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살아야 내가 산다
(성삼재에서 연곡사까지)
/梅谷堂 김 경숙
지난 여름은 유별나게도 뜨거웠다.
물론 날씨도 그러하였지만 산행으로
이루어진 생활이 화끈하였다는 이야
기다.
여름을 즐겁게 보내고 나니 어째 좀
가을바람이 달갑지가 않았음은, 좋았
던 여름을 차가운 가을바람이 내몰이
하는 것 같아 서운한 감도 없지 않았
음이 솔직한 심정이다.
어영부영 하다보니 가을의 깊은 곳까지 들어와 서서는 이제야말로 품안에 든 가을
을 본격적으로 즐겨봐야 할 것이 아닌가 해서 계획한 것이 단풍산행, 이 가을 몇군
데 단풍의 명소를 산행하여 보기로 작정하였다.
오늘은 단풍의 명소로 손꼽는 지리산 피아골을 산행하는 날이다. 만추의 날씨답게
서운한 기운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어제의 일기예보를 참고로 따뜻한 등산복 차림
을 하고서 나서보았다.
1, 2번 좌석의 젬스딘 부부님 모습이 반갑고 예상했던대로 산사랑맨님의 인솔로 하
루의 즐거운 산행이 이루어지리라 생각되었다. 토요일임에도 생각보다는 고속도로
가 한산한 분위기, 침체된 경제분위기를 실감하면서 도착예정시간 11:40 보다 20분
이 지나는 시간, 정체되어 있는 성삼재고개를 어렵게 올라 주차장 200미터 전방에서
걷기로 작정을 하고서 모두 하차하였다.
매표소 도착시간 12:10, 인원파악 없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굳이
함께 해야 할 사람이 없었던 터라 젬스딘 부부님과 함께 선두에 서보기로 하였다.
성삼재고개를 오르며 뱀사골의 단풍이 그래도 다른 곳의 단풍 보다는 곱다는 생
각을 하고서 피아골의 단풍이야 알아주는 곳이니 그 보다는 더 나을 것이라는 기
대를 하며 1.5Km 걸어서 도착한 곳 목재계단,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50m 계단길을 올라 좌측으로 300m 걸어서 삼거리에 도착, 넓은 길 따라 그대로
가면 노고단고대까지 1Km, 우측으로 꺾어 오르자면 가파르긴 하여도 300m 밖에
안되는 거리인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파른 너덜길을 택하여 그 길을 오른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오르며 내려다 본 피아골의 윗부분은 황량하기 그지없었
다. 가을을 지나 이미 초겨울로 접어든 분위기, 노고단을 향하는 길은 낙엽진
늦가을의 쓸쓸한 분위기다. 여름날의 푸르렀던 이 길을 오르며 비록 뜨거운 햇
살 아래 비지땀은 흘렸을망정 묵정님과 야생화 찍기에 여념이 없던 지난 여름이
눈앞에 선하였다.
노고단 정상으로 향할 수록 가을의 빛깔은 퇴색된 빛으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오르도록 급하게 산을 오르건만 차가운 바람으로 인하여 땀방울이 몸에 머무를
사이가 없었다.
단풍이 곱기를 하나 야생화가 있기를 하나 길거리엔 온통 사람의 단풍 뿐, 볼거
리가 줄어들다 보니 사진 찍을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20분이나 걸렸을라나 여
름에 느꼈던 거리보다는 훨씬 빠른 길로 생각이 들정도로 급히 언덕길을 오르고
나니 온몸은 불덩어리, 30미터를 걸어 화장실도 들릴 겸 잠시 숨을 가다듬기로
하였다.
노고단대피소 앞을 지나려니 산신령님이 그 앞에 서계셨다. 오늘 오시는 건 알았
는데 혼자 산행을 하시는 것 같아 여쭸더니 그러시다기에 함께 하기로 하고서 노
고단을 향하였다.
