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강승택 | 날짜 : 11-01-31 22:09 조회 : 2042 |
| | | 고구마를 굽는다. 여명의 시각,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오늘도 지체 없이 주방에 있는 가스레인지로 다가가 불을 댕긴다. 주위는 칠흑 같은 어둠뿐. 양면 프라이팬 밑의 불꽃만이 유일한 빛이다. 꺼질듯 말듯 제 몸조차 부지하기 힘겨워 가끔은 파르르 떨기도 하지만 서서히 달아오르는 쇳덩어리. 그 속에 누워있는 크고 작은 고구마들.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다가 끝내는 툭툭 벌어지는 틈 사이로 쏟아져 나오는 검붉은 진액. 코끝을 자극하는 미세한 단 냄새. 아침 식사를 고구마로 대신 한지도 꽤 오래 되었다. 어느 날 고구마가 내 몸을 살린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서둘러 책을 사 훑어보니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아내가 가지고 있는 고질병 하나만이라도 잡아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시작한 고구마 굽기였다.
그동안 아내와 함께 소비한 고구마의 수량을 따진다면 족히 몇 가마 분량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유감인 것은 노력에 비해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이었다. 책의 내용대로 라면 이제쯤 분명한 신호가 오고도 남을 시점이 되었건만 아내의 반응을 보아서는 영 신통치가 않은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이 작업을 중단하지 못하는 것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정이 든 까닭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하찮아 보이는 이 고구마 굽는 일 조차도 정성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수시로 진행 상황을 살펴가면서 불꽃의 크기를 달리해야 함은 물론이려니와 모두들 땀을 흘리는데 유독 맨송맨송한 모습으로 뻗대고 있는 놈은 발견 즉시 자리이동을 해주어야 한다. 때를 맞추어 적기에 뒤집어 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삶은 고구마와 군고구마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삶은 고구마가 식량으로 머무는데 비해 군고구마는 정을 교환하는 행위라는 생각이다.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기억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오시던 군고구마에 대한 추억이다. 국방색 잠바주머니 속에 누런 마분지로 둘둘 말아 넣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행여 식을까 몇 번이고 고쳐 잡으시며 오셨을 아버지. 건네줄 때 까지 남아있던 고구마의 온기는 사랑이었다. 도시에 어둠이 내리면 어김없이 나타났던 군고구마 장수. 군용 개털 모자를 눌러쓰고 드럼통으로 만든 화덕 속으로 연신 장작을 밀어 넣으며 불을 지피던 고구마 굽는 아저씨의 모습은 6,25직후에 흔히 볼 수 있던 골목 풍경이었다. 재작년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 몇이 고구마를 굽고 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가 살피니 모든 것이 어설퍼 보였다. 그래도 옛 추억을 떠올리며 한 입 베어 물어보니 겉만 익었지 속은 그대로였다. 역시 고구마 굽는 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확인한 자리였다. 그들 또한 쉽지 않은 작업임을 깨달았는지 다음날 그 곳에 그들의 모습은 없었다. 유난히 춥고 긴 겨울밤을 보내려니 군고구마 장수 아저씨의 훈훈한 모습이 새삼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고구마 굽기, 비록 기대만큼 효과는 보지 못했어도 아내에 대한 작은 정성이나마 보탤 수 있는 통로가 된다고 믿기에 나는 앞으로도 이 작업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
