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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한다
/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
†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한다
사도행전26:24~29
"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사도행전26:24~25)"
사도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은 바울을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가 아닌 복음 전도의 기회가
되는 로마로 가기 위하여 로마 시민으로서 권리로
호소하였습니다.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자였습니다.
그 시대에 로마 시민권자가 가이사에게 재판을 호소하였으면
지방 관청의 책임하에 로마까지 안전하게 호송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이 총독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명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바울은 거듭나기 전의 자신의 모습과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거듭난 간증과 사명에 관하여 담대하게 말하였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변명의 결론은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리라 함이었습니다.
바울의 변명을 들은 베스도 총독이 크게 소리하여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답변은 "내가 미친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바울의 답변대로 내가 미친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 차린 말을
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 봄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를
원합니다.
1.바울의 과거와 회심에 대한 진정한 고백
1>사도 바울은 거듭나기 전에 기독교 핍박자였다.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거듭나기 전에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큰 자라는 뜻입니다.
사울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도를 모를 때
사울은 구약의 안식일 지키고 구약의 율법에
정통한 율법주의자였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고 율법으로 구원받을려고
할 때 그의 마음은 걍퍅하였습니다.
유대교의 율법의 행위를 따라 종교의 영이 사울을
사로 잡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신의 의를 드러낼 때
교만하여 큰 자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신의 의를 세우기 위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심하게 핍박하는데 앞장 서는 자였습니다.
사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도를 따르는 자를
붙잡아 옥에 가두고 그들의 복음 전도를 못하게
여론을 조성하여 결국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스데반을 무리에게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마지막 때 의롭지 않은데 의로운척하여 믿는 자들의
신앙을 흔드는 교만한 자들이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 마저 의심하게 하여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최근에 메시아닉이라 하여 메시아닉쥬가 아닌데
메시아닉쥬척 하는 다른영, 다른복음, 다른 예수를 전하는
자들이 메시아닉입니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 메사아닉쥬들은
주일을 지킵니다.
그러나 메시아닉쥬가 아닌 메시아닉은 토요일을 지킵니다.
이들은 안식일을 토요일로 정하여 지키는 자들로
주일을 지키는 자들이 잘못된 것처럼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예수님을 참 하나님 영생으로 믿는 자는
거듭난 자로 안식일이 바뀐 주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성령과 신령으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주일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아버지께서 안식일을 지켜 주일을 무시하는 자들을 모르십니다.
안식일을 지켜 주일을 무시하는 자들은
아직도 구약의 율법에 메여 은혜가 없는 자들입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들은 주의 날을 영과
진리로 예배 드립니다.
육신의 일로 안식일을 지킬려는 행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주일에 있음을 가지는 지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 날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제사가 아닌 영적 예배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
신령함을 얻을 성령과 진리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로 주일을 가지는 이 때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12:1)"
구약시대의 제사는 짐승을 드려 피를 흘려
죄사함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어린양의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단번에 드리는 제사가 되어 더이상 짐승이 아닌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예배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구약시대로 돌아가 안식일을 지킬려고
고집하는 유대교, 안#교, 하나#의 교회(일명 안#홍 증인회)는
다른 영을 가짐으로 성경을 다른복음을 가지게 합니다.
결국 안식일을 아직도 고집하면서 지키는 자들은
예수의 영이 아닌 다른 영을 가졌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의 해석 방법 중에 하나는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것은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고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른 영을 받아 다른 복음을 가지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안식후 첫 날 주일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로
지키여 성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2> 바울의 회심
바울은 어떻게 거듭나게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이 사도행전에서
3번이나 나옵니다.
사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도를 쫓는 자를 향하여
적대시하였습니다.
위협과 살기등등한 자였습니다.
한마디로 안티기독교인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 십자가의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믿음을 실족케 하고
핍박하는 것은 교회 밖의 사람이 아니고 교회 안의 종교의 탈을 쓴
자들입니다.
