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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년 이후
그리스도교 2천 년 역사에서 여러 차례 개혁이 있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지만, 하루 아침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을 손꼽는 이유는 유럽의 역사를 바꾼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1517년 10월 31일, 불붙은 종교개혁은 교회만 새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시 유럽 사회를 바꾸었다. 그리고 반(反)개혁운동을 통해 가톨릭교회가 회개하고, 혁신하도록 자극하였다.
신앙의 개혁은 역사적으로 반복되었다. 20세기 전반기 역사를 보면 흔히 루터의 독일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한 아들은 히틀러 권력에 빌붙은 주류 교회였다. 나치가 루드비히 뮐러 주교 등을 앞세워 독일국가주의교회를 만들 때, 교회권력은 정치권력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그 품에 안주하였다. 그리스도교와 나치즘이 혼합한 또 다른 우상은 이렇게 태어났다.
그런데 다른 아들은 이를 정면으로 반대하였다. 비록 소수의 그리스도인이었지만 나치 권력과 맞서 당당히 선언하였다.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뿐이다.” 이것이 1935년 발표한 ‘바르멘 선언’이다. 이 선언을 바탕으로 한 독일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개신교회를 새롭게 하는 불쏘시개가 되었다.
역사적인 바르멘 선언을 한 곳은 독일 부퍼탈 바르멘에 있는 게마커 교회이다. 그곳에 바르멘 선언을 기억하고, 과시하는 거창한 기념 공간이 없다는 것은 놀랍다. 다만 교회 앞 시장통으로 난 작은 사거리에 1.5 미터 높이의 상징적 조형물만 존재한다. 복잡한 도로를 지나는 사람들은 대체로 역사적 기념물에 무심해 보인다. 얼마나 소박한지 그 존재감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조형물은 한 세기 전 시대상을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인상적으로 압축하고 있다. 비교적 촘촘히 빚은 조각상은 열 줄쯤 되는 인파를 거칠게 묘사하였다. 그중 정면을 응시하는 여러 줄에 선 사람들은 손을 든 채 나치 인사법을 하며 열렬히 충성을 맹세하는 반면, 맨 뒤 단 한 줄에 선 사람들은 뒤돌아 반원으로 둘러서 성경을 본다. 이런 말씀이 새겨져 있다. “주의 말씀은 영원하리라”(사 40:8).
독일 고백교회의 주역인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년)를 그린 <진노의 잔, 소설 본회퍼>에 이런 말이 나온다. “진실한 자의 거짓말보다 거짓말쟁이의 진실한 척이 더 위험하다.” 나치가 독일을 지배하던 시대에 권력은 교회를 국가주의란 이름으로 포섭하였다. 그들은 성경의 말씀(롬 13장)을 내세워 순종을 강요하였다. 그들은 히틀러를 총통(Führer), 곧 유일한 지도자라고 불렀다. 대다수 성직자와 신학자들은 히틀러를 메시야처럼 받들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물었다. ‘총통이 유일한 지도자라고?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와 온 세상의 주님이요, 지도자이다.’ 그들은 고난과 순교를 자초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독일개신교회를 재건하는데 창조적 소수가 되었다. 이른바 남은 자들은 교회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거부했으며, 이런 생각은 어떤 국가도 하나님의 계명 앞에서 한계를 갖고 있음을 분명히 명시한 바르멘 선언에 기초하고 있다.
처음 개신교회의 모습은 저항하는 교회였다. 개신교회를 프로테스탄트(Protestant)교회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1529년, 제2차 슈파이어(Speyer) 제국의회에서 다수파였던 가톨릭에 저항한 개혁자들은 이렇게 주장하였다.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다수결의 결정은 무효이다.” 개혁자들이 고집한 ‘그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대로 처신해야 한다’는 입장은 이후 제후의 종교에 의해 신앙이 결정되었던 신앙속지주의로부터 개인이 신앙을 선택하는 자유로 나아가기에 이르렀다.
종교개혁은 시대의 징조를 본 예언자들의 구체적인 행동이었다. 종교개혁 500년 이후에도 여전히 개혁의 대상으로 남은 현실 교회의 모습에서 개혁의 가능성을 찾는다. 개혁의 빚더미에 올라앉은 교회는 과연 그 무서운 부채감을 느끼고 있을까? 주류와 다수를 과시한 세력이 수많은 역사적 오류를 겪어왔음에도 아직도 규모와 권력, 속물 가치관과 황금만능의 논리를 맹신한다면 참람한 일이다. 지금 흔들리는 교회는 다시 광야로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