川上廣朝)
− 다음 −
1. 국어보급 국어강습
1) 주최 : 교구 및 전도실
단 그 지방 형편에 의하여 사회와 협력함도 무방함.
2) 장소 : 교구실 및 면, 리 전도실
단 원거리의 교인은 각기 애국반을 통하여 솔선공부함.
3) 강사 : 교구, 전도실 직원 및 교인 중에서 담당함.
4) 범위 : 교인 및 일반 남녀노소
5) 정도 : 초등에서부터
2. 시일헌성(侍日獻誠)
1) 방법 : 매 시일 각기 도장(교구실, 전도실, 가정)에서 국민의례 직전에 1인 1전(교호주 및 내수도주부에 한함)의 헌성을 행함 단 헌성금 보관은 필히 저금으로 함.
2) 금년(1943년) 2월 제1 시일로부터 내년 1월 최종 시일까지로 함.
3) 헌납기(獻納期) : 금년 7월 7일, 같은 해 12월 8일 2회로 함
4) 수합 및 보관자 : 교구에는 교구장, 전도실에는 전도사
단 전도사는 해(당) 관내 헌성분을 매월 말마다 수합하여 교구장에게 납부함.
5) 총수합 기일 : 제1회분은 금년 6월 말일까지, 제2회분은 같은 해 11월 말일까지로 하여 교구장이이를 총부경리관에 납부함.
(이상)
<출전 : 「總部彙報: 敎發第六號」, '新人間' 174호, 1943년 2월, 1쪽>
133) 일본어를 뜻함.
45) 성전결승기도에 관한 건
교발 (제10호)
1943년 10월 18일
천도교교령 천상광조(川上廣朝)
연원(淵源) 대표 교구장 도하
성전결승기도에 관한 건
지금 대동아전쟁134)은 바야흐로 최후 결승점을 달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일억 국민은 이제 신명(身命) 일체를 받들어 이 성전 완수의 일사(一事)에 집중 매진하고 있거니와 우리는 갱진일보(更進一步) 천사신명(天師神明)의 가호와 명우(冥祐)를 받기 위하여 아래와 같이 성전 결승 기도를 봉행하
게 되어 이에 앙함하오니 조량하신 후 귀 관내 동덕에게 일일이 주지하시어 무루 철저 실행케 하심을 경요.
기(記)
− 기한 : 49일 간
1943년 10월 1일 부터 같은 해 12월 19일까지
− 장소 : 각지 자택
− 방법
1) 도장 정결
2) 심신 청재(淸齋)
3) 청수(淸水) 봉전(奉奠)
4) 가족 단좌(團坐)
5) 심고(결승 기원)
6) 주문(13자 105회 묵송)
− 시간 : 매일 오전 5시
(이상)
<출전 : 「總部彙報: 敎發第十號-聖戰決勝祈禱에 關한 件」,'新人間' 181호, 1943년 10월, 23쪽>
134) 태평양전쟁을 뜻함.
46) 전력증강에 관한 건
국천연발(國天聯發) (제9호)
1943년 10월 일
국민총력천도교연맹 이사장 천상광조(川上廣朝)
국민총력천도교 부(府)·군(郡)연맹 이사장 전
전력증강에 관한 건
대동아전쟁은 이제야말로 결전적(決戰的) 최고조에 이르렀다. 생사관두(生死關頭)가 목전에 당하였다.
그리하여 대환희, 대송구(大悚懼)의 양극단이 신경계를 직충(直衝)135)하는 오늘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최후 승리를 잘 알고 있다. 제일선 장병의 충의와 용감, 총후국민의 멸사와 봉공, 기타 천시(天
時), 지리(地利), 인화(人和) 모든 점에서 결승의 대철벽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금일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최요최급(最要最急)의 일사는 오직 전력 증강에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것을 이 전력 증강에 결집 통일한다면 귀축(鬼畜) 미영을 일거에 격멸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하 백척간두갱진일보(百尺竿頭更進一步)의 결사적(決死的) 성력을 공봉(供捧)할때이다.
금일이야말로 지성봉공에 따라 국민 비국민이 판정되는 천명이 내린 줄로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당면하여 무엇보다도
− 비록 영쇄(零碎)한 금물(金物)이라도 또는 전래의 가보(家寶), 기념품, 청수품(淸水品), 제기(祭器)등이라도 금속물로써 아직 남은 것이 있다면 모두 쓸어 바치며 오늘은 이론을 말할 때가 아니므로 종래의 관념, 습관을 타파하고 우리 생활을 최저한도까지 절하하여 다만 감사한 마음 감사한 기분으로증산(增産)에 저축에 매진하자.
− 일시동인(一視同仁)의 대어심(大御心)에서 나오신 징병제는 그 인식과 실행에 있어서 의무 관념이상의 숭고한 신조로 생각하자. 충군애국의 도가 병역에 있고 “입신양명(立身揚名) 이현부모지명(以顯父母之名)”도 이를 버리고는 없는 것을 일반 부모들은 상호 깊이 인식하자.
그리고 기타 인적 자원 징용에 있어서도 당국의 지도를 기다릴 것이 없이 용약(勇躍)136) 자진하여신국 국민의 본질을 발휘하자.
− 우리 반도에도 징병제와 해군특별지원병제도가 실시되었다. 이에 일반 군인 원호(援護) 정신을 더욱더 앙양(昻揚) 강화하여 전몰용사의 유가족, 상이군인 전선장병(前線將兵)의 원호에 철저완벽을 기하자.
이 군인 원호의 행사는 다만 당국의 시설만으로 만전을 다하기가 어렵다.
제일선 장병의 노고에 대하여 국민 각자가 열렬(熱熱)한 감사의 성의로써 애국반 중심, 동리 중심, 또는 양체(兩體) 중심으로
135) 곧바로 충돌함.
136) 용감하게 뜀.
전선위문에 가족 상이군인 위호에 유감이 없는 실적을 보이자. 그러면 이것이 곧 전선장병에 반영하여황군은 더욱 위대한 실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리하여 국위를 선양하고 대동아를 살리자. 기타 모든 것은 다 그 뒤의 일이다. 바치자. 인적 물적합하여 모두 바치자!
<출전 : 「總部彙報: 國天聯發第九號-戰力增强에 關한 件」,'新人間' 181호, 1943년 10월, 23~24쪽>
47) 신임역원 발포에 관한 건
국천연발 (제11호)
1944년 4월 일
국민총력천도교연맹 이사장 서원종린(瑞原鍾麟) 전
이번 본 연맹 역원을 아래와 같이 개선(改選)하여 이에 앙포함.
기(記)
이사장 서원종린(瑞原鍾麟)
당무이사 학천완(鶴川浣)
이사 천곡정(天谷正)
동 학천완(鶴川浣) 방호계(防護系)
동 금강병제(金岡秉濟)
동 구미명선(龜尾明宣) 연락계
동 궁전장(宮田藏) 연성계(練成系)
동 천림명도(川林明道) 서무계
동 천전우영(天田宇英) 회계계
평의원 천상광조(川上廣朝)
동 대림준모(大林俊模)
동 백산일웅(白山一熊)
동 신남소백(申南素伯)
동 평천군오(平川君五)
동 오상준(吳尙俊)
동 천손재기(天孫在基)
동 천본석홍(天本錫洪)
동 천안의명(天安義明)
동 한순회(韓順會)
동 민석현(閔奭鉉)
동 평강동수(平岡東洙)
동 하상태(河相台)
<출전 : 「總部彙報: 國天聯發第十一號-新任役員發佈에 關한 件」,'新人間' 186호, 1944년 5월, 15~16쪽>
48) 교발
서원종린(瑞原鍾麟)
대동아전쟁137)의 금일은 전쟁 이래 가장 가열하고 가장 장렬한 결전적 최절정에 달하였다.
세계제패의 야욕에 열중한 적(敵) 미영(米英)은 동양에 일본이 있는 한 그 소욕(所欲)을 가망할 수 없는 때문으로 저들은 철과 피의 전 소유량을 쏟아 부어 태평양의 심광한 바다를 메우면서 마침내 우리 신주(神州)의 영내에까지 침입하고 있다.
우리 황군은 적으로서 이들의 망동과 폭거가 있을 것을 예측하고 이 기회를 포착하여 일거에 적의 전략을 근본적으로 분쇄하고야 말겠다는 신주승산(神籌勝算)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이일대로(以逸對勞), 적(敵)은 자래송사(自來送死). 이 기회야말로 천고일과(千古一過)의천여신기(天與神機)가 아닌가. 일억의 우리들은 한꺼번에 묶어 일대 거탄(巨彈)이 되어 적의 마성(魔城)을 공락(攻落)할 때가 바로 오늘이 아니고 다시 어느 날을 기다리랴.
지난 6월 26일 우리들 종교단체가 각자의 교의를 초월, 타성일환(打成一丸)하여 미영격멸총궐기대회(米英擊滅總蹶起大會)를 개최한 것은 이상 하늘이 준 신기를 놓치지 말자는 일대 서원(誓願)이며 일대결의였다.
더욱이 호지동방(護持東方), 보국안민(輔國安民)을 본원(本願)으로 한 우리 교(敎)는 이 대동아전쟁의 승패로써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누구보다 명기(銘記)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비상시기는 비상의 힘을 부른다. 초비상의 기회에는 초비상의 성(誠)을 요한다. 때는 정히 초비상 시기에 도달하였다.
동덕 제위여, 제위는 몸소 동포의 선봉이 되어 동포의 손목을 끌고 파탈우주(擺脫宇宙), 진감건곤(振撼乾坤)의 의기(意氣)로써 정정당당(井井堂堂) 고고이진(鼓鼓以進)하여 보지 않겠는가.
보라. 동방의 광명은 방차(方此) 만천이운(滿天異雲)을 헤치고 산하대륙(山河大陸)에 방사(放射)하려 한다.
힘과 성은 고원난행처(高遠難行處)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때그때 당면한 일을 실천궁행함에 있다.
가로되 국민신행(國民信行)의 확립, 황민연성(皇民鍊成)의 철저, 황도문화(皇道文化)의 작흥(作興), 사봉증산
137) 태평양전쟁을 뜻함.
(仕奉增産)의 강화, 결전 생활의 철저, 징병 제도의 완수 등, 이 7대국민운동은 우리들 반도에 있어서 그 어느 것이 당면의 급무가 아니리오만은 결전적 금일의 급무는 금속 회수, 고섬유(古纖維)의 응소(應召), 국민저축이 그것이다.
다시 말하면 금일의 놋붙이 한 개 헌납하는 것이 타일(他日) 대포 일문(一門)보다, 금일 누더기 한조각 제공하는 것이 타일 천필(千疋)의 금라(錦羅)보다, 금일의 한 푼을 저축하는 것이 타일 천금보다 더 긴요하고 귀중한 보국(報國)이니 제위는 사반공배(事半功倍)의 이 운동을 솔선 궁행하여 천하에 보일지어다. [시(示)]
<출전 : 「敎發」, '新人間' 187호, 1944년 7월, 3~4쪽>
Ⅴ. 시국관련 종교계 연합사업
1. 심전개발사업
1) 심전개발 시설에 관한 건
(1936년 1월 30일 정무총감 통첩)
시국과 조선의 특수사정에 비추어 생각컨데 일반 민중의 정신을 진작하여 심전을 배양하고 신앙심을 부식(扶植)하여 경애(敬愛)의 염(念)을 함양해 확고한 인생관을 파악하게 하여 안심입명(安心立命)의경지로 이끄는 것은 조선통치 상 여러 시설을 실행하는 데 장차 민중의 생활 기초를 공고(鞏固)하여 이를 통해 영원히 행복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데 가장 긴급하고 절실한 사항이다. 즉 심전개발은,
1. 국체 관념(國體觀念)을 명료하게 할 것.
2. 경신숭조(敬神崇祖)의 사상 및 신앙심을 함양할 것.
3. 보은(報恩), 감사(感謝), 자립(自立)의 정신을 함양할 것.
을 목표로 하여, 이 실행에 관해서는,
1. 종교 각 파와 아울러 교화(敎化) 제 단체(諸團體)는 상호 연락·제휴하여 실효를 거둘 것.
2. 지도적 입장에 있는 자는 솔선하여 이에 노력해 모범(範)을 대중에게 보여 줄 것.
으로 정하고, 세목(細目)은 별지 요항(別紙要項)을 기준으로 하여 그 실현을 도모하고, 또한 지방의 사정에 따라 적절한 시설을 마련하여 목적 달성을 기하도록 한다.
심전개발 시설 요항
1. 본부(本府, 총독부) 시설 요항
(1) 종교계(宗敎係)의 확충(직원 증원, 예산 증액)
(2) 심전개발 위원회 개최
(3) 순회 강연(종교 및 유도(儒道) 관계자, 교육가, 명사)
(4) 인쇄물 간행·배포.
(5) 영화 및 환등(幻燈)(가능한 한 순회 강연과 함께 실시할 것)
(6) 강습회(각종 강습회에 종교 및 신앙에 관한 사항을 가미할 것)
(7) 강연회
(8) 방송
(9) 신사(神社), 종교 각 교 종파, 유도(儒道) 관계 단체 및 교화 단체의 시설에 대한 편의 제공
※ 지방 관청은 본 항(項)에 준할 것
2. 신사(神社), 종교 각 교 종파, 유도(儒道) 관계 단체 및 교화 단체의 시설 사항
신사, 각 교 종파, 단체 각자에 신앙심(신사에서는 경신숭조(敬神崇祖) 사상)을 한층 계배(啓培)할 시설을 강구하도록 하고, 그 구체적인 안(案)을 수립하여 실시할 때에 상호 연락 제공을 도모할 것.
(고유 신앙에 대해서는 중추원(中樞院)의 조사 결과를 기다릴 것)
3. 학교 교육 시설 사항
(1) 교직원에게 신앙심을 함양시키고, 또한 종교에 대한 이해를 갖도록 할 것.
(2) 학생, 생도(生徒), 아동에게 평소 종교적 정조(情操)를 키우도록 하여, 때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여러 시설 방법을 강구하여 철저히 도모할 것.
(3) 어느 교과목이라도 종교적 정조(情操) 함양에 유의할 것.
(4)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각종 강습회에 가능한 한 종교에 관한 과목을 첨가할 것.
(5) 무도(武道) 장려에 유의할 것.
4. 사회적 시설 사항
(1) 표어를 만들어 다양한 기회에 이용할 것.
(2) 교화 단체, 청년 단체, 농촌 진흥 단체 설립·보급 및 그 활동을 독려할 것.
(3) 민심 진작 주간에 실시하는 행사에 반드시 신앙심 계배(啓培)에 관한 사항을 첨가할 것.
(4) 민간의 종교적 행사에서 그 의의를 철저히 할 것.
(5) 신문·잡지 등에 심전개발에 관한 기사를 가능한 한 많이 기재하도록 신문사·잡지사 등에 의뢰할 것.
(6) 가정 생활에서 주부를 통해 종교적 정조를 양성하여 신앙심을 부식(扶植)하도록 장려할 것.
(7) 선현 열사(先賢烈士) 등의 유적(遺蹟)을 올바르게 현창(顯彰)할 것.
(8) 명승 고적(名勝古蹟)에 대한 애호심(愛好心)을 함양할 것.
(9) 민중의 정조 도야에 힘을 쏟을 것. (가요, 무용 등)
(10) 극(劇), 영화의 이용.
심전(心田)의 개발
심전개발운동의 요지
1932년 이래 본부(本府, 총독부)가 제창해 온 농촌 진흥 사업은 피폐하고 궁핍한 다수의 농촌·어촌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나아가 민력(民力)의 충실과 민도(民度)의 향상을 도모하여, 조선 반도의 민중이 하루라도 빨리 일본의 수준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이른바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진정한 제국 신민(帝國臣民)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그 근본 방침으로 하는 것은 이미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갱생을 도모함과 동시에, 일반 민중이 건전한 신앙심을 환기하고 이를 배양하여 움직이면, 무미건조함에 빠지거나 혹은 자포자기하려는 민중의 심전(心田)에 윤기를 주어, 스스로 직업을 갖고 삶을 즐기며 잠깐이라도 확실한 인생관을 갖고 경건한 정신생활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함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대개 대국(大國)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민의 마음을 최고 목표를 통해 집결시켜야 한다.
지금 안팎의 정세는 하루라도 빨리 내선일체의 이상을 실현하여 9천 만 민중이 모두 국민정신으로 무장해 국가 발전의 본(本)을 배양해 가야만 하는 절박함이 있다.
특히 조선에서는 그 특수성에 비추어,요즈음 일반의 궁리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조선 민중을 위해서는 경제생활의 안정·충실을 도모함과 동시에, 국민정신에 입각한 신앙심을 계발배양(啓培)하고 아울러 민족성의 결함을 보정(補正)·순화(醇化)하여 제국신민으로서의 완전한 영역에 도달해야만 한다.
따라서 심전개발은 신앙을 통해 나아가는 국민정신의 진작이자, 또한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민중 도덕 운동이다.
이에 특히 도덕의 존중이 중요하다. 조선은 일찍부터 이륜(彛倫)에 밝고 도덕을 중시하여, 인심의 돈후(惇厚)는 일반에게 자리하고 있었으나, 최근 점차 경박해지면서, 도도하게 공리(功利)만을 쫓아 부끄러움을 모르는 폐해를 보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운동의 목표와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목표
1. 국체 관념(國體觀念)을 명료하게 할 것
국민 도덕의 대본(大本)은 국체 관념을 명료하게 하는 데 있다.
특히 조선 반도에서 이를 철저하게하는 것은 조선 동포를 정신적으로 향상시키고, 제국 신민으로서의 지위 확보·향유를 도모하는 기초조건이면서, 광명(光明)과 이상(理想)을 낳는 심적 근원이다.
