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한나 아렌트가 유대인 학살의 주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재판을 뉴요커의 재정지원을 받아 특파원으로 참관하여 쓴 기록이다. 이 책에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하는 유명한 개념이 등장한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하인리히 히믈러가 만든 나치 친위부대의 핵심멤버로 유대인 문제를 담당했고, 유대인을 집단수용소로 수송하는 최종책임자였다. 독일 패전 후 도망다니다가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특수부대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아 교수형에 처해졌다.
살아남은 유대인에게 아돌프 아이히만은 절대악의 화신으로 반드시 처벌하여야 할 악마였다. 그런데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유대인 혐오자도, 절대악도 아니라면서 아이히만의 죄는 "생각없는 복종"에 의한 악이 실행이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뉴요커와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의 공적이 된다.
영화 '한나 아렌트'에서 한나 아렌트가 대학 강단에서의 강연 장면은 압권이다.
영화에서 한나 아렌트는 "자신이 주도한건 아무 것도 없고, 선이든 악이든 의도가 없었으며,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다. 이 전형적인 나치의 항변으로 거대한 악의 실체가 드러났어요. 평범한 사람이 저지른 악... 동기도 없이 행해진 악... 신념도 악의도 악마의 의지도 없었어요. 사람이기를 거부한 인간의 행위였어요. 저는 이 현상을 '악의 평범성'이라 이름 붙였어요."
"아이히만을 옹호한 적 없어요. 다만 놀랍도록 평범한 한 사람의 망연자실할 행위를 받아드리려 한거에요. 이해하려는 것과 용서는 달라요. 이해하는게 내 책무라고 봤어요. 누군가는 책임지고 이 문제를 논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래 대개 생각이란 "나 자신과의 조용한 대화"였어요. 아이히만이 인성을 버리고 완전히 포기한건 가장 인간적인 특성인 생각하는 능력이었어요. 그 결과 더는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어요. 이렇게 생각을 못하면 수많은 보통 사람들도 유례없는 크나큰 악행을 저지를 여지가 생겨요."
영화를 보면서 그냥 쉽게 아이히만은 악마다. 이 악마를 처단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좀 멋지게 늘어놓으면 좋았을 것을 한나 아렌트는 거부한다. 그리고 아이히만을 이해하려고 한 것이다. 이 이해가 바로 시대가 지어준 책무를 수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또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지도자의 나치 협조를 비판하는 여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대인을 탓한 것이 아니에요. 저항은 불가능했어요. 그래도 저항과 협력 사이에 놓인게 있어요. 그런 의미로서만 일부 유대 지도자들이 달리 행동했으면 했던 거에요. 이런 의문을 던지는 건 의미심장해요. 유대지도자들의 역할로 인해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았어요. 나치 때문에 훌륭한 유럽사회의 도덕이 완전히 와해된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박해자 뿐 아니라 희생자들 속에서도 그 원인이 있었다는." (자막을 일부 수정했음)
야만의 시대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대안은 바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생각이라는 바람을 표명하는건 지식의 돛이 아니라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말할 능력이에요. 내가 바라는건 사람들이 생각의 힘으로 예기치 않은 일이 닥칠 때 파국을 막는거에요."
이제 세월호로 돌아가보자.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세월호 선원들, 청해진의 임직원과 유병언 일가, 해운조합 그리고 한국선급의 탓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다. 지난 60일간 종편을 중심으로 자행된 유병언 특집을 보라. 이제 구원파에 속옷이 몇장이 있는지조차 알 지경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세월호 유가족들이다. 전혀 흔들리지않으면서 "진상규명"만을 촉구하고 있다. 왜 세월호는 침몰했는가? 왜 한명도 구하지 못했는가?에 집중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은 우리 사회 적폐의 종합적 결과임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생각을 빌리면 유가족들의 세월호가 왜 침몰했고, 왜 한명도 살리지 못했는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바로 시대가 세월호 유가족에게 지어준 짐을 의식적으로 떠받아 자녀들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랑의 행위가 된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유가족들이 끝까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이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천만인 서명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화면질은 좀 떨어지나 유튜브에 '한나 아렌트' 영화가 올라있어 링크를 걸어두니 시청할 분은 보시라. 그리고 위에 인용한 연설은 대략 1시간 40분이 조금 지나서 나온다.
첫댓글 무모한 낙관주의와 분별없는 절망에도 반대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왜 일어났는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무언가를 이해한다는것은 시대에 대한 책임
전 여기에 밑줄 그으며 감명 받았습니다....좋은 글 보고 충전하여 갑니다^^*
많은 이해할수 없는 질문들 중에 "이제 그만 하면 됐잔아?" 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유가족 입장에서 그질문을 들으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그냥 웃으며 잘 안될까봐요...걱정되서요 라 말합니다
무엇이 그만하면 됐을까요?...아이들의 죽임을 놓고 부모는 무엇을 하면 그만하면 됐을까요?
“왜 일어났는가?"...우리가 해야할 책임인거지요
글을 나눠 읽는다는 것의 묘미를 알려주시네요 ^^b
@우연 ^^:: 다시 돌아와서 다 읽었어요 아~~~찔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