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4 예수를 만나면~ 시 139:1-6, 13-18; 삼상 3:1-10; 고전 6:12-20; 요 1:43-51
어느 날 율이가 퀴즈를 냅니다. “아침에는 네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 무엇일까요? 사람입니다. 아시는 분도 모른 척 한 번만 더 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침은 네발로 걷거나 기어 다니는 아기를 말합니다. 점심은 두 발로 걷거나 뛰어다니는 젊은 사람이고, 저녁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노인입니다. 아직 지팡이를 짚지 않는다면, 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율이의 퀴즈는 사람의 생물학적 단계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신앙에도 단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의심하는 단계, 그 후에는 강력한 믿음에 의한 실행의 단계, 그리고는 대충, 그러나 내공에 의한 안정감이나 평안함의 단계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신학교 입학 할 때는 불덩이 목사이지만, 졸업할 때는 숯덩이 평신도가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목사가 되려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웠습니다. 하나님께 만나 달라며, 감히 협박도 해보았습니다. 여름이었지만 추운 새벽, 갑자기 섬광이 지나가는데, 로마서 1장 1절입니다. 몇 사본에 따르면, “택정”, “세우심”, “특별한 사명” 등으로 표현합니다. 그렇게 정체성을 확인한 그 후로 정말 불덩이가 되었습니다.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고, 오롯한 확신뿐이었습니다. 암 환자에게 일어나라고 하였고, 죽어가는 송아지에게 살아나라고 하였습니다. 때로는 확신이 위험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돌아보면, 그때는 내공이 쌓이기 전 단계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한 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딱 그만큼 이었습니다. 꽤 시간이 흐른 오늘, 그때 그 시간은 신앙의 한 단계였습니다.
복음서 본문은 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행동을 기록합니다. 그들의 변화가 놀랍습니다. 처음에 빌립이 등장합니다. 예수는 그저 “따라 오라” 한마디뿐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데는 여러 말이 필요하지 않는가 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예수에게 풍기는 이미지가 어떠하길래, 따라서 오라는 단 한마디에 전실존을 걸 수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준비된 빌립 같습니다. 강력한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메시아를 언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기다림, 그에 대해 준비된 자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단 한마디에 감히 따르기 힘든 일일 것입니다. 두 번째 등장하는 나다나엘을 만나서 전하는 빌립의 말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율법 책에 기록하였고, 또 예언자들이 기록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습니다. 그분은 나사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입니다.” 빌립의 말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모세가 율법 책에 기록하였고, 또 예언자들이 기록한 그분”입니다. 이스라엘에 모세의 율법 책과 예언자의 기록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최고의 권위입니다. 구원과 직결된 부분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바로 그분, 예수가 메시아라는 고백입니다. 두 번째는 “그분은 나사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이라는 부분입니다. 예수의 출신 성분을 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시골, 변방의 평범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백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번째 만난 나다나엘의 말에서도 그것이 놀라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가난한 시골, 변방, 억눌리고 소외된 곳, 모든 가능성이 차단된 곳, 역사적으로 누적된 버림받은 곳이라는 방증입니다. 그런 곳, 그런데 사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의 아들이 메시아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예수를 만나자, 엄청난 고백을 한 것입니다. 아직 만나지 못한 나다나엘은 응당 코웃음 칠 수밖에 없습니다. 나사렛에 무슨? 그러나 예수를 만나자 그도 깜짝 놀라운 변화를 겪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도대체 예수에게서 풍기는 이미지, 느낌이 어떠할까요? 가능성이라고는 1도 없던 상황에서의 대반전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이것이 주현절의 의미일까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나는 절기, 우리의 눈이 가려져 있지만, 성령에 의해 재탄생하는 순간일까요? 믿음의 변화되는 단계일까요? 긴가 민가 하는 의심에서 확신의 단계일까요? 예수를 만나고 그들의 내일,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사무엘상 본문은 어린 사무엘이 주님과 만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아직 주님과 만난 경험이 없었기에 여러 번 “사무엘아”하고 부르지만, 주님의 소리인지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여러 번 주님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사무엘은 훗날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선지자 중 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본문에 바울은 말합니다. “여러분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변화와 권면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와 책임, 은혜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으로의 재탄생.