이것이 본 항(項)을 심전개발 운동의 첫번째 목표로 한 까닭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 2,000만 민중의 생활수준은 점차 향상되고 민도(民度)도크게 발전하여 일본 민중과 차별 없이, 진정 충량(忠良)한 일본 제국의 신민으로서 의무를 분담하고 9천 만이 이해휴척(利害休戚)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올바른 국체 관념을 갖고 희생 봉사의 각오·신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조선 민중의 진정한 갱생이자 영원한 복지여야만 한다.
이것이 실로 한일병합(韓日倂合) 대이상의 마지막 완성이면서, 일시동인(一視同仁)한 마음의 구현 또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조선 통치의 대본(大本)도, 각종 시설의 궁극 목적도 모두 이 목표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 더욱 빠르게 나아가야 한다.
조선에서는 일본에서처럼 국체 명징(國體明徵) 문제 논쟁에 대해 들은 바가 없지만, 조선의 민중은“하늘이 백성을 내시되 임금과 스승을 삼으셨다(天降下民作之君作之師)” 라든가 “필부 주를 죽였다는말은 들었지만,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聞誅一夫紂矣未聞殺君也)”와 같은 중국 사상에 지배되어, 일본의 국체 관념과 같은 관념은 일찍이 존재하지 않아 특히 이들의 관계를 분명하게 하여 이를 일본 국민의 최고 윤리로 삼아, 이상과 같은 국민적 지위 향상의 기본 조건으로서의 지도 정신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이제 특히 주의해야 할 몇 가지 항에 대해 제시하고자 한다.
1) 제국(帝國)의 국체(國體)가 만방무비(萬邦無比)라는 점을 분명히 할 것. 즉 일본 제국은 신칙(神勅)에 따라 건국되어,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을 국주(國主)로 받드는 것은 영구히 정해진 일이며, 이것이 국체 정신의 발원(發源)이 되어, 국민을 지도하는 근본원리가 되었다. 이것이야 말로 일본 건국의 대정신이라는 것.
2) 황위 계승의 표시인 삼종(三種)의 신기(神器)는 위대한 일본 정신의 표현이면서, 신덕(神德)의 숭고한 상하 함께 복응(服膺)하는 것이며, 이를 훗날 한자(漢字)로 표시하여 지인용(智仁勇) 삼달덕(三達德)으로 삼았는데, 그 근원은 이상과 같은 신대(神代)의 사실이며, 일본 국민의 정신 생활의 기조는 고대 건국 초에 이미 선시(宣示)되었다는 점.
3) 국가의 구성은 인류 사회의 친애감(親愛感)과 강고성(强固性)의 극치인 혈족의 정에 근거하여결합한 민족제도 내지 국가제도를 중심으로 한 것으로, 천황은 황실(皇室)의 가장(家長)임과 동시에, 또한 혈통적으로 국민 모두의 민족 가족의 종가(宗家)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본의 국가 사회는 군민동조(君民同祖)의 사실적 존재이면서, 충효일본(忠孝一本)의 사상 역시 여기에서 생겨난 것이다.
메이지 대제(明治大帝)의 어제(御製)에,죄가 있다면 나를 허물하세요 하늘의 신이여 백성은 우리가 낳은 자녀라면 라고 하신 것도 필경 의(義)는 군신(君臣), 정(情)은 또한 부자(父子)와 같다는 대의(大義)를 분명히 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4) 군민동조(君民同祖)의 혈족적 결합이라고 해도 반드시 단일 민족의 동계혈통(同系血統)의 결합을 의미하는 협의의 뜻이 아니라, 시대의 진보, 국운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민족·종족이 서로 뒤섞이면서도 항상 중추 씨족을 중심으로 잘 융합·통합되어 왔다는 것.
5) 이러한 사항들은 본래부터 이론이나 약속이 아니라, 국가제도의 사실에 바탕을 두는 것이면서,또한 국민 신앙적 존재라는 것. 따라서 때로 시정(施政)의 득실(得失)에 따라 일장일이(一張一弛)는 벗어날 수 없다고는 해도, 국본(國本)은 태산반석(泰山盤石)처럼 항상 움직이지 않고, 건국 이래 일찍이 한 번도 외적에게 패한 적이 없으며 모든 외래문화를 전부 소화하여 더욱 일본의 빛을 새로이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모두 일본의 국체가 만방무비(萬邦無比)인 까닭이며, 국가 융성의본(本)은 실로 이 정신의 진작에 있다는 것.
6) 조선은 역성개조(易姓改朝)의 몇몇 변천을 거쳐 국체·국민 모두 동요하였고 인심의 귀추가 길을 잃었으며, 일단 외환(外患)에 부딪치면 자주독립의 의기(意氣)를 잃고, 특히 18, 19세기 동안에는 조선 반도가 열강 세력의 각축장이 되어, 결국 수습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만약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면, 오직 동양 평화의 위협일 뿐만 아니라, 2,000만 민중이 가련한 운명에 던져져야만 하였다.
이때 이를 구제하고 해방시킨 것이 바로 한일병합이다.
다시 말해, 조선 민중은 만고불역(萬古不易)의 국본 정신(國本精神)의 큰 우산 아래 들어와, 9천 만, 구체적으로 제국의 구성원으로서 앞에서 언급한 국체 관념을 가짐으로써 진정 2,000만 민초를 구하고 번영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국체 관념이라고 하고 국민정신이라고 해도 본래부터 이론이나 과학이 아니라, 천지(天地)와 함께 유구한 엄연한 사실이며, 국민의 혈액 속에 흐르는 사실이자 신념이다. 따라서 이는 한 조각의 해설이나 일시적인 학습에 의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정조(情操)의 함양,신앙심의 발달 등을 통해 오랜 세월을 기해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2. 경신숭조(敬神崇祖) 사상 및 신앙심을 함양할 것
조상숭배는 육친애경(肉親愛敬)의 지극한 정(情)에서 나아가 영혼불멸(靈魂不滅)의 신념을 낳고, 조상은 생전에 자손을 사랑으로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후라고 해도 그 영혼은 영원히 이 세상에 있으면서 우리집 자손의 행복을 위해 항상 수호해준다는 신념에 도달한 인간의 고급 도덕이다.
이는 본래 천리인정(天理人情)의 자연에 바탕을 둔 것이자, 우리가 위로 조상을 그리며 아래로 자손을 돌볼 때,
혈통연면(血統連綿) 스스로 생명의 영원함을 생각하게 하는 것도, 인생의 숭고한 맛도 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일찍부터 이륜(彛倫)이 발달하여, 조상숭배는 사실 조선인의 눈에 띠는 미덕이다.
일가(一家)의 단란과 일족(一族)의 화목, 모두 여기에서 나와 부지(扶持)되었으며, 서로 조상의 유업·유훈을 지키고 가명(家名)을 중히 여기며 도의(道義)를 연마하였으며, 또한 이러한 노력이 축적되어 문화가발전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등, 그 공적은 실로 큰 것이다.
이 점은 일본인의 조상숭배와 전혀 다르지 않는 것이며, 조선은 일본보다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숭조 관념(崇祖觀念)은 더욱 발전하여 경신 관념(敬神觀念)과 결합하였다.
즉 그 태고 신화시대(太古神話時代)에 많은 자연물·생물 등에 대한 경이(驚異) 또는 찬미에서 이를 신격화하고 신으로
숭경(崇敬)한 것은 다른어느 민족의 신관념과 다르지 않았으나, 일본 건국이후에는 이 관념이일대 진보를 이루고 조상숭배와 합치해 그 선조가 신격화되어 신이 되고 나아가 통일되어 일본 건국의 신을 최고의 신으로 숭경하게 되어 경신숭조(敬神崇祖)는 이로써 국체 관념(國體觀念)과 합치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신’은 서양이나 중국처럼 자연물·생물에서 전화(轉化)하여 인간계를 초월한 것이 아니며, 또한 가정(假定)의 존재가 아니다. 모두 실재하는 것이며, 즉 우리 선조의 영(靈)이 바로 그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국가 창조의 신 및 국가 사회의 발전에 공헌한 충신열사(忠臣烈士)의 영(靈)이며,국민인 자손후예(子孫後昆)가 감사·보은의 지성(至誠)으로 숭경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또한 필연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앞에서 언급한 국체 관념도 조상숭배를 근간으로 종합 가족제도의 최고 존속(最高尊屬)인 천황을 국가의 중심으로 하여 절대 복종하고 천황을 최고 도덕자로서 존숭(尊崇)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천황을 명율신(明律神) 또는 현인신(現人神)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즉, 천황은 국가의 지배자·통솔자임과 동시에, 또한 국민 전체의 종가존장(宗家尊長)이며, 신격화된 신인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신국(神國)이면서 일본인은 사실 신의 아들인 것이다.
일본인은 항상 조상이 자손에게 남긴 유덕(遺德)·유업(遺業)·유지(遺志)를 지키고, 가명(家名)을 실추시키기 않도록 주의하며, 신사(神社)를 참배하고 제(祭)를 올려 영을 위로하며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 여기에 조상을 중심으로 한 가(家)의 발전이 있고 국가의 발전이 있다.
즉 일본인이 가(家)를 사랑하고 향토(鄕土)를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특히 열렬한 이유는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이를 생활 방편으로서가 아니라, 가(家)나 국토가 내 조상의 영이계시는 곳인 신의 영장(靈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 국민이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종교의 신 숭배 또는 무(巫)에 의한 우상숭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조상숭배의 지극한 정성에서 출발하여 건국의 대정신에 바탕을 두고 자연스럽게 형성된 국민 도덕이자 , 또한 충군애국(忠君愛國)에 대한 지성(至誠)의 표현이다.
실로 이는 이론을 초월하고 이해를 초월하며 종교를 초월한 존재여야 하며, 따라서 일본 국민인 자는 어느 씨족종족(氏族種族)이냐에 상관없이, 또한 불교도든 기독교도든 상관없이 모두 신사를 참배하고 또 참배해야 한다.
일단 신전(神前)에 서서 참배하는 순간, 자연히 마음이 정화되어 어떤 악인이라도 감격하여 다른 생각의 여지가 사라지는 것이 참배자의 심경이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부끄러움에 눈물이 흐른다
라면서 이세신궁(伊勢神宮)을 참배한 일본인의 심경을 그대로 읊은 시이다.
또한 경신숭조(敬神崇祖) 사상은 그 자체가 국민 도덕일뿐만 아니라, 나아가 여러 가지 덕교(德敎)를낳아 모든 도덕의 근원을 이루었다. 즉,
1) 항상 현실적이다. −그저 조상의 옛 회고 추억(回顧追憶)으로 끝나지 않고, 또한 다른 종교처럼 내세(來世)를 말하지도 않고, 현실에 우리 집을 지키고 우리 국토를 보호하고, 자손의 장래를 위해 고심하는 발전적·진취적인 것이다.
따라서 그 제전(祭典)도 용장쾌활(勇壯快活)하면서 인고분려(忍苦奮勵) 노력하는 것을 존중한다.
2) 항상 청정결백(淸淨潔白)을 중시한다. −즉 마음의 더러움을 씻고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고래태고(古來太古, 후토마니), 계(稧, 미소기), 불(祓, 하라이) 등의 방식을 신을 받드는 방법으로 하였다.
이것이 곧 청렴(淸廉), 정직(正直), 성실(誠實) 등의 정신을 낳은 것이다.
더구나 이 맑은 정신을 갖지 않으면 그 마음은 신을 감응시키지 못하고 신은 그 마음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메이지 대제(明治大帝)의 어제(御製)에,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마음과 통해야만사람의 마음은 진심이 된다.
라는 실로 이 정신을 분명하게 해주셨다.
3) 삼종(三種)의 신기(神器)가 지인용(智仁勇)의 삼도덕(三道德)을 표현하였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이지만, 이 도덕 관념은 건국 정신에 합류·동화하여 더욱 발달해 수많은 도덕을 향상시켰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들 도덕 정신은 이른바 고신도(古神道)라고 하는 것이며, 일본 건국 초부터 전승된 고유 도덕이며, 종교가 아니다. 훗날 이 정신의 일부를 취해 제신(祭神)을 마련하여 한 계파를 세운 것으로대사교(大社敎), 부상교(扶桑敎), 금광교(金光敎), 천리교(天理敎) 등등 각 파가 있지만, 이들은 앞에서 언급한 고신도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또한 경신숭조(敬神崇祖)는 미신타파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조선은 오랫동안 중국 사상의 지배를받았기 때문에, 조상숭배를 경신 관념으로 까지 끌어올려 “신”의 관념을 통일·완성하는 단계에 이르지못하고, 겨우 무(巫)에 의지하여 유치한 귀신 관념의 원시 신앙 상태에서 방황하여, 하층민은 미신의
질곡에 신음하고 있는 상황에 있다.
이는 조선인이 영적으로도 빈곤했던 과거를 말해 주는 것이며, 진정 정신적으로 2,000만 민중을 구하는 것은 다양하고 잡다한 미신 타파와 음사잡신(淫祠雜神)의 귀신관념을 청산하여, 그 고유한 조상숭배 관념을 기초로 경신 관념을 배양하고, 일본인과 마찬가지의 정신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
본래 신앙은 경신숭조에만 한정된 것은 물론 아니다.
미신의 고심에서 벗어나고 건전한 신앙심을 환기하는 것이라면, 어느 종교 또는 비종교를 따른다고 해도 상관없다는 것을 뒤에서 서술할 것이다.
따라서 경신숭조는 신사참배와 함께 각 가정에서는 조상의 분묘를 소중히 해 잘 지키고 제사를 정중히 모셔 숭경의 염(念)을 돈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주의해야 할 것은 조상숭배·가명존중(家名尊重)이라고 해도 근본정신을 잊고 폐해를 낳아서는안 되며, 즉 구래(舊來)의 반벌계급(班閥階級)의 인습에 얽매여 자기 조상만을 숭배하고 소관 분묘·제각(祭閣)이나 문집·족보를 장식하고 또한 관혼상제에도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출해 외용만 과시하면서 가문의 융성을 자랑하는데 급급해 스스로 세무(世務)를 위한 공익을 돌보지 않는 것은 진심으로 조상의 덕을 빛내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하는 것은 소아(小我)에 집착해 대아(大我)를 버리는 것이고, 가문이 있다는 것은 알아도 국가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질타를 면할 수 없는 일이다.
요점은 우리 집 조상 숭배를 확대하여 전체에 미치고, 최고 권위의 신으로 종합·통일하여 국가 본위에 봉사하는 데에
경신숭조의 진체(眞諦)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경신숭조라는 것도 국체 관념에서 말하듯이, 단지 이론만으로 다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정조적(情操的)으로 신념적으로 느끼고 얻을 필요가 있다. 요컨대 국체 관념이라고 하고 경신숭조라고하는 것도 이렇게 믿음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이들 사상의 함양은 모름지기 신앙심의 함양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것이 경신숭조 사상과 함께 신앙심의 함양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본래부터 어느 종교의 일종일파(一宗一派)를 도입하여 일반에게 그 신앙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 각 파는 각기 분야 에서 신앙을 넓혀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어느 종파라도 이상과 같은 국체 관념이나 경신숭조 사상은 그 신앙의 내용에서 경(經)으로 삼으며, 또한 위(緯)로 짜 넣고, 항상 이를 강조하는 것은 국민 도덕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다.
대개 인류는 경제생활, 물질생활만으로 만족하는 존재가 아니다. 나아가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살아야 한다.
이러한 욕구가 곧 진리의 탐구로 이어지고, 신앙의 수립으로 이어지며, 안심입명(安心立命)스스로 일종의 인생관을 가지게 되어, 이상은 더욱 높고 품위는 더욱 발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앙은 인간 자신의 요구이며, 또한 인간의 가치는 신앙생활에 따라 증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앙심의 배양은 인간으로서 세상에 나가는 제일 조건(第一條件)이며, 자력갱생을 위한 농산어촌(農山漁村)의 진흥도 국민정신의 진작도, 모두 이 신앙심의 배양에 의해 확고한 인생관이 생기며,스스로 안심입명의 단계에 도달하지 않으면, 진정한 목적의 완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만약 과학을 만능으로 오해하고 유물사관(唯物史觀)에 얽매여 종교를 아편이라고 비방하는 것은 인생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얄팍한 논리이며, 화제에 올릴 필요도 없는 잘못된 견해이다.
특히 최근 청년 학도 사이에 이러한 종류의 잘못된 시각이 있어 휘둘리는 자가 많은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특히유의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신앙의 함양에 대해서는 종종 오해를 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특히 다음과 점에 주의해야 한다.
1) 신앙은 함부로 내세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라고만 알고, 염세퇴영적(厭世退嬰的)인 생활에 빠져서는 안 된다.
확호불발(確乎不拔)의 신념을 세워, 숙명(宿命)의 미신을 타파하고 스스로 분려노력(奮勵努力)하여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 당국이 심전개발을 강조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으며,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현재 및 미래로 뻗어가려는 마음의 힘을 함양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부사람들이오해하는것처럼, 조선민중을종교의신앙을통해그들이가진불평불만을완화하여현상에 만족하게하려는 것이라는 고식적(姑息的)·퇴영적(退嬰的)인 것이결코 아니다.
경제갱생의 첫 단계의 공부를 완성함과 동시에, 심전개발을 통해 그 경제갱생의 도덕적, 윤리적, 사상적 근거를 마련하
여확호불발(確乎不拔)의인생관을갖고, 나아가고원(高遠)한이상달성을향해매진하는정신력−자력(自力)을 끄집어내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앙심의 필요와 그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2) 신앙은 어떤 종교·비종교를 취하든 본래부터 임의(任意)에 따르지만, 다만 어떤 종교·비종교를 취하든 그 내용에서 이상 언급한 점 및 이후 언급하게 될 심전개발의 3대 목표는 신앙심 함양의 궁극적 목적으로서 힘을 모아 철저히 실천해야 한다. 이 목표를 무시한 신앙심의 함양은 무의미하다.
