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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3세의 고손자인 에드워드4세는 사촌인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에 의해 왕으로 옹립되었다. 워릭과 에드워드는 최고의 파트너로서 서로 협력하여 반대파를 몰아내고 확고히 나라를 장악할 수 있었지만 평화가 찾아오면서 둘의 관계는 삐그덕거리기 시작한다. 공동의 적 앞에서는 같이 협력했지만 이제 서로 나눠가질 수 없는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본격적인 충돌이 시작되기전, 여러가지 문제를 둘러싼 의견충돌들이 있긴 했지만 둘의 사이를 갈라놓을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외교문제는 달랐다. 부르고뉴와 프랑스의 대립이 심화되자 워릭은 프랑스와의 동맹을 주장한 반면 에드워드는 부르고뉴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에드워드는 워릭의 의견을 존중하는 척 하면서 그를 프랑스에 사절로 파견했는데 훌륭히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워릭은 순간 에드워드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워릭을 보낸 것은 귀찮은 그를 잠시 멀리 떨어뜨려놔 그사이 부르고뉴와의 동맹을 맺으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에 기뻐하며 성실히 임무를 수행했던 워릭은 말그대로 국제적망신을 당한 꼴이었고 분노한 그는 본격적으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워릭의 음모로 한때 에드워드는 연금당한 뒤 워릭이 실질적인 나라의 지배자가 되기도 했지만 워릭에게는 왕만큼 다른 귀족들이 자신을 따르게 할만한 권위가 없었다. 점점 혼란이 가중되고 랭커스터파가 반란을 일으키자 병력을 모으는데 실패한 워릭은 일단 에드워드를 내세웠지만 그것은 에드워드가 다시 권력을 되찾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워릭의 부탁과 요청에는 시큰둥했던 귀족들이 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신속하게 모여 반란을 진압했고 자신의 명령을 듣는 귀족들의 앞에 선 왕은 더이상 워릭의 꼭두각시가 아니었던 것이다.
전전긍긍하는 신세가 된 워릭은 두번째 음모를 꾸몄지만 실패해버리고 결국 프랑스로 망명하게 된다. 잉글랜드가 부르고뉴와 손잡은 것에 대해 경계하던 루이11세는 워릭이 오자 랭커스터파와의 화해를 주선하고 그를 지원하여 잉글랜드가 대륙의 일에서 손을 떼어놓게 만들려고 하였다. 워릭의 둘째딸인 앤과 헨리6세의 아들인 에드워드가 정략결혼을 하고 루이의 지원으로 군대를 조직한 워릭은 다시 잉글랜드로 귀환하여 에드워드4세를 홀란드로 쫓아내고 헨리6세를 복위시키는데 성공했다. 두명의 왕을 세운 그의 전적 때문에 그는 최초로 킹메이커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에드워드라고 이대로 쫓겨나 가만히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 부르고뉴 공작의 지원으로 군대를 이끌고 요크셔에 상륙한 에드워드는 런던을 향해 동조자들을 모으며 진군해가기 시작했다. 불분명한 입장을 취하는 노섬벌랜드 백작 헨리 퍼시 덕에 워릭의 동생인 몬터규 후작 존 네빌은 노섬벌랜드를 견제하느라 에드워드를 조기에 막지 못했다. 미들랜즈에 들어서자 동조자들이 급격히 불어나 에드워드에게 합류해왔고 미처 병력을 다 모으지 못한 워릭은 코번트리에서 사위인 클래런스와 동생이 합류해올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클래런스가 막상 에드워드에게 투항하고 아직 몬터규는 합류해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성을 지키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고 워릭이 전투에 임하지 않자 에드워드는 런던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이때 런던을 지키던 서머싯 공작과 데본 백작은 워릭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헨리6세의 아내인 앙주의 마거릿을 배웅하러 남쪽으로 떠났고 오직 워릭의 동생인 조지 네빌 대주교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불안했던 네빌은 헨리6세를 앞세운 화려한 퍼레이드를 펼쳐 런던시민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했지만 퍼레이드에 나선 헨리에게서는 왕다운 어떤 위엄이나 카리스마도 보이지 않았고 이에 실망한 시민들은 에드워드의 입성에 반대하지 않기로 하였다. 워릭은 동생에게 며칠만 버티라고 말했지만 서머싯과 데본이 떠나고 시민들마저 등돌린 상황에서 군인이 아닌 성직자였던 네빌은 차마 에드워드와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그는 에드워드와 협상하여 헨리와 런던을 넘겨주기로 한다.
