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09일 (수)
제목 : 제자의 덕목
오늘의 말씀 : 누가복음 17:1-10 찬송가: 218장(구 369장)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중심 단어: 실족하게 하는 것, 용서, 믿음, 종
주제별 목록 작성
실족하게 하는 것
1절: 세상에 없을 수는 없음/ 실족하게 하면 심판을 받음
2절: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심
3절: 실족하게 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함/ 이미 실족하게 한 사람은 책망해야 함/ 그가 회개하면 용서해야 함
도움말
1. 작은 자(2절): ‘나이가 어린 아이들,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으로 보잘것없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2. 실족하게(2절): 새나 짐승을 사냥하기 위해 준비한 덫이나 함정을 말한다. 영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거짓말로 유혹해 죄악에 빠뜨리는 악행을 뜻한다.
3. 연자맷돌(2절): 이 돌은 당나귀가 돌리는 맷돌로 지름이 150cm 정도 되며 무게도 1톤이 넘었다고 한다.
말씀묵상
용서
다른 사람을 유혹하고 죄악에 빠뜨리는 일은 본래 사탄에게 속한 일입니다.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세상에 실족하게 하는 일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1절).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실족하는 것을 마음 아파하시며 다른 사람을 유혹하여 죄악에 빠뜨리는 죄를 결코 가볍게 보지 않으십니다. 비록 그 대상이 당시에 하찮게 여겨졌던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차라리 무거운 돌과 함께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을 정도라고 말씀하십니다(2절).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누군가를 실족하게 하는 일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주의해야 합니다(3절). 더 나아가 주위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도 살펴야 합니다. 만약 형제 중 하나가 하나님을 떠나 유혹의 늪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면 그를 찾아가 책망할 수 있는 적극성이 필요합니다. 또한 유혹의 늪에서 빠져나와 다시 천국의 길을 가기 원하는 자를 용납하는 마음도 필요합니다(4절).
믿음과 충성
제자들은 예수님께 믿음을 더해 달라고 부탁합니다(5절). 즉 그들은 양적인 시각에서 더 큰 믿음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6절)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이라면 기적을 낳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뒤이어 예수님은 ‘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종은 주인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주인의 말에 전적으로 순종합니다. 하지만 종은 주인에게 어떤 칭찬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9-10절). 이런 종의 모습을 ‘충성’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충성과 믿음은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제자의 덕목입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실족하게 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예수님께서 믿음의 표본으로 제시하신 것은 무엇입니까(5-6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충성과 믿음의 덕목을 갖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2. 여러분이 실족하게 한 사람은 없는지 돌아보고, 하나님께 형제를 용납하는 마음을 구하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주님은 오늘 나에게 무슨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할 일은 많고 마음은 분주한데 그냥 일어설 수가 없다. 주님과 만나지 않고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생각 때문이다. 주님과 만나는 시간이 매일 매일 기대가 되고 기쁨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때로는 오늘 같이 의무가 되고 율법이 될 때 내 안에 기쁨과 기대는 사라지고 불편한 마음으로 채워지게 된다.
이 말씀을 붙들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롬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 안에 시간이 ‘허비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워진다.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라고 말씀하시자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고 간구한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기에 자신들이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큰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겨자씨 한 알만한 작은 믿음만 있어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왜 우리는 큰 믿음이 있어야 큰 일을 감당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렇게 놀라운 기적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사실 주님은 우리가 큰 일을 행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믿음으로 큰 능력을 행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으신다. 먼저 주님을 믿는 믿음이 내 안에 있는가?를 물어보신다. 그 믿음으로 주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없다고 생각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허락하신다. 내 앞에 와서 회개하는 영혼도 용서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오늘 큰 믿음을 구하면서 그 믿음이 어디에서 나타나길 간구하고 있는가? 뽕나무가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는 능력이 아니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간구하고 있는가?
그리고 주님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보상심리’를 버리고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내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이기 때문에’라는 전제로 그들은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 그 행한 일로 보상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갈등하는 부분이 아닐까?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내가 이렇게 충성했는데, 내가 이렇게 헌신했는데...
그래서 그런 보상이 따르지 않으면 분노하게 된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마땅히 대접받고 존경받을 권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대제사장에게 그 권리를 포기하라고 하면 누가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보상심리’가 발동하면 충분한 보상이 없을 때 분노하게 된다. 그때 마귀는 그 마음에 틈을 타서 들어와 관계를 파괴하고 믿음조차 빼앗아가게 된다. 가롯 유다에게 들어왔던 그 마귀는 바로 ‘섭섭이’라는 마귀였다.
주님은 오늘 나에게 묻고 계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넌 내일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느냐?’
사랑의 주님. 아무도 보지 않아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과 만나는 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키려고 애를 써 보지만 여전히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옮기지 못하고 만나고 있음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시간에 감동을 주셔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것조차 버리겠습니다. 내가 이 시간을 내어 드렸으니 마땅히 이런 은혜를 제가 원하는 때 빨리 주셔야 마땅하다는 생각조차 버리겠습니다.
오늘도 저의 권위를 내려놓고 주님의 주권 아래 순복하며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기다릴 줄 아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그 속에서 주님을 깊이 만남으로 좀 더 성숙해 지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