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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최한나)
1.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2.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4.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요한계시록 13:1-6) 말씀 아멘!!
계 12장은 여자의 후손의 남은 자들과 최후의 전쟁을 벌이려는 용의 결심과 함께 끝을 맺는다(12:17). 계 13:1-10은 마지막 때에 용이 그리스도와 그분을 따르는 자들을 대적하여 전쟁을 일으키려는 그의 최후 시도에서 그가 지향하는 동향을 기술하고 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그는 그의 두 동맹자 곧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13:1-10)과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13:11-19)의 지원을 받는다.
여러 현대어로 번역된 영어 성경은 이 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초기 헬라어 사본에 기초하여 번역한 것이다. 밑줄 친 부분은 개역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으로써 “그리고 그 용이 바닷가(바다 모래)에 섰다”라는 의미이다.
“And the dragon stood on the shore of the sea. And I saw a beast coming out of the sea. He had ten horns and seven heads, with ten crowns on his horns, and on each head a blasphemous name.”(Rv 13:1, NIV)
“And he stood on the sand of the seashore. And I saw a beast coming up out of the sea, having ten horns and seven heads, and on his horns were ten diadems, and on his heads were blasphemous names.”(Rv 13:1, NASB)
따라서 “용이 바다 모래 위에 섰다”는 것은 12:17과 연결되어 용이 자신을 지원하는 짐승이 바다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한 짐승 : 여기에 나오는 짐승에 대한 묘사는 계 12:3의 괴물의 모습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이 짐승은 단 7장의 짐승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 짐승들이 나오는데 머리가 모두 일곱이고, 뿔이 열이다(단 7:3-7)
단 7장 네 짐승 : 계 13장의 첫째 짐승 : 의미
1. 사자(머리 1) : 사자 입 : 바벨론
2. 곰(머리 1) : 곰의 발 : 메대 바사
3. 표범(머리 4) : 표범과 비슷 : 헬라
4. 열 뿔 괴물(머리 1) : 뿔이 열 : 로마 → 열국
5. 머리 합계 7 : 머리가 일곱 : 복합적 특성
짐승은 정치세력에 대한 상징이다. 사탄은 이 세력을 통해 일반적으로는 전 역사에 걸쳐서, 특별하게는 마지막 때에 활동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바다는 구약에서 종종 바다 괴물들의 거처를 상징한다(시 74:13-14, 사 27:1). 이 바다로부터 악한 원수의 세력들이 나와 이스라엘을 압제했다. 계 17장에는 이곳에 나오는 짐승과 동일한 짐승이 나온다(계 17:7-8).
이 짐승은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왔다고 나온다. 그러므로 바다와 무저갱은 같은 의미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7:15에서 물(바다)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라고 한다(계 17:15). 결론적으로 바다는 통상적으로 폭군들이 등장하는 어지럽고 소란스러운 사회적, 정치적 상태에 대한 상징이다. 열 뿔은 다니엘의 묵시에 나오는 넷째 짐승의 열 뿔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들은 로마 제국의 붕괴 후에 일어난 왕국들을 상징한다. 일곱 머리는 사탄이 각 시대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기 위해 사용했던 왕국들을 가리킨다.
열 왕관 : 헬라어로 ‘디아데마’이다. 즉 왕관을 가리키며, 적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영광을 다 누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다짐승은 계 12:3의 용과 똑 같은 수의 머리들과 뿔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하나이듯이 용과 바다짐승도 하나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용이 그의 머리들 위에 일곱 왕관을 가지고 있는 반면, 짐승은 그의 뿔들 위에 열 왕관을 가지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용의 머리에 있는 일곱 왕관은 세상에 대한 완전한 권위와 권세를 가졌다는 사탄의 거짓 주장을 가리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다짐승의 뿔들 위에 있는 열 왕관은 용이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을 통하여 그 짐승에게 준 권세와 보좌와 큰 권위를 상징한다. 이것은 많은 왕관을 쓰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에 대립하여 서는 것을 의미한다(계 19:12). 계 19:12에서 ‘관’은 ‘디아데마’, 즉 왕관을 가리킨다.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 : 이 짐승에는 계 17장의 짐승과 같이 신성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다(계 17:3). 이러한 신성 모독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내뱉는 저주가 아니다. 그것은 짐승 자신이 자기의 신격화를 주장함으로써 신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 세력은 하나님의 대권(大權)을 주장하며 그분과의 동등함을 주장한다.
특히 신성 모독의 형태는 다음의 두 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
1.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함(요 10:33).
2.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함(눅 5:21).
이 두 가지 형태의 신성 모독은 용이 로마교회를 통하여 실현하고 있다.
