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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大陸) 태생(胎生)의 고려왕조(高麗王朝)
<2015년(年)>의 해가 밝았습니다.
○ ‘새해 첫날’부터 조선사(朝鮮史)의 진실(眞實)어쩌고 한다면, “그 양반 참 못 말리는 분이네” 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고리타분한 고서적(古書籍)이나, 원문(原文)이니, 원전(原典)이니 하는 이야기보다는 간편(簡便)하고, 누구든지 알 수 있는 간단(簡單)하고도, 단순(單純)하게 생각되는 몇 가지 『고려사(高麗史)』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고려사(高麗史)는 말 그대로, 고려왕조(高麗王朝)의 건국(建國)으로부터, 망(亡)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당연(當然)하게도, 역성(易姓)혁명(革命)을 성공(成功)시킨, 승리자(勝利者)들에 손에 의해 편찬(編纂)된 것입니다. 따라서 패자(敗者)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고려사(高麗史)”속에 있는 내용(內容)은, 패자(敗者)는 하늘(天)의 노여움으로, 승자(勝者)들을 미화(美化)하고, 하늘(天)로부터 천은(天恩)을 받았다는 많은 설화(說話)나 전설(傳說)을 기정사실(旣定事實)화합니다. 덧붙여 패자(敗者)측의 조그만 불씨라도 아예 씨를 말립니다. 이것은 행성(行星)에 인간(人間)의 군상(群像)들이 우두머리를 정(定)하고 살 때부터, 지금까지도 계속(繼續)이어져오는데, 아예 철칙(鐵則)화해 버렸습니다.
○ 우리나라를 보아도, 새롭게 정권(政權)을 잡은 자(者)들은, 전(前) 정권(政權)을 제물(祭物)로 바칩니다. 정도(程度)의 차이(差異)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를 감안(勘案)하면서, 역사서(歷史書)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려사(高麗史)속에서, 부담(負擔)되지 않는, 상식(常識)처럼 되어있는, 소화(消化)시키기에 좋은, 몇 구절(句節)을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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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高麗史 6卷 / 世家 / 靖宗 / 〔是月築長城於西北路松嶺東以扼邊寇之衝 : 이달 서북로(西北路)의 송령(松嶺) 동(東)쪽에 장성(長城)을 쌓았는데, 변방(邊方)을 노략질하는 자(者)들의 통로(通路)를 누르기 위한 것이다.〕라 하였다.
① 고려(高麗)의 서북로(西北路)는 곧 서북면(西北面)이다. 반도(半島)로 보면 : 평양(平壤)방면(方面)이며, 용만(龍灣)=의주(義州) 쪽이다.
② 대륙(大陸)고려(高麗)로 보면, 역시(亦是) 서북로(西北路)는 곧 서북면(西北面)이다. : 알타이산맥(山脈) 방향이며, 토노번(吐魯番)과 준갈이(準喝爾) 분지(盆地)이며, 더 나아가면 곧 ‘카자흐스탄’의 ‘발하슈 호(湖)’와 ‘아스타나’쪽이다.
➠ 송령(松嶺)이란 지명(地名) 또는 재(嶺)는 어디에 있었는가? 이것은 고금지명대사전(古今地名大辭典)에서 설명(說明)한 것을 보면 : 〔松嶺 - 在奉天省西境,遼河西岸.其脈起於陰山東南岐出. : 송령(松嶺) : 봉천성(奉天省) 서(西)쪽 지경에 있는데, 요하(遼河)의 서(西)쪽 강(江)가에 있다. 그 줄기가 일어난 것은 음산(陰山)이 동남쪽으로 갈라져 나온 것이다.〕라 하였다.
➠ 음산(陰山)은 :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에 의하면, 금산(金山)이며, 벨루하 산(山)이다. 그 한 줄기가 동남(東南)쪽으로 뻗어 내린 것이 소위(所謂) 송령(松嶺)이라는 얘기다. ‘반도(半島)고려(高麗)’란 역사해설(歷史解說)은, 조작(造作)된 허구(虛構)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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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高麗史 3卷 / 世家 / 穆宗 : 〔癸未改西京爲鎬京. : 계미(癸未), 서경(西京)을 호경으로 고쳤다.〕고 하였다. 더하여, 〔是歲鎬京地震.冬十月幸鎬京齋祭.靖宗:十一月丙午朔至自鎬京.顯宗:築西京皇城. : 이해에 호경(鎬京)에 지진(地震)이 있었다. 겨울 10월에 호경(鎬京)에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齋戒), 제사를 지냈다. 정종(靖宗) 11월 병오(丙午) 초하루 호경(鎬京)에 이르렀다. 현종(顯宗) : 서경(西京)에 황성(皇城)을 쌓았다.〕고 하였다.