노고단고개까지 400m, 정상까지 400m, 서둘러 올랐더니 시간이 넉넉할 것 같아
단숨에 노고단정상까지 오르고보니 젬스딘 부부님이 먼저 올라 기다리고 계셨다.
지난 날에 찍은 사진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힘들여 올랐으니 사진 몇장 남겨
야겠단 생각으로 담아두었다.
노고단정상에서 2
심원마을을 내려다보며
단풍을 꿈꾸던 때가 어제 같은데
세월은 이미
붉은 추억을 갉아 먹고
굴뚝엔 한가닥 연기조차
머금지 않은
무상(無相)의 바람이 지난다.
구례의 황금들녁은
시커멓게 바둑판 무늬를 수놓아
겨울로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늘 변함없는 이 곳의 바람만이
회색추억을 동반한 채
인생길 등채질 하며
등산모를 나꿔채려 하는데
몇번을 올라도
노고단은 그 자리에 있건만
나그네의 마음은
걸리지 않은 거미줄에
목을 매달고 수도 없이
바람 앞에 그네를 탄다.
빛깔도 없는 바람이건만
매서운 손끝은
얼굴에 주름살이 패이도록
호된 채찍으로 변하면서
정신 차리라데
노고단 내리막길이 곧
인생길 내리막길이라며
원추리꽃 만발하던
그 시절이 그리움은
나만의 그리움이려나?(08.10,25)
* 무상(無相) : 모든 집착을 떠난 경지(불교)
노고단에서 바라본 반야봉의 모습과 천왕봉, 멀리 무등산의 모습도 보이고 심
원마을을 내려다 보고서 셔터를 눌러보았다.
노고단 고개에서 올려다 본 노고단정상의 모습과 노고단고개의 모습
갈길이 머니 내려가야 할 시간, 내리막길이 급해졌다. 불과 몇분만에 언덕까지
내려와 천왕봉 방향으로..... 산신령님 앞에 서시니 박꽃향기는 달려서 뒤를 쫓
는다.
몇번을 오고가다 보니 이제는 눈감고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길, 그래도 한참은 보
탠 이야기, 눈감고 걷다가는 돌뿌리에 채여 곤두박질 치기 쉽상인....ㅋ
단풍이 들었다 낙엽이 진 것인지 아니면 단풍이 들기도 전에 가뭄에 시들어 누렇
게 말라 떨어진 것인지, 지리산의 단풍이 절정을 이룰 때임에도 불구하고 산등성
인 앙상한 가지만이 남겨진 채 이미 겨울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피아골 삼거리까지 0.7Km를 남겨두고 점심을 먹고 가기로 결정을 하고서, 산신령
님 생각해 두신 곳으로 따라 들어가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였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2시가 지나는 시간, 땀이 식고 나니 등짝이 써늘해지는 느낌이 들길래
배낭에 넣어두었던 자켓을 꺼내어 덧입고는 피아골삼거리를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헬기
장에 도착하니 넓은 공터에 점심식사를 즐기시는 산님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서 멧돼지가 자주 출범한다는 돼지령, 여름날엔 이 수풀이 온통 비비큐꽃으로
화려하였었는데 억새꽃 마저도 월동준비를 마감한 수풀림엔 마른 지푸라기 다된 잡풀들만
이 휭하니 찬바람에 휘둘리고 있었다.
400미터 더 걸어서 피아골삼거리에 도착, 안내표지판 앞엔 기념촬영하는 산님들로 붐비고
있었다. 멈칫거릴 사이도 없이 겨우 사진 한 장 찍고서는 피아골대피소 방향으로 향하였다.
쨍쨍하도록 푸르렀던 여름날 숲의 터널은 어디로 자취를 감춰버리고,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은 나신들의 겨울 채비 하는 모습이 안스럽기만 하다.