3) 보은(報恩), 감사(感謝), 자립(自立) 정신을 함양할 것
대개 인류가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그 본(本)을 아는 시작이며, 감사의 염(念)을 가지는 것은 의무를아는 시작이다.
따라서 감사·보은은 인간도(人間道)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모든 인륜 도덕도 대개 이것을 전제로 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른바 농민 정신도 농도(農道)의 대본(大本)도 바로 여기에서 근원을 발한다. 심전개발의 3대 목표 가운데 하나로서, 특히 보은·감사를 든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조선에서는 종래의 도덕·사상·학문 모두가 일신일가(一身一家)를 중심으로 한 사덕(私德)의 발달에 전력을 기울여, 대부분 다른 것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특히 격물치지(格物致知)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제1보를 이루는 대학지도(大學之道)에서조차 “물은 일과 같다(物猶事也)”라는 해설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 모든 생활의 기초를 인륜 사덕(人倫私德)에만 편중시켜, 널리 감사·보은의 도(道)를 가르치는 일이 비교적 덜 하였기 때문에, 일반에게 봉사하는 생각이 얕고 물질에 대한 도덕을 망각하며, 신에 대해 천지자연에 대해 관찰하는 것조차 하지 않아, 보은·감사의 감동을 그다지 경험하지 못하였으며, 이것이 생활 의식을 소멸시켜 경신 관념(敬神觀念)을 잃어버린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기그지없다. 또 하나 큰 질환은 실로 자립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명사수이지만, 쏘는 능력을 가졌어도 명중시키는 것은 가르칠 수 없어, 화살을 맞추는 것은 필경 그것을 배우는 자가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자력갱생의 농촌 진흥도 이와 마찬가지이며, 아무리 진흥책을 내놓아 진흥의 길을 열어 그 기술을 가르치더라도, 갱생이라는 것은 민중이 스스로 듣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믿고 스스로 서고 스스로 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날 민중의 자립은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어, 이 결함을 보정할 한층 중요한 것임을 깨달고 특히 이를 제시한 것이다.
자립정신의 결핍도 그 근원을 찾으면 필경 민중의 죄라기보다는 사상, 학문, 정치 등의 죄인 경우가 많다.
이 역시 오랫동안 중국 문화의 지배를 받고. 정치는 사대복속(事大服屬)이었고, 학문은 정주(程朱)의 설(說)을 준봉(遵奉)하는 것 외에, 비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던 역사를 회고하면 2,000만 민중이 이미 심적으로 거세를 당하고 오늘날처럼 자립의 정신을 갖지 못한 것도 역시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자립정신의 양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말한다면,
1) 평소 일상생활에서도 자신의 일은 반드시 스스로 한다는 습관을 기름과 동시에.
2) 자립정신의 결여가 모든 죄악을 낳는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반성 자각하여 스스로 이를 보정하려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1) 노동을 꺼리고 근로자활(勤勞自活)을 천민의 일이라고 하는 것.
(2) 의타심이 강하여 스스로 맞서는 힘이 약하고 따라서 책임감이 약한 것.
(3) 자주자변(自主自辯)의 힘이 없고 자기에 관한 일인데도 다른 사람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것.
(4) 자신의 힘에 대해 자신이 없고, 따라서 현세를 관망하거나 다른 비판을 두려워하여 과감히 매진할 용기가 없는 것.
(5) 또한 감동도 분기심(奮起心)도 사라져 관찰도 비판도 하지 않고 취생몽사(醉生夢死)하여 완전히 초목동부(草木同腐)의 생애로 마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빠지는 것 외에 없는 것.
이는 모두 자립정신이 없는 자에게 일어날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스스로 반성하여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립의 정신은 협동의 관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자주자립의의미를 좁게 해석하여 헛되이 자기의 이익,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하고 다른 것은 되돌아보지 않는것은 필경 국체 운동도 사회연대도 국가 구성도 기대할 수 없게 하고, 국체 자립을 유지하기 어렵게 할 것이다.
또한 한편으로 협동 운동은 각자의 자립정신을 기다려야 한다.
책임있는 자각이 없고 확고한 신념이 없는 자의 단결은 필경 오합지졸일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완전
한 협동은 완전한 자립을 요소로 하여야 한다. 종래 조선에서 각종 단체가 대개 유명무실하게 끝나고 사회심, 국가 관념을 철저히 하지 못한 것은 그 병통의 근원이 그 주변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 ◇ ◇
이상은 심전개발의 3대 목표에 대한 취지의 개요이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많이 생략하여서 설명이 부족한 감이 있으나, 이는 국민 도덕의 전부이자 심전개발의 전모가 아니다.
다만 조선의 현황을 알고 미래에 비추어 당면 문제로서 특히 긴급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뽑아 목표로 정하고 먼저 그 달성을 위해 전력을 집중함으로써 첫 단계 공작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
나머지 문제는 이를 달성한 다음에 자력으로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실행방법
이상 대 목표에 도달 방법은 3 본래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에 특히 기본으로 삼아야 할 사항을 제시해 보도록 하겠다.
1. 종교 각 파 및 교화(敎化) 제 단체는 상호 연락·제휴를 하여 실효를 거둘 것
여기서 말하는 연락·제휴란 각 파 각 단체의 합동이 아니다.
다만 앞에 언급한 3대 목표는 어느 종파, 어느 단체에서도 서로 일치협력해야 할 공동의 목적이며, 그 활동은 공동 전선이다.
혹은 연합하고혹은 각 부서에서 그 사이에 항상 긴급 연락이 필요하다. 각 자 제각각이면 그 효과를 증대하기 어렵다.
고금성철(古今聖哲)의 도를 깨뜨린 종교의 원리에는 모두 무한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입교(入敎)의 취지 구성에서는 문호(門戶)가 다름으로 인해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닌데, 인간을 제도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고원(高遠)한 이상에 도달하는 데 모두 그 규범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즉 공동 작전의 기초이며 적어도 그 이상(理想)을 구한다면 그 활동을 위해 연대제휴(聯携)의 세목(細目)에 대해 스스로 정할 것이다.
2. 지도적 입장에 있는 자는 솔선수범하여 민중에게 보여줄 것.
대개 사람을 지도하려는 자는 직접 보여주기보다 강함이 없고, 자신이 없으며 스스로 하지 않으려 한다면 실적을 올릴 수 없다. 따라서 100만 마디의 설교보다 한 번의 실천 실행을 중시하는 것. 지도자가 스스로 규범을 보여주는 것을 실행을 위한 유력한 방법인 것이다.
이에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교화 단체로서의 유도(儒道) 단체 즉 문묘(文廟)·서원(書院) 그 밖의 유도(儒道)·유림(儒林) 단체 및 그 중심에 있는 인물들은 한층 3대 목표 정신을 철저히 행하고,항상 솔선하여 실행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본래 2,000만 민중이 무엇을 위해 심전이 황폐해져 오늘에 이르렀는지, 일찍이 조선 반도가 사상·정치·학문 각 방면에서 오랫동안 유교가 지도적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유자 유림이 가장 먼저 반성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심전을갈고 터를 닦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교화는 소용없다. 만약 오늘날 심전개발의 지도자라는 의미를
잘못 이해해 한학(漢學) 이외의 학문을 모른 채 유도 이외에 도덕이 있음을 모른 채, 편견과 아집으로 스스로 고상하다 여기는 자가 만약이라도 오늘날 존재한다면, 참으로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다시 말해, 유학자는 지금 구각(舊殼)을 벗고 새로이 국민 도덕을 체득하여 새로운 눈으로 경서(經書)를 읽고, 고성(古聖)의 교훈을 현대에 되살려 심전개발의 성전(聖戰) 제일선에 나서서 그 진정한 사명을 다하고 유도의 대정신을 드높이기를 우리는 기대하고 또한 희망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주의해야 할 것은 기독교 관계자의 신사 참배 문제이다.
본래 일본 국민의 경신숭조(敬神崇祖)는 일찍이 전통적 국민 도덕의 대본(大本)을 이루고, 충군애국(忠君愛國)의 성의를 표현한 것이며,그 종교에 따라 생각하는 신의 예배 또는 우상의 숭배와는 전혀 성질이 다른 이유는 이미 앞에서 밝힌
바이지만, 세상의 기독교 신자 중에 만일 이 본질을 구별하지 못하고 신사 참배를 자기가 속한 교의(敎義)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참으로 유감이다.
본래 국가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선교 발달을 조장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세도인심(世道人心)을 존중하고 국본(國本)의 배양에 도움을 받기 위함이다. 그러나 신도가 적더라도 안녕질서(安寧秩序)를방해하지 않고 또한 제국 신민의 의무를 거스르지 않는 한, 헌법에 따라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선량한 국민을 떠나 선량한 신자는 없고, 만약 교회에서 진정 선량한 자라면 먼저 국민으로서 국가에 충성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종교인이면서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것은 곧 국체 관념을 망각하고 국헌(國憲)을 이해하지 못하고 국민 도덕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는 질타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데 과연 진정 종교인으로서의 임무를 다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이는 먼저 지도자로서 자신의 심전을 개발하여 식견을 높이고 3대 목표를 직시하여 귀추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상은, 실행 방법으로 반드시 필요한 점을 말했을 뿐이다. 만약 실시 세부 항목에 대해서는 시의(時宜)에 따라, 지방에 따라, 좋은 방법을 마련해야 하겠지만, 참고를 위해 아래에 시설 세목(施設細目) 몇가지를 들어 예시하고자 한다. 시설의 실행에서 대체로 이를 기준으로 삼아 목적 달성에 임해주기를바란다.
심전개발 시설요항(心田開發施設要項)
1. 본부(本府) 시설 사항
(1) 종교계(宗敎係)의 확충(직원 증원, 예산 증액)
(2) 심전개발 위원회 개최
(3) 순회강연(종교 및 유도(儒道) 관계자, 교육자, 명사)
(4) 인쇄물 간행·배포
(5) 영화 및 환등(幻燈)(가능한 한 순회강연과 함께 실시할 것)
(6) 강습회(각종 강습회에 종교 및 신앙과 관련한 사항을 가미할 것)
(7) 강연회
(8) 방송
(9) 신사, 종교 각 교 종파, 유도(儒道) 관계 단체의 시설에 대한 편의 제공)
※ 지방 관청은 본 항(項)에 준할 것
2. 신사(神社), 종교 각 교 종파, 유도(儒道) 관계 단체 및 교화단체의 시설 사항
신사, 각 교 종파, 단체 각자에 신앙심(신사에서는 경신숭조(敬神崇祖) 사상)을 한층 계배(啓培)할 시설을 강구하도록 하고, 그 구체적인 안(案)을 수립하여 실시할 때에 상호 연락 제공을 도모할 것. (고유신앙에 대해서는 중추원(中樞院)의 조사 결과를 기다릴 것)
3. 학교 교육 시설 사항
(1) 교직원에게 신앙심을 함양시키고, 또한 종교에 대한 이해를 갖도록 할 것.
(2) 학생, 생도(生徒), 아동에게 평소 종교적 정조(情操)를 키우도록 하여, 때에 따라 임기웅변으로여러 시설 방법을 강구하여 철저히 도모 할 것.
(3) 어느 교과목이라도 종교적 정조(情操) 함양에 유의할 것.
교직원을 대상으로 (4) 한 각종 강습회에 가능한 한 종교에 관한 과목을 첨가할 것.
(5) 무도(武道) 장려에 유의할 것.
※ 무도(武道)라는 것도 단지 무술(武術)·무예(武藝)의 기법에 흐르는 것이 아니라, 특히 그 몸을연마하고 마음을 닦는 정신을 터득하게 하여, 문약퇴영(文弱退嬰)의 기풍을 교정하는 데 유의해야 함이중요하다.
4. 사회적 시설 사항
(1) 표어를 만들어 다양한 기회에 이용할 것.
(2) 교화 단체, 청년 단체, 농촌 진흥 단체 설립·보급 및 그 활동을 독려할 것.
(3) 민심 진작 주간에 실시하는 행사에 반드시 신앙심 계발배양(啓培)에 관한 사항을 첨가할 것.
(4) 민간의 종교적 행사에서 그 의의를 철저히 할 것.
(5) 신문·잡지 등에 심전개발에 관한 기사를 가능한 한 많이 기재하도록 신문사·잡지사 등에 의뢰할 것.
(6) 가정생활에서 주부를 통해 종교적 정조를 양성하여 신앙심을 부식(扶植)하도록 장려할 것.
(7) 선현열사(先賢烈士) 등의 유적(遺蹟)을 올바르게 현창(顯彰)할 것.
(8) 명승고적(名勝古蹟)에 대한 애호심(愛好心)을 함양할 것.
(9) 민중의 정조(情操) 도야에 힘을 쏟을 것. (가요, 무용 등)
(10) 극(劇), 영화의 이용.
학무국(學務局) 사회과(社會課)에서 라디오를 통해 사회 교화를 기획하고, 경성 중앙 방송국(京城中央放送局) 제1급 제2방송에 수양(修養), 부인(婦人), 상식(常識) 등 세 강좌를 설정하여, 해당분야에 학식과 경험이 있는 인사를 위촉해, 1937년 1월부터 방송을 개시하였는데, 본 편은 이 방송강연의 요령을 수록한 것이다.
<출전 : 「心田開發施設ニ關スル件」, 政務總監通牒, 1936년 1월 30일>
2) 심전개발이란 무엇인가?
경성기독교청년회 이사 니와(丹羽淸次郞) (방송)
1. 정신적 개발
최근 물질적 및 과학적 진보는 실로 두드러진 점이 있습니다. 라디오처럼, 비행기처럼, 그중 가장 큰진보는 작년에 열린 올림픽이라는 세계적 경기를 먼 나라 사람들이 마치 직접 베를린에 가서 그것을목격이라도 하는 듯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은 최근에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위업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작년 거의 세계적 대사업이라고 할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 사이에 하마일 철교가 완성되어 6대의 자동차가 병행하여 달리고 그 아래에는 별도로 인도(人道)를 마련해 놓은 다리가 생겼다는 소식은 실로 얼마나 물질적, 과학적 진보가 두드러졌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처럼 표면으로 나타나고 눈귀를 용동(聳動)하는 외형적 발전은 인간이 심적, 내적으로 발달한 결과이며 표현인 것입니다.
이는 보기 드문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심전개발에 더욱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외형적·표면적인 것에 사로잡히기 쉽고, 때문에 재물이나 건물이나 의식(衣食)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수전노가되거나 물질욕에 빠지거나 저속해집니다. 우리 조선이 얼마나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산이 많고 수력 전기의 이점이 크고 또한 교통이 편리하여 기타의 것에 약진하였다고 해도, 이들 외부의 진보·증대만으로는 조선에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아니 이러한 모든 발전 역시 사실 내적·심적 진보를통해 달성되는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물질적 진보와 함께 심전개발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물심일여(物心一如)의 외침이 이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심전개발이라고 말할 것까지도 없이, 먼저 최우선으로 지적 개발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하며, 지식은 참으로 큰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통해 최근의 물적발달을 이룬 것입니다만, 이와 병행하여 정조(情操) 개발에도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인간은 감정적 동물이라고 하는데, 정치(情致)의 발전은 곧 회화, 음악, 조각 등 미술의 진보로 이어지며, 비속 저급한 사회를 순수하게 또한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다가 우리는 항상 의지(意志)를 단련하여 강의현실(剛毅賢實)한 인격을 키워 심산대택(深山大澤)도 정복하여 세계 곳곳에 문명의 윤택함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인간으로서, 국민으로서, 사회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심전(心田)에 감추어진 다양한 능력 위에 이를 개척하고 가르치며 키워가야 합니다.
이는 정신이며, 영적 능력(靈能)입니다. 그리고 우리 일본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의 대개혁 때에, 구미의 외관적 진보, 지식적 발달쪽만을 조사하고 알고 새로운 지식이 가진 외관의 아름다움만을 수입하여 이식함으로써 국가의 발전을도모하고자 하였는데, 이 지식만능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현재 그 여폐(餘弊)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부(節婦)이자 우리 국민의 자랑으로, 빛을 이루는 미풍양속은 점차 그 그림자를 감추고, 배움이 넓어지고 재능이 빛을 발하지만 경학부박(輕學浮薄)하여 삼척동자에게 의지해야 하고, 또한 국가의 주석(柱石)이어야 할 충성순량(忠誠純良)의 인사가 적어지고 있어 참으로 우려되어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메이지대제(明治大帝)가 교육칙어(敎育勅語)를 내리셨는데, 폐하는 누구보다 먼저 이미 우리나라 교육의 대방침에서 기초적 결함을 인식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깊은 인식은 우리를 참으로 송구하고 감격하게 하는 것입니다. 1886년 10월, 지금부터 거의 50년 전에 폐하가 처음으로 대학으로 납시니, 먼저 당시의 도쿠다이지(德大寺) 시종장 및 모토다 나가자네(元田永孚)에게 미리 준비를 위해 대학을 시찰하시게 하고 그 후 폐하는 직접 납시어 그 학과·시설 등을 자세히 보시고, 환궁하신 뒤, 모토다(元田)를 불러 대학으로서 학과·시설은 갖추었으나, 중요한 국가의 주석(柱石)으로서 폐하를 받쳐줄 인재의 정신적 훈련은 어떤지, 국문한서(國文漢書)는 가르쳐도 이를 단지 학문으로서 취급하기만 하여, 그 안에 있는 정신적 내용을 활용하여 정신적 교양을 주는 길은 갖추어지지 않아 이는실로 쓸 만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무엇보다 큰 결함이라고 보고, 이를 지적하였는데, 모토다 역시 이점을 깨달고, 도쿠다이지 시종장을 거쳐 이 점을 폐하에게 말씀드리려고 하였으므로, 폐하는 도쿠다이지 시종장을 통해 당시 대학 총장에게 주의를 주고 반성하도록 모토다에게 명령을 내렸던 것입니다.