➠ 서경(西京)이니, 호경(鎬京)이니 하는 이야기는, 우리 카페에 여러 번에 걸쳐, 번역(飜譯)과 해설(解說)을 하였다. 고려(高麗)는 일정(一定)기간(其間) 원(元)나라의 부마국(鮒馬國)으로 있었다고, 역사통설(歷史通說)에서 말한다. 그렇다면 원(元)나라의 역사서(歷史書)인 원사(元史)에서는 뭐라고 기록(記錄)되어 있을까?
➠ 원사(元史)지리지(地理志) : 〔동녕로(東寧路)는, 본시(本是) 고구려(高句驪)의 평양성(平壤城)인데, 장안성(長安城)이라고 하며, 낙랑(樂浪)의 땅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호경(鎬京) 역시(亦是) 장안군(長安郡)에 있으며, 주(周) 무왕(武王)의 도읍지(都邑地)〕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 반도(半島) 평양(平壤)이 서경(西京)일 수 있는가? 반도(半島) 평양성(平壤城)이 장안성(長安城)일 수 있는가? 반도(半島) 평양성(平壤城)에 어떤 황제(皇帝)가 살았으며, 황궁(皇宮) 외성(外城)인 황성(皇城)을 쌓았는가?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 논자(論者)들이여! 이제 친일(親日)을 위한 앞장이 노릇을 그만 하자. 더럽고, 치사(恥事)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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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高麗史 4卷 / 顯宗 : 〔甲午黑水靺鞨阿離弗等六人來投分處江南州縣. : 갑오(甲午), 흑수말갈(黑水靺鞨)의 아리불등 여섯 사람이 와 투항(投降)하자 강남(江南)의 주현(州縣)으로 나누어 살게 하였다.〕하였는데,
➠ 반도(半島) 고려(高麗) 땅에서, 강남(江南)이란 곳은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강남(江南)”지방 속에 주(州)와 현(縣)이 있다는 것은, 주(州)의 상급(上級)행정기관(行政機關)이 있다는 애기며, 그것은 “도(道)”이며, ‘강남도(江南道)’를 말하는 것일 게다.
➠ 압록강(鴨綠江), 대동강(大同江), 두만강(頭滿江), 한강(漢江), 금강(錦江)등등의 남쪽지방은 모두 강(江)의 남(南)쪽인 강남(江南)지방이라 부를 수 있다. 이게 희극(戱劇)이다. 강남(江南)이란 말에서, 강(江)이란 큰 내를 말하며, 곧 장강(長江)을 이르는 것이고, 이 강(江)의 남쪽지방을 강남(江南)지방이라 한 것이 아니냐! 곧 고려(高麗)의 땅에 있는 장강(長江) 이남(以南)지방인 『강남(江南)지방(地方)』 의 주현(州縣) 이곳저곳에 살게 했다는 말이 아니더냐! 이미 패망(敗亡)하여, 이 세상(世上)에 존재(存在)하지도 않은, 군국주의(軍國主義) 일제(日帝)의 앞잡이 노릇을 하려는가? 제발 정신(情神) 좀 차리자.