피아골로 내려가는 길은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입구엔 멧돼지 출현을 경고하는 현수
막이 쳐져 있고, 몇년 전이나 변함없는 좁은 길이 오히려 다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
으로 오를 때의 7월 피앗골 모습을 그려보면서.....
길은 오로지 외길, 피아골을 오르고 내리는 길은 한 곳 뿐이니 이 좁은 도로를 이용하여
오르고 내리는 산님들의 매너가 돋보이는 코스다. 인내심을 발취하여야 할 때, 누구나가
다 똑같이 답답한 심정일테니 차례를 기다려서 한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기로 하였다.
오르막길을 오르다 뒤돌아 보니 젬스딘님께선 목이 타시는가 보다. 얼려 온 녹차를 마시
려는 중, 정체된 산길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산님들이 뒤에서 모두 아래쪽으로 고
개들을 떨구곤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겨들 있는 것 같다. 박꽃향기 만이 눈앞에 뭔가 볼
거리를 찾아서 두리번 거리다가 붉은 빛이 보이는 곳을 향하여 셔터를 눌러보았다.
피아골에만 오면 계곡이 온통 붉은 빛으로 눈이 부실 것이란 상상을 하고 왔는데, 막상
와보니 숲속은 온통 누렇게 떠버린 낙엽들만이 바삭이는 신음소리로 그 간의 아픔을 호
소해 오는 듯 하였고, 간간히 붉은 빛이 보이는 장소엔 기념촬영 하는 산님들의 발걸음
으로 붐비고 있었다.
눈앞에 조금 넓은 공터가 나타나길래 보니 갈참나무 하나 쓰러져 드러누운 바로 그 자
리 였다. 지난 날 이곳에서 찍었던 사진의 귀여웠던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무위에 올
라가 걸터 앉아보려 했더니, 이것이 웬 일인가 도통 균형이 잡히질 않아 앉아 있기조차
힘들어져 버렸으니..... 겨우겨우 산신령님의 부축을 받으며 걸터앉아 어정쩡한 자세로
사진 한 장 어거지로 찍어보았다.
2년전의 모습은 이러하였었는데, 지금은 나무에서 떨어질까봐 손도 떼지 못하는
겁쟁이가 되어....ㅎ
바로 2년전의 일이건만 그동안 숲속에도 뭔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쓰러진 나무도 그때 그 나무가 아니요 주위의 분위기도 조금은 달라져 보이는 것 같
은..... 세월이 갈 수록 숲이 우거지고 때가 되면 단풍도 곱게 들어야 할텐데, 오랫만에
찾아든 피아골은 그런 모습이 아닌 듯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비좁기는 하나 가파른 너
덜길이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아 그나마 옛생각을 떠올려 보면서..... 피아골엔 아직
고속도로(?)가 뚫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행이다 싶으면서.....ㅎ
피아골삼거리에서 2km를 어렵게 내려와 도착한 피아골대피소, 그 곳엔 대청봉으로 오
르는 산님들과 직전마을로 내려가는 산님들이 한데 어울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산신령님 잠시 쉬어가자 이르시기에 샘터로 달려가 성삼재를 오르면서 처음으로 물을
먹어 보았다. 거짓말 하나도 안보태고 쪽박으로 5섯 바가지.....ㅋ, 지리산에만 오면은
왜 그리도 물이 목줄을 매끄럽게 타고 내리던지, 마셔도 마셔도 걸리지 않고 술술 잘도
타고 내린다. 임걸령 샘물을 마시고 싶었으나 샘터를 거치지 않았기에 그 곳에서 못마
신 분량까지 양껏 마셔버렸다.
젬스딘님 모처럼 만난 단풍나무 아래에서 사진 한 장 부탁해 오시길래 한 컷 해드리고
박꽃향기도 몇장 담아두었다.
점심식사 장소에서 잠깐 뵙고는 그동안 모습이 궁금하였었는데 대피소를 떠나려고
내려오다 보니 산사랑맨님이 그 앞에 서 계시기에 반가워서 몰래 한 컷 하려다가 들
켜버렸는데 포즈를 취해 주셨다. 몸이 많이 피곤하신 듯 땀을 많이 흘리고 계셨다.
