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덴바움 왕조 하에서는 최후의 사회질서유지국장이었으며 로엔그람 왕조 최초의 내국안전보장국장인 하이드리히 랑은 오베르슈타인에게 치안 유지 시스템(실질적으로는 비밀 경찰)의 존재의의를 설파하면서 민주공화주의가 말하는 다수결의 허점을 짚어보겠다며 이런 말을 합니다.
랑은 100에서 51을 점하면 다수결이라 할 수 있으나 51이라고 반드시 모두 단합되어 있지 않아 이 51 내에서 26만 차지할 수 있다면 소수쪽도 얼마든지 다수를 점하고 나아가 100을 차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실 실제로 민주주의 하에서는 랑이 말하는 방식의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민주주의 체제는 군주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른 민주공화제와 입헌군주제가 유명하지만(한국은 민주공화제 일본은 입헌군주제) 정부 형태에 따라 대통령제, 내각책임제 그리고 둘을 섞은 이원집정부제로도 나뉩니다. 그리고 오늘 얘기해볼 주제는 내각책임제입니다.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국가원수와 정부수반이 한 사람에게 있는가 나뉘어져 있는가와 정부수반을 국민이 선출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등이 있습니다. 내각책임제 하에서 국가원수와 정부수반은 분리된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의 권력은 정부수반에게 있어 국가원수보다는 정부수반이 실세이며(그래서 입헌군주제 국가는 대부분 내각책임제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거의 다 입헌군주제의 탈을 쓴 전제군주제 국가들 뿐입니다.) 정부수반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고 의회에서 선출합니다.
이렇게 의회에서 정부수반을 선출하다 보니 의회에서 과반(50% 이상)을 확보해야 정부수반을 선출하고 또 그와 함께할 각 부처 장관들을 임명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여소야대가 나올 수 있지만 내각책임제에서는 여소야대가 나온다면 내각이 '내각불신임'에 의해 무너지기 때문에 여소야대가 나올 수 없습니다.(사실상 여소야대가 내각의 사형선고)
당연히 내각에서는 과반을 확보하고 유지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제1당이 단독으로 51%를 차지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으나 제1당이 제1당이긴 한데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이 경우 제2당, 제3당 등이 연합한다면 제1당이 내각을 확보하는 것을 훼방놓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때 등장하는게 연정입니다.
제1당은 뭔 수를 써서라도 내각을 수립하고 집권해야 하니 이 경우 제2당, 제3당 등 중에서 자기랑 정치적으로 타협이 가능한 당이랑 보통 "나를 지지해주면 당신네들에게도 내각에 한 자리씩 주겠다" 식의 딜을 걸고 상대쪽에서 이에 호응하면 그 당은 제1당 지지자인 동시에 그 당의 의석은 곧 제1당이 수립할 내각의 의석이 되는데 이 때 50%가 넘게 되면 비로소 내각 성립이 가능해지며 집권하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탄생한 내각을 연립내각이라고 합니다.
즉 하이드리히 랑 말마따마 의회 내에 반대자가 51%라고 해도 어떻게든 내쪽을 51%를 만들기만 하면 장땡인 것이 내각책임제로 반대로 연립내각에 참여한 정당들끼리 분열이 발생해 연정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다시 과반 아래로 떨어지므로 기존 야당+연정에서 이탈한 당이 합심해 내각불신임을 해서 내각을 끝장내버립니다.
이런 식의 내각책임제 체제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최대 다수로 오히려 대통령제 국가치고 제대로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나라는 미국, 한국 정도에 불과하며 절충형인 이원집정부제까지 더해도 내각책임제 국가가 더 많으며 대통령제 국가도 내각책임제적 요소를 넣기도 합니다.(대한민국의 경우 대통령제지만 미국과 달리 부통령이 없습니다.)
다만 내각책임제는 결국 51%를 차지하는게 내 힘만으로든 남의 힘을 빌려서든 상관없고 많은 나라들이 시행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내각책임제에서는 인류 최악의 독재정권인 '나치 독일'을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나치당은 민주주의의 허점을 공략하며 집권했는데 당시 내각책임제였던 독일(바이마르 공화국)이었기에 마찬가지로 의회 내에서 51%를 차지해야 했으나 나치당은 의회를 무력화시키는 수권법이 통과되는 그 날까지 단독집권에는 실패했습니다. 수권법 통과 당시에도 나치당의 국회의석은 43% 수준으로 과반에 미치지 못했으나 나치당은 연정을 통해 국가인민당(인민이 붙었지만 우익정당입니다.)과 연합해 집권할 수 있었고 그 상태에서 수권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또한 정당들간에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내각이 성립되는 것이 힘들어 내각 없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는데 이 분야의 극단적으로는 벨기에가 해당되며 벨기에는 내부에서 언어별, 민족별, 지역별 갈등이 끊이지 않는 나라고 정당들도 각 언어, 민족, 지역을 대표하기에 정당들 간의 합의가 영 잘 이뤄지지 않는 나라입니다. 이러다 보니 내각 구성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 기간이 유별나게 긴 경우도 존재해서 2010~2011년과 2019~2020년의 무정부 사태가 그것입니다.
2010~2011년은 총리 사임일 기준으로 무려 589일, 2019~2020년에는 총리 사임일 기준으로 649일이나 새 내각이 구성되지 않았는데 이 사태에 대해 벨기에 현지 언론에서는 무정부 사태라고 불렀지만 그렇다고 전쟁 중이라 제대로 된 정부가 없는 무정부 사태와는 달라서 내각은 없지만 임시 총리가 총리의 일을 어느정도 해서 기능적으로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와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또 어차피 원래부터 갈등이 잦았던 벨기에였기에 기간이 극단적으로 길어졌을 뿐 이러한 일은 자주 있는 일이라 이미 이런 공백사태에 익숙해져서 별 문제는 없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