에드워드와 만난 헨리는 악수를 하며 말했다.
나의 요크친척이여, 환영합니다! 그대의 손안에서 내 생명이 위험에 처하지 않을 것을 압니다!"
원래부터 해탈의 기미를 자주 보여주던 헨리였지만 이번에는 열반의 경지에 들어선지 오래였다-_-
한편 몬터규가 합류해오자 워릭은 군대를 이끌고 에드워드를 따라 런던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역시 군대를 모아 워릭과 대적하기 위해 출병했지만 숫적으로 다소 열세였다. 양측은 날이 이미 저물었을 때 런던외곽의 바넛에서 마주쳤다. 전투배치를 마치고 서로 마주보기는 했지만 어두웠기 때문에 서로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알지 못했고 전열도 약간 너긋나 서로의 우익이 좌익보다 더 길게 뻗혀있었다. 워릭은 일단 포병들로 하여금 정면에 포격을 하게 했지만 대부분은 적군의 머리 위로 날아가 그들의 뒷쪽에 안전하게 착지(?)했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위치를 알리지 않기 위해 포격을 금했다.
다음날 새벽 3시가 되자 워릭은 병사들을 깨우고 전투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에드워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치 앞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가 끼고 4시가 되자 전투준비를 마친 워릭은 정면을 향해 대포와 화살을 쏘기 시작했고 에드워드는 이에 돌격명령을 내렸다. 공격신호인 나팔소리가 적군에게서 들려오자 워릭 역시 선제공격의 기세를 유지하기 위한 공격명령을 내리게 된다.
접전이 벌어지자 양측의 우익지휘관들은 상대편의 좌측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곧 워릭 측의 옥스포드 백작이 헤이스팅스를 밀어붙였고 에드워드의 동생 글로스터 공작이 엑서터를 같은 식으로 밀어냈다. 예비대를 지휘하던 워릭은 엑서터에게 병력을 지원해 엑서터는 무너지지 않고 버텼지만 서로의 좌익이 밀려나 전열의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예비대를 둘 여유가 있던 워릭에 비해 숫적으로 열세였던 에드워드는 헤이스팅스를 지원할 병력이 없었으므로 헤이스팅스의 부대는 결국 무너져 패주해버렸고 옥스포드는 그뒤를 추격했다. 보통 이 상황이 되면 사기가 급격히 떨어져 전 군대가 무너져 버리겠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병사들이 아군의 좌익이 무너졌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 에드워드에게 있어서는 행운이었다. 안개는 추격에도 방해가 되서 옥스포드는 병력통제에 어려움을 겪었고 지휘관이 자기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틈을 타서 병사들은 추격보다는 약탈에 여념이 없었다.
한편 워릭은 서서히 승세를 잡아가고 있었다. 워릭이 예비대로 몬터규가 지휘하는 중앙을 지원하자 병사들의 사기는 크게 올라 피곤하고 숫적으로 열세인 에드워드의 중앙을 밀어붙이기 시작했고 이대로 가다가는 워릭의 승리는 필연이었다. 하지만 이때 어이없는 사건이 일어나고 만다.
옥스포드는 어려움 끝에 오백명의 기병들을 모아 에드워드의 배후를 공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제라면 좌익의 패주를 숨겨줬던 안개가 이번에도 에드워드를 도와줬다는 것이다. 서로의 좌익이 밀려나 전열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을 짙은 안개로 인해 옥스포드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자신의 배후공격이 최후의 일격이 되리라 자신한 옥스포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에드워드의 배후였던 곳으로 돌격해갔다.
중앙를 지휘하며 에드워드를 밀어붙이던 몬터규는 갑자기 한무리의 병사들이 공격해오자 당황했다. 안개와 어둠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엠블럼을 보니 에드워드의 것과 비슷했기에 에드워드의 병사들이라 판단한 몬터규는 이들에게 화살을 쏴서 반격하게 했다.
그런데 사실 몬터규를 공격해온 것은 바로 옥스포드였다! 자세한 모양은 전해지지 않지만 옥스포드의 엠블럼은 star and stream이었고 에드워드의 것은 sun and stream이었기에 가뜩이나 제한된 시야에서 몬터규로 하여금 그들을 에드워드의 병사들로 착각하게 한 것이다! 게다가 분명 에드워드의 배후였어야 당연한 곳(?)에 뜬금없이 몬터규의 병사들이 있는 것을 본 옥스포드는 황당하기 서울역에 그지없었다. 이 사태에 대해 옥스포드에게 떠오르는 것은 한가지 밖에 없었다.
