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국내 최대 아파트 단지인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의 메인 상가 1층 한 점포 창문에 임대 문의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하철역과 맞닿은 대로변에 있는 상가지만, 1층 약 20개 점포 중 6~7곳이 공실로 남아 있다. /이태경 기자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아파트. 2018년 입주해 9500세대, 약 2만5000명이 거주하며 ‘도심 속 작은 도시’라고 불릴 만큼 북적이지만, 상가 분위기는 완전히 딴판이다. 가장 규모가 큰 상가 A동은 지하철 송파역과 인접한 대로변 1층 약 20개 점포 중 6~7곳에 ‘임대 문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하로 내려가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하철역과 이어지는 통로 주변 20여 개 점포 중 절반 가까이 비어 있다. 이 지역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상가 임대료가 입주 당시보다 거의 절반 수준으로 내린 곳도 있는데, 여전히 빈 점포가 많다”고 말했다.
아파트 단지 상가들이 대규모 공실(空室)에 시달리고 있다. 기존 상가는 임차인을 찾지 못한 채 비어 있고, 신규 상가는 팔리지 않아 미분양이 대거 발생하고 있다. 경기 불황 때문만은 아니다. 아파트 상가는 불황 때도 안정적인 ‘배후 수요’ 덕분에 효자 투자처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번엔 고금리 충격에 코로나를 거치며 배달 문화까지 확산하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사람들이 배달 문화에 익숙해져, 집 앞 상가마저 외면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상가에선 분식집·수퍼마켓·치킨집이 사라지면서 빈 점포가 늘고 있다. 새로 들어오는 업종은 영세한 무인 점포와 피부 관리실 정도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 중개업소가 절반 이상 차지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상가 정보 플랫폼 ‘상가의 신’ 권강수 대표는 “아파트 상가 입주 업종이 일부에 한정되다 보니, 이용자가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2010년대 중반만 해도 아파트·오피스텔 상가는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투자처였는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 바뀌었다”고 말했다.
◇불황·배달·고금리 ‘3각 파도’ 타격
지난 14일 오후 찾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상가. 입주한 지 약 2년이 됐지만, 2층 상가 10여 곳 가운데 절반이 비어 있었다. 1층 점포는 4곳 중 3곳꼴로 부동산 중개업소가 들어가 있었다. 총 6000가구가 들어선 대장지구의 다른 상가도 상황은 비슷했다. 오피스텔 상가는 30~40곳 중 문을 연 집이 10곳도 안 됐다. 이곳에 사는 주부 최모(39)씨는 “음식이나 장보기는 대부분 배달로 해결하고, 미장원이나 병원은 소문이 난 판교신도시에 있는 곳으로 간다”며 “아파트 상가는 편의점 정도만 이용한다”고 했다.
아파트 상가가 애물단지가 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배달 전문 음식점은 임대료 비싼 아파트 상가 대신 이면 도로 점포를 이용하는 곳이 많다. 피아노·미술 학원도 출산율 하락으로 수익성이 예전만 못하다.
최근의 고금리는 이 같은 ‘상가 불황’에 기름을 부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상가 투자나 창업을 하려 해도, 높은 금리를 감당하기 어렵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국 집합상가(아파트·오피스텔 상가) 투자수익률은 1.07%로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최저치다. 상가 투자수익률은 월세에서 대출 이자 등을 제외한 순수 수입이다. 자기 돈 10억원 들여 상가를 매입하면, 1년에 1000만원 남짓 번다는 것이다. 상가정보연구소 박대원 소장은 “시중은행 예금 금리가 3% 중반까지 오르다 보니, 상가 투자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공실에도 상가 고가 분양은 계속
한쪽에선 상가 공실이 잇따르지만, 다른 한편에선 평당 1억원이 넘는 고가(高價)의 상가가 분양으로 나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상가 분양은 주변 시세를 고려해 예정 가격을 정하고, 최고가 입찰자가 낙찰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오는 8월 입주 예정인 약 3000세대의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는 최근 상가 117실에 대한 입찰을 진행했는데, 최초 예정가가 3.3㎡당 최고 1억1000만원이었다. 현재 입주가 진행 중인 약 3300세대의 서울 강남구 ‘개포자이 프레지던스’도 12평 1층 상가 최초 예정가가 14억원이었다. 상가에는 아무런 마감재가 필요없지만, 가격은 아파트보다 2배 이상 비싼 것이다. 분양업체 관계자는 “상가는 건물 뼈대만 세우면 되기 때문에, 상가를 많이 지어 분양할수록 시행사와 재개발 조합의 수익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분양가 논란 때문에 상가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다. 이달 초 분양된 래미안 원베일리 상가의 계약률은 60%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개포자이 프레지던스’도 일반 분양으로 나온 상가 25실 가운데 계약이 이뤄진 것은 절반에 못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