영에 속하지 않고 사람 속에 있는 혼의 생각, 정신을 가지고
육신으로 보는 눈과 귀와 감각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려야 하고
선포해야 할 수 많은 교회들이 잠들어 있어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속사람은 우리 속의 영입니다.
그런데 겉사람이 되어서 영이 혼과 융합되어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거듭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혼과 영의 융합에서
말씀으로 찔러 쪼개어 깨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찔러 쪼개는 수술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과 혼과 육신을 찔러 쪼개어 구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에 어떤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골수와 관절을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브리서4:12)"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은 영과 혼과 육신을 구분하여
거룩하고 흠 없이 보전 되기를 원합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영은 성령으로 선한양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영은 말씀으로 지혜와 지식을 가지는 직관력을 가집니다.
영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관계된 거룩함으로 사람의 영을 강하게 하는
속사람으로 날로 새롭게 합니다.
혼은 영과 육신의 중간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자는 그 혼의 생각과 정신, 감정과 의지가 강하여
그 영이 있다 하나 혼과 융합되어 아무런 힘을 발휘 할 수 없습니다.
혼의 생명을 가지는 그리스도인은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를 드리지만 영의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혼적인 생명에서 거듭나 영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은
오르지 예수님의 영으로 부터 오는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사울이 바울되는 거듭남은 하늘의 강권적인 역사입니다.
바울이 거듭난 것은 사람의 음성이 아닌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으로 가서 무론남녀하고 십자가의 도를
쫓는 자들을 잡아오려 하여 다메섹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하늘로서 빛이 바울을 비추는 것은 해보다 밝았습니다.
압도적인 빛에 바울은 저항할 수 없는 강한 힘에 압도되었습니다.
땅에 엎드려져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사도행전9:4)"
사울이 엎드려져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도행전9:5)
사울은 저항할 수 없는 압도적인 예수님의 권세에
눈이 멀어 다메섹으로 들어가 3일 회심을 하였습니다.
사울은 사흘을 보지 못하고 사흘 동안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금하고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현상적으로 자신이 잘한다고 생각하였는데
그동안 진리이시며 생명이시며 길이신 예수를 핍박하는 자였습니다.
오늘날 잘 믿는 다고 하는 자들이 세상을 향하여 쓴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위장된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질 않고 상징으로 보아서
짐승의 표를 받아도 구원과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거짓교사는 정직한 것을 숨기고 항상 거짓된 것을 가르칩니다.
거짓 선지자는 영에 속하여 성령으로 부터 오는 양심과
말씀으로 얻는 지혜와 지식과 예배를 통한 영적인 교통은 없습니다.
거짓선지자는 마음에서 나는 소리에 의지하여 인본주의적인 다양성을
가집니다.
거짓선지자는 악한 영에 사로잡혀 절대적인 가치를 무너뜨리면서
양심에 화인 맞았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비성경적인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예배 아닌 프로그램에
의지하여 성도들의 믿음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거짓 목자, 거짓 교사, 거짓 선지자 노릇하는 자들은 성경에서
금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아닌척 하지만 그 속에 사람의 영이 거짓의 영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사울은 그동안 하나님의 영이 아닌 율법만 보이고
예수가 안보이니 은혜가 없었습니다.
율법을 좇아 가니 율법을 적용할 것만 보이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내 속에 내가 아닌 예수의 영이 있어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내가 가진 율법이 아닌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내 속에 있는 영이 살아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적예배입니다.
사울이 예수님께 압도적으로 붙잡히고 눈이 멀어 자신을
돌아보는 회심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주님의 지시로 기도 중에 있는 사울에게
가서 안수하니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님의 택한 예수님의 그릇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할 수 있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는 것은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다른 영,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전할려고
하는 다신교의 대표적인 종교다원주의가 있습니다.
이슬람에는 예수 이름이 아닌 알라 이름을 전합니다.