구분 : 작은 뿔(단 7장) : 바다 짐승(계 13장)
회생 : (12)그 생명은 보존됨 : (3)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음
입(말) : (20)큰 말을 하는 입 : (5)신성모독을 말하는 입
힘(능력) : (20)모양이 동류보다 큼 : (4)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공격대상 : (21)성도들과 싸워 이김 : (7)성도들과 싸워 이김
하나님 대적 : (25)지극히 높은 이를 대적함 : (6)하나님을 비방함
박해 기간 : (26)한 때 두 때 반 때 : (5)마흔두 달
짐승의 모양 : 여기에 나오는 짐승의 모양은 단 7장의 네 짐승들의 모습과 특성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세계 역사를 지배해온 제국들을 승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부터 권세를 받으신 것처럼, 바다 짐승은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았다.
이 여러 표상들에 관한 예언은 요한계시록 12장에서 그리스도를 탄생 즉시 죽이려고 한 용으로부터 시작된다. 용은 사탄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계 12:9 참조). 사탄은 구주를 죽이기 위하여 헤롯의 마음을 충동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최초의 몇 세기 동안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들에게 도전한 사탄의 주된 대리자는 로마 제국이었으며, 이교가 그 나라에서 압도적 세력을 가진 종교였다. 그러므로 용은 원래 사탄을 대표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또한 이차적인 의미에서 이교 로마를 상징한다. 13장 1-10절에는 또 다른 짐승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것은 ‘표범과 비슷하고’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이 표상은 많은 개신교도들이 믿는 바와 같이 일찍이 고대 로마 제국이 잡고 있던 그 능력과 위와 권세를 계승한 법왕권을 대표한다. 다니엘서 7장에 기록된 작은 뿔의 기사와 거의 같은 이 예언은 틀림없이 법왕권을 가리키고 있다.
심지어는 개신교회의 세계적인 부흥목사 빌리 그래햄도 “그분은 전 세계 기독교인의 양심”이라고 말했다. 군사력도 없고 거대한 정치적 국가의 대통령도 아닌 교황이 그토록 큰 힘을 갖게 되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오늘날 전 세계의 정치인들은 교황의 말 한 마디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심지어는 각 나라의 추기경의 정치적 영향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 힘의 근원은 무엇인가? 우리는 다음의 성경 말씀을 주시해야 한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계 13:4)
사탄은 모든 사람이 가담하게 될 최후의 대쟁투를 위하여 그의 계획을 부지런히 짜고 있다. 거의 2천 년 동안 세상에 복음이 전파된 후에도, 사탄은 여전히 그가 그리스도께 제시한 동일한 장면을 사람들에게 제시한다. 그는 놀라운 방법으로 영광스런 세상 나라들이 그들 앞에 지나가게 한다. 그는 자기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하여 그는 사람들을 자기의 지배 아래 끌어들이고자 한다. 사탄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처럼 만들고 자기의 세력에 반대하는 모든 자들을 죽이기 위하여 힘을 다하여 활동하고 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그 앞에 굴복하고 있다. 그의 세력은 하나님의 세력처럼 환영을 받고 있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더라’고 한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
믿음은 진정한 기초이신 그리스도께로부터 로마 법왕에게로 옮기어 갔다. 사람들은 죄의 사유와 영원한 구원을 하나님의 아들에게 의뢰하는 대신에 법왕과 법왕에게서 권세를 받은 신부나 주교에게 구하게 되었다. 법왕은 세상에 있는 그들의 중보자이며, 그를 통하여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법왕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위치에 서 있으므로 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들은 배웠다. 그러므로 그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심신에 엄한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서 오류가 많고 잔인한 사람들, 아니 그보다도 그들을 통하여 자기의 권력을 행사하는 암흑의 임금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이 땅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사람들인 것을 기억하자(빌 3:20).
6. 내 꺽으신 뼈로 즐겁게 하소서
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꺽으신 뼈들도 즐거워 하게 하소서(시편 51편 8)절 말씀 아멘!
주께서 꺾으신 뼈들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 ‘주께서 꺾으신 뼈’는 죄책으로 짓눌린 본 시편의 저자 다윗의 영혼을 가리킨다(Weiser). 이와 같은 비유적 표현은 자신의 영적 고통이 지대함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뼈’는 구약 성경에서 인간 신체의 가장 내면적인 부분으로, 그리고 사람에게서 가장 큰 통점이 있는 부분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6:2, 사 58:11, 렘 23:9). 한편 ‘꺾으신’(דָּכָה 다카)은 ‘짓이김을 당하여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너뜨려진’ 혹은 ‘죄를 깊이 뉘우치는’의 뜻을 지닌다.
