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장훈 칼럼] 지지율 하락과 내러티브의 빈곤
중앙일보
입력 2022.07.15 00:38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윤 정부 초반 위기는 소통 위기
정책을 전달하는 내러티브 빈곤
내러티브에 위기의식을 담아야
청년 참모에게 내러티브 맡기자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한 문장. 공직자의 소신을 강렬하게 담은 이 한 마디는 윤석열 검사가 9년 후 대통령에 오르는 드라마의 출발점이 되었었다.
간결하고 강렬하게 소신을 피력하던 윤 대통령의 언어는 올 여름 들어 흔들리고 있다. 일부 장관 지명자들에 대한 언론과 민심의 따가운 비판 앞에서 대통령은 잠시 평정심을 잃었다. 자제력과 설득력이 주춤하는 모습은 시민들에게 뿐만 아니라 워싱턴과 베이징에서도 예민하게 포착되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겉돌기 시작하면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은 초반부터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가 눈부신 속도의 사회임은 분명하지만, 60일의 성과로 모든 걸 재단하기에는 다소 이르지 않을까?
윤 정부가 짊어진 역사적 좌표를 생각하면, 실패는 단지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윤 정부의 실패는 수년간 흔들려온 법치와 민주주의가 아예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윤 대통령이 시민들 살림살이를 옥죄는 극심한 인플레를 잡지 못한다면, 증오와 극단의 정치의 문은 활짝 열릴 것이다. 20세기 초반 바이마르 독일의 비극적 역사에서 보았듯이, 극심한 인플레는 사람들 마음 속의 어두운 충동을 부추긴다.
초반의 혼돈을 수습하기 위한 윤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대통령스러운 내러티브를 복원하는 것이다. 사진이 아무리 예뻐도 인스타그램 조회 수가 나와야 좋은 사진이듯이, 대통령의 정책 노력도 내러티브를 통해 민심과 접속할 때에만 그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다. 노력과 인정은 별개인 셈이다.
세 가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①경제, 안보, 공공부문 개혁 등 여러 전선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 정부의 정책들을 간결하게 전달하는 통일된 내러티브가 고안되어야 한다. ‘문제는 경제야’처럼 간결한 내러티브가 개발되어야 하고, 대통령 메시지는 이 내러티브 안에서 일관되게 반복, 변주되어야 한다.
②보통사람들이 자신들 삶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판단과 대통령의 현실 판단이 수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내러티브만이 지지율을 되돌릴 수 있다. 최근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대통령과 보통사람들의 현실 판단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줬을 뿐이다.
③새로운 내러티브의 개발은 대통령실의 가장 젊은 스태프들에게 맡겨야 한다. 대통령실의 숱한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들은 어떤 면에서는 유능한 인물들이겠지만,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언어와 라이프 스타일 혁명의 국외자들일 뿐이다.
먼저 정책 내러티브부터 살펴보자. 사실 윤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굵직한 정책을 숨 가쁘게 결정해왔고,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는 분야도 있다. 수도권 부동산은, 금리 인상과 자산 거품에 대한 우려 때문이기도 하지만, 뚜렷하게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지난 정부가 미래세대에게 떠넘기는 천문학적 규모의 빚잔치를 멈춰 세우고, 윤 정부는 공공부문의 허리띠 졸라매기를 주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의 정책 수행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는 계속 하향세이다. 문제의 핵심은 여러 정책들의 의미를 전달할 중심 내러티브가 빈곤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대통령의 여러 정책들의 의미를 평가해주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공포,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공급망의 꼬임과 원자재값 폭등, 미중 반도체 전쟁이 중첩된 위기 속에서, 윤석열 정부가 몰두하고 있는 일은 모두 ‘위기 관리’이다. 다발적으로 터지는 빨간불에 대응하느라 분주하면서도 정작 시민들에게 위기 상황과 대응을 전달하는 내러티브는 매우 부실하다. 초반 위기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내러티브 빈곤의 두 번째 측면은 보통 시민들의 판단에 눈높이를 맞추는 언어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일부 장관 후보자들의 각종 의혹과 일탈 등이 문제시될 때, 시민들의 비판은 자신들의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매일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치르면서 체득한 생활세계의 판단을 대통령이 헤아리지 못할 때, 대통령의 말은 허공을 맴돌 수밖에 없다.
셋째, 윤 대통령의 주요 참모들이 대부분 서오남으로 짜여져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제라도 대통령실의 내러티브 TF는 젊은 세대가 주도하도록 재정비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봐오던 구색 맞추기식 청년 기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나는 윤 대통령 개인에 충성하지 않는다.” “헌법가치, 윤 정부의 역사적 의미에만 충성”하겠다는 각오를 가진 젊은이들부터 삼고초려 해야 한다. 주변 인물들의 사천(私薦), 화려한 스펙으로 승부하는 청년들의 기용으로는 지리멸렬한 메시지를 벗어날 수 없다.
9년 전 윤 대통령의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돌이켜 보면 이는 한국 정치의 한 변곡점이었다. 그 때의 자세를 돌아보며, 대통령의 메시지부터 추스를 때 임기 초반의 동요는 진정될 수도 있다.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