이는 모토다가 남긴 성유기(聖諭記)라는 기록에 의해 삼가 듣게 되었습니다. 즉, 메이지대제의 예지대식 은 이미 천년 전 우리나라 교 (叡智大識) 육의 대본(大本)에 일대 결함이 있음을 통찰하시어, 이를 교정하고자 잠을 설치시어 마침내 교육칙어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잘못된 지식만능의 교육 방침은 과거어떻게 할 수 없었으나 오늘 이후에 조선 반도 동포의 심전개발 방침에 이것이 교정에 힘을 주어 결코 물적·경제적에만 편중되지 않고, 또한 지적·이념적으로 흐르지 않고, 정신적·영적 방향을 크게 중시하여 진심으로 물심일여(物心一如)의 견지를 통해 조선 반도의 문화, 동포의 고상(高尙), 대중의 행복을 기도(企圖)하고자 합니다.
2. 실천궁행(實踐躬行)
저는 지난 번 강연에서 조선 반도 동포의 심전개발은 결코 경제적·산업적인 발달에 머무르지 않고,또한 그저 지식·학문의 개발에만 의존하지 않고 반드시 정신적·영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언급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정신적·영적이란 결코 그저 반성적(反省的)·수양적(修養的)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외계(外界)의 필요, 환경의 요구에 따라 실천궁행(實踐躬行)함으로써, 비로소 정신의 발양(發揚), 영능(靈能)의 활동을 보고, 이리하여 물심일여(物心一如), 이상과 실제의 융합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조선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태만, 투안(偸安, 구차한 평안), 의타심을 타파하고 근면하게 자력갱생에 노력하는 데 있습니다.
이에 우리가 전 총독(前總督) 우가키(宇垣) 대장(大將)이 농촌 진흥이라는시각을 통해 자력갱생을 역설하고, 농촌의 자제(子弟), 특히 보통학교를 마치고 우수한 성적을 가지고 그 집안이 자활자영을 이룰 수 있는 자의 자제에게 1년간 특별한 교양을 제공함으로써 자력을 발휘하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그 집안, 그 마을의 진흥을 도모하는, 이는 실로 우리 조선에 가장 필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당국자의 열성적인 지도와 청년자제의 노력에 따라 조선 반도 농촌 일반 진흥에서 좋은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은 실로 기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자력갱생은 한편으로 개인주의의 폐단에 빠지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좋은 예를 들어보면, 이에 대해 북미(北美)의 예에서 찾아보면 자력을 높이 사고 다른 도움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부모가 나이가 들어도 스스로 일을 하고 자활하여, 자녀는 그들을 부양할 의무가 없어 나이든 부모를 돌보지 않고, “산을 넘어”라는 영
화에서 보듯이, 그런 노모가 있어 세 명의 아들은 이미 자신의 집을 갖고 부유하게 살고 있지만, 노모는작은 산을 넘어 가면 있는 양로원으로 보내져, 날마다 노역에 종사하는 것처럼, 인정(人情)에 반하고인도(人道)를 거스르는 상태를 표출하는 경우도 있어, 이 영화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이는 실로 자력갱생을 지나치게 중시한 나마지 결국 그러한 폐해를 낳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러한 폐해를 교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반드시 준비하고 돕고 기르고 제공해야 하는 것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매일 매일의 식사조차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에 의존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입고 먹으며 살며 나아가 사회를 구성함에 실로 다양한 잡다한무형유형(無形有形)의 협력과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이에 우리는 자력 갱생이라고, 개인주의라고 부르는 것처럼 방침과 실천 외에 타인에게 봉사한다고 하는 도의적(道義的) 사고와 실행이 필요합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서비스 봉사라는 도념(道念)과 그 실행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그 로타리 클럽은 불과 7년 전에 미국에서 한 변호사에 의해 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세계 도시에 설립되어 그 나라 수가 76개국, 클럽 수가 4023개, 회원수가 17여 만 명에 이르고 있으며,조선에는 경성, 부산 두 도시에 있는데, 실업가, 교육자, 의사, 신문 기자 등의 대표적 인물을 망라한 유력한 클럽이 되었으나, 그 목적은 자기의 직업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고 봉사를 함으로써 만반(萬般)의 활동을 제일주의로 하는 것으로, 봉사는 현 사회 및 개인의 진보·발전에 대한 일대 요소임을 제창하며 또한 실행에 나서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조선 반도에서 동포의 생활 안정, 발달을 기하기 위해서 개인의 역량을 충실히 도모함과 동시에, 서로 함께 협력 봉사의 정신과 실행에 힘써야 합니다.
이로써 자력 갱생도 비로소 실제 가치를 발휘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을 할 때에 인류 사이에 문화의 정도 차이에도 불구하고, 잠행적(潛行的) 또는 표현적으로 작용하여 개인 및 사회를 감화시키고 교육하여 생명과 희망을 제공하는 큰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애(恩愛)입니다. 이 은애(恩愛)라는 것은 사(私)를 이롭게 하는 마음이 아니라, 아무런 보상도바라지 않고 타(他)를 위해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며 시간을 바치고 몸을 바치고 필요한 재화(財貨)까지도 바치며, 때로는 그 생명을 바치며 타인을 위해 다하는 활동입니다.
공평한 견지에서 볼 때, 이 우주는 은애(恩愛)로 가득한 세계입니다.
해가 비치고 비가 내리며 만물이 나고 자랍니다.
일을 하면 반드시 주어지는 것이 있고 남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부모가 있고, 부부가 있고, 형제가있고, 친구가 있고, 서로 은애를 베풀어 가정이 빛나고 사회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평안해 집니다.
인은애가 따뜻함이 있고 빛이 있음으로써 인류도 생생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사는 데이 은애에 감동하고 이에 보답하는 정성스런 마음과 실천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정성스런 마음과 실천이 있어 비로소 인간은 사심을 버리고 자기를 버리고 맑고 바른 존경스런 존재가 되어, 이러한사회를 만듭니다.
여기에서 감은(感恩)의 염(念)과 그 실행은 조선 아니 세계 사람들이 찾아야 할 필요한 일이며 심전개발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름다움은 젊은 부인이 나이 든 사람을 친절하게 돌보고, 길에서 만나면 손을 잡아주고, 차에 오를 때에는 그 노인을 안아 주려는 듯 주의하는 모습을 보는 것일 것입니다. 이는 실로 허영으로 흐르고 의상을 차려입고 화장을 하는 일반 젊은부인 가운데에서, 노인을 돌보고 약자를 돕는 착한 소녀의 마음을 보여준 것으로, 보기에도 좋은 아름다움입니다.
전 총독 우가키 대장이 항상 병약한 부인을 위로하고 부인 병원에 있는 날에는 바쁜 가운데에도 병문안을 가서 위로하고, 기차에 탈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자녀에게 의지하지 않고 직접 부인의 손을 잡고 도와주는 모습은 우가키 대장 재임 중 빛나는 많은 공적 중에 묻힌 우리가 존경하는 미담입니다.
또한 일찍이 총독의 비서관으로 훗날 도지사(道知事)로서 이름을 알리고 지금은 큰 회사의 주뇌(主腦) 지위에 있는 한 신사가 우리에게, 이번에 자신의 선생이 일본에서 이곳으로 와 조선과 만주 시찰 길에 오르려고 하고 있어, 이곳 체재 중에 가능하다면 편의를 제공해 달라는 취지의 말을 하였는데, 그 선생이 누군지 물으니, 현재 일본의 한 도시에 교회 목사로서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신사와 이 목사의 관계는 고향의 중학교 시절에 그곳 교회 목사의 지도를 받은 적이 있어, 지금까지 그 교회의 감화를 받았다고 하며, 경성에 도착하는 그 목사를 직접 역에서 마중하여 그를 자택으로 초대해 부부가 함께 선생을 대접하고, 그의 설교를 듣고자 교회와 연계하였고, 그를 위해 우리는 조촐한 환영회도 열었으며, 만주에 있는 신사의 친구에게 그를 선생으로 소개하였습니다.
이는 최근에 보기 어려운 사제 간에 보여주는 감격스러운 미담입니다. 이처럼 은애로 가득한 실행은 심전개발에 매우
중요한 점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일단 생각하고 배우고 싶은 것은 심전개발 최대 요소로서 우리가 조상에 대해, 조국에 대해, 알아야 할, 알기 어려운 은혜·애호(愛護)를 깊이 사고하여 깊이 있게 고찰하고, 이에 대한 사은보국(謝恩報國)의 염(念)을 보여주고, 이에 대해 숭경애국(崇敬愛國)의 마음을 받들어야 합니다.
본래 우리의 조상이 우리에게 주신 이 몸, 이 마음, 이 환경, 이 나라 모든 조상의 은혜에 의한 것으로, 결코 우리 혼자
서 스스로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이를 생각하면, 조상에 대한 보은의 정성이 솟아 오르는 느낌이듭니다.
하물며 우리가 여행을 하여 외국에 갔을 때, 우리가 양어깨에 지고 있는 조국, 우리가 높이 걸어 놓은 일장기, 얼마나 우리에게 큰 힘을 주며 우리를 자임자중(自任自重)하게 하는 지, 만주에 이민간 우리 국민이 얼마나 가슴 깊이 자임자중의 정신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이 일본에 있을 때 가졌던 느림, 태만의 기운은 홀연히 사라지고 근면하게 정진하는 사람이 되어 스스로 자국(自國)을 대표하는 기개로 불타며 자영자제(自營自制)하여 동료들 사이에 규율정연(規律整然)함을 보여주기에 이르렀다고합니다.
조선에는 예전부터 조상을 존경하고 조상의 대은(大恩)을 기념하여 감사하는 미풍양속이 있어, 연중달마다 조상에게 제례를 올렸으며, 그리고 이 미풍양속은 결국 그 정도를 지나치고 말아 허례허식으로 흘렀기 때문에 진정한 조상숭배의 예(禮)는 허례(虛禮)가 되어 그 진정한 의미가 크게 퇴색하였으며, 마침내 이를 대대적으로 교정할 필요가 초래됨과 동시에, 한편으로 서양 문명의 진의를 오해하고 또한 시대의 유행인 부화경졸(浮華輕卒)에 압도된 대중은 엄숙한 것, 신성한 것을 경시하기에 이르러, 조상숭배는 점차 줄고 선대의 업을 잇는 사람에게는 눈을 돌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한 기독교를 전하기 위해 온 선교사의 눈에는 화려하고 허례로 흐르는 외형만이 보여 이를 고치는 것은 사회의 폐해를 타파하는 것이라고 보았으며, 또한 그들은 이렇게 타락한 조상숭배는 최고지성(最高至聖)인 신을 경배하는 대신에 저급하고 비속한 우상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보고, 기독교에 들어오려면 반드시 조상숭배를 버려야 한다고 가르치기에 이르렀으며, 이로 인해 조선 반도 동포 중에는 조상숭배의 염(念)과 실행은빛을 잃어갔습니다. 만약 제가 아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실로 통탄할 일이며, 우리는 조선인 제군(諸君)과 함께 조상숭배, 조상을 숭경하는 의의를 알리고 그 재흥진기(再興振起)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견지를 더욱 높이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대관(大觀)해 보면, 우리나라 역사는 세계에 비할 바가 없는 만세일계(萬世一系)의 황실을 받드는 충군애국(忠君愛國) 정신의 표현(表顯)이며, 즉 무사도(武士道)이자 대화혼(大和魂)입니다. 이 정신은 아주 옛날부터 길러져 온 우리 국민의 아름다운 특성이며, 그리고 70여 년 전에 봉건제도의 철폐와 함께 대정(大政)을 봉환하여 오랫동안 봉건제도하에 길러져 온, 충군(忠君)의 성(誠)은 합류대성(合流大成)하여 일천만상(一天萬上)의 폐하를 받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충군애국의 정신 궁행(躬行)과 실천이야 말로 심전개발의 최대 요체(要諦)라고 확신합니다.
3. 종교 신앙의 필요
인간이든 사회이든 진정한 진보·발달은 평온한 안정이라는 기초 위에 있다고 믿습니다. 인심(人心)에 안정이 없고 국가에 치안(治安)이 없다면, 진보·발달은 어렵습니다. 마음에 안정이 없고, 사회에 안녕이 없으면 스스로 취하고 용감히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둥근 명월(明月)도 바람 한 점 없이 맑은수면에만 머뭅니다.
하코네(箱根)의 호수에 흰 그림자를 드리운 후지(富士)의 영악(靈嶽)이 비치는 것은 바람 한 점 없이 호수면이 거울처럼 매끄러울 때 뿐입니다. 인심(人心)이 평화롭고 안녕할 때에만 진보·발전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는 예부터 지금까지 진심으로 평화와 안녕을 얻지 못하였으며, 또한 이를 불가능하게 하는 사정을 안고 있는 환경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생활의 어려운 문제가 있으며, 사람이든 국가든 그 사이에 분규가 있고, 또한 가슴 속에 항상 약동하는 이욕(利慾)이 있어, 이러한 사항들 때문에 인류는 불안한 상태에 있습니다. 세계가 개벽한 이래 인간의 지(知)가 발전함과 동시
에 이러한 인심(人心)에 불안과 안정 결여는 그 근본에 인간 자신의 마지막 운명을 분명하게 알 수 없다는 것에 의한 것입니다.
인간은 지식·재능을 스스로 멈출 수 없으며 인생은 불과 수십 년, 70년은 예부터 드문 일이어서 죽음이 엄습해 옴과 동시에 만사가 끝이 납니다. 지능뿐만 아니라 정치(情致)에서 진보·발달에 상관없이, 고묘심원(高妙深遠)한 음악, 조각·회화 등 실로 귀신을 울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갑자기 이들 천재를 쓰러뜨리고 달인을 앗아갑니다.
특히 부부친자(夫婦親子)의 존엄, 아름다운 인정(人情)도 죽음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불쑥 찾아와 영원한 이별을 고하게 합니다.
이에 인간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에 대한 탄식과 슬픔을 안고 불안과 불안정한 느낌은 인간 마음의 깊은 저변으로 모습을 감추어 버립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인간은 죽음으로써 만사가 끝나는가라고 인생의 운명 문제는 인간 탄생 이래의 현안이고 이에 그 바닥을 알지 못하는 불안정과 불안은 의식하거 의식하지 못하건 인류를 덮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깊이 자리한 인심(人心)의 불안정과 불안을 구원하는 길은 없는 것일까? 전혀 없을까? 이 길은 종교의 신념입니다. 종교란 무슨 파이든 하나의 커다란 지주(支柱)는 인간의 운명은 결코 죽음으로 만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왕생(往生)하는 것이 그 실명(實名)입니다. 일찍이 선배인 우치무라(內村鑑三) 씨는 자신의 외동딸이 시집갈나이가 되었을 무렵에 죽음을 맞았을 때, 그 딸이 부모에게 “가겠습니다”라고 하는 순간에, 실로 영혼의 불멸을 눈으로 직접 보았다는 글을 당시 제게 보내 왔습니다. 영국의 시성(詩聖) 테니슨은 어느 죽음을 조문하고 죽음이란 진정한 이름이 아니라 오르는 것이야 말로 그 이름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종교는 종교적 대성위인(大聖偉人)을 통해 인간의 운명이 영원불멸한다는 것을 인류에게 확신시켜주며 선언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이를 믿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비로소 가슴 깊이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얻어 대왕생(大往生), 크게 돌아가 다시 사는 것입니다. 이에 종교적 신념은 심전개발의 기초 공작임을 믿습니다.
이어서 심전개발의 또 다른 기초적 공작으로서 희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심(人心)의 안정은 심전개발의 기초적 공작이라고 해도, 희망이라는 빛이 빛나고 인심이 위로 오르지 못하면 심전도 마르고 황폐해져 버리든지, 가라앉아 썩어버릴 것입니다. 희망은 인심을 항상 젊게 약동하게 합니다.
시인 브아우닝은 이루어 낸 것보다 이루려고 하는 데에 가장 고귀한 것이 있다 라고 실로 희망의 광명(光明)이가진 고귀함을 노래하였습니다.
그런데 인생은 어떤지, 사는 데 쫓기는 가난함 없이는 과거의 세상이어서 지금은 아무리 벌어도,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은 뒤를 쫓아 옵니다. 세상은 대부분의 경우 불공평하고 의인(義人)이 반드시 보답을 받는 것도 아니고 정직하지 못한 자가 성공을 하고, 선인(善人)은 대부분 내쳐지고 악인(惡人)이 발호합니다.
호넨(法然), 신란(親鸞), 니치렌(日蓮)이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소크라테스의 독배(毒杯),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심이 의지하기에 부족하며 여론이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이 세상에서만 의지할 만한 곳을 찾는다면 인간의 희망은 그저 이 세상에만 한정되어버립니다.
즉 인간은 무한한 시간 속에 끝없이 넓은 우주에 있어, 너무나 가련하게 너무나 슬프게도,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는 하루살이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군사를 동원하여 아직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몸이 먼저 죽은 영웅으로 하여금 눈물로 소매를 적시게 하는 것은 유감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만인을 이 비통장한(悲痛長恨) 속에서 구원하는 것이 오직 하나 있습니다. 바로 종교입니다.
종교는 영혼의 불멸을 말하고, 인간은 사후의 공정한 심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결코 죽음으로 만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신앙을 주며, 엄정충실(嚴正忠實)한 희망을 안겨줍니다.
이처럼 희망과 신앙을 품은 위인걸사(偉人傑士)는 결코 적지 않으며, 유태교의 예언자이든, 대정치가이든 당시 경이로운 세력을 갖고 감화를 준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는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하고 교훈을전파하였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 (이사야서)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라고, 영원한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경험하는 능력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영원히 산다는 열렬한 희망을 품은 시성(詩聖) 브라우닝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말하였습니다만, 그는 사람은 영원히 사는 존재라는 열렬한 희망을 품고 이를 기억하여 일심불란(一心不亂)하게 공부·연구를 계속하였습니다.
