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3. 17. 일요일.
하늘이 맑고 밝고 푸르고, 온화하다.
<아름다운 5060카페> '삶의 이야기방'에는 '혜지영' 회원의 시어머니에 대한 글이 올랐다.
'3월 17일(일)/연륜만큼 편해지길'
무척이나 감동을 주는 내용이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노인은 모시는 게 아니다'
노인을 직접 모시려면 무척이나 많이 힘이 든다. 자칫하면 온갖 구설을 다 듣게 마련이다. 욕이나 듣게 된다.
내 경우이다.
2017. 6. 16.에 쓴 일기를 퍼서 여기에 올린다.
노인학대 통계(밝음 뒤에 가려진 어두움)
최 윤 환
노인학대에 대한 통계와 뉴스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통계가 긍정, 부정, 왜 이런 수치가 있는지, 문제점에 대한 앞으로의 대책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타내야 하는데도
외눈박이 외꾸눈처럼 어느 한쪽만 크게 부각해서 발표했고, 언론기관도 그냥 인용보도했다.
분석하자.
1. 노인학대
아들 37.3%, 배우자 20.5%, 딸 10.2%, 본인 11.3%, 기타 27.3%
2. 노.노학대
배우자 45.7%, 본인 25.8%, 아들 10.7%, 기타 17.3%
의문이 가는 통계이다.
1.의 경우에는 아들이 37.3%, 딸은 10.2%이다.
1) 그런데 며느리, 사위는 통계에 없다?
2) 아들이 37.3%이고, 딸이 10.2%이다.
아들이 딸보다 3배 넘게 학대한다?
왜 이런 통계가 나오는지에 대한 원인분석은 없다.
아들은 딸보다 훨씬 많이 부모를 모신다.
남의 집으로 시집 간 딸이 아들보다 더 많이 친정부모를 직접 모시는가?
현실은 전혀 아니다. 아들이 부모를 훨씬 많이 더 모신다.
3) 어째서 아들의 배우자인 며느리, 딸의 배우자인 사위는 위 통계에는 없지?
내가 상식적으로 판단하건대 며느리가 시집간 딸보다는 훨씬 많이 시부모를 모신다.
모시는 날자가 많기에 효도하거나 불효하는 횟수가 훨씬 많을 게다.
역설적으로 누가 효도를 많이 하는가에 대한 역발상 통계는 없는가?
내 어머니는 자식을 일곱이나 두었지만 제대로 남은 자식은 넷으로 줄었다.
큰누나는 세 살 때 인절미를 먹다가 질식사했고,
형은 네 살 때 옴병에 걸려서 며칠 만에 죽었고,
쌍둥이 작은아들은 만 20살 때 뱀 물려서 즉사했다.
내 어머니한테 남은 자식은 넷이었다.
아들인 나, 누나, 여동생 둘이다.
내 어머니는 자꾸만 늙어가는데도 시골에서 혼자 사셨고, 나는 서울에서 직장 다녔다.
내 어머니는 장편소설처럼 고단하게 살았다.
내가 예순한 살 퇴직해서야 시골로 내려가 아흔 살이 된 어머니와 둘이서 살기 시작했다.
두 모자는 늘 행복했을까? 다툼은 전혀 없었을까? 내가 큰 소리 낸 적은 전혀 없었을까?
2012년.
반신불구, 치매기 진행 중인 엄니한테 저녁밥을 떠먹이다가 뇌병변 낌새를 느끼고는
나는 택시 불러서 보령지방 종합병원 응급실로 직행...
다음날 밤, 2년이 넘도록 전화 한 통조차도 없던 막내딸이 대전에서 올라왔고,
설, 추석때 시댁 큰집에서 명절 차례를 지낸 뒤 바로 인근지역에 있는 친정으로 온 둘째딸이
이날 밤 막내여동생과 함께 하룻밤새 어머니를 병실에서 모셨다.
병실에서 어머니는 밤새토록 두 딸한테 하나뿐인 아들을 험구했으며, 둘째딸이 녹음했단다.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졸지에 '죽일 놈, 불효막심한 놈'으로 온갖 비난을 받았고, 받고 있고, 앞으로도 받을 게다.