아, 이제보니 대장님 모자를 쓰셨네요? 지난 날 양배추모자가 안어울린다고 했더니
그 이후로 모자를 쓰시지 않으시는 것 같아 언제 눈에 띄는 것 있으면 하나 선물
하려 했더니만.....ㅋㅋ
남색빛의 모자가 잘 어울리시는군요? 박꽃향기 이제 죄책감에서 벗어나도 될 것 같
습니다.ㅎㅎ
피아골 대피소를 벗어나며 신선교 위에서 사진 몇장 찍고 선녀교를 건너 철계단을
오르며 2년전 친구와 그 위에서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촬영 하던 시절을 그리면서
계단길을 내려왔다.
어두침침한 숲길을 내려와 드디어 계곡에 첫발을 디디게 되었다.
내려서고 보니 구계포계곡이었다.
어젯밤 꿈속에 오락가락 하던 그리움의 삼홍소가 0.5Km 남았단다.
모처럼 만난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산님들이 있었으나 삼홍소까지 내쳐 가기로 마음을
먹고서 구계포교를 건너 가파른 철계단을 올랐다.
누렇게 뜨고 푸르딩딩 하고 푸석푸석한 피아골계곡에서 모처럼 만난 붉은 단풍나무 한
그루, 철계단을 오르기 전 단풍나무 아래 너럭바위 위엔 기념촬영하는 산님들이 붐비고
있었기에 박꽃향기는 그냥 지나쳐 가기로 하였다. 그래도 단풍이 좋다고 저렇게들 아우
성을 치는 걸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을 금치 못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삼홍소의 모습에 기대를 걸기보다 걱정이 앞서는 심정이었다. 그곳이라고
특별나리란 생각은 이미 접어두었기에, 올 가을 단풍은 기대를 접기로 마음을 굳혀두었다.
철계단을 올랐다 내려와 다리를 건너기 전 개울바닥에 있는 너럭바위 위에서 기념촬영들
을 하길래 그 곳이 사진 찍는 곳인가 보다 하고서 그냥 지나쳐가기 아쉬운 마음을 삼홍교
를 배경으로 한컷 담아두었다.
다시 삼홍교를 건너서 내려오다 보니 다리 아래쪽에 삼홍소란 안내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삼홍소엔 겨우 물 한 옹배기 들어가 자리하고 있었다.
단풍든 가을 산이 붉어 산홍(山紅)
단풍 든 가을 산을 비추는 계곡물이 붉어서 수홍(水紅)
산과 물이 붉은 곳에 서있는 사람 또한 붉어 인홍(人紅)
산, 물, 사람, 셋이 모두 붉다는 피아골 계곡의 한 지점 으로 피아골 대피소와 연곡사의
중간에 있는 소(沼)의 이름이다.
피아골 삼홍소(三紅沼)에서
누렇게 삭아 아무렇게 흘러버리는
세월이 안타까워
펄펄 끓는 열정으로 기운이 넘쳐나던
피아골에 들었더니
그녀에게도 가난이 들었던가
피죽도 못먹은 얼굴이네나.
산이고 물이고 사람이고
붉어야 제맛인 삼홍소엔
붉히다만
피아골 그녀의 펄펄 끓어나던
청춘의 가냘픈 흔적만이
멀어져간
빨치산 발자국의 자욱마냥
차마 붉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지우지도 못한
동방 누룩 뜨듯
누리끼리 푸르둥둥한
물빛 조차 그러하여라.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찌하여 이토록이나 망조를 내리시어
하늘은 땅을 내려보며 개탄하기를
그대들은 어찌하여
내게 이토록이나 망조를 강요하는가
산이 붉어야 물이 붉고
그리하여 사람이 붉을 수 있는 것임을
서로가 서로를 아꼈어야 했음에도
산 하나를 붉히지 못하였으니
하늘도 땅도 사람도
결국은 모두가 패함이니라.