가깝고 친절한 사람들은 그에게 휴양을 권하였습니다. 이에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인간에게는 영원이 있다. 영원을 생각하며 일을 하는 것이 인간이다. 현세(現世)는 개나 원숭이에게 던져 줘라. 내세가 없는 그들 짐승들은 현세만을 생명이라고 한다. 인간인 자는 영원을 활동구역으로 해야 한다 고 대답한 그의 명구(名句)는,시간이란 무엇인가? 현세는 개나 원숭이에게 줘라! 인간은 영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그는 영원히 절대적인 희망을 가졌다고 해서, 그렇다고 해서 이를 통해 그는 결코 현세를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숨의 근원을 멈추는 죽음과 싸우면서 문전(文典)의 강의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이미 죽음이 눈 앞에 와 있고 숨소리는 꺼억꺼억 소리내며 고통스런 소리를 냈지만 문전을 강의하였고 다리는 식어갔지만 이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브라우닝의 생애였습니다.
종교적 신앙은 이처럼 강하며 사멸하지 않으며 고귀한 희망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희망을 심전개발 기초적 공작의 두 번 때 요소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심전개발 기초 공작의 세 번째 요소는 경건(敬虔)과 지성(至誠)입니다. 정신적·영적 수양이라고 하고 실천궁행(實踐躬行)이라고 하는 것도 그 기초적 공작에 성심(誠心)과 경건이 없다면 결코 충분한 활동과 효과를 올릴 수 없습니다. 인류 일반이 사심사욕(私心私慾) 때문에 서로 다투고 싸우는 수라장(修羅場)에서 구원받고 단지 인간만을 상대로 하지 않고 성의와 경건의 염(念)으로 심전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고귀한 진리를 가장 잘 깨닫고 간파한 분이 바로 위대한 성인(偉聖) 메이지 대제입니다.
또한 대제가 황송하게도 이를 단적으로 표현하신 것이 우리가 항상 암송하고 있는 다음의 어제(御製)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神)의 마음과 같은 것이야 말로인간 마음의 성(誠)일 것이다.
경건과 성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마음과 통할 때 비로소 이를 실험하고 또한 이를 수양할 수있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신 명구(名句)이며, 즉 성의와 경건은 숭경의 신념에 따라 생기는 것임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실로 이것이 진리임을 알고 이렇게 심전개발의 일대 기초 공작인 경건과 성의는 종교 신앙에 의해 성취되는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해오는 가운데 갑자기 제 기억에 떠오르는 참으로 경복감명(敬服感銘)할 수 밖에 없는일은 지금부터 3년 전에 황송하게도 황태후 폐하가 교토(京都) 도시샤 여학교(同志社女學校)에 납시었던 일입니다.
폐하가 납신 주지(主旨)는 기독교주의를 바탕으로 설립된 여학교를 평소에 둘러보고 싶어 하셔서 당시 에비나 단조(海老名彈正) 씨가 도시샤 여학교의 총장으로 취임하자, 총장은 여러 교사를 이끌고 폐하를 영접하였으며 매일 있는 행사인 강당 조례에 폐하를 안내해 평상시와 다름없이 1,000명의 학생앞에서 성서의 일부를 읽고 기도를 올리며 조례를 주관하였는데, 이때 황송하게도 폐하는 특별히 준비된 단상에 서 계셨으며, 식(式)이 끝나고 나서 각 교실을 둘러보시기 위해 아름다운 얼굴을 보여주신은혜를 베풀어 주셨을 때에는 이미 예정 시간보다 1시간이나 지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당시 폐하가 이처럼 종교에 깊은 이해를 갖고 계심을 알았고, 지금도 감격해 마지않습니다.
저는 천학박신(淺學薄信)하여 지금 다루고 있는 문제에 대해 비천한 의견을 말씀드려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심전개발의 기초적 공작으로서 적어도 먼저 안심, 이어서 희망, 마지막으로 경건, 이 세 가지는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그리고 이 세 가지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종교 신앙임을 절절히 느낍니다.
다행히 조금이라도 참고가 된다면 더 없는 영광일 것입니다.
<출전 : 丹羽淸次郞, 「心田開發이란 무엇인가?」, 京城基督敎靑年會理事,1937년 1월부터 라디오 방송한 내용>
3) 김태흡, '심전개발 및 시국에 관한 순회강연집'(1938)
강사 김태흡(金泰洽)
목차
1. 심전개발과 종교 신앙의 필요
<1936년 7월 28일 원주읍내에서>
2. 보국감사와 자립정신
<1936년 7월 21일 영월읍내에서>
3. 심전개발과 전미개오(轉迷開悟)
<1937년 2월 28일 양구읍내에서>
4. 종교신앙과 인류의 행복
<1937년 6월 11일 평창읍내에서>
5. 심전개발과 생업보국(生業報國)
<1937년 10월 4일 통천군 흡곡에서>
6. 심전개척(心田開拓)과 의용봉공
<1937년 10월 5일 통천읍내에서>
7. 희생봉공(犧牲奉公)과 안심입명(安心立命)
<1937년 10월 24일 횡성읍내에서>
8. 총후부인(銃後夫人)의 책임
1937년 11월 26일 평강군 문산리에서>
9. 비상시국과 화경(和敬)의 이상
<1937년 11월 27일 평강군 옥봉에서>
10. 신앙생활과 거화취실(去華就實)
<1937년 12월 6일 김화군 금성에서>
11. 심전개발과 국민지구전(指久戰)
<1937년 12월 6일 김화군 창도에서>
1. 심전개발과 종교 신앙의 필요(1936년 7월 28일, 원주읍내에서)
지금부터 여러분을 모시고 심전개발(心田開發)이라는 연제(演題)하에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을 더없는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날도 매우 더운데도 불구하시고 이와 같이 다수회동(多數會同)하여 주심은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이 도의 촉탁으로 인하여 본도(本道) 북도5군(北道五郡)을 순회 강연하옵고 이번에 또다시 남부4군을 순회강연하게 되었음을 실로 감사히 생각하는 바입니다.
즉, ‘심전개발과 종교 신앙의 필요’라는 연제(演題)로 약 한 시간쯤 말씀을 드리고자 하오니 잠시 정청(靜聽)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우선, ‘심전개발’이라 함은 무엇인가? 이는 무슨 연고로 근대에 이르러성왕하냐 하면 신앙심을 세우고 종교심을 환기(喚起)시킴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무슨 연고인가하면, 수천 년이래 말이 없던 이것이 어찌하여 새로이 이에 운동을 일으키게 되었겠습니까?
수천년래에 극도로 피폐한 이 조선(朝鮮)에 난국을 타개함에는 자력을 갱생하여 농촌을 진흥함에 있다고 해서 모범 부락(模範部落)이니 청년회(靑年會)이니 부인회(婦人會)이니 갱생부락(更生部落)이니하는 등 조선 각지에 매거(枚擧)1)키 어려울 만큼 제반(諸般)운동이 봉기하였습니다.
제일(第一) 경제상(經濟上)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조선동포를 어찌 구원하려 하면 늦었지만 이것은 경제적으로 구제치 않으면 안 되겠다는 목표하에 당국에서는 ‘자력갱생농촌진흥운동(自力更生農村振興運動)’을 일으켜서, 극력(極力)으로 보도(補導)하여 오기를 지금까지 벌써 5개년(五個年)이라는성상(星霜)이 되었사온데 피폐(疲弊)로 변화한 농촌을 다만 ‘자력갱생 농촌진흥운동’으로 업적(業績)을일으키도록 하여, 물질적 방면을 지도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 방면에도 치중하여 물심양방면으로 극력(極力)이 운동에 초지(初志)를 관철(觀徹)하고자 자력갱생을 고창(高唱)하여 왔습니다. 그리하여 많은효과(效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마는, 그 효과가 많은 반면(反面)에 여러 가지 피폐(疲弊)가 적지 않습니다.
그는 갱생운동을 시작함에 한편으로 생각하면 물질적 방면(物質的方面)으로만 추행(追行)하고 정신적 방면은 전혀 자연적 몰각(沒却)하게 되었으므로 정신상으로는 실로 여러 가지로 피해가 적지 않게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물질적으로만 편중(偏重)하게 되어 개인주의(個人主義)와 물질주의(物質主義)에만 분치(奔馳)하게 되어서 동양고유인 미덕(美德)에 근본적 정신을 전혀 몰각하여 온 고로 그의 피해를 말씀드리면 여간 많지 않게 되었습니다.
즉, 물심에 관계(關係)는 수레(車)에 양 바퀴(兩輪)와 새(鳥)에양 날개(兩翼)와 흡사(恰似)하여 어떤 편(便)이든지 결여(缺如)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고로 정신적 생활과 물질적 생활은 동시동양(同時同樣)으로 일시에 환기(喚起)치 아니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금(昨今)에 심전개발운동(心田開發運動)이 일어난 원인(原因)은 여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자력갱생운동에 대하여서는 직접 목전(目前)에 보이는 것인 고로 지도하기가 쉬울 것입니다마는 심전개발이라 함은 종교적인 것인 만큼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사용하여 설교도 하고 포교도 하고 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래 이런 설교와 포교는 사찰(寺刹)에 대하여 본시 우리의 의무인 고로 남에 요망(要望)에 의하여 할 것이 아니고 자신으로 당연히 할 것인데 수면상태(睡眠狀態)에 있었음은 참괴막심(慘愧莫甚)한 일이오며 천재일시(千載一時)에 호기회(好機會)이온 고로 즉, 발분망식(發憤忘食)으로 일년 열두 달 365일을 13도에 방방곡곡으로 다니며 순회(巡廻) 지도(指導)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의무가있습니다.
그리면 무릇 심전(心田)이라 함은 무엇을 의미함인가? 하오면 그는 세상에서 석전(石田)·수전(水田)·사전(砂田)이라고 함은 많이 들었고 또한 일반(一般)이 모두 목도(目睹)하는 것이지마는 하필 심전이라고 하였겠습니까.
그러므로 심전개발(心田開發)은 금시초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각위(各位)는 신문, 잡지 등에 많은 선전(宣傳)이 있었던 고로 지금은 안방에 들어 앉아 있는 부인, 아동들까지라도 자세히 이미 아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그 출처는 어디인가, 그의 의의, 골자(骨子)와 정신취지(精神趣旨)가 어디에 있나? 이것을 지금으로부터 자세히 설명하여 여러분께 올리고자 합니다.
1) 일일이 열거함.
심전 이라 함은 (心田) 불경(佛經)에서 나온 것인데 불경에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경상남도 합천(陜川) 해인사(海印寺)에 비장(秘藏)한 것인데, 목각(木刻)으로 아마 이 공회당(公會堂)에 한 이십 배 되는 집으로 목태(木台)가 꽉 차서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목각(木刻)이 팔만여가 되어서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하고, 혹은 하도 많은 고로 그렇다하기도 합니다.
인도(印度)에서는이를 수량(數量)이 오만매(五萬枚)가 있다 하는 등에 말이 있습니다.
여하튼 수량이 다수라 함은 사실입니다.
그런 고로 수량이 많음을 지적하여 팔만대장경이라는 이름이 난듯합니다.
그런데 대장경 중에 잡아함경(雜阿含經)이라는 경(經)의 제 4권에 심전경작(心田耕作)이라는 언구(言句)가 있습니다. 즉, 심전개발은 바로 여기서부터 나온 것이 기원이 된 것입니다.
이 네 자를 부녀자나 아동이라도 능히 알만큼오늘날은 이를 통속적으로 자세하게 해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삼천 년 전에 석가세존(釋迦世尊)이라는 어른이 계시었습니다.
그의 제자 중에 박학다조(博學多助)한 분이 십대제자가 있었는데, 십대제자 중에도 아난(阿難)이라는 현철(賢哲)한 분이
계시어서 유독이 석가세존에 총애를 독점하다시피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현철한 분이 많으시지만, 석가세존에게서는 아난과 같이 방방곡곡으로 순회하시며 이 세상에 모든 물욕(物慾)에 충만한 자를 죄악가운데서 구원하사 극락(極樂)으로 인도하고자 진심(盡心) 갈력(竭力) 중에 그 어느 전답(田畓)들이 많은 원야(原野)를 통과하게 되었답니다.
그때는 마침 농번기인 고로 일반 농민들이 온 들(野) 사방에 산재하여 모든 백곡(百穀)을 경운(耕耘)하며 배양함에 구가(驅歌)를 부르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점심때가 되니 땀을 흘려 가면서 일을 하던 농부들은 모두 전답휴반(田畓畦畔)으로 혹은 수림(樹林) 아래에 나와서 잠시휴양(休養)을 할 새에 부녀자와 노약한 사람들은 점심밥을 혹은 지고 혹은 이는 등 하면서 갖다가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농부들은 밥을 나눈다, 간을 나눈다 하면서 모여서 먹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석가세존이 한 농부에 나가 온공(溫恭)2)히 합장 배례를 하고 말씀하시기를,
“석가세존 : 나는 부모처자도 없고 집도 없는 무의무탁(無依無托)한 사람으로 천하를 집을 삼고 순회하는 사람인데, 여러분이 잡숫는 밥을 한술씩이라도 모아주신다면 배고픈 저는 잘 먹겠습니다.”하면서 점심 요기를 시켜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그 모인 농부 중에 혈기 건장한 청년 농부 한사람이 썩 나서며 하는 말이,
“농부(農夫) 왈(曰) : 당신에게는 이 귀중한 밥을 줄 수가 없습니다.” 하면서 단연 거절하였습니다.
“석가세존(釋迦世尊) 왈(曰) : 어찌하여 그 같이 과격한 말씀을 하십니까.” 한즉,
“청년농부 왈 : 이 밥은 농사짓는 사람 이외에는 먹을 권리가 없습니다. 피땀을 흘려가며 한톨 한톨에 곡식을 힘들여서 지은 것이니 당신과 같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우유도일(優遊渡日)하는 자는 먹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시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난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阿難) : 그러면 만약 농사를 짓지 않은 자는 결코 먹을 수가 없습니까” 하였습니다.
“농부 : 두 번 다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고 거절 하였습니다.
2) 온화하고 공손함.
“석가세존 : 그런즉 오늘이라도 농사를 지으면 먹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하였습니다.
그런즉 대답하여 말하기를,
“농부 : 그렇습니다”라고 하는지라,
“석가세존 : 그런즉 농사를 짓지 아니하면 그렇거니와 나도 농사를 짓는 농부이니까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하고 하였습니다. 한즉 일반농부들이 정색하여 말하기를,
“일반농부 : 아무리 보아도 농부 같지 않고 농사지은 것 같지도 않을 뿐더러 손도 부드러운데 무슨농부라고 하느냐! 수도를 한다는 사람이 어찌 허언(虛言)을 하여 사람을 기만코자 하느냐.”고 하는지라
이에 고성대언(高聲大言)으로,
“석가세존 : 나는 여러분과 같이 계절적 농사를 하는 자가 아니요. 춘하추동 사시(四時)를 막론하고 밭을 경작하는 자이다.” 등 하면서 고란(誥亂)들을 할 즈음에 인근(隣近)에 있는 자들은 싸움이 나지 않나 하고 전부 몰려와서 무려 수백 명이 되었습니다.
이때 석가세존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셔서 군중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석가세존 : 내가 농부가 아닌가. 농부인가의 이유를 말할 터이니 원하건대 여러분은 내가 말한 후에 스스로 판단하여 주기를 바랍니다.”고 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석가세존 : 인간이라는 것은 본래 구조가 물질에 속한 육체와 영(靈)에 속한 정신 양자가 구비(具備)치 아니하면 생존을 할 수가 없는 것임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1) 육체에 생활이라 함은 산천(山川)·전답(田畓)등을 이용하여 오곡(五穀)에 종자를 뿌리며 중경배토(中耕培土)를 하고 결실이 되면 누구나 수확하여 자유롭게 식량에 충당시키는 등 육체로 말미암은 노동적 무의(無意)한 생활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혀 여러분에 농사라 함은 의·식·주에 대한 물질적방면뿐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인간이라 하면 만물의 영장인 만큼 다만 이 물질적 생활로는 도저히만족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육체적 생활을 하는 이외에 마음으로는 정신적 생활을 요구하는 고로 여느 동물과는 달라서 영물이라 이르겠습니다.
(2) 심(心)이라 함은 무엇인지 이것을 해부하면 지(知)·정(情)·의(意), 이 세 가지로 구분할 수가있습니다.
즉
(가) 지(知)라 하면 진(眞)을 구하는 것인데, 즉 알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제일 알기 쉽게 말씀하면아이(兒孩)들이 점차 장성할수록 무엇을 물을 때에는 반문적으로 이것은 무엇이요, 저것은 무엇이야 하며 지적 지혜가 발달되어 오는 것이며 어머니, 할머니 하면서,
아해 : 아버지는 누가 낳았어.
어른 : 아버지에 아버지 즉 할아버지가 낳았다.
아해 : 할아버지는 누가 낳았소.
어른 : 할아버지 아버지가 낳았단다.
아해 : 처음에는 누가 낳았소.
하는 등 근본적으로 추구할 시에 내종(乃終)에는 지적 만족을 취하여 미울 만큼 질문함으로 혹 창세기를 이용하여,
어른 : “예전에는 하나님이 이 세상 우주에 천만물(千萬物)을 창조하실 때 6일간에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내종(乃終)에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더니 거기에서 의식이 들고 혈맥이 통하여 처음으로 사람이 되었단다.
혹은 저 공중에서 황우(黃牛) 한 마리가 둥둥 떠와서 어느 숲 사이에 내렸다 간 뒤에 본즉큰 알을 낳아 놓고 갔는데, 그 알 속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나왔단다.”라는 등 사람이란 앎에 만족을 취하고자 하는 마음(心)이 있습니다.
즉 앎(知)이라 함은 종교적으로 철학적으로 그 진리를 기어이 구하고자 함입니다.