쌍둥이인 나는 만 나이 11살 조금 넘은 1960년 봄(초등학교 4학년 말), 어머니와 떨어져 대전으로 전학 갔다.
만 20살 여름방학 때에 나는 동생을 잃고 혼자가 되었다.
나는 대학교와 직장도 서울에서 잡았다. 내가 어머니와 떨어져 산 이유였다.
어머니는 시골집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 집은 어머니가 다섯 살 때 인근 마을(충남 보령군 남포면 용머리)에서 이사 와서 최 씨네 집을 샀고, 이 집에서 평생을 살았다.
큰외삼촌은 이 집을 막내처남한테 되팔고는 용머리로 되돌아갔다.
어머니는 이 집에 자랐고, 이 집에서 시집살이를 하고, 평생을 살고 있었기에 결코 이 시골 집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집나이 예순한 살 정년퇴직하여 시골로 내려가 어머니와 둘이서 살기 시작했다. 어머니 집나이 아흔 살.
어머니가 시골집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던 하나의 사례이다.
내가 큰딸 시집을 보내려면 내가 서울에 머물러야 했다.
대전 사는 누나가 내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놀러 가자'며 속여서 대전 누나네 아파트로 갔다.
당분간 누나가 엄머니를 모신다는 계획으로...
대전으로 실려간 어머니는 그게 딸네인 줄을 깨닫고는 '당장 시골집으로 보내라. 안 그러면 아파트에 뛰어내리겠다.
내가 왜 딸네에서 사느냐'며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기어오르려고 했기에 기겁한 누나와 내 아내는
그날 그 즉시로 보령 시골집으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이처럼 엄니는 시골집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정년퇴직한 뒤에 어머니 곁으로 갔을 때에는 어머니는 몸이 많이 노쇠하고 망가졌다.
반신 불구자였다. 한 쪽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어둔거렸다. 또 치매기도 진행 중이었다.
2012년 2월 저녁밥을 자시다가 수저를 들고는 발발 떨고, 침 질질 흘리셨다.
곁에서 밥 수발을 들다가 놀란 나는 택시를 불러서 30분 떨어진 보령아산병원 응급실로 갔다.
누이들한테 연락했다. 다음날 누이 셋이 지방 병원으로 왔기에 나는 여동생들한테 엄니를 맡기고는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엄니는 병원 병실에서 회복되어서 두 딸과 함께 밤을 새우면서 하나뿐인 아들, 나를 험구했나 보다.
그 이후로도 나는 여러 차례 응급실로 어머니를 긴급하게 모셔야 했다.
내 귀에 들리는 세 누이들의 비난.
왜 그런지는 나는 안다.
나는 말한다.
'늙은 보모는 절대로 모시지 마라.'
가까이에서 모시면 말다툼하게 되고, 때로는 학대한다고 오해되어서 덤태기를 뒤짚어 쓴다고.
부모를 남한테 맡기되(유기, 방치) 명절 때에만 찾아뵙고는 과자 봉지 드리고, 용돈 몇 푼 집어주면
노인네는 그 자식이 최고이라고 칭송한다고.
밥 해 주고, 빨래 해 주고, 어뚠거리는 부모를 보호해 주는 자식은 늘 지청구를 먹는다고...
예컨대 이렇다. 어머니와 다툰 사건들은 늘 원인이 있었다.
내가 애써서 화초를 사다가 심으면 어머니는 꽃을 죄다 따신다. 말려서 나중에 먹는다고...
뜯어서 말린 푸성귀가 몇 가마니가 되고...
추운 겨울날 새벽에 일어나서 대문 빗장을 열고 바깥에 나가서 쓰러진 뒤 일어나지 못하고
살얼음 마당에서 몇 시간째 버름적거리고, 어둔거리면서도 '운동한다'며 혼자 바깥으로 나가서 통나무처럼 펑 쓰러져 시멘트 바른 모서리에 머리통을 깨뜨려서 피를 줄줄 흘리고...
늦잠 많은 아들인 내가 일어나면 그때서야 노모를 발견한다. 이런 상황을 발견하면 나는 외마디 고함을 지른다. 놀라서...
그런데 이게 다 당신(어머니)을 학대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어머니는 일어나서 두어 발 버름적거리다가 통나무처럼 쓰러져 머리통을 찧고는 119차를 타고 서울아산병원으로 직행.