자연이 살아야
내가 살 수 있음을...(08.10,25)
* 동방 누룩 뜨듯 : 얼굴빛이 누르께하고 기운이 없어 보이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쉬움의 발길을 돌리는 수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있을 수가 없었다. 벼르고 별러서
찾아들었던 단풍산행길의 발걸음이 왜 그렇게도 무겁게만 느껴지던지, 올 한해로
이변이 끝이나길 간절한 바램을 안고서, 삼홍소를 지나면서 사진 한 장 담아보았다.
삼홍소를 지나며 숲속길은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구름이 끼어 햇빛을 못보는 날이
어서 단풍이 좋았다 하더라도 그 빛을 다하지 못하였을 터인데, 가뜩이나 찌푸린 피
아골을 내려가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놓자니 가슴에선 개탄의 열기가 솟구
쳐 오르고 있었다.
모두가 다 푸르고 누래도 박꽃향기의 얼굴만은 붉어라 붉어라 하였다.
길옆에 통나무 악기가 설치되어 있길래 산신령님 한 번 해보시라 하였더니 포즈를
잡아 주시기에.....ㅎ
젬스딘 부부님은 어느틈엔가 사라져버리시고 다리를 건너가다 이 곳에서 잠시 쉬어
가자 하시기에 계곡을 올려다 보니, 지난 날 이 곳을 오르며 철철 넘쳐나는 피아골계
곡의 물살을 보며 아쉬움의 작별을 고하였던 자리라는 것을 알고는 계곡으로 내려가
발을 벗어 던지고는 잠시 발을 담가 보았다.
'피아골 그년의 사타구니를 못내 아쉬움 속에'란 시를 탄생시켰던 자리가 바로 이 자
리였음을, 그 자리에 다시 앉아 그녀의 저리도록 화끈한 열정의 맛을 다시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예나 지금이나 물의 온도는 늘 그러하였다. 오금이 저리도록 시려오는 발목을 감당할
수가 없어 오래 담그지를 못하고 일어서야만 하였다. 날은 자꾸 어두워 오고 연곡사도
잠시 들려가야 할 것 같기에 서둘러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어둠속에서도 붉어가고 있는 단풍잎을 바라보며 직전마을 1Km 남겨두고 표고막터를
지나, 한식당 '산아래 첫집'을 마주하며 동네에 들어서니 깊은 산중에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상가가 꽤나 즐비하니 번창하고 있었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직전마을, 언덕길을 내려오며 직전마을의 모습을 담아보았다.
조정래는 그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피아골 단풍이 유독 붉은 이유를 “그 골짜기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그렇게 피어나는 것” 또는 “양쪽 비탈에 일구어낸 다랑이논마저
바깥세상 지주들에게 빼앗기고 굶어죽은 원혼들이 그렇게 환생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리산 산장지기로 약 40년, 피아골대피소에서만 20년을 지낸 함태식(81)옹의 저서
에 따르면 1984년 산장 신축 굴착공사 중에 나온 인골만도 한 트럭분이나 되었다고 한다.
피아골, 일반적으로 요즘 사람들에게는 피로 물든 격전지쯤으로 각인되기 쉽지만 실은
식용 피가 많이 재배돼 피밭골로 불리던 것이 피아골로 바뀐 것이라 한다. 계곡 초입의 직
전(稷田)마을도 그로 인해 유래되었다는 게 보편적인 설이다.
원래는 8세기 중엽 연곡사를 찾던 사람들 중 김해김씨와 밀양박씨 2가구가 농경지 이용이
가능한 이곳에 정착해 마을을 형성했고 그 후 평도·직전·죽리 등의 자연마을을 합쳐 토지면
내동리가 되었지만 국립공원 구역 내 자리한 지리적 특수성을 감안, 직전마을을 따로 떼어
내 직전리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2006년 봄,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남부사무소
가 자연환경 복원을 위해 마을을 철거하고 오는 2011년까지 주민 이주 작업을 완료키로 결
정했다 하니 오히려 직전만 외톨이가 된 셈이란다.