그런즉 이에 한 건(件)으로 본다 하더라도 물질적 생활로 만족을 느끼겠습니까.
(나) 정(情)이라 함은 미(美)를 구하는 감정인데 미를 구함은 어른보다 아이들이 더 있습니다.
예를들면 때때로나 혹은 설(정월 1일), 단오(5월 5일), 추석(8월 15일), 등 가진길일(佳辰吉日)을 맞아 무엇을보면 저것은 나를 하여주오, 며칠 밤 있으면 입을 수 있수(着衣)하는 것이며, 모두 미를 구함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물론하고 밥 이외에 떡이나 적이나 만두나 국수나 모두 맛있고 보기 좋은 음식을 만들어먹지 않습니까?
혹은 가무음률을 좋아한다든지 기예술(技藝術)을 좋아한다든지 하는 것이 모두 정(情)에서 나온 심적 욕망입니다.
예를 보건대, 그 떡을 그냥 만들어 먹어도 좋을 것을 혹은 둥글게, 세모지게, 네모지게 혹은 청홍(靑紅)·백(百)등으로 착색을 하여 먹는 것이 모두 귀와 눈과 입에 만족을 채우기 위하여 좋아하는 물건을요구하며 방정(方正)3)을 구한다든지 곡선미를 구한다든지 하는 등에 이유는 정적 요구입니다.
(다) 의(意)라 함은 선(善)을 구하는 의식인데, 다만 인간이 저 무린산천(無隣山川)에서 단독으로 외로운 생활을 한다면 도덕관념 즉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이 없어서 발가벗고 산다 하더라도 하등에 관계가 없겠지만 세 사람 이상이 산다 하면 규칙이 있는 바입니다.
자연히 앞을 가리여야한다, 옷을 입어야 한다든지 하며 불의부지(不意不知)중에 악(惡)과 추(醜)를 버리고 선과 미를 취하게됨에 마침내, 자연의 준칙(準則)이 발생하게 되니 적어도 한 가정, 한 사회, 한 국가를 구성하여 전체생활을 하자면 그에 준칙(準則)이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즉 가정에는 가규(家規)가 있고 사회에는 법률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의 가규율령(家規律令)은 인간이 정한 것이지만은 인간으로서는 천성(天性)으로 자연히 선악을 판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고로 보기 좋은 것과 듣기 좋은 것은 선(善)에 속함이요, 보기싫고 듣기 싫은 것은 악에 속한 것인 등의 자연의 덕의심(德義心)을 누구나 가지게 되며 따라서 인의도덕(仁義道德)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이것을 의(意)라고 하겠습니다. 그런고로 인간사회란 물질적생활로만은 절대로 만족을 취할 수 없습니다.
정신적 생활은 무형무색(無形無色)하여 이름을 짓기가 곤란함으로 심전(心田)이라 하였습니다.
모든 산전(山田), 수전(水田), 석전(石田)은 여러분이 개척하시는 중에 있으나 이상의 지(知)·정(情)·의(意) 즉 진(眞)·선(善)·미(美)라는 심전(心田)은 수천 수 만년을 내려오도록 경작할 자가 없어 천하인간에 심전은 전부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가련한 일입니까? 이것은 유독이 나 이외에 개척할 자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동서남북 방방곡곡에 순회를 하며 개척에 노력을 하였으나, 즉 대부분이
3) 네모, 사각형을 뜻함.
미개척인 고로 세상에는 죄가 충만하였으며, 모든 인간은 물질적 욕망만 충만하여 부모형제 친척, 친구할 것 없이 욕심이 발로하여 서로서로 흉을 본다 하며 인심이 매우 악화되어서 심전은 극도로 황폐하여 왔습니다.
몇 대 조상부터 묵밭이 된 이 심전을 하루 바삐 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산전(山田), 수전(水田), 석전(石田)은 하루 이틀쯤 쉬어도 무방하겠지만 심전에 경작이야말로 어찌 하루 이틀 쉬겠습니
까.” 하셨습니다.
그런즉 일반청중은 망지소조(罔知所措)하여 몸 둘 곳을 모르며 모두 배례칭송(拜禮稱頌)하고 위탄불기(威歎不己)하면서 서로 다투어 점심을 가져와서 모인 것이 수십 인분이 한 곳에 쌓였다고 합니다. 최후에,
“석가세존 : 나는 신심위종자(信心爲種字)하여 고행행위시우(苦行爲時雨)하고 지혜위리액(智慧爲犂軛)하여, 참괴심위원(慚愧心爲轅)이니라.
즉 신심(信心)으로 종자(種子)를 삼아 일반에 의혹이 없도록 하고 고행으로 시우(時雨)를 삼아 성의를 표하며, 지혜라는 무형적(無形跡)한 도(道)로써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은 물론하고 극락으로 인도하고자 일야사계(日夜四季)로 방방곡곡을 집을 삼아 참괴심(慚愧心)4)으로써 이 세상인간을 죄악 중에서 구원하고자 합니다.
참괴심이 없는 사람은 쓰레기통으로 가고 참괴심이 있는 사람은 극락으로 돌아갈 것이니 어찌 유색유형(有色有形)에 물질적 농사에 미치지 못함이 있으리오. 이와 같이 농사, 즉 심전경작에 분투노력(奮鬪努力)하니 이것은 농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불가불(不可不) 농부(農夫)라 하여도 참괴심이 없을 줄 믿습니다.” 이때에 모두 칭송(稱頌)하여 말하기를
“일반농부 : 당신에 농법은 이 세상에 특이한 농군(農軍)이라고 하면서 신농(神農) 씨보다 더 위공(偉功)이 있는 위인입니다.”라고 하면서 감복하였답니다.
무릇 심전개발이라 함은 즉 신앙을 일으키고자 함입니다. 비단 불교뿐 아니라 유교에서도 신앙으로위주(爲主)합니다.
그런고로 공자께서 가라사대 “ 언충신행독경(言忠信行篤敬)이면, 수만맥지방(雖蠻貊之邦)이라도 행의(行矣)요. 언불충신행불독경(言不忠信行不篤敬)이면 수주려(雖州閭)라도 난행호(難行乎)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데 신(信)자에 파자(破字)를 하여보면 인(人)자와 언(言)자가 합하여 신(信)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말이 인간에 생명입니다.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곧 말인 고로 좋은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선언(善言)이요. 그른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언(惡言)일 것입니다.
즉 선(善)은백행지본(百行之本)이요 만행지원(萬行之源)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공자(孔子) 왈 ‘입즉효(入則孝)하고 출즉제(出則悌)’ 하시었는데 불교 역시 다름이 없습니다.
증자(曾子) 왈 ‘여붕우교이불신(與朋友交而不信)이면 하이위지교야(何而爲之交耶)아 불학(不學)이라도 신실(信實)하면 수왈(雖曰) 미학(未學)이나 오필위지학의(吾必爲之學矣)니라’ 하였으며 주역(周易)에서 말하기를 ‘천지소조자(天地所助者)는 순야(順也)오 인지소조자(人之所助者)는 신야(信也)니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하고 순천(順天)자(者)는 흥(興)이라’하였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누가 믿지 않는데 도움이었겠습니까. 부모형제라도 불신이면 상호조력을 하지 않고 심하면 축출(逐出)의 지경까지 납니다. 그런즉 친부모형제지간에 가령 불목(不睦)을 한다고 하면 더구나 남남끼리야 어찌 신념을 두겠습니까. 이런 것을 미루어 본다면 신(信)이란 위대한 힘이며 인생 사세(斯世)에 불가불행(不可不行)할 요소가 아니
4) 부끄러운 맘, 염치.
겠습니까 비단 . 인생에 일상생활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천지공도(天地公道)가 역시 그러합니다.
사마광(司馬光)이 말하기를 ‘천지신이성세공(天地信而成歲功)하고, 일월신이역상명(日月信而歷象明)하며, 인군신이호령행(人君信而號令行)하고, 인신신이방가락(人臣信而邦家樂)’고 하였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늘의 춘하추동의 절후(節侯)와 풍한(風寒)·서습(暑濕)·우로(雨露)·설상(雪霜)에 공도(公道)가 없다든지 혹 일월(日月)에 조명이 주야(晝夜)가 있어 낮에는 일(日), 밤에는 월(月)과 같이 공평무사하게 비추이지 아니하면 어찌 천지(天地)·일월(日月)·우로(雨露)를 믿고 종자를 심어 결실되기를바라고 수확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인군(人君)은 억조창생(億兆蒼生)이 의뢰(依賴)하며 경모(敬慕)하는 주권이 있는 만큼 만일 무신(無信)한다면 그의 호령(號令)이 어찌 나라 안(邦內)에 실행이 되겠습니까? 미더운 연후에 그의 호령을 엄수할 것입니다. 역시 인신(人臣)이 무신(無信)이면 그에 정치는 통제가 되지 아니하여 모든 기관(機關)에서 비등(沸騰)할지며 해이(解弛)해 질 터이니 어찌 그 나라(邦家)가 번영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코 신(信)을 떠나서는 죄악의 생활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신(信)을 지킨 연후에야 성공을할 것이며, 극락에 땅을 붙일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가정에 이상한 일이 있어서 공자(孔子)께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 : 저의 집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먹이는 농우(農牛)가 백색독(白色犢)5)을 분만하였으니 불상사가 아니겠습니까?”
공자께서 답하여 답하시길 ‘그것 참 이상한 일이니 그 소는 밭을 갈거나 혹은 식용에 바치거나 하면불가하니 2, 3개월 잘 키워서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공자님을 꼭 믿었기 때문에 지시하는 대로 산신제를 지냈습니다.
그리한 후 며칠 만에 그의 아들이 눈의 한편이 멀어서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동리(洞里)사람들은 백독(白犢)에 처치를 잘못한 때문이 아닌가 하였으나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또 백독 한 마리를 분만한 고로 또 그렇게 공자님께 가서 물었으나 또한 먼저 지시같이 하는 고로 다른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든지 말든지 간에 공자님 말씀을 신뢰하고 재차 산천에 가서 산신제를 지냈습니다.
그리하였더니 그 후 며칠 후에 그 아들의 한 눈이 또 다시 못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태연한 태도로 공자님에 말씀을 유일한 무기(武器)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초(楚)·조(趙)·위(魏)·한(韓)·연(燕)·진(秦) 등에 춘추전국시절이 되어 연부력강(年富力强)한 장정을 모두 군인으로 모집하여 가는데 그의 아들은 안맹(眼盲)으로 피선(被選)이 되지 못하여 전지에 향함을 면하게 되어 부모와 같이 집에 있었답니다.
그 후 전란은 평정이 되었는데 그 동내에서 출전한 사람들은 모두 전사하였다 하는데 이는 위지(危地)에 나가지 않았음에 다행히 죽음을 면하였으며 그 후도 백독 한 마리가 분만됨에 괴이히 여겨 전과 같이 공자님께 물은즉 역시산천 제사를 지내라고 하시매 말씀대로 또다시 지냈답니다. 그런즉 양 목맹(目盲)하였던 눈이 마침내운권청천(雲卷淸天)에 광명을 보게 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일을 보면 즉, 극도로 백절불굴(百折不屈)의 태도를 가지고 공자님을 콱 믿었든 탓으로 결국은성공을 하게 됨인가 합니다.
5) 하얀 송아지.
즉 심전개발이라 하는 것이 신념을 지적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현재 일반사회에 정세(情勢)를 보십시오.
각 관공서 은행회사 등에서는 흔히 말하기를 현 사회에는 쓸래야 쓸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한 말이겠습니까? 중학(中學)·대학출신이 일 년에도 수백수천을 헤아릴 만큼 졸업자가 나오는데 무슨 연고로 없다고 하겠습니까? 이것이 곧 미더운 사람이 없다 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인심이 부화경조(浮華輕佻)하여 신의가 없음을 경탄하는 것이며, 즉 심복이 될 만한 인재가 없음을 말한 것입니다.
어찌 통탄할 현상이 아니겠습니까? 일본인 생활과 조선인 생활을 비판한다면 일본인은 신앙심이 풍부하여 불전(佛前)이라든지 신사(神社)라든지 반드시 묵도배례(黙禱拜禮)하는 등에 경신하는 마음이 많은고로 일상 긴장한 태도로 지내어감으로 물심 양방면에 가히 일러 완전무결한 생활을 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반면 조선인은 신앙심이라 함은 추호라도 생각지 않고 남은 관습에 유교라 하여도 그에 삼강오륜(三綱五倫), 인, 의, 예, 지, 신 오행(五行)등을 고수한다 하나 아무 효력이 없고 그 역시 소부분이오. 대례(大禮)로 보아 허명무실(虛名無實)이며 온전히 종교적 신앙심이 없어서 아무 목적이 없으며 단결심이란 것은 더구나 없고 오인(吾人) 생활이란 가위(可謂) 사상누각(沙上樓閣)적 생활을 눈물 섞어 계속하는 현상입니다.
어느 날 어느 때에 홍수로 인하여 모래는 흐르고 누각은 파괴되어 망망대해로,다만 누각에 체목(體木)만이 떠나 갈 것을 생각하십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곧 돛이 있고 살대가 있는 완전한 배를 타기로 하십시다.
방금 물심양방면에 비상지추(非常之秋)를 당한 우리들은 불전신전(佛前神前)으로 나가 신앙생활을 하십시다. 저의 마음으로 말씀한다면 여기에 계신 여러분을 모두 불전(佛前)으로 인도하고 싶으나.
그야 하필 불교이겠습니까? 철두철미하게 신앙의 생활만 계속한다면 불교도 불가할 것 없으며 예수교(耶蘇敎)도 불가할 것이 없습니다. 물론 무슨 교이든지 상관없으니 철저한 신념하에서 그에 앞으로 나갑시다.
그리하여 기도하고 경모합시다. 그리하면 무형 무색한 생활을 하는 중에 반드시 감동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밖에 나가서 놀다가 어느 아이들이 고의로 때리면 이 어린 아이가 아무도 없으나 ‘아~’하고 소리를 외처가면서 어머니 아버지를 부르면 여느 아이들은 혼날까봐 뛰어 달아납니다.
이와 같이 그 아이는 아무도 없으나 큰 힘을 얻는 것과 같이 역경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사람이 고립을 하지말고 일치단결하여 외적으로 방어하는 한편, 내적(內的)으로는 나무아미타불 혹은 관세음보살을 부릅시다.
또한 예수에 ‘아멘’을 부를지라도 신앙하여 경모하는 반면에는 무형의 복록(福祿)을 받을 것이며 힘을 얻을 것입니다.
학술이 없으면 종교가 없을 것이요. 또 나라도 없을 것이요. 나라가 없으면 해신(海神)·강신(江神)·산신(山神)이란 것도 없을 것이 아닙니까? 즉 신앙심에 몰두하면 무서운 것이 없고 몸을 보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하간 어느 야만국이라고 하더라도 종교 없는 데는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성(聖)을 구하는 까닭입니다.
즉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일월(日月)이 없는 것이요 학문처럼 한계(限)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과학을 연구함에 합리적이니 불합리적이니 하지마는 부모를 경모하고 신(信)을 경모하고 령(靈)을 존경하는 것은 부지중(不知中) 유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몸의 편함은 비할 곳이 없습니다. (다완(茶碗)에 물을 가리키며) 여러분 이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물론 모르실 것입니다. 저는 잘 압니다.
이것은 물인데 차가운지 뜨거운지는 모를 것입니다. 이것을 먹어보아야 압니다. (한 모금 마시고) 이것은 찬물입니다.
이것을 먹어본 고로 냉수인줄 알았습니다.
그런고로 이와 같이 여러분은 신앙의 생활을 하지 않았으매 그 진리를 모를 것입니다.
그러하오니 저는 불전 으로 여러분을 (佛前) 반드시 인도코자 하지 않습니다마는 제가 불교인인 고로 될 수 있으면 그러시는것이 좋습니다.
그러하오나. 유교도 가(可)할 것이며 예수교도 가(可)할 것입니다. 하여간 행복에 도를찾고 극락에 가운데서 지내시려면 정신적 신앙의 생활을 시작하십니다. 그리하면 이 세상은 모두 극락으로 대할 것입니다.
세상락(世上樂), 출세락(出世樂), 물질적 환락 등 이 세상에는 낙(樂)이 약간만큼도 안 씁니다.
예를들면 주사(酒肆)·청루(靑樓)에서 아름다운 기녀와 함께 혹 무용(舞踊)도 하고 가요도 부르면서 여흥을하여 보십시오. 그것도 한도가 있을 것입니다.
여흥을 할 때에는 유앙(愉怏)한 감을 느끼고 극락과 같을지나 그것도 불과 얼마 되지 아니하여 실증이날 것이요, 괴로울 것입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아무리 좋다고 할지나 한 그릇으로써 충복(充腹)이 되면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심상(尋常)하게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저 금전옥답(金田玉沓)이 모두 근심할 재료이며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와 같이 그날그날을 지나가는 자들은 별반 심적 고통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위 금만가(金滿家)6)란 자들은 그 재물을 지속함에 일반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만한 쓰라린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 누만금(累萬金)으로 상업을 경영하는 화신상회(和信商會)에 화재사건, 또는 조선극장에 화재사건 등을 회고하여 볼지라도 한 조그마한 과자상점에 불장난 혹은 실화(失火)로 누거만(累巨萬)의 귀중물품 등이 순식간에 재로변하지 아니하였습니까? 이를 본다면 물질이란 것은 부운(浮雲)과 같습니다. 욕심을 내며는 낼수록 근심이요, 걱정입니다.
서양에서 어느 부인이 무용장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무용장에 가는 습관이 기려(奇麗)한 의복과 보석 지환(指環)이라든지 완환(腕環)이라든지 많은 장신구로 몸을 장식하여 춤을 추러간다는 것보다도 남에게 자랑을 하러 가는 것이 상례(常例)였습니다.