내가 누이들한테 연락하면 다음날 병원에 와서는 '오빠는 뭐 했어? 왜 어머니가 저 지경되게끔...' 이런 비난을 숱하게 들었다.
똥 지른 엄니를 내가 목욕탕으로 가려면 얼마나 힘이 들며, 목욕탕에서 씻겨 드리려면 싸움 반죽해야 한다.
어머니는 안 씻으려고 화 내고, 욕 퍼 붓고... 나는 더군다나 늙은사내다.
노모는 속살을 안 보이려고 하고, 반신불구자가 어떻게 당신의 몸을 닦지? 반강제로 목욕시키고
옷 갈아입히려면 이게 다 노인학대가 된다...
위 통계 숫치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효도하지도 않고, 불효하지도 않는 방법은 부모를 전혀 모시지 않으면 된다.
전혀 모시지 않기에 불효를 할 수도 없다.
불효를 누가 많이 하나의 통계가 있으면, 반대로 효도를 누가 많이 하는가의 통계도 있어야 한다.
아들이 딸보다 세 배가 더 넘도록 불효한다는 통계를 뒤집어서 생각하면 아들이 늘 가까이에서 모신다는 뜻이다.
효도는 아니다. 자식 된 도리와 의무, 책임감이기 때문이다.
결론한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면?
국 엎질러 치마 버리고, 속살 데이고, 손가락 다치게 마련이다.
날마다 밥하며, 빨래하며, 일하는 며느리는 욕이나 처먹게 마련이다.
노인네를 봉양하지 말자, 잘못한 것만 기억되어서 욕이나 바가지로 처먹는 짓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통계이다.
진실을 왜곡한 엉터리 통계다.
위 통계처럼 딸이 아들보다 학대를 1/3수준도 안 되게 한다면 딸한테 노부모를 모시게끔 하는 법적제도를 강구해야 할 게다.
효심이 지극한 딸, 시집간 딸이 친정부모를 모시면 노인복지가 크게 오를 것이다.
나는 예순한 살에 퇴직해서 아흔 살인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엄니는 아흔일곱 살이 된 지 며칠 뒤인 2015년 2월 25일에 먼 여행 떠났다.
내게 남은 것은 누이들의 비난만 남았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내 누이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예정이기에.
나는 어머니한테 변명 한마디도 못한 채, 불효막심한 놈으로 인식되었다.
둘째딸인 여동생 핸드폰 속에 엄니의 목소리가 녹음되었다고 누나는 조금 들었다며 나한테 귀띔했다.
뇌병변으로 응급실로 모신 뒤에 시집간 누이들한테 연락했던 결과는?
나는 후레자식이 되었다.
'늙은 부모를 모시지 말라, 알아서 하라'고 팽개치자.
명절 때에나 한 번 다녀가서 생색은 다 내자. 과자 빵 몇 봉지, 돈 몇 푼이면 늙은 부모 꼬시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정말로 어쩌다가 명절 때 만나는데 좋은 덕담, 듣기 좋은 소리만 내다가 슬며시 일어나서 차 타고 가면 그뿐인 것을.
뒷처리는 못난이 자식이나 하겠지. 앗차 실수하면 나중에 온갖 비난을 다 받아야 하고...
늙은 부모가 대접받으려면 돈이 흥청망청 있거나 아니면 아예 한 푼도 없어야 한다.
쥐꼬리보다 조금 긴 것을 남기면 자식들 싸움이나 일어난다. 사위까지 설치는 꼬라지가 연출된다.
혐오한다, 나는.
늙은이, 늙은것들을. 무뇌충, 벌레들이나 되어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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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내 어머니는 2015. 2. 25. 집나이 97살(만나이 95살이 된 지 며칠 뒤) 지구를 떠나셨다.
2024년 3월인 지금 어머니와 헤어진 지도 만9년이 넘었다.
일생동안 인생 그 자체가 기구했던 어머니.
어머니한테는 아들이 하나뿐인 나.
올봄에 고향에 내려가거든 서낭당 앞산에 있는 무덤에 들러서 절 올려야겠다.
충남 보령시 무창포해수욕장이 멀리 내려다보이고, 대천해수욕장, 원산도, 더 멀리는 외연도로 가는 바다도 보이겠지.