불교에서는 예수 이름 아닌 부처의 이름을 전합니다.
이단의 영들을 받은 이단종교단체는 그들의 교주 이름을
전할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땅끝까지 예수 이름을 전하게 하는 교회되게 하십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라(행4;12)"
3>성령충만을 받은 바울의 변화
하늘에 빛이 있어 사울이 압되되어 3일 회심을 통하여
변화된 사울은 다메섹에서 3가지의 강력한 전도를
하였습니다.
첫번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즉시로 가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행9:20)"
진정으로 거듭나는 자의 고백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예레미야, 엘리야, 세례요한이라 하여
선지자 중에 하나라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16:16)"
는 고백입니다.
이를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셨습니다.
아버지와 예수님은 하나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하나님은 동등하십니다.
즉 계급이나 격이나 양이나 질이나 다 같은 성령과 함께
삼위일체이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었습니다.
두번째, 바울의 전도는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립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히브리어로 기름부은 자입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로 히브리어의 메시아입니다.
사울의 놀라운 거듭남의 놀라운 변화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명함으로 유대교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유일하신 성부하나님만을 인정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거듭남으로 전도하는 것은 유대교를 굴복시키기
위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였습니다.
세번째, 예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사도행전9:27)"
사도행전은 전도행전이라 합니다.
사도행전을 선교행전이라 합니다.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담대하게 말하는 것은
예수 이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중요한 이름은 예수 이름입니다.
사도행전 전체 강조하는 이름은 예수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담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예수 이름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는 자는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예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고
예수 이름으로 권세를 얻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여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베드로가 예수 이름으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켰습니다.
줄 수 있는 것은 금과 은이 아닌 예수 이름입니다.
교회가 구제해서 착한 일하고 복지해서 교회가 프로그램으로
오락을 즐기게 해서 교회가 타종교와 타협하여
교류하면 이미 죽은 사데교회의 모습니다.
살아있는 소망을 가지는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 이름을
담대히 말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날 말세 타락한 교회들은 예수 이름을 담대히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 이름 대신 유명한 사람들 이름 말하기를 즐겨 하고
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말하기 보다 다른 유명 사람 이름을 말해야
있어 보이고 다른 신학자 이름을 말해야 권위가 있어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칭찬하는 교회는 다름 아닌 예수 이름
배반하지 않고 담대히 말하는 교회라 믿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요한계시록3:8)"
사단이 가장 듣기 싫은 이름은 예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도무지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사도행전4:18)"
그러나 사도들은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 높여 기도하기를
예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빌기를 다하여 성령충만함을
받아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4:29~31)"
2.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한다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사도행전26:24)"
바울의 과거와 회심에 대한 변명을 들은 총독 베스도의
반응은 바울을 향하여 바울의 가진 많은 학문 때문에 미쳤다고
합니다.
여러분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면 오히려
사람들의 반응은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미쳐도 주를 위하여 미치면 복된 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실은 비정상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영접하여 거듭나지 못하였던 나는
예수를 핍박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거듭난 나를 간증하여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찬양하고 예수 이름으로 전도하고
예수 이름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적
신앙으로 예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는 자가 지극히 정상적이고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는 것입니다.
3.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사도행전26:29)"
사람들은 흑암의 세력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어둠이 빛이 들어 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도를 예수 이름으로
담대하게 말하니까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전도로
그리스도인이 될까 두려워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과거와 회심으로 거듭난 것에 대하여
듣는 모든 사람이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소원하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 것은 땅에 있고 하나님의 영원한 것은 하늘에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썩어져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것은 영원한 것으로 새것으로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과거와 거듭난 자신의 모습을
전도하여 예수 이름으로 회개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구원으로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거듭나기 전 나의 모습에서 벗어나 부르심으로 거듭난
모습으로 예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는 자로 하나님께
원하는 소리로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마라나타입니다.
글쓴이:쌍문동산소망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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