예수와 부를 등식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오늘이기에 예수와 함께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녹록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나왔습니다. 가장 가난한 곳, 가장 소외된 곳, 가장 외딴곳, 시골, 변방, 인간의 상상 너머에서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가 만난 사람, 그를 통해 변화된 사람, 그들이 세상의 구원자입니다. 녹록지 않은 세상에서 항상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유혹 앞에 겸손을 배웁니다. 예수를 만나고, 예수와 함께 세상에 생명 정의 평화의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시편 본문으로 우리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시 139:1-6, 13-18
1 주님, 주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2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3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4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께서는, 내가 그 혀로 무슨 말을 할지를 미리 다 알고 계십니다.
5 주께서 앞뒤를 둘러싸 막아 주시고, 내게 주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6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13 주께서 내 속 내장을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14 내가 이렇게 태어났다는 것이 오묘하고 주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영혼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압니다.
15 은밀한 곳에서 나를 지으셨고, 땅 속 같은 곳에서 나를 조립하셨으니 내 뼈 하나하나도, 주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16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주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나에게 정하여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17 하나님, 주의 생각이 어찌 그리도 2)심오한지요? 그 수가 어찌 그렇게도 많은지요?
18 내가 세려고 하면 모래보다 더 많습니다.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240114 시 139:1-6, 13-18; 삼상 3:1-10; 고전 6:12-20; 요 1:43-51
시 139:1-6, 13-18
1 주님, 주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2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3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4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께서는, 내가 그 혀로 무슨 말을 할지를 미리 다 알고 계십니다.
5 주께서 앞뒤를 둘러싸 막아 주시고, 내게 주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6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13 주께서 내 속 내장을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14 내가 이렇게 태어났다는 것이 오묘하고 주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영혼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압니다.
15 은밀한 곳에서 나를 지으셨고, 땅 속 같은 곳에서 나를 조립하셨으니 내 뼈 하나하나도, 주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16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주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나에게 정하여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17 하나님, 주의 생각이 어찌 그리도 2)심오한지요? 그 수가 어찌 그렇게도 많은지요?
18 내가 세려고 하면 모래보다 더 많습니다.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삼상 3:1-10
1 어린 사무엘이 엘리 곁에서 주를 섬기고 있을 때이다. 그 때에는 주께서 말씀을 해주시는 일이 드물었고, 환상도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2 어느 날 밤, 엘리가 잠자리에 누워 있을 때이다. 그는 이미 눈이 어두워져서 잘 볼 수가 없었다.
3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주의 성전에서 잠자리에 누워 있었다. 이른 새벽,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환하게 밝혀져 있을 때에,
4 주께서 1)"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그는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고서,
5 곧 엘리에게 달려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도로 가서 누워라" 하고 말하였다. 사무엘이 다시 가서 누웠다.
6 주께서 다시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얘야,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다. 도로 가서 누워라" 하고 말하였다.
7 이 때까지 사무엘은 주를 알지 못하였고, 주의 말씀이 그에게 나타난 적도 없었다.
8 주께서 사무엘을 세 번째 부르셨다.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엘리는, 주께서 그 소년을 부르신다는 것을 깨닫고,
9 사무엘에게 일러주었다. "가서 누워 있거라. 누가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주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이 자리로 돌아가서 누웠다.
10 그런 뒤에 주께서 다시 찾아와 곁에 서서, 조금 전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고전 6:12-20
12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에도 제재를 받지 않겠습니다.
13 3)"음식은 배를 위한 것이고, 배는 음식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 몸은 음행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주님은 몸을 위하여 계십니다.
14 하나님께서 주님을 살리셨으니, 그 권능으로 우리도 살리실 것입니다.
15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6 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4)"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7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영이 됩니다.
18 음행을 피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자기 몸 밖에 있지만, 음행하는 사람은 자기 몸에다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19 여러분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여러분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20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요 1:43-51
43 다음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떠나려고 하셨다. 그 때에 빌립을 만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44 빌립은 벳새다 사람으로,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고을 사람이었다.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나서, 말하였다. "모세가 율법책에 기록하였고, 또 예언자들이 기록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습니다. 그분은 나사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입니다."
46 나다나엘이 그에게 말하기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니, 빌립은 그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아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
48 나다나엘이 예수께 물었다.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49 나다나엘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5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내가 너를 보았다고 해서 믿느냐? 이것보다 더 큰 일을 네가 볼 것이다."
51 예수께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11)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