대나무가 무성한 농로를 걸어서 쑥부쟁이가 무성하게 피어난 돌담길을 돌아, 어두운 밤길
밝히는 핏빛 단풍의 배웅을 받으며 연곡사에 도착하였다.
연곡사는 이미 어둠에 쌓여있었고 후미가 아직 꽤 남아있는 것으로 미루어 잠시 연곡사를
둘러보았다.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절은 크지 않았으나 아담하고 조용하였다. 대웅전 앞에
산수유가 붉고 있는 모습을 보며 가을이 꽤 깊어가고 있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돌계단을
내려오며 동백나무가 푸르청청 하니 꽃봉오릴 주렁주렁 달고 추운 겨울을 견뎌 하루속히
선혈의 꽃송이를 터뜨리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아~ 그런데 이곳엔 온통 추위에 피어나는 꽃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눈길을 끄는 작고 하얀
꽃송이가 눈에 뜨이길래 자세히 들여다 보니 녹차꽃이었다. 그 이름의 녹차꽃이로구나~
녹차꽃 2
지지않는 푸른 잎들 사이로
수줍은 듯 고개를 숙여
청초하게 피어난 꽃
보글보글한 꽃술 무수히 달고
하얀 꽃잎에
노란 꽃술이 어둠속에서도
돋보여라.
잎의 향기 보다
짙은 꽃내음 안고
찬서리에 피어난
고고하고도 앙증맞은
조선시대 고결한 여인같은 꽃이여,
잎과 꽃의 향기가 같아
더욱 더 사랑스런
부러움의 녹차꽃이어라.(08.10,25)
박꽃향기는 붉은 빛도 누런 빛도 푸른 빛도 아니었던 피아골의 단풍보다는 희고 고결하게
피어난 녹차꽃을 보았음이 더 보람으로 안겨졌다. 직전마을을 떠나면서 어둠속에 연곡사를
에워싸던 녹차꽃 향기를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임을.....
은하수차를 찾으니 그때서야 저녁식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육개장을 끓이셨다니 밥 한술
넣어 피아골을 내려오며 썰렁하였던 가슴을 달래어 보았다. 언제 사다 놓으셨는지 젬스딘
님 막걸리 한 잔 하자 권하시기에 육개장 안주 삼아 더덕막걸리 한 잔 쭉 들이키고 나니 얼
마나 행복하던지, 그 맛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다 박꽃향기 술꾼 되는 거 아인가
몰라.ㅎ)
성삼재를 들머리로 시작되었던 피아골 산행이 노고단 - 노고단정상 - 돼지령 - 피아골삼
거리 - 피아골대피소 - 피아골계곡 - 삼홍소 - 연곡사- 직전마을을 날머리로 5시간 30분
에 걸쳐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토요일 이라 많은 시간이 소요될 줄 알았던 산행길이 제 시
간에 마무리 된 것에 대하여 감사한 말씀을 올립니다. 5:30분 산행 완료, 6시 20분 직전마
을을 출발하여 10:50 신갈 도착, 산행에 함께 하여 주셨던 은하수님들께 감사의 말씀 전하
면서 육개장 맛있게 끓여 주셨던 부총무님께도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특히 안전한 산행
길 인도하여 주셨던 기사님께 심심한 감사의 인삿말을 올리면서 모두모두 고생하셨습니
다. 아, 큰일 날뻔 하였습니다. 강대장님~ 피곤하심에도 산행 인솔하심 누구보다도 박꽃
향기 잘 알고 있다는 거 알아주실거죠? 감사합니다~ 건강하신 모습으로 다음 산행길에
다시 만나지길 기대하면서......(08.10,25)^*^
* 사진 - 피아골대피소에서(위), 연곡사에서/연곡사 앞뜰에 피어있는 녹차꽃(아래)
흐르는 음악 * 사랑의 기도(남택상)