| 임재문 | 11-01-31 23:05 | | 저도 고구마 굽는 일에 선수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우리는 주말농장에서 직접 가꾸어 얻은 산물이기에 더 정이 갑니다. 이겨울 군고구마 군밤 먹으며 정을 녹여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따뜻한 정이 듬뿍 담긴 군고구마, 오늘도 그정이 그립습니다. 어릴적 추억이 담겨있는 군고구마 먹으며 또 옛생각에 젖어보렵니다. 감사합니다. | |
| | 강승택 | 11-02-01 10:41 | | 군고구마, 군밤, 모두 겨울 밤을 대표하는 쌍둥이 식품이지요. 주말 농장에서 직접 가꾸신다니 보람이 더욱 크시겠습니다. 깊어가는 겨울밤, 화롯불에 담긴 군밤 꺼내먹던 정경도 이젠 옛추억으로만 남네요. 항상 건강하십시오. | |
| | 임병식 | 11-02-01 10:33 | | 강승택선생님께서는 고구마 굽기의 마니아시군요. 아마 기호로서 보다는 보신용으로서 드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고구마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주로 쩌서 먹지요. 구으면 맛이 더 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쩌먹는데 저는 물고구마를 좋아합니다. 물고구마로는 호박고구마와 해남 고구마가 딱이지요. 사놓고 먹고 싶어도 보관이 어려워서 애로를 많이 느낀답니다. 설 잘 쇠시기 바랍니다. | |
| | 강승택 | 11-02-01 10:52 | | 저도 호박고구마를 즐겨먹습니다. 호박고구마의 특징은 오래 보관할 수록 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지요. 보관상의 문제는 얼지않을 만큼 찬곳에 두툼한 신문지로 폭 씌워놓아 보세요. 누가 추천하기에 이 방법을 썼더니 한개도 썩지않고 한 상자를 다 먹을 수 있었답니다. 감사합니다. | |
| | 일만성철용 | 11-02-01 15:11 | | 제주도와 마라도 사이에 가파도가 있습니다. 가파도도 마라도와 같이 바다 가운데 떠있는 항공모함 같이 1m높이의 산도 없는 섬입니다. 봄에는 청보리를 수확하고 여름에는 고구마를 심습니다. 태풍을 막아 줄 산이 없어서지요. 거기서 70살의 강노인과 생고구마를 안주해서 이른 아침 소맥을 마시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 그분의 말이 지금도 귓가에 울리네요. "저는요 조실부모하여 큰아버지 집에서 자랐는데 일만 시키고 학교도 안보내 주어 한글도 몰라요. 장가도 못갔구요. 오늘 작은 배 한 척을 1,600만원에 파는데 당분간은 그것으로 절약해서 살아야지요. " 그 강노인에게서 얻은 4Kg의 애완용 맷돌을 지고 한라산을 넘던 일이 새롭네요. | |
| | 강승택 | 11-02-01 20:33 | | 일만성철용 선생님 감사합니다. 뵌 적은 없어도 선생님이야 말로 풍류를 아시는 멋쟁이선생님이 아닌가 상상해 봅니다. 새 해엔 더욱 건강하시고 좋은 글 좋은 여행 많이 하시고 풍성한 수확 거두시길 응원합니다. 짝, 짝~ | |
| | 정진철 | 11-02-02 20:32 | | 고구마를 속까지 타지 않고 골고루 익게 구으려면 웬만큼 신경을 쓰지 않고서는 안될것입니다 정성스럽게 구워 강선생님의 부부 건강하게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 |
| | 강승택 | 11-02-02 21:58 | | 정선생님의 고구마 굽는 실력도 초보의 경지는 지나지 않았나 짐작됩니다. 말씀대로 보통 정성으로는 쉽게 작품이 나오질 않지요. 이런 이야기도 우리 작가회 식구이니까 터놓고 드릴 수 있는 말씀이라 생각되어 새삼 소중함을 느낍니다. 설명절, 잘 지내십시오! | |
| | 최복희 | 11-02-03 18:59 | | 고구마 굽는 이야기 속에서 구수한 사랑이 묻어납니다. 소재는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그 맛은 일품이군요.ㅎ 계속 구수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
| | 강승택 | 11-02-03 20:35 | | 최선생님, 설 명절은 잘 쇠셨는지요? 그동안 구제역 뉴스 접할때마다 최선생님 생각났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시리라 생각했지요.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목소리까지 들려주시니 감~사합니다. | |
| | 김자인 | 11-03-13 18:39 | | 강승택 선생님, 아침 식사로 군고구마를 드시는 군요 삶은 고구마보다는 군고구마의 맛이 훨씬 더 좋지요. 글을 읽으면서 고구마 생각에 군침이 도는 맛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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