솔바람소리 웅웅~거리는 산말랭이에 올라서 이제는 결코 만날 수도 없는 '그때 그시절'의 엄니를 떠올려야겠다.
'어머니'
속으로 나직이 불러봐야겠다.
2024. 3. 17. 일요일.
첫댓글 가슴아픈 실화입니다
과연 정답이 뭘까?
요즘은 거의가 요양원 에서 마지막생을 맞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리 멀지많은 현실이기에 먹먹하네요
댓글 고맙습니다.
'요양원에 모신다'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하나요?
제 경우 세 누이들은 동전 한닢도 지불하지 않았지요.
기타 병원비이며, 장례비용이며... 등에서 한푼도 내지 않았던 세 딸이었지요.
그런데도 그녀들은 효녀이며, 아들 하나뿐인 나는 불효막심한 놈이나 되어 ...
내가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요?
요양원에서 제대로 보살펴 주나요?
저는 어머니를 모신 지방종합병원 중환자보호실에서 먹고 자면서 하루 면회 4차례를 꼭 지켰지요.
요양원에서도 보호자를 기피합니다.
보호자가 오래 머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대요.
대부분 종합병원에서 모셨지요.
올봄 고향에 가거든 앞산 서낭댕이에 올라서 아버지 어머니 합장 무덤에 절 올려야겠습니다.
저는 부모한테 받기만 했지 되돌려드린 것이 거의 없기에 이렇게나마 절이나 올리겠지요.
찾아뵙고, 여름철에 인부 사서 풀 깎고, 제사 차례 지내고.... . 이게 다 돈이지요.
둘이 살때는 한사람이 아프면 나머지 한사람이 간호를 하면 되는데
한사람만 남았을때가 문제예요 그래서 자식들이 옥신각신하는걸 많이 봤어요
댓글 고맙습니다.
저는 자식 4명. 2녀 2남을 두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식은 딱 한 명만 낳자'.
자식이 둘 이상이면 나중에 재산싸움이나 하겠지요.
제 어머니는 그래도 건강했는데도 여든다섯 살 이후부터는 치매증상이 오고....
공연히 픽픽 쓰러져서 머릿통을 깨뜨리고 응급차를 불러서 병원에 가야 되고,
'오빠는 뭐했어'라면서 병원에 온 누이들이 폭언하고...
해마다 나이 많아지는 저도 앞날 일을 벌써부터 걱정하지요.
혹시라도 심각하게 아프면 누가 간병할 것이며,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데?
제가 겪었던 경험으로는....
노인이 건강하게 사시다가 2 ~3일간만 잠깐 아픈 뒤에서야 이 세상을 떴으면 합니다.
물론 재산은 장사 치룰 만큼만 조금만 남겨야겠지요.
재산이 많으면 자식 간에 상속재산 다툼이 생기니까요.
구구절절 저와 비슷한
경우이십니다
저가 시골 사시는어머니
25년간 같이 살면서
주1회 목욕탕 모시고
탄고 5일장 가시면
뒤에 따라 다니면서
짐들고 모시고 다니고
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생전에 맏아들인
저에 대한 섭섭한 말씀을
손자인 조카에게 남기신걸
알게 되었지요
저는 7 남매인데
항상 막내동생을
데 챙기시던 것등
님 말씀처럼 같이 살면서
잘 해도 일년에 한,두펀
와서 용돈 몇만원 주는
자식은 효자로 알고
가신 분이었지요 ㅎ
님은 7남매의 맏아들.
어머니와 25년을 사시면서 돌보셨는데도 님의 어머님도 ....
'일년에 한,두 펀 와서 용돈 몇만원 주는 자식은 효자로 알고 가신 분이었지요'
저도 그랬지요.
제 눈 앞에서 어리적거리다가는 펑 쓰러져서 머리통을 깨뜨린 어머니.
눈앞이 캄캄한 상황. 읍내에 택시를 불러서 외지에 있는 큰 병원 응급실로 황급히 이동.
연락받고 온 딸 3명.
특히나 대전 사는 막내여동생은 2년이 넘도록 전화 한 통조차도 없었는데 병원에 와서는
'오빠는 뭐했어? 농사 짓는 게 그렇게 중요해? 어머니를 늘 지켜야지.' 라고 심하게 비난하대요.