그러나 이 부인은 빈곤한 관계상 백방으로 생각하였으나 좋은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심적 고통을 무한히 느낀 다음에 최후로 인근에 있는 백작부인에게 빌리기로 작정하고 곧 달려가서 그 연유를
말하였습니다.
그리한즉 그 부인이 앙락(怏樂)을 하면서 빌려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백작부인에 의복 장신복 등으로 훌륭하게 차리고 무용장에 출석하여 본즉 수백에 남녀군중이 모였기 때문에 기쁘게 뛰어들어가서 몇 시간쯤 뛰고 춤추고 노래 부르며 행락(行樂)에 취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보니 그 많은군중은 모두 갔음에 자기도 돌아가려고 한 즉 그 좋은 보석·지환·완환이 간곳 모르게 없어지고 의복이 찢어지고 더러운 때가 묻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런 때를 당하면 어떠하겠습니까? 그 부인은 낙심천만하였습니다. 무슨 면목으로 백작부인을 대할까 하는 등에 여러 가지의 근심이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목을 내놓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럴 때에 어떤 사람이 와서 아까는 기쁘게 춤추며 노래부르더니 왜 우느냐고 그 연유를 물었습니다. 그런 사정을 말한즉 할 수 없는 일이니 가서 자세히 말이나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물적 환락을 도모한 후에는 반드시 여환이 있는 것은 천지당연한 일입니다.
그 부인은할 수 없이 백작부인에게 가서 사과 하였습니다. 용서하여 달라고 한즉 백작부인이 말하기를 그런 곳은본래 난잡 무쌍한 곳임에 그대와 같은 처지가 되기 쉽다는 것을 잘 아는 고로 내가 가짜 보석지환 등을
6) 부자들을 일컬음.
빌려 준 것이라 몇 푼 되지 않으니 아무 염려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 부인은 남에게 큰 손(損)을 보이지아니하였음에 조금 안심은 되나 하여간 면목이 없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되풀이 하여 말하는 것 같습니다마는 요정에서 뛰고 노는 것을 유일무이한 낙으로 생각하는 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순간에 낙이요 찰나에 즐거움입니다.
지난 후에는 정신적 고통이 그 얼마나 되며 육체적 피로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예전에 진시황(秦始皇)이 육국(六國)을 통일하여 천하가 되매 이목(耳目)에 소호(所好)와 심지(心志)에 소락(所樂)을 다하고 저 만 리의 장성을 축조하여 외구(外寇)를 배척하며 안신지축(安身之築)을 강구하고 아방궁이란 궁을 신축(新築)하였는데 그 내부에는 50척(尺)이나 되는 기(旗)를 능히 세울 수 있는굉장한 물건이었습니다.
그 후 전란이 일어나 불을 질렀는데, 삼개월간을 탔다 하니 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러한 건물은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심지에 낙을 취하였으며 더욱이 육체 그대로 장생불사하고 서시(徐市)로 하여금 삼신산(三神山)(즉, 봉래산(蓬萊山)·지리산(智異山)·한라산[漢拏山)]에 불사장생지약을 구하였으나 결국은 물질적 욕망을 전부 채우지 못하고 여산(驢山)에 묻혔다합니다.
이로 말미암아본다면 차세에서 낙을 취하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즉 불생불멸의 도(道)를 구함이라.
다만 불생불로하는 도가 있다면 그는 즉 영원무궁의 낙일 것입니다. 근심이 없고 병이 없는 심지(心志)에 만족을 취한다고 하면 이것은 즉 불생불로의 도에 가까울 것이나 그 역시 진리가 없는 고로실현될 가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불교는 즉 심령의 생활인 고로 영원불멸의 도입니다. 이는 마치 여기서 경성을 간다면,예전에는 보행으로 하루에 오십 리나 혹은 칠십 리나 걸어서 며칠 걸려 갔으나 지금은 차가 있어서 몇시간이면 가는 것과 같이 심령도 또한 우리 육체를 잠간 쉬어 갈 것을 알고 이몸 저몸으로 옮기어 가며 혹은 30년, 50년, 과하면 100년이란 어느 국한된 기간 내에 육체에 실려 머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진리는 알고자 하여도 능히 알길 없습니다. 만일에 알고자 한다면 종교를 통하지 않으면 결코 모를 것입니다.
옛적에 팽조(彭朝)라는 자는 팔백세를 살았다는 말이 있고 동방삭(東方朔)이라는 사람은 삼천갑자를살았다는 등 약 1만 8천세를 살았다 하나 누가 알 수 있습니까? 결국은 그리 장수를 하였다 하나 그도역시 영원한 생에 목적을 도달치 못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 불문(佛門)에는 불가(佛家) 남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는 분이 계신데 남무(南無)는 귀의한다는 한다는 뜻이요, 아미타(阿彌陀)는 인도언(印度言)이요, 불(佛)은 즉, 각성(覺惺)한다는 뜻입니다.
인도언은 곧 무량수(無量壽)·무량광(無量光)이요, 무량수는 상천지만건(上天地萬件)이 모두 없어진다 할지라도 심령만은 영원히 존재하여 불멸할 것입니다.
무량광은 이 천지에 영원히 빛나고자 할 것입니다. 즉 심수(心壽)와 심광(心光)을 깨달을 자!부처님을 경모하면 영원한 생을 구하여 무량수·무량광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금후 수 만년을 경과할지라도 심령이 있을 것이며 심령의 수명이 이와 같이 장구하여 영원불멸한다는 것이 증거가 되지 않습니까?
온 세상천지 일월삼라만상이 영구불변하며 태양이 한번 빛을 내매 수만리를 비추니 그 어찌 위대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우주에 집을 삼고 자연에 몸을 던지어 영원에 생활을 못하고 불과 50년이나 60년 밖에 못 사는 가련한 이 일생을 생각하면 한심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모두 나의 수명을 해석하면 육체적 생활은 즉 이나 50 60을 살 수 있지마는 결국 현실에 귀착하여 괴로울 뿐이요, 심수(心壽)는수천 년 수만 년에 그 빛 가는 대로 살 수가 있습니다. 즉 영생영멸일 것이니 무량수·무량광을 빌어 경모불태(敬慕不怠)하면 자연(自然) 자득(自得)하여 영원한 극락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취정계(三聚淨戒)라는 데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1. 섭률의계(攝律儀戒)
즉 자각하여 규율을 지키며 포교한다는 것인데 육조대사(六祖大師) 말씀이 ‘심지무비자성계(心地無非自性戒)’라고 하셨습니다. 이 또한 자각하여 도덕규율을 고수한다는 뜻입니다.
2. 섭선법계(攝善法戒)
차세(此世)에 선행이란 전부 확수(確守)하라는 뜻인데[심지무란(心地無亂)이면 자성정(自性定)]이라는 즉, 부처님이 활동하시는 종교에 근본정신입니다.
3. 섭중생계(攝衆生戒)
이것은 남에게 이익을 주라는 뜻인데, 대저에 몸이 비록 고통을 당하더라도 남을 위하여 희생하라는 지계(至戒)입니다.
즉, 이상 삼취(三聚)는 생의 지혜이니 무량수·무량광을 도득(圖得)하여 지상에 자연히 극락을 건설할 수가 있어서 이 세상에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환락을 같이 하리니 이것이 즉 불교의 사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을 이해동정(理解同情)하고 실천궁행(實踐躬行)하여 종교를 신앙한다면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경모 신앙하여 일가월증(日加月增)한다면 흡사 우로(雨露)중에 행하는것 같이 처음에는 젖는 줄 모르다가 결국은 젖으며 차가워지는 것을 깨닫는 것과 같이 선도(善道)를행하여 일구월심(日久月深)하면 끝내는 위선자(爲善者)로 대(代)하여 심지(心志)가 안위(安慰)되고 정신이 귀환하여 환락의 일생을 얻을 것입니다.
고로 본도(本道)에서는 정신적 방면으로 불교 신교 또는 신사 등을 통하여 불전에 배례경모하고 신교(神敎)에 묵도(黙禱)며 신사(神社)에 참배하는 등, 자가 건설에 근본적 정신을 주고 국민 도덕적 의무를 명징(明徵)함에 치중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조선에 처음 들어오기는 지금으로부터 1천5,600년 전이었습니다만 근세에 이르러 온전히 중면상태(重眠狀態)에 있었던 고로 지금으로부터 중생을 위함에 많은 활동을 하고자 하여 불교로 이를 환기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적 방면에는각 향교직원(鄕敎直員)을 본도(本道) 촉탁(囑託)으로 임명하여 유교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등의 도리를 주입하는 등 물심양방면에 비상한 활동을 개시하고 있습니다. 변변치 못한 저는 정신적 방면으로 심전
개발을 위하여 신앙에 종자를 여러분에게 나누어 드리고 가는 것이오니 이 종자가 낱낱이 결함 없이열매를 맺으시기만 바라오며 이것으로 그치겠습니다.
2. 보은감사와 자립정신(1936년 7월 21일, 영월읍내에서 강연)
지금부터 심전개발에 대한 강연을 하겠습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물적 방면과 심적 방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저는 즉, 심적방면 즉 정신생활문제에 대하여 말씀하겠습니다.
사람이란 육체를 가지고 있는 관계로 자연히 물질방면에 대하여도 많이 듣고 보고 연구하나 심(心)에 대한 문제는 연구가 부족한 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보국감사(報國感謝)와 자주정신(自主精神)이란 문제로 정신생활문제를 말하고자 합니다. 1932년 이래 농촌진흥자력갱생문제가 일어나 약 5년간 당국의 활동에 의하여 경제문제에 있어서 큰 업적(業績)이 나타나 있음은 실로 기쁜 현상이나 그 반면에는 정신문제를 등한시 하는 까닭에 불미한 현상이 적지 아니함은 실로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작년부터 당국에서 심전개발문제를 제창하고 이 방면에 지도를 가(加)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이 물질은 본능적으로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신방면에 대한 요구는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에 인생의 결함이 있습니다. 인생은 물질과 정신 두 가지가 결합하여 있는 만큼 물심양방면으로 지도하는 것이 인간생활에 원리가 되겠습니다.
사람들이 물질문제만 생각하고 정신생활 즉 윤리·의리·인정·도덕 등 모든 문제를 냉각(冷却)하게생각하여 등한시함으로 인간사회에는 온갖 불의의 죄악 된 일이 생기게 되며 사회문제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원만한 인간생활을 서약하려면 물질갱생과 아울러 심전갱생을 실현하지 않으면아니 되겠습니다.
우리는 목전(目前)에 땅만 보지 말고 인생의 원대한 이상이 무엇이며, 우리의 목적이무엇인가 즉 인생의 정체가 무엇이며 인생의 밟아 갈 길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며 생각해 볼 것입니다.
사람은 모이면 그저 이야기가 돈 이야기뿐입니다. 돈이 있어야 돈을 벌어야 하고 그저 돈돈하고 돈요구하고 몰두하지만 이것이 인생의 최대 이상은 아닙니다. 인생이 최후의 운명의 때를 맞을 때에는돈이 인생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리오, 돈이 일각이라도 우리 생명을 더 연장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많은 재산·지위·권세가 있은들 그것 하나 가져갈 수 있습니까? 결국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로 죽음에 들어서면 빈부귀천이 분별이 없을 것입니다. 다소 돈의 유무에 의하여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혹 조객(弔客)의 다소의 차이가 있겠습니다. 또 사람이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졌다 하더라도 결국 한 때에 한 그릇 밥이면 그만 일 것이요, 아무리 고루거각(高樓巨閣)이 있을 지라도 결국 한 평미만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그러면 돈이 많고 없는 것이 단지 그 집을 보고 좋다고 할 때에는 그저 기분이 좀 나을 뿐이겠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는 돈도 다 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서 돈을 활용하고 선행을 하는 것이 우리의 본무(本務)일 것입니다. 즉 인생은 죽고 맙니다. 왕후장상·빈부귀천의 구별이 없이 죽고 맙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일하느냐 하면, 혹 말하기를 먹기 위하여 일을 한다 합니다.
왜 먹느냐 하면 살기 위하여 먹는다고 합니다. 사람이 오래 살면 무엇 합니까. 또 사람이 먹기만 하면 영원히 살 수 있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저 사람이 오래 살려고 먹으려고 애를 씁니다. 심지어 죽게 될 때에는 입을 벌리고 약을 퍼 넣지만 결국은 죽고 맙니다. 혹 기계류 등에 있어서 가령 자동차나 기차 같은 것은 휘발유나 석탄이 떨어지면운전을 정지하여가지고 다시 기름을 넣고 석탄을 넣으면 활동을 개시하지만 사람은 결국 한정 있는 생을 가지고 있습니다. 먹기 위한 삶이 인생의 정체(正體)한 논법이 있다면 이것은 잘못된 논법일 것입니다.
우리는 일하기 위하여 먹고 사는 것이 타당한 생각이 되겠습니다.
사람이 오래 사는 것보다 세상을 위하여 활동하는 것이 인생의 정체인 것입니다.
예수는 33년간이라는 짧은 생애를 가졌지만 세상을 위하여 활동함으로 천추만대에 그 이름이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오래 살지라도 세상을 위하여 아무 활동이 없으면 그 삶은 아무 의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동양의 팽조(彭祖)는 말하길 천년을 살았다 하지만 그 장수(長壽)가 우리 사회에 아무 의의가 없습니다. 공자(孔子)의 제자 안자(顔子)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요사(夭死)를 한 사람입니다.
그는 지혜가 초인하고 인격이 고상함으로 공자는 그 제자의 요사를 퍽 슬퍼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전 성현 말씀에도 ‘조문도(朝聞道)면 석사(夕死)라도 가의(可矣)’라고 하였습니다. 즉 짧게 살더라도 가치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면 만족하다는 말입니다.
석가세존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약인(若人)이 수백세(壽百歲)나 부지대도의(不知大道義)면 부여생일일(不如生一日)하여 학성불법요(學性佛法要)’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백세를 살지라도 도의(道義)를 모르고 살면 하루를 살고 불법을 배우는 것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의(義)를 위하여 선(善)을 위하여 살다가 죽는 것이 토지나 집이나 돈에 집착하여 생을 아무것도 모르고 그것만 생각하고 그것만 위하여 노력하다가 무의의하게 살다가 죽는것보다 낫다고 하겠습니다.
사람은 그저 자기의 목숨을 일각이라도 연장하려고 하지만은 그것은 헛된 일입니다.
불경에 ‘시일기기(是日旣己), 과명즉수역감(過命卽隨亦減), 비여어소수(比如魚少水), 어사하유락(於斯何有樂)’이라 하였습니다.
즉 날이 감에 따라 우리의 명이 줄어가는 것이 비유하건데 물고기가 물이 적어지는 줄 모르고 그 가운데서 낙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옛 성현이 ‘척벽비실(尺璧非實)이요 촌음시경(寸陰是競)’이라 하였습니다. 과연 우리도 물질만을 위하여 생활 하는 것보다는 촌음(寸陰)을 아껴 이롭게 활동할 것이외다.
어떠한 사람은 생활하기를 사람은 수명이 짧지만 신선이 되면 장수한다고 하여서 그 법을 연구하는자도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산중 벽거(僻居)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실행해보는 자도 있는 듯하나 신선이 되어 장수만 하면 무엇 하겠습니까? 석가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어떠한 곳에 죽기싫어하는 자가 네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하여 결국은 신선이 되어서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은 물유한명(物有限命)으로 그들에게도 죽을 때가 왔다. 그들은 죽음의 사자(使者) 손을 벗어나기 위하여 비공비해중비입암시간□무유지방소□탈□불수보(非空非海中非入岩市間□無有地方所脫□不受報)’하고자 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혹은 해중에 혹은 공중에 혹은 바위 틈에 혹은 시중에서 숨어서 죽음을 면하고자 하나 때가 오기에 그 숨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옛날 진시황도 종심소욕(從心所欲)하여 온갖 영화를 누리고 천수만대 장생불사하려고 동남(童男)동녀(童女) 500인을 불사약을 구하러 보냈지만 급기야 죽고 말았으며, 한무제도 승로반(承露盤)에 이슬을받아먹고 죽지 아니하려 하였지만 그도 또한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오래 살고 죽기를 싫어하지만은 결국은 죽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있을 때 상부상조하면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며 활동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죽음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세상은 상부상조하며 남을 위하여 사는세상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물질을 소유하여도 그것을 활용치 못하면 오히려 자손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해독을 끼치는 일이 많으며, 또 오래가지고 있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경주(慶州)에 최(崔)부자라면 퍽 유명한 사람으로 여러분께서도 다 잘 아실 줄 압니다. 그는 구대(九代) 진사(進士)요. 13대 부자로 조선에서는 참으로 드물게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 부가 어찌하여 오래갔느냐 하면 그 이면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부자가 최초에 얼마만큼 재산을 모았는데 그 후의 그 자손에게 말하기를 소작인에게 추수를 할때에 절대로 더 받지 말라고 하였다 합니다. 그리하여 그 해마다 땅을 더 사기는 사도 소작료는 더 수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해마다소작료를 경감(輕減)시켜주며 소작인을 애호(愛護)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일반 소작인은 참으로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지주를 잘되기를 밤낮으로 축원하였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지주가 망하지 않아야 자기들은 편하게 살겠으므로 늘 지주가 좋은 자손이 나면 잘되기를 자기네 잘되기보다 더 축원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볼지라도 결국 남을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집도 운이 다하였던지 그 자손 중에 일본 가서 대학에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이 있는데 그가 그 재산을 정리하자고 주창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집 노친은 절대로 허락하지않았습니다.
만일 우리 재산을 정리하는 날이면 우리는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이 죽은후에 그는 결국 그 재산을 정리하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후로부터 그 재산이 차츰 줄게 되어서 아주없어지다시피 되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웅덩이에 나무가 빠졌을 때 그것을 건지려면 물을 자꾸 내밀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나무가 빙 돌아서 건지려는 쪽으로 오지만은 그와 반대로 물을 자꾸 잡어 당기면 그 나무는 점점 멀리 나가게 되는 것이 마치 우주의 물리법칙에 의하여 진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도덕생활을 힘쓰며 남을 돕는 생활을 하십시다.
