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이 게임을 해본 적이 없어, 딱히 남들처럼 게임에 대한 추억도 없이 <드래곤 퀘스트 유어 스토리>를 보았다. 아주 천연덕스러우면서 아기자기하게 '게임적' 스토리를 풀어가고 있었다. 3D 애니메이션은 수준 높았고, 연출도 꽤 좋았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상당히 잘 만들어진 작품어서 즐겁게 보았다.
마지막 10분 전까진...
이야~ 이런 갑분싸라니. ㅎㅎㅎ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평이 최악이다.
다들 똥 먹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니가 몰입해서 본 모든 것은 다 허상이었다는 결론이니까.
사실은 도저히 용납 못 할 정도의 메시지는 아니었다. 감독의 고뇌도 얼핏 이해가 됐다.
게임은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지나치게 의식한 상태에서 "게임 속 인생은(드래곤 퀘스트는/그 추억은) 그냥 게임이 아니라 우리 현실과 함께 해야 할 소중한 추억이다"라는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름답다기 보단 궁색한 과잉 방어기제로 보인다. 그 정도로 게임의 비현실성이 걱정스러웠다면 왜 이런 스토리를 썼을까? 아얘 쓰질 말던가, 아니면 게임적 스토리가 아니라 게임 속의 이야기를 쓰면 될 것을? <아벨 탐험대>처럼 말이다. 혹은 <스타워즈>처럼. 멀고 먼 우주 너머 어느 별에서 벌어진 실제 이야기라고 주장하며 현실적 전개를 해도 되지 않았을까?
게임 속 이야기가 아니라 게임적 이야기를 그려낸 것은 그들의 창작력이 고갈되었음을 의미한다. 게임 속 이야기는 진짜 인간 드라마를 그려야 하지만, 게임적 이야기는 게임 속 클리셰를 조립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완성도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제작진이 '게임적' 이야기를 만든 이유는 선택이라기보단 필연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일본의 작가진이 현실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점차적으로 진실된 인간 드라마에 대한 창작력을 잃어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이 작품은 가히 연구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궁지에 몰리고 몰린 현대 일본 남성의 '트라우마'가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라고 본다. "그 나이 쳐먹도록 게임이나 하고 있냐? 현실에서 니 인생을 살아라!" 하는 준엄한 현실의 꾸짖음을 일본 남성은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선 채 울먹이고 있는 듯 하다.
나는 이 문제가 게임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들이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데 있다. 현실과 함께 게임을 즐겨야 하는데, 현실은 없고 게임만 있다. 성인으로서 직장생활을 한다고 해서 그게 현실을 사는 것이 아니다! 현실 속의 문제를 고뇌하고 거기에 참여해야 한다. 더 좋은 정치를 고민하고 더 훌륭한 인격의 도야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그런 현실적 삶의 태도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이렇게 현실을 등지고 하는 취미생활은 뭐든지 인간을 옹색하게 만든다. 명나라 황제 천계제는 정치를 등지고 목공예를 하며 놀았다고 한다. 게임이 아니니 괜찮았을까? 옹색한 인간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첫댓글 결말이 궁금하네요 ㅎ
나름 재미있습니다. 갑분싸만 각오하면...ㅋㅋ
일본애들이 훈계하는 거 정말 좋아한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같은 주제라도 다른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었는데 굳이 갑분싸하는 훈계질로 마무리...ㅋ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3D애니메이션은 잘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