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후 거의 천 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당말·송대인 10~11세기에 가장 중국적이면서도 독특한 불교가 출현하게 되는데 바로 선불교禪佛敎입니다.
중국 선종의 발달은 이미 제자백가諸子百家나 도가道家사상 등으로 정신적 사유의 방법론에 있어서는 독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기에, 불교를 언어가 아닌 직관으로 통찰하려는 방법론의 출현이 필연적인 측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중국의 선은 임제종臨濟宗, 위앙종?仰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법안종法眼宗의 소위 선종오가禪宗五家로 나뉘어 발전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선종은 임제종으로, 조계종에서 유일하게 공인된 선수행법으로 인정하는 간화선을 주창한 종파 입니다. 간화선看話禪은 묵조선默照禪 등 과거의 참선법을 비판하며 대혜종고大慧宗?(1089~1163)에 이르러 크게 성행하게 됩니다.
대혜의 간화선은 조주趙州의 ‘무無’자 화두를 통해 가르쳐졌고, 고려의 지눌知訥이 대혜의 간화선을 받아들였다고 전해집니다.
지눌은 선禪과 교敎가 복합된 사상을 주창하였는데,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을 통해 간화선의 우수함을 주장하였습니다. 지눌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선의 사상적 핵심이자 특징이 되고 있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의 원류를 제시하였습니다.
간화선의 생명은 활구活句 화두를 참구하여 몰록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에 있습니다. 지눌 이후 간화선은 휴정休靜의 『선가귀감』으로 맥을 이어 오늘날에 이릅니다.
최근에는 오직 화두 타파를 목표로 삼는 간화선의 형식 논리에 비판이 쏟아지기도 합니다. 가장 큰 문제로 스승과 제자 사이의 선문답으로 사자상승師資相承되어야 하는 것이 간화선의 생명인데, 화두를 이끌어 줄 큰 스승인 선지식의 부재를 논합니다. 아주 뼈아픈 부분입니다.
또한 간화선 수행자들이 다른 수행자들에게 배타적이고, 붓다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자치고는 이타행과 자비심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교학과 계율을 무시하는 듯한 선사들의 언행(선가에서는 이를 무애행이라고 한다지만)을 염려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간화선 이전에 실은 수승한 선수행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찍이 통일신라의 무상無相(680~756) 스님은 한국인 최초로 중국에서 선을 공부한 분입니다. 그 선법禪法은 염불선念佛禪인데 고려, 조선을 거쳐 근대에는 경허鏡虛(1846~1912) 선사가 염불선을 간화선과 동등한 위치의 수행법으로 인정하셨습니다. 가장 최근의 대표적 염불 선사로는 2003년 열반하신 청화스님이 계십니다. 스님은 40년 동안 장좌불와를 하실 정도로 깊은 수행력을 보이셨습니다.
통불교라고 하는 한국불교가 유독 선법禪法에서는 간화선 제일주의를 고수하고 있는데 이제부터라도 간화선의 독점보다, 각기 근기에 맞는 수행법을 인정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제 개인적 의견이지만 염불선이 좀 더 연구되고 보급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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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