이제부터 다시 심전개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즉 심전개발의 골자 의(意)·의(義)·목적(目的)·출처(出處)를 말하고자 합니다.
불경(佛經) 잡아함경(雜阿含經) 제4권에 석가세존이 통법(統法)하신 가운데 심전경작이란 제목으로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곳에 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삼천년 전에 석가세존이 아난(阿難)이라 하는제자를 데리고 걸식을 하시면서 방방곡곡을 다니시면서 사람 만나는 대로 아무쪼록 사람은 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하루는 어떠한 농촌을 지나가시는데 그 곳에서는 많은 농부들이 많이 모여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참 점심때가 되어서 마침 일하는 것을 끝내고 다 둘러앉아서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세존께서 마침 그곳을 지나가시다가 심히 배가 고프시므로 여러 농부를 보시고 내가 심히 시장하니 여러분이 십시일반으로 밥 한술씩만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씀하시었습니
다. 그리하였더니 그중에 있던 혈기가 있는 한 청년이 썩 나서며 말하기를 “밥은 우리 먹을 것이지 당신 줄 거 아니니 줄 수 없소. 세상일이 심지 않는 데 거둠이 없지 않소. 우리는 이와 같이 힘써서 일을하여 먹을 것을 만들지 않소. 당신은 그저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이 빈둥빈둥 놀면서 남이 땀 흘리고 애써서 농사한 것으로 한 밥을 거저 줄 수가 없으니 어서 가시오.”하면서 심히 냉정하게 하였습니다.
그때에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당신 말씀이 옳소. 그러나 나도 당신과 같은 농부요. 그러니 농부가 밥 먹는 것이 마땅한 일이니 나도 상당히 밥을 먹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요.” 하시니 그 청년이 더욱 흥분한 어조로 말하기를 “당신이 농부라 하지만 그 말은 아주 거짓말이요, 당신은 일찍이 궁중에서 왕자로 태어나서 궁중을 탈출하여 설산(雪山)에서 육년 고행을 하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인데 어찌 당신이 괭이로 땅을 파보았으며, 언제 무슨 일을 해보았소.
당신은 거짓말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설왕설래 하게 되매 그 주위에 있던 군중이 많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여러 사람을 향하여 말씀하였습니다.
이제 나를 농부가 아니라 하지만은 내가농부인 것을 밝혀 말씀하겠습니다.
인생은 육체와 정신 두 가지가 합하여서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기르기 위해서는 여러분과 같이 농사하고 일하지 않으면 안 되겠으며, 정신을 위하여도 또한 일하지아니하면 안 됩니다.
사람이란 가죽에 보이는 육체가 있는 것 같이 마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그 마음이란 것이 있어서 정신상 요구를 하게 됩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지(知)·정(情)·의(意) 세 방면을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다른 동물보다 다른 것은 곧 알려고 하는 그 것입니다.
사람이 나면서부터 늘 알고자 노력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어른에게 이것은 무엇이요. 저것은 무엇이요. 하고 자꾸 묻습니다.
이것이 곧 마음의 활동입니다. 곧 마음은 진(眞) 곧 진리를 요구합니다. 또 마음은 곧 정(情)을 가지고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무엇을 좋아하는 것이 있고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상쾌하고 좋아합니다. 좋은 그림을 봄으로 배 부르는 것은 아니지만은 그것을 요구합니다.
곧 사람의 희로애락이 곧 정의 활동입니다. 또 마음은 의지를 가졌습니다.
그 의의가 있음으로 미(美)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 밭, 즉 심전을 보면 모두 다 잡초가 무성하고 거칠어져 있습니다.
이 심전이 거칠어져 있음으로 사람들은 서로 반목·질시·불충·불효·살인·강도·음란 등 온갖 불선한 것이 많습니다.
이것을 바로 잡자면 곧, 심전의 황폐한 것을 다시 경작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나는 여러분과 같이 수전(水田)이나 화전(火田)을 경작하는 농부가 아니요 곧 심전의 황폐한 것을 경작하는 농부라고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어서 세존의 심전경작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신심위종자(信心爲種字), 고행행위시우(苦行爲時雨), 지혜위리액(智慧爲犂軛), 참괴심위원(慚愧心爲轅)” 다시말하면 심전을 경작하는 데는 신심으로 종자를 심고 고행으로 비를 삼고 지혜로 버섯과 멍에를 삼고 참괴심으로 수레채를 삼는다 하였습니다. 이것을 다시 더 자세히 말씀하면 이와 같습니다. 사람은 첫째, 신심(信心)이 있어서야 합니다.
유교(儒敎)에도 인생생활의 중심도덕인 오륜(五倫)을 말할 때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 하였습니다.
그 오행 중에도 곧 신(信)이 토대가 되어있습니다.
유교에서는 효는 백행지본(百行之本)이라 하였습니다만 불교에서는 신은 만행지본(萬行之本)이라 하였습니다.
신이 없는 사람은 마치 고루거각(高樓巨閣)을 모래밭 위에 세운 것 같습니다.
아무리 훌륭한누각이라도 토대가 튼튼하지 못함으로 결국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사람으로서 신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사람이없다고 말합니다.
요사이에는 매년 각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나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모든 사람은 취직을 하지 못하여 쩔쩔 매는 사람이 많은데 사람이 없다는 것은 무슨 일입니까.
결국은 사람이 없다는 것은 곧 신용할 만한 사람, 어떠한 일에 신용하고 맡길만한 적임자가 없다는것입니다.
즉, 이 세상이 요구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곧 심전개발입니다.
불경에는 ‘약인무신심(若人無信心), 여승무지선(如乘無之船) 역여무전마(亦如無馭馬) 장야시경참(長夜是更塹)’이라 하였습니다. 즉 사람으로서 신심이 없으면 사공 없는 배를 탄 것과 같고 마부 없는 말을탄 것과 같고 어두운 구렁에 빠진 사람 같다고 할 것입니다. 사람은 서로 신심이 있음으로 살아갑니다.
돈을 꾸어 주어도 그 사람이 기한(期限)한 날에는 본전과 이자를 가져다주려니 하는 믿음으로 꾸어줍니다.
그 사람이 내 돈을 쓴 후에는 갖다 주겠다는 믿음이 없으면 어찌 꾸어줄 수가 있겠습니까.
또 여행할 때 자동차를 탄다 합시다. 그것도 이 차를 타면 이 차가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려니 하는 믿음이 있으므로랍니다. 그렇지 않고 이 차가 중간에서 전복을 하지 않을까. 운전수가 목적지로 갈까 하고 의심이 있으면 어찌 타겠습니까. 농부나 축업(畜業)이나 모든 것이 다 믿음으로 합니다.
즉 인간생활은 신을 근본으로도 하지 아니하면 살 수 없는 것이고 기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과 같고 사람이 공기
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심전개발은 곧 보은생활을 하게 됨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 때에는 남의 은혜를 갚아야 됩니다. 남의 은혜를 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불경에는 사람마다 ‘오종대은(五種大恩)’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즉, 국왕은(國王恩), 부모은(父母恩), 삼보은(三寶恩), 중생은[衆生恩: 사회운(社會恩)], 붕우은(朋友恩)이 있습니다.
우리가 고침안면(高枕安眠)7)을 하고 살게 되는 것이 국왕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충성으로써 국왕의은혜를 갚아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부모는 이올시다. 부모의 은혜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하였습니다.
부모가 우리를 위하여 애쓰고 힘쓰는 것은 일구난설(一口難說)이외다.
예전에 기로국(棄老國)이란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에서는 사람이 늙으면 쓸데없다, 밥이나 먹고 아무 하는 일 없이 지냄으로 세상의 필요 없는 존재라고 하여 결국 그 나라에서는 사람이 늙으면 갖다 버리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유명한 신하가 있었는데 마침 그 아버지가 늙어서 내버릴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를길러주고 애써주신 그 부모를 살아있는 동안 도저히 내버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무한히 애를썼습니다.
부모를 버리자 하니 인정상 할 수 없고 아니 버리자 하니 국법을 어기는 것이라 만일 발각되는 날이면 그 집은 큰 형벌을 받을 터이니 참으로 기세양난(其勢兩難)8)이었습니다. 그러나 차마 버릴수 없어서 자기 집 마루 밑에 지하실 즉 굴을 깊이 파고 그 속에 감추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아침저녁 그 속에서 음식을 갖다가 대접하였습니다. 그렇게 지나가기를 얼마 동안 지나려니까 한번은 나라의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웃나라에 강국이 있었는데 그 나라에서 기로국을 업신여기고 그 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먼저 그 나라에 대하여 무슨 트집을 얻기 위하여 어려운 문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문제를 해답치 못하면 치겠다고 협박을 하였습니다.
즉 문제라는것은 이러하였습니다.
똑같은 어미 말과 새끼 말 두필을 보내고 어느 것이 어미이며 어느 것이 새끼인것을 알아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여러 가지로 알아보려고 애썼으나 결국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임금께서는 신하에게 명하여 해답하도록 하라고 엄명이 내렸습니다.
모든 신하들은 마침 기한은 절박해 오나 알 길이 없었습니다. 마침 효심 많은 이 신하는 그 해답을 얻기 위해 무한히 애를 쓰다가 급기야 병이 다 생겼습니다. 무한히 애를 쓴 나머지 그는 어려운 문제를 나이 많은아버지에게 묻기로 작정하고 자기 집 굴속에 있는 그 아버지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리하였더니 그 노인이 그것은 매우 알기 쉬운 것이다, 그 말에게 먹을 것을 주어보면 새끼 말이 먼저 집어먹고 어미 말은
7) 베개를 높이 하여 편안히 잔다는 뜻. 근심 없이 편안히 지낸다는 의미.
8) 진퇴양난과 같은 말.
양보하는 태도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 그리하여 과연 그와 같이 해본 결과 쉽게 어미와 새끼 말을 알아서 그 나라로 해답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였더니 그 나라에서는 그 문제는 알았지만 또 한 문제를 해답하라고 이번에는 코끼리 한 마리를 보내며 그 중량을 알아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또 그 문제를 알아내려고 하였습니다. 또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신하는 또 문제를 그 아버지에게 물었더니 그 아버지는 또 쉽게 그 문제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코끼리를 큰 배에 싣고 물이 잠긴 데다가 금을 그어 놓았다가 다시 그 배에다 돌을 담아 보아 전에 그은 금까지 배가 잠기거든 그 돌을 꺼내어 달아서 합하면 그 코끼리에 무게는 알 수 있다 하였습니다.
그 신하는 그와 같이 임금께 아뢰어서 그 문제도 어렵지 않게 해결되어 이웃나라에 해답을 보냈습니다.
그리하였더니 그 나라에서는 또 난문제를 하나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나무를 아래 위가 똑같게 깎아서 보내고 이 나무에 뿌리 쪽을 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그 문제도 쉽게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문제도 또 그 신하에게 물어오라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신하는 또 아버지에게 물어 본 결과 그 나무를 물에 띄워 보면 위쪽이 좀 무거워서 물에 더 잠긴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문제도 해결되어, 이웃나라에 해답을 보냈습니다.
그리하였더니 그 이웃 나라에서는 그 나라가 비록 적으나 이 나라에 이인(異人)이 있으니 감히 칠 수 없다 하여 그만 정벌을 중지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기로국에서는 그와 같이 어려운 문제를 잘 해답한 결과로 위험을 면하게 된 것은 오직 그 신하의 공이라 하여 그 신하를 크게 상을 주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였더니 그 신하가 이번 일에 저를 상주라고 하심에 대하여 단지 한 가지 소원이 있사오니 그 소원을 들어주시면 저는 많은 상을 주심보다 낫겠습니다하고 원하였습니다.
그리하였더니 임금님은 그러면 너의 소원을 말하라 하므로 신하는 자기가 국법을 어기고 자기 아버지를 감춘 것과 이번 난문제를 자기가 알아낸 것이 아니라 저의 아버지가 알아냈다는 것과 또 우리나라에서 이 부모가 늙으면 버리는법을 없애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임금도 크게 깨닫고 사람이 늙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아니요, 과연 오랜 경험과 체험이 있어서 오히려 나라의 큰 보패(寶貝)가 된다 하여 곧 신하의 청을 들어 늙은이를 버리는 법을 폐지하였으며 또 그 신하의 효성을 크게 칭찬하였습니다.
네 말에 오비이성(吾非以聖)이요 경사구의(經事久矣)라 하였습니다. 그 늙은이가 성인이 아니라 오랜 경험이 있음으로라는 말입니다.
또 옛날에 지나(支那)9)에 원곡(元穀)이란 효자가 있었습니다. 그때에도 사람이 늙으면 갖다 버리는풍속이 있었는데 마침 원곡의 아버지 되는 이는 크게 불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원곡의 할아버지 되는이가 있었는데 원곡의 부친이 말하기를 이야 원곡아 너의 할아버지가 이미 늙어서 쓸데없으니 갖다버리자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원곡이는 백방으로도 말하여 어찌 부모를 늙었다고 내버릴 수 있느냐고말했으나 원곡의 아버지는 구지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원곡의 부자가 늙은이를 거적에 앉혀서 둘러메고 먼 산으로 가서 그곳에 내려버리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원곡이는 그거적을 가지고 들러 메고 오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였더니 원곡의 아버지가 그것은 무엇 하려고 가져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원곡이는 네, 꼭 한번 쓸 일이 있으니 가져가겠다고 하매 그런 것 무엇에 쓰느냐 버리고 가자고 하매 원곡이 정색하여 하는
9) 중국을 뜻함.
말이 ‘네 저는 이 거적을 갖다 두었다가 아버지께서 늙으면 할아버지를 아버지와 제가 메다가 내버린것 같이 제 아들과 제가 내어 버리겠습니다. 그때에 꼭 한번 쓰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매 그제야 그원곡의 아버지는 크게 깨닫고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며 그 버리고 가려던 노인을 도로 메고 집으로 왔습니다.
다음으로는 삼보(三寶)의 은혜를 입고 있는 것입니다. 삼보란 불법(佛法), 승(僧)을 말하는 것입니다.
불(佛)은 곧 각성(覺聖)이란 말입니다. 법(法)은 진리란 말입니다. 이 세상은 진리가 있으므로 삽니다.
승(僧)은 곧 성단(聖團) 혹은 화합단체(和合團體)란 말입니다. 즉 선남선녀, 신남신녀(信男信女)가 거룩하게 모인 단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불교에서 승(僧)을 혹 치문(緇門)이라고도 합니다.
‘삭발염의일치(削髮染衣日緇)’라 하며 ‘입유수도일문(入由修道日門)’이라고 합니다. 즉 머리를 깎고옷에 물을 들여 입으며 산에 들어가 도를 닦는 사람은 곧 승(僧)이란 말입니다. 근래 당국에서 장려함으로 모두 단발을 하고 염색 옷을 다 입게 되었느니 결국은 다 승려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심전만개발하면 곧 완전한 승려가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중생은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단독으로는 도저히 이 세상에서 살 수가 없습니다.
밥 한 그릇을 먹게 되는데도 그곳에는 농부의 큰 노고가 있습니다. 또 우리가 옷을 입는데도 무수한 여공의 노고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생각해 볼 때 이 세상을 살아감에는 세상의 은혜, 곧 사회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화의 이면에는 여러 과학자의 숨은 공로가 참으로 말할수 없이 큽니다.
다음으로는 붕우은입니다.
옛글에 ‘생아자(生我自)는 부모요 성아자(成我自)는 붕우(朋友)라’ 하였습니다. 즉 나를 낳기는 부모지마니 나를 잘되고 못되게 하는 것은 붕우의 힘이다 한 것입니다. 사람은 붕우의 은혜가 큽니다. ‘익자삼우(益者三友)요, 손자삼우(損者三友)라 하였습니다. 사람은 붕우의 선불선(善不善)에 의하여 내 인격완성의 큰 관계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세상에 살 때 이 이상 오종(五種)의 은혜를 입고 삽니다.
그러면 이 은혜를 갚아야 하겠는데 이 은혜를 갚자면 먼저 자립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자립정신이 있는사람이야 과연 보은을 할 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 부자는 아들도 딸도 없고 다만 조카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 조카는 그 백부의 재산만을 생각하고 별로 하는 일 없이 지냈습니다. 그리하여 생활은 심히 어렵게 되어서 그 부자에게 돈을 좀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 하였더니 그 부자는 이 돈을 내가 쓸 것이지 너 줄 것은없다고 거절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도 이 재산을 모으기 위하여 애를 썼으니 거저 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너도 돈이 쓰고 싶거든 부지런히 일하여 벌라고 하였습니다.
그 청년은 그러면 돈 몇천 원만 주시면 장사를 하겠으니 돈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부자는 오냐 내가 너의 요구하는 돈을 줄터인데 그 대신에 네게 요구하는 것이 있으니 달라고 하였습니다. 청년은 무엇을 요구하느냐 하매, 내가 재산을 주는 대신 너는 나에게 너의 팔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나도 늙어서 편히 살기 위하여 너와 같이 젊고 팔뚝과 다리에 힘이 있을 때 힘써 벌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재산은 있으나 힘이 없으니 너의 팔뚝과 다리가 부럽다. 그러니 내 재산과 팔이나 다리와 바꾸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청년은 크게 분발하여 열심히 노력한 결과 큰 성공을 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 부자는 그 청년에게 그 많은 재산을 주었다고 합니다. 과연 자립정신이 없는 청년에게 재산이 있어도 그 재산은 아무데도 쓸데가 없습니다.
자립정신이 있는 후에야 보은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심전개발의 힘을 쓸 것입니다. 국가사업이 모두다 먼저 심전개발을 한 후에야 만사가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