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수행>
화, 이거 참 골치 아픈 감정입니다. 제가 화를 잘 내는 편이라 더욱 절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왜 화를 낼까?’라는 의문을 내놓고 역으로 풀어가 보았습니다.
화는 상태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것도 상당히 참기 힘들 정도일 때 내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화를 내는 상황을 판단하는 ‘내 마음’이라는 게 너무나 주관적이라는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도 시시각각 마음이 달라지는데다가, 다른 사람의 마음도 내 마음과 같다는 나름대로의 확신이 서야 화가 발동하지 않으니 참 까탈스러운 것이 화입니다.
화를 당하는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대부분 황당하다고 느끼고, 역시 화로 맞받아쳐야 한다는 감정을 일으키게 되는 게 화의 본질입니다. 상대가 즉시 내게 화로 돌려주지 않는다고 자신의 화냄이 정당했다고 여기는 것은 돌을 집어 자신의 머리 위로 버리는 행위와 같습니다. 머리 위에 버려진 돌들이 하나씩 ‘연緣’이 되어, 어느때 내 주변에 우박처럼 쏟아져 내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철학적이나 종교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화를 내면 몸에 즉각 나쁜 반응이 옵니다. 화를 내면 즉각 뇌가 반응하여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몸 전체에 스트레스 호르몬을 방출합니다. 그 호르몬 중 하나인 아드레날린은 혈압을 높이고, 아세틸콜린과 세로토닌 같은 물질은 복통이나 설사를 유발합니다. 심하면 뇌졸중이나 심장마비가 와서 즉사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화가 극에 달해 상대와 육탄전을 벌일 정도에 이르면, 이성을 잃고 말을 더듬고 다른 생각은 해 볼 여유도 없지만, 상대를 휘어잡는 육체적 힘이 급격히 세지는 것은 화에 의한 아드레날린의 활성화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들은 참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으로, 한계를 넘어선 참음 때문에 ‘홧병’으로 고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홧병은 1996년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한국인의 문화 관련 증후군의 하나로 등재하면서 ‘hwa-byu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지나치게 자기 소신껏 살며, 할 말도 다하는 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홧병이 유전될 것 같지는 않으니, 이것이 좋은 변화인지 아닌지는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어쨌든 화라는 것은 본질이 이러하니 일반인도 아닌 수행자가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은 분명 큰 허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더욱이 수행으로 자비심이 생긴 사람은 화를 낼 대상이 없는 경지를 느끼게 되니 저절로 화를 낼 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화’가 불교에서는 자신을 죽이는 세 가지 독인 삼독심三毒心의 두 번째를 차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화’라는 게 꼭 개인적으로 발생하는 사적인 일만은 아닙니다. 정치나 행정을 잘 못하면 국민 전체가 ‘홧병’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전 세계 여성들이 프러포즈를 받고 싶은 장소의 1순위로 조사되고, 프랑스의 상징인 에펠탑(Eiffel Tower)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에 맞춰 개최된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건설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300m에 이르는 이 에펠탑(설계자 에펠에서 따온 이름)이 당시의 파리시의 정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도무지 파리의 어디를 가나 피할 수 없이 눈에 들어오는 거대 철탑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아, 목로주점의 작가 ‘에밀 졸라’,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쓴 ‘알렉상드르 뒤마’, 여자의 일생을 쓴‘기드 모파상’ 등 예술가들의 노골적 불평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탑 얘기만 나오면 화를 내는 모파상은 거의 매일 탑의 2층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이에 식당 주인이 그 이유를 묻자, “이 빌어먹을 탑을 보지 않으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가 파리에서는 여기밖에 없어서였다”고 모파상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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