첫댓글 박꽃 향기님의 글을읽으면서 옛전에 뱀사골~ 피아골 로 산행을 하는데 우연히 앞에 외국인 여자분[한국어 능통하며 혼자 왔다고함]이 산행을 하면서 힘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단풍이 아름다울수가 없다면 감탄 하고 피아골 산장에서 막걸리 한잔하고 잠 자고 갔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잠간 잠을청하고 일어나 함께 하산하는데 왜그리 먼길인지~~내려와 또 한잔 하던 기억이 새쌈스럼내요
그 깊고도 긴 뱀사골 피아골을 함께 산행하셨다면 지루하셨겠습니다. 뱀사골만도 10Km인데 당연히 멀게 생각이 되었겠지요. 단풍이라도 고왔을 때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싶고요..... 피아골을 지나며 박향긴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아름다운 그 곳의 풍광을 맛볼 수가 없었으니, 집에 와서까지도 한 마음이 가시지를 않았답니다. 막걸리 한 잔이 조금 위로가 되기는 하였지만요..... 목요일 주왕산에서 뵙겠습니다
즐산,안산 축하드려요 산사랑님도 가셨군요 근데 모자가 괴뢰군인줄알앗네^*^ㅎㅎ죄숑 저에 모자가 훨씬낫네요5;30이면 만만찮았겠는데 편찮은데는 없나요?
그곳도 길이 편치는 않아요. 그러나 내리막길이 많았던 지라 박향긴 내리막길엔 강하답니다. 장단지에 알이 좀 들긴 하였어도 그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니 그런 정도의 아픔쯤은 거운 아픔인 것을요. 잘 지내고 계시지요
피아골, 뱀사골 그리고 칠선계곡의 신비로운 환상을 그리면서 ...가믐으로 인한 단풍이 제 맛을 못낸게 아쉬움으로 남았겠네요 ^^*
그랬네요. 그 유명한 피아골에 단풍가난이 들었더이다. 목요일 주왕산에서 뵈어요
피아골 가기전날 몸살기가 있어 해열제를 먹고 지리산을 갔었지요. 그게 말라리아였답니다. 지금까지도 아퍼서 정신이없답니다. 너무 힌이들어요. 그 몸을 가지고 지리산에 다녀온것만해도 기적이지요. 만약에 거기서 열이 났다면 119를...
피아골대피소에서 만났을 때 그토록이나 땀을 흘리시더니만..... 제 보기에도 힘이 들어 보였나이다. 그러다 뭣일 나면 어쩌나 싶어 이틑날 산행길도 말렸던 것이고요. 말라리아.. 아파보지 않아 어떤 증세인지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짐작은 할 것 같네요. 얼마나 아파야 나을 수 있는 것인지, 병원에 계신건 아니시고요 박향긴 그저 빠른 회복만을 바랄 뿐이네요. 하루 속히 쾌차(快差)하시오소서 을매나 힘드실꼬
동행 인것도 다행인데 너른 자리를 여기 저기 할애해주심에 감사드리고 나 땜에 값이떨어지면 안되는데-----하는 맘입니다 적극적이고 활기찬 --매곡당-마님모습 참 보기좋읍니다. 긴------- 박수를 보냅니다.
무슨 말씀을 그리 겸손스럽게두..... 그날 전 산신령님과 함께 함이 얼마나 든든하고 좋았는지 아십니까요 오라버니를 만난 듯 기뻤습니다. 윗분들과 함께 함이 값이 오르겠지 어찌하여 그런 농담을....., 매곡당은 큰 욕심이 없는 사람이기에 떨어지고 그이상 오를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요. 그저 만났던 분들 함께 할 수 있음이 영광이고 행복인 것을요..... 절 모독하고 치는 사람이 아니면 누구든 사랑할 것이옵니다. 산에서 뵐 수 있도록 함께 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건강해 보이심이 무엇보다도 제건 좋아보이십니다. 다시 만나 뵙길 바라면서 행복이 주렁주렁 가슴에 드는 좋은 가을날이 되시옵길요.......
