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딘스키의 ‘구성 VIII’은 제 주관적인 해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해 덧붙입니다. 점, 선, 면, 색채 등의 순수 조형요소로만 이루어진 추상회화는 사물의 외형을 정확히 알아보기 어렵죠. 처음 마주했을 땐 굉장히 불친절한 그림이라고 감히 생각했었습니다. 미술사적으로도 칸딘스키의 추상회화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제가 주목한 특징은 개인의 감정을 말 그대로 다양한 형상으로 읽히도록 표현해낸 점이었어요.
▲ 바실리 칸딘스키, ‘구성 VIII’, 캔버스에 유화, 140×201cm, 1923,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
PROJECT 1_ RULE
1.
탁구 룰 중 하나인 촉진룰을 차용. 10분 경과하였음에도 한 문장이 마무리되지 않았을 때 아이디어를 촉진하기 위해 창밖이나 풍경으로 눈을 돌리는 룰
2.
탁구채를 잡는 올바른 룰이 있듯, 바르고 정갈한 자세로 칼럼 작성에 임하는 룰
3.
구가 포함되거나 연상되는 이미지를 채택하는 룰
날이 따스해졌네요. 지난 글에서 눈에 관해 이야기했었는데, 이제 주위의 눈이 다 녹아버렸더라구요. 동그란 맛을 제시했을 때 입안에서 굴리는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걸 떠올렸는데, 바니타스의 둥근 과일이라... T의 발상으로부터 감흥을 느꼈어요. 고마워요. 그리고 T를 오랜 시간 지켜본 사람으로서 긍정적인 T도 좋지만 허무를 알고 있는 T가 함께 존재하기에 성숙하고 멋진 생각을 품은 채 주변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어른이가 되어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미 충분하게 둥근 사람이라는 걸 알길 바라요!
원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주변을 관찰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기까지 굉장히 커다란 키워드를 갖고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기다 이번에 전달받은 키워드가 원만이라니! 제 본명에 들어가는 원 때문에 마치 저만을 생각해서 준걸로 느껴지는데 역시 착각인 거죠?
‘원만하다’라는 말은 보통 학교 생활기록부에 흔하게 적히는 동사라 대다수의 사람에게 해당되는 일반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어요. 그런데, 생각만큼 원만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걸 요즘 느끼고 있어요. 호불호가 강하고 자기주장이 뚜렷한 저로선 어떻게 제가 교우관계가 원만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는지 새삼 궁금하네요. 제가 변한 걸까요? (웃음)
아 한편으론, 모두가 원만하게 살아가야만 하는지도 의문이 들어요. 어쩌면 인간은 원으로 시작해 저마다의 모양을 갖춰가는 것이 아닐까 싶고요. 그런 의미에서 원은 모태가 되는 모양이라고 해석해 보았어요. 원이 점이 되고, 선이 되어 또 다른 모양을 갖춰가는 과정이 떠올랐고요. 그래서 저는 ‘원만하다’를 나의 모양을 찾아가는 길이 자연스러운 상태로 정의했습니다.
칸딘스키의 ‘구성 VIII’은 제 주관적인 해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해 덧붙입니다. 점, 선, 면, 색채 등의 순수 조형요소로만 이루어진 추상회화는 사물의 외형을 정확히 알아보기 어렵죠. 처음 마주했을 땐 굉장히 불친절한 그림이라고 감히 생각했었습니다. 미술사적으로도 칸딘스키의 추상회화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제가 주목한 특징은 개인의 감정을 말 그대로 다양한 형상으로 읽히도록 표현해낸 점이었어요.
또한 오직 작가만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그렸는지 알 수 있고요. 위 작품에서 다양한 모양들이 뒤엉켜 한 화면을 이루고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개개인이 살아가면서 마주하고, 느낀 사건들로 인해 다양한 모양으로 구성되어가는 한 개인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다양한 모양의 개인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제 해석에 관한 설명이 충분한지 모르겠네요. (웃음) 부디 그러길! 아 그리고 제가 드리는 다음 제시어는 #원점입니다. 중의적인 단어를 찾고자 했는데, T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기대되네요. 또 봐요!
정서원 예술가
첫댓글 ^^
PINGPONG | 원=세모=네모=다섯모
그 안에 잠재되어 있는
작가의 그의미가
추상속에 잠겨있지만
저 같은 사람은 잘.알.못.
하지만
눈으로 즐기는 것은 잘 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