"배신이다!"
옥스포드의 병사들은 이 소리를 외치며 도망쳤고 갑자기 들려온 배신이라는 외침에 워릭의 병사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헨리6세를 지지하던 옥스포드나 엑서터에 비해 워릭은 에드워드를 왕으로 옹립하고 헨리의 세력을 소탕하는데 일등공신노릇을 했던 사람이었다. 비록 에드워드와의 사이가 벌어져 망명하고 이제는 서로 화해했다지만 서로에 대한 의심과 불신은 여전했고 이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었던 것이다. 서머싯과 데본이 워릭에게 한마디도 없이 런던을 떠난 것도 같은 일환이었다. 전투가 일어나던 중 착각에 의해 옥스포드의 병사들이 배신이라고 외치자 폭탄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안개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만들어 혼란은 더더욱 퍼져나갔다.
워릭이 병사들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는 사이 에드워드는 적들에게 뭔가 이변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총공격을 개시했다. 처음부터 밀렸던 엑서터는 워릭의 지원으로 팽팽하게 싸웠지만 배신이라는 외침에 병사들이 동요하는데다 에드워드가 총공격하자 결국 무너져 버렸다. 양익이 녹아버리고(?) 네빌 형제만이 남은 상태에서 워릭은 어떻게든 남은 군대로 버텨보려고 애썼지만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해버렸다. 몬터규가 죽은 것이다! 그것도 적군에 의해 전사한 것이 아닌 그를 배신자라고 생각한 옥스포드의 병사들이 뒤에서 덮쳐 죽인 것이었다-_-;;;
지휘관이 이렇게 어이없이 가버리자 이제 남은 중앙도 무너져 패주하기 시작했고 더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워릭 역시 도망치기 위해 말이 있는 곳까지 가려고 했지만 걸치고 있는 무거운 갑주로 인해 적병들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애초에 서로에 대한 의심과 불신 때문에 군대의 사기에 지장이 있을 것을 염려한 워릭이 일반병사들과 마찬가지로 말에서 내려 위험을 공유하기로 했던 결정이 그에게 도망갈 기회마저도 빼았은 것이다! 그들은 워릭을 땅에 내동댕이 친 다음 면갑을 열어 나이프를 눈에 꽂아 죽이고 갑주 등의 값나가는 것들은 모두 벗겨가 버렸다. 한때 천하를 호령하며 두명의 왕을 세워 역사상 최초로 킹메이커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워릭의 최후였다.
에드워드는 처음에 워릭을 생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그가 시체로 발견되자 런던으로 가져가 성 폴 대성당에 놓고 모두에게 그의 죽음을 확인시키며 자신의 승리를 선전했다. 그뒤 네빌 형제의 시체는 비셤수도원에 있는 가족납골묘에 안치되었다. 보통 반역자는 찢겨져 성문에 걸리는 운명이었지만 에드워드는 그래도 자기를 왕으로 만들어주고 나라를 위해 애썼다는 것을 아는 워릭을 위해 최대의 예절을 배푼 것이었다.
그뒤 앙주의 마거릿과 그녀의 아들인 에드워드가 잉글랜드로 돌아와 다시 군대를 모으고 에드워드4세에게 대항했지만 투크스베리 전투에서 대패하고 에드워드는 생포되어 죽어버렸다. 얼마 안되어 갖혀있던 헨리6세도 후환을 방지하기 위해 살해됨으로서 랭커스터 왕가는 단절되어 버린다.
이제 에드워드4세는 명실공히 잉글랜드의 유일한 왕으로 나라를 다스렸고 죽을 때까지 안정된 왕권을 누렸으며 그의 통치하에서 나라는 상대적으로 풍요와 번영을 누리게 된다.
오늘의 교훈 - 시야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경우에 싸웠다간 이처럼 다 이긴 전투도 어이없게 깨지는 저땐 경우도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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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롬토하다보면 가끔씩 교훈을 느끼죠.
역시 이번것도 읽는 재미가 있네요ㅎㅎ 다음편을 기대해봅니다.
하여간 정보가 진짜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전투군요. 아군끼리 오인 전투가 역사상 몇 번이나 발생했는지... 워릭으로선 억울하기 짝이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