매곡당님 피아골 멋진 산행하셨군요! 저는 그날 그시간에 주왕산 주산지와 절골의 단풍 경치에 매료되어 있었답니다! ㅎㅎㅎ 언제나 편안하고 정감있는 박꽃향기님의 향기나는 글을 읽으며, 오늘도 마냥 즐겁고 행복함에 젖어봅니다! 수고 마니 하셨습니다!
아따 고것이 지가 한 발 늦어버렸구만이라우 매곡당은 내일 주왕산엘 가는디요..... 단풍이 볼 만 했던가 봅네다. 가을 산을 돌면서 어째 맴이 좀 쓰렸는디 그 곳에 가서 신명이나 좀 나볼라나요 단풍이 고왔으면 하는 바램 가져봅니다. 백지설님, 발걸음 향기따라 박향긴 내일 그 길 걸어보렵니다. 언제나 함께 산행 한 번 할 수 있으련지요 늘 행복한 날만 있으시옵길요.....
열심히 산 즐기시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격없이 산 친구들 사귀는 모습도 참 좋습니다. 정답으로 보이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한 방식을 보여줘 참 좋습니다. 낼 주왕산 잘 다녀오시고.....좋은 글 선물 기다릴께요.
주왕산 코스문제로 왔다갔다 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네.. 전 산도 좋지만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참 좋습니다. 지난 날 일자리에서도 워낙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다보니 습관처럼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오래 사귄 사람이나 모두 이웃 같고 친구 같습니다. 한번 보고 두번 만나지면 반가워서리.... 열심히 살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남들 눈엔 어떻게 보이는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처럼 연륜 있으신 분이 좋게 봐주시니 좋은 것이려니 하고 이대로 살렵니다., 주왕산 다녀와서 글로 사진으로 뵙겠습니다. 항상 인자하심과 좋으신 말씀 감사드립니다
지금쯤 주왕산으로 가고 계시겠군여 ~~ 여름날, 가을날을 함께하면서 즐거웠던 시간들을 생각하며 지리산 피아골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
주왕산의 아름다운 코스를 걸으며 그미님 생각을 하였네요. 그만그만한 여인네들이 모두 한자리에 함께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나이다. 함께 하였더라면 더욱 좋았을것을요. 언젠간 또 그럴 날이 있겠지요. 건강하게 잘 지내시다 또 다시 마납시다. 그 날을 고대하면서......
저두 언젠간 이런 산행기를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 감동 이렇게 표현이 가능하시군요정말 잘 읽었습니다,
함께 하여거웠나이다. 하다보면 금방 늘게 되어있는 것을요..... 두분의 따뜻한 미소가 눈에 선합니다
피아골 직전(稷田)마을의 직이 제 이름에 도있습니다."기장 직"이라고하는...피아골역사에 대해 다시한번 되 새기게되는군요... 폭넓은 식견에는 그저 감탄할 따름입니다..."대빵님".....
피밭에 기장밭이라.... 이해가 가네요. 피아골도 옛날의 단풍골인듯 하여이다. 요즈음은 나뭇잎도 공해때문인가, 물이 들어도 곱게 들지 못하는 듯 하니..... 거뭇거뭇 하니 병든 단풍잎처럼...... 코도라님, 고맙네여. 모습이 안보이신건 바쁘셨던 것 같아 그저 마음이 흐뭇하니다. 하시는 일 잘되시는 것 같아서요. 열심히 사시다 보면 산행길에 다시 만나지겠지요 늘 평안하시옵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