다윗은 자신의 선천적인 죄성을 발견하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5절) 이는 생명의 지류들뿐 아니라 그 원천도 오염된 상태임을 강조한 것이다.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란 표현 역시 모친을 비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뿌리 깊은 죄를 인식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잉태되는 순간에 우리 본성이 죄를 잉태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또 ‘뼈를 꺾는다’는 실감 나는 표현은 죄로 인한 영혼의 고뇌 및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낸다. 다윗은 마치 뼈가 부러진 비참한 사람 같았다. 그는 육체적인 부상으로 신음하는 것 이상으로 용감했던 기상과 인격이 찢겨 심령이 떨렸다.
뼈를 다시 맞추는 고통 역시 심각하다. 회개는 부러져 고통을 당하는 우리 모든 뼈를 회복시켜 줍니다. 그것은 눈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눈물은 상처 입은 심령의 피이다. 만일 부서뜨리신 분이 치유해주신다면 모든 상처 부위가 회복될 것이며 고뇌로 떨던 모든 뼈가 벅찬 기쁨을 느낄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양심이 깨어나 죄악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 참회의 시를 썼다. 그는 육신을 탐닉할 때 찬송을 잊었지만, 영성이 깨어나자 다시 수금을 들고 눈물과 한숨을 동반한 감격스러운 찬양을 드렸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은혜를 구하며 지은 시입니다. 다윗의 참회 시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죄인의 지침’으로 불리는 이 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지은 죄의 참담함을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보여 준다. 회개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내용을 토대로 기도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 보내는 조롱과 비난의 손가락질은 무엇 때문인가? 주일 대형교회 앞 풍경은 대충 이러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갈하게 차려 입은 사람들이 마주치는 사람들 과 반갑게 인사하며 예배당으로 들어간다.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설교를 듣고 봉헌한 후 한결 홀가분해진 얼굴로 집으로 돌아간다. 말씀에 은혜 받았다고 즐겁게 고백하는 입술도 있고, 죄인임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리는 눈도 있고, 말씀을 제대로 깨 닫게 되어 뜨거워진 가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배는 삶의 모든 자리에서 드려져야 함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주일에 받은 은혜가 월부터 토요일까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천하지 않는 회개는 아무 소용이 없고, 변하지 않는 입술만의 고백에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시지 않는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나 자 신을 완전히 죽여야 가능한 일이므로 매우 고통스럽고 수많은 갈등에 시달리며 손해본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고 구별되지 않은 채로 살아가기에 우리는 개독교인이 되었고 사회가 신뢰할 수 없는 부류 의 집단으로 전락했다. 하나님 대신 맘몬신을 섬기는 데 거리낌이 없는 자들 중에서 그리스도인이 적지 않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자화상과 가장 가까운 이들은 예수님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비난한 바리새인들이다.
7. 짐승의 표 666
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하고 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5.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죽이게 하더라 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송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요한계시록 13:13-18절) 말씀 아멘!!
큰 이적을 행하되 : 큰 이적을 행하는데 심지어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적을 행한다. 이것은 엘리야의 이적을 연상하게 한다. 엘리야는 이적이 있기 전에 다음과 같이 백성에게 말한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왕상 18:21)
비록 이적이 진리와 비진리를 가르는 참시금석은 아니지만, 때때로 경배의 대상을 선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이적은 사도시대에 성령의 역사로 사도들이 수많은 기적들을 행한 것을 기억하게 한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는 때때로 강력한 기적을 동반하였다.
이곳에서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강력한 이적을 행하는 것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모조(模造)하여 사람들로 처음 짐승을 경배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마지막 때의 사탄이 사용하느 최고의 기만 전술이 될 것이다.
우상을 만들라 : 우상은 말도 못하며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속에 생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땅의 짐승은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준다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이 분명히 나타난다.
첫째, 최후의 위기의 때에 경배가 쟁점이 될 것이다. 최종적 시험은 경배를 거부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경배하느냐에 달려있다. 다니엘 3장의 우상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다(단 3:5-6). 하나님만이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죽도록 충성하는 것은 필수적이다(계 14:7, 19:10, 22:8-9).
둘째, 짐승의 우상이 상징하는 것은 사탄이 각 시대를 통하여 사용했던 그의 이중전략이 종말 때에 부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이중전략은 기만과 강제이다. 짐승의 우상은 제도와 조직과 그 과정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이것들은 그 형태와 행위에 있어 짐승의 권세를 꼭 빼닮을 것이다. 이 일을 위하여 정치와 종교가 연합하게 될 것이다.
