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 모레면 딸 아이가 고등학교 입학 선발고사를 치르게 된다
비 평준화 지역이었던 이 곳은 대입 못지 않은 입시 경쟁에 시달려 왔는데
올해부터 서울과 마찬가지로 평준화가 되어서 단지 고입선발고사만 치르게 되니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들도 덩달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입학시험을 맞고 있다
그래도 시험은 시험인지라...
더구나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는 큰 시험을 앞에 두고
엄마인 나는 딸 아이와는 사뭇 다른 감정이리라...
해 마다 이맘 때...
입시철이면 늘 가슴적시는 아련한 기억이 떠 오른다
내 고 3때..
그 때는 예비고사라고 했던가...
아님 대입 학력고사라고 했던가...
암튼 지금의 수능시험과 같은 국가고시를 치뤘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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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3때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그저 조신하고 얌전한 사대부집 마나님과 같은...
아무런 경제적 능력이 없구...
극성스럽게 생활력이 강하지도 못한... 어머니는
늘 조용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위로 오빠가 둘 있었는데
바로 위의 오빠는 대학생이었고...
고시공부를 하던 큰 오빠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하던 공부를 중단하고 일찍 결혼을 하였다
아마도 집안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장남의 책임감 때문이였으라...
어쨌는 철모르는 나는 그냥 그렇게 사춘기를 보내고...
고 3이 되어 여느 입시생과 다름없이 대입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원수업을 마치고 밤 늦게 귀가하였는 데...
집안이 텅 비어 있었다
뜻하지 않게 작은 이모님이 계셨구...
엄마와 오빠들이 보이질 않았다
며칠만에 돌아 오신 엄마와 큰오빠...
그 이후론 우리 집에 작은 오빠는 영영 돌아 오지 않았다
사춘기는 넘었다고 하지만...
작은 오빠를 잃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그 때부터 난 방황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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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 절대 풍요로울 수는 없었지만..
그럭 저럭 우리 삼남매와 엄마... 글구 새로 늘어난 식구들..
올케와 이뿐 조카들... 이렇게 나름대로 대가족을 이루며
각 자 제 할 일 열심히 하며 살았었는데...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었다
하루는 큰 오빠가 술을 먹고와서 하던 공부를 마저 해야겠다하며
가슴 속의 울음을 토해 냈다
난 그 날로 나의 대입을 포기했고...
큰 오빠가 우릴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지
그 때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먹고 사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었지만...
늘 근심에 차있는 엄마의 얼굴...
물론 등록금을 제 날짜에 내지 못할 때가 더러 있어
교무실에 불려 가 담임선생님께 몇 마디 들은 적도 있긴 하였지만
그 시절의 그 정도는 나 아닌 많은 아이들에게도 적용되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그러나 오빠들의 엄청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늘 노심초사하던 엄마...
작은 오빠의 갑작스런 죽음...
어디에도 내가 대학을 들어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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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몹시 차갑고...
싸래기 마저 흗뿌리던 날...
마지막 시험까지...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끄적여 내고는 교문을 나섰다
왁자지껄... 씨끌뻑쩍한... 교문을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애써 삼키며...
사람들 속을 헤쳐 나갔다
그런데...
그런데... 그 수 많은 사람들 속에
엷은 미소 띄우며 자그맣게 서 계신 분...
엄마...
어릴 적...
아무리 큰 폭우가 쏟아 져도 한 번도 우산을 가져다 주신 적이 없으시기에
한 때 난 울 엄마가 계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울 엄마가 저기 저 수 많은 사람들 속에
내가 시험을 잘 치르고 나오길 기다리고 계신 거였다
엄마...
엄마...
그런 줄 알았음....
엄마가 있는 줄 알았음....
시험을 제대로 잘 풀고 나오는 건데...
고개를 푹 숙이고...
미어 터져나오려는 속울음을 참아 내고...
또 참아 내는 딸의 속내를 아시는지...
엄마는 아무 말씀도 없이 내 손을 잡고 걸으셨다
시험을 잘 보았느냐는...
몇 점이나 나오겠느냐는...
다른 모녀들이 주고 받았음직한 말은 고사하고
하다 못해 날씨가 춥다라는 말조차도 없이
두 손을 잡고 엄마가 내게 데려간 곳은
화려한 동대문 시장 안이었다
엄마는 예비고사를 엉망진창으로 끝내고
앞으로 살아야 할 일이 막막한 딸에게
우윳빛의 예쁜 반코트와 빨간 스웨터를 입혀 주심으로서
말없이 딸을 지켜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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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떨어진 학교에서 시험을 봐야 하는 딸 아이는
벌써부터 제 아빠의 다짐을 받고 또 받는다
멀리라고 해야 버스로 몇 정거장인 것을...
입학시험을 치룬다고 가슴 설레하는 딸 아이를 보며
이십여년 전의 나를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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