(4) 高麗史 5卷 / 顯宗 : 〔是月大食國悅羅慈等一百人來獻方物. : 이달에 대식국(大食國)의 열나자(悅羅慈)등 일백(一百)인이 와서 토산품을 바쳤다. 九月辛巳大食蠻夏詵羅慈等百人來獻方物. : 9월 신사(辛巳), 대식국(大食國)의 만하선나자등 백인(百人)이 와 토산물(土産物)을 바쳤다.〕고 하였는데, 〕
➠ 대식국(大食國)은,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라고 한다. 서토(西土)지방(地方)인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의 서남(西南)지방에 있는 옛 봉건왕조(封建王朝)이다. 반도(半島)고려(高麗)의 서울로부터 직선거리(直線距離)로 7,590 km 떨어져 있다. 도대체 몇 리나 되는지, 한참 계산해 봐야 할 정도(程度)로 먼 곳에 있는 나라다. 2만 리(里)가 넘는 곳에 있는 나라로, 이들이 무엇을 얻고자, 무엇을 위해 일백(一百)명이나 되는 사신단(使臣團)을 파견(派遣)하고, 토산물(土産物)을 바쳤을까? 설사(設使), 상인(商人)집단(集團)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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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高麗史 6卷 / 靖宗 : 〔甲寅東蕃首領大信等來獻駱駝. : 갑인(甲寅) 동번(東蕃)의 수령인 대신(大信)등이 와 낙타를 바쳤다.〕고 하였다.
㉮ 반도(半島)란 무슨 뜻일까? 상식적(常識的)인 것은, 「삼면(三面)이 바다에 둘러싸이고, 한 면(面)만이 육지(陸地)와 이어진 땅」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와 이태리 반도(半島), 아라비아 반도(半島), 인도차이나 반도(半島)등」을 생각하면, 그 형태(形態)를 알 수 있다.
㉯ 우리나라의 반도(半島) 형태(形態)는 “남북(南北)은 길고, 동서(東西)는 짧다.” 그러므로 동(東)쪽에 속국(屬國)이 별도(別途)로 있다거나, 번국(蕃國)이 있다거나 하는 경우(境遇)를 생각할 수 없다. 더구나 고려(高麗)는 반도(半島)를 통일(統一)한, 소위(所謂) 삼한통일(三韓統一) 왕조(王朝)라 했기 때문이다.
㉰ 함에도 동(東)쪽에 있는 번국(蕃國)에서 낙타(駱駝)를 바쳤다는 말은, 참으로 이해(理解)할 수 없는 역사해설(歷史解說)이다. 가능(可能)한 역사(歷史) 이야기는, 동(東)쪽에 있는 번국(蕃國)에서는 낙타(駱駝)가 자생(自生)한다거나, 또는 고려(高麗)의 동(東)쪽은 바다(海)가 아닌, 육지(陸地)로 연(連)이어져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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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高麗)는, 삼한통일(三韓統一)을 이룬 왕조(王朝)라고 했으며, 소위(所謂) “통일환영(統一寰瀛)”을 이룬 나라로 묘사(描寫)되었으며, 그 강역(疆域)판도(版圖)는 “일만(一萬)리(里)”라고 표현(表現)되어 있다.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에서는, 이 일만(一萬)리(里)를, 반도(半島) 땅의 둘레를 말한다고 역설(力說)한다. 그러나 역사서(歷史書)에서 말하는 「일만(一萬)리(里)」 라는 말은, 횡축(橫軸)선상(線上)의 거리를 표현(表現)한 것이지, 둘레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조국(祖國)의, 내 나라의 역사(歷史) 이야기를 하면서, 축소(縮小)에, 축소(縮小)를 거듭하는, 종족(種族)이나 민족(民族)은, 행성(行星)안에서 반도(半島)정권(政權)이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存在)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정권(政權)의 한 축(軸)을 담당(擔當)하고 있는, 교육(敎育)정책입안(政策立案)자(者)와 학자(學者)들의 야합(野合)으로 인한, 친일(親日)교육(敎育) 탓이다. 그 자(者)들은, 무엇이, 왜, 친일(親日)교육(敎育)인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또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면서 친일(親日)교육(敎育)에 매진(邁進)한다.
○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지금 과거(過去)의 망령(亡靈)들이 되살아나오는 듯, 희한(稀罕)한 권력(權力)층들의 암투(暗鬪)가 노출(露出)되고, 1970년대로 회귀(回歸)하는 정책(政策)이나 인물(人物)들, 목소리가 들린다. 친일(親日)교육(敎育)은 권장(勸獎)할만한 사항(事項)이 결코 아니다.
2015년 1월 1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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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지하고 어리석은 민중이 역사의 진실을 깨닫지 않는한 나라의 미래는 불확실하지 않을까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선생님의 글이야말로 어둠속을 밝히는 등대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건강하시어 좋은 글로 이끌어 주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무병장수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