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THIS IS TOTAL WAR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동양사 한국사 고려, 30여년에 걸친 왜구의 사슬을 끊어내다 - 이성계의 황산대첩
신불해 추천 0 조회 4,709 13.12.25 21:54 댓글 29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3.12.25 22:12

    첫댓글 왜구가 저정도였군요

  • 13.12.25 22:24

    왜구가 한지역으로 집결한것이 오히려 고려군으로선 토벌을 용이하게 했던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기병의 규모를 보니 단순히 해적때는 아닌듯! 실제 일본 본토에서 건너온 정규부대로 보는 시각도 있죠.

  • 13.12.27 08:53

    당연하죠.. 어찌 저 규묘가 왜구가 될수있는지.. 정규부대임.

  • 13.12.30 08:48

    @하히해 근데 전투력하고 규묘만보면.. 이게 왜구라고 할수가 있는지 모르겠네요...너무 많아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3.12.26 02:09

    쿠데타랑 전쟁능력 및 무공은 별개죠 ㅠㅠ

  • 13.12.26 13:27

    무공=>정변의 명분 이건좀 아닌것 같네요.

  • 13.12.31 00:05

    무공세우면 나라 차지할수 있다면 이순신은 나라 세번 세워야겠네요

  • 13.12.26 01:57

    1367년부터 1369년11월 전까지는 왜구 침입이 없는데, 그때 고려에서 사신을 보내고 막부휘하에 있던 쇼니씨를 단속했기 때문에 그랬다는 견해가 있더군요
    -14세기의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왜구- 이영 근데 이 논문에서는 다시 침입이 시작되는 이유가 침입이 있기전에 대마도 소우씨세력이 정치적입장을 남조로 바뀌는 것을 근거로 북조는 고려사신 거짓말에서 쫄아서(있지도 않는 원나라 정동행성 명의로 사신을 보내서 북조가 쫄았고 그때문에 왜구를 단속하려고 했다고 주장)왜구를 단속하려고 했는데 그것에 반발해서 대마도 소우씨세력이 남조로 입장을 바꾸었고 그 이후 왜구 침입이 재개 된다는;;

  • 13.12.26 02:07

    근데 왜 저 다큐에서는 백마가아니라 흑마를 탄 그림을 썼지?????? ㄲㄲ

  • 13.12.26 09:46

    저건 왜구가 아니라 정규군임..왜구라면 도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규묘를 보면 군대임

  • 13.12.26 15:13

    저 정도 규모면 정규군인데요;;;; 왜구 따위가 아니라 그냥 정규군입니다;;

  • 13.12.26 20:21

    충짜 돌림 왕들이 주색만 탐하진 않았는데 -_-ㄱ 충렬, 충선왕은 업적이 꽤 있습니다.

  • 13.12.27 19:32

    글쎄요;; 충선/충렬왕은 자기들이 서로 고려국왕하겠다고 원에 알랑거리던 국왕들인지라..........

  • 13.12.27 20:33

    그건 아비와 자식간의 정치적 싸움에서 일어난 이권 다툼입니다. 그런 정치적인 점을 접어두고 따져보면 생각보다 한 게 많아요. 특히 충선왕은 왕위에 올랐을 때 다양한 정치기구를 신설해서 보다 혁신적으로 개혁을 단행하긴 했는데 너무 급진적이라 충렬왕 세력에게 밀려서 폐위됩니다. 하지만 원나라에서 황제를 옹립하는 데 공을 세우면서 정치적 입지가 강성해져서 다시 고려국 왕위에 오르죠. 그러나 원나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원나라 땅이 그리웠나 봅니다. 고려국엔 얼마 머물러 있지 않고 전지로 국정을 해서 점점 개혁정책이 신통치 않게 되었죠. 공민왕의 정책도 충선왕의 정책에서 영향을 꽤 받았습니다.

  • 13.12.27 20:45

    @춘자 다만 충선왕이 남긴 큰 문제점은 자기 자신이 심양왕과 고려왕이라는 두 개의 왕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따로따로 나누어 줘서 후에 충숙왕의 개혁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아가 고려의 정치를 혼란스럽게 만든 점이죠. ㅉ 부마국의 왕의 한계와 정치적 투쟁으로 얼룩져서 결과적으론 그닥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왕은 아닙니다.

  • 13.12.28 16:56

    충선왕이 고려왕과 심양왕을 분리하여 상속시킨 것은 원나라 내부정세와도 연계가 됩니다. "한 제후왕이 두개의 왕작을 가진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문제가 되었었고, 그 문제를 제기한 자들은 고려출신의 부원배들이었어요...-_-;

  • 13.12.29 01:31

    @★海東天子☆ 아하? 그랬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13.12.27 01:49

    고지대에서 기병 충격력을 이용해 저지대의 적진 붕괴후 한타 싸먹기로 섬멸한줄 알았더니 역으로 고지대에 자리잡은 정예병을 정면공격, 적장 저격후 포위섬멸... 지린다 지려 ㄷㄷㄷ

  • 13.12.27 08:55

    여진기병과 왜구기병이라.. 기병전력은 고려쪽이 더 쌜거같은데..

  • 13.12.27 15:32

    이성계가 전투력은 확실히 -_-);;;

  • 13.12.27 17:55

    저건...왜구침략을 넘어서 유린이네요 뭔...전국팔도를 유랑한거도아니구;; 참심각햇군요 저당시..성계할아버님이 대단하시네요 근데자꾸 머릿속 떠오르는건 고 김무생.. 할아버지가;

  • 13.12.28 16:54

    함흥본궁이 아니라 '준원전'에 봉안되었던 어진일 겁니다...^^; 준원전의 어진은 본래 신하의 복색으로 그려졌던 것을, 후대에 왕의 복색으로 바꾸어 모사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만약 전자의 것이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더욱 볼만했을 겁니다...ㅎㅎ;;

  • 13.12.28 20:34

    시골무사 이성계 읽어보니 퉁두란의 여진 기병들 포스 쩔던데.

  • 13.12.29 11:52

    미소녀ㄴ 전사 아기발도 =ㅁ=

  • 13.12.29 20:36

    어렸을땐 아기발도의 아기가 우리말인 아기같다는 뜻이었다고만 들었는데 나중에 발도는 용사를 뜻하는 바투라는 몽골말이라는 것을 알았죠. 저정도면 남조의 이름난 장수였을 텐데 일본이름은 뭐였을지가 궁금하네요

  • 13.12.30 16:22

    알려진 바가 없죠..ㅋ 아마 신분은 굉장히 높았을 거라는데 한 표 겁니다.

    어디서 본 바로는 고려 원정 오고싶지 않았는데 밑의 신하들의 간곡한 청에 못이겨 참전했다고....

  • 13.12.30 16:43

    어느 섬에 살았는데, 참전에 부정적이었다가 주위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하들이 항상 아기발도 앞에서는 무릎으로 기어다녔다고 하니, 상당히 높은 신분으로 추정됩니다.

  • 14.02.11 01:52

    위키에 쓰신게 신불해님이었나.. 위기에서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