어머니는 만 2년만에 만난 막내딸 등 세 누이 앞에서 아들을 험구하대요.
그것도 하나뿐인 아들의 잘못을 딸들한테 일러바치대요.
숱한 이야기가 더 있겠지요.
제가 얻은 경험은 '부모를 직접 모시지 마라, 어쩌다가 한 번 찾아가서 용돈, 선물이나 하라'.
그러면 부모님한테는 '그 자식이 가장 효자 효녀'이다. 남한테 자랑하신다.'
'어머니' 소리만 들어도 저는 작아지고 움츠러 듭니다.
살아계실 때 효도 한 번 못한 망나니였기에 말입니다.
오늘도 어머니 생각에 눈물집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저한테도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이지요.
어머니는 쌍둥이를 뱃속에 10달 배서 낳아서 젖 물려서 키웠지요.
저는 '부모'라는 말 대신에 '모부'라고 말하지요. '어머니 아버지'의 한자말이 '모부'
그런데 인터넷 어학사전 등에는 '모부'라는 한자말은 없습니다.
예.
부모님한테 받은 은혜는 부모님한테도 되돌려드리지는 못할 겁니다.
대신에 자식한테 물려주어야겠지요.
저도 아버지한테서 받기만 했지 갚지 못했지요.
어머니한테는 조금 갚는 흉내를 냈지요.
부모에 대한 은혜는 자식한테 넘겨야겠지요.
자기 부모한테 직접 다 갚는 자식은 없을 겁니다.
공부 잘하고, 건강하게 자라고,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고, 잘 사는 게 어버이한테서 진 빚을 갚는 것이지요.
어머니 아버지보다 더욱 잘 살고, 사회에서 활동하는 등 출세하는 길이 곧 효도입니다.
장수하신
어머님
늘 그립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에 공부한다면서 어머니와 헤어져서 객지로 나갔지요.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에나 시골에 내려와서 엄니와 함께 살았지요.
퇴직한 뒤에서야 내려간 고향.
어머니는 너무나 늙으셨대요. 집나이 아흔 살. 치매기가 진행 중이고...
몇 해 엄니와 둘이서 살았지요.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치매기 진행 중이었기에 당신이 방금 전에 한 행동을 잊고는....
엄니 종합병원에 입원시키고는 저도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지요.
밥 얻어먹고, 빨래는 화장실에서 주물럭거려서 빨아 입고, 엄니 곁에서만 머물려고 했지요.
그 엄니는 억세게 추워서 눈 내리는 2월 말에 지상을 떠나셨고,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어머니의 첫딸, 첫아들, 셋째아들인 쌍둥이, 그리고 남편, 친정부모님 형제 자매들을 다시 만나서 우주 저너머로 여행 다니실 겁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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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고맙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부모를 모시는 자식이 진짜로 효자 효부가 되겠지요.
하지만 현실은 어쩌다가 들리는 자식이 효자 효부가 되겠지요. 선물 꾸러미 몇 개, 용돈 몇푼으로도 크게 생색내니까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치매걸린 부모를 모시려면 얼마나 화가 나고 짜증이 날까요?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만을 기억해서 어쩌다가 들리는 자식한테 일러바치겠지요.
자식 둘 이상이면 훗날 재산상속으로 크게 다툽니다.
현행 민법의 재산상속비율은 남녀 구분 없이 모두 똑같지요.
그런데도 집안일 행사에는 아들이, 형이 돈을 더 내야 하지요.
특히나 부모의 병원비, 초상 장사비, 묘지 관리비 등은 누가 부담할까요?
'자식은 딱 하나만 낳자'로 귀결합니다.
님의 맘 저도 겪어 압니다.
혼자인 제가 홀로 시골에 홀로 사시다가 거동 불편해 하셔서
저와 같이 지내시며 병원과 집을 오가며 5년을 사시다가 가셨는데
전에 살갑던 우리 모자 사이는 앙숙이 되고,
다른 자식들한테 푸념도 많이 하셨지만
다행히도 누구 하나 엄마 편이 없었어요.
편들다가는 자신이 모시게 될까 봐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