짐승의 우상 : 그렇다면 짐승의 우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기별에서 말한 짐승, 곧 두 뿔 가진 짐승이 경배하라고 강요하는 그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의 첫째 짐승, 곧 표범같은 짐승인 법왕권이다. 그러므로 ‘짐승의 우상’은 자기의 교리를 강요하기 위하여 국권의 도움을 구함으로 생겨나게 될 배교한 개신교도들의 단체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리고 법왕권의 제도를 강요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의에서 스스로 완전히 분리될 것이다. 개신교가 로마의 세력과 손을 잡기 위하여 구렁을 넘어 손을 뻗게 될 때, 그가 강신술과 악수하기 위하여 심연(深淵)저편으로 건너갈 때, 이 삼중 연합의 영향 아래 우리 나라가 개신교와 공화 정부로서의 그 헌법의 모든 원칙을 거부하고 법왕권의 거짓과 속임을 퍼뜨릴 준비를 갖추게 될 때, 우리는 놀라운 사탄의 활동시기가 왔다는 것과 끝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교회증언 5권, 451)
모든 자. 짐승의 우상은 온 땅의 거주자들에게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도록 강요한다. 그 명령은 모든 계층의 사람(작은 자나 큰 자), 모든 경제 계층(부자나 가난한 자), 그리고 모든 사회 계층(자유한 자나 종들)에 영향을 미친다. 아무도 예외가 없다.
오른손에나 이마. 이마는 마음을 대표하고, 오른손은 행위나 활동을 대표한다. 오른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으라는 요구는 이스라엘에게 하나의 표로써 그분의 계명들을 손목과 미간에 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환기시킨다(신 6:6-8).
손에나 이마에 표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그분의 백성의 마음과 행동에 써 넣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으라는 짐승의 요구는 하나님의 계명들에 대하여 정반대의 입장에 서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인은 아버지와 어린 양의 이름으로 구성되어 그 이마에 기록된다(계 14:1). 짐승의 표는 짐승의 이름 또는 그 이름의 수로 구성되어 이마에나 손에 기록된다(계 13:17).
표. 헬라어로 ‘카라그마’이다. 날인된 표 또는 새겨진 표, 새겨진 이미지를 뜻한다. 이 말은 상용(商用) 문서들에서 사용된 로마제국의 도장과 로마 동전에 사용된 황제의 압인을 일컫는 전문용어였다. 이 말은 동물을 낙인하는데도 사용되었다.
짐승의 표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의심의 여지 없이 로마제국에서 격렬한 핍박을 받고 있던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숭배를 했던 사람들에게 발급된 증명서에서 “짐승의 표”가 적용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전 역사를 통하여 짐승의 표는 시대마다 다른 의미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계 13장은 짐승의 표가 궁극적으로 적용될 시기는 재림 직전의 종말 때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짐승의 표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의 표는 하나님의 인과 예리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인과 표의 근본적 기능은 소유권이요 정체성이요 그리고 보호이다. 둘은 각각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표이거나 짐승에 대한 충성의 표이다. 계 12-14장은 위기의 때에 충성과 순종의 표준은 하나님의 계명임을 강조하고 있다(계 12:17, 14:12).
그러므로 짐승의 표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표로 계명들을 준수하는 것을 거부하고 사탄에게 충성하는 표인 사람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사 29:13, 마 15:8-9). 특히 넷째 계명은 마지막 대쟁투의 초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첫째 천사의 기별은 이 사실을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다(계 14:7).
그러므로 짐승의 표는 하나님의 안식일을 대신하여 사람이 만든 안식일인 일요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약에서 인침은 분명히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는 성령의 임재를 의미하고 있다(고후 1:21-22, 엡 1:13, 4:30). 그러므로 짐승의 표는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를 거부하고 사탄의 임재를 통하여 악의 정신으로 가득한 상태를 의미한다(딤후 3:2-5).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은 넷째 계명에 대한 그들의 관심에 의하여 특별히 구별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계명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에 대한 표가 되고, 그분께서 사람에게 존경과 경의를 요구하시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악인들은 창조주의 기념일을 파괴하고 로마교의 제도를 높이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으로 구별될 것이다. 쟁투의 계쟁점에서 모든 그리스도교계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과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표를 받은 자들로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질 것이다. 비록 교회와 국가가 그들의 힘을 연합하여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계 13:16)로 짐승의 표를 받게 하고자 강요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을 받지 않을 것이다.” (교회증언 9권, 16-17)
“일요일 준수는 아직 짐승의 표가 아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 우상의 안식일을 경배하게 하는 법령이 포고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은 짐승의 표가 될 것이다. 날이 시험이 될 때가 오겠지만 아직 그 때는 이르지 않았다.” (SDAB.C. 7권, 977, 화잇주석)
짐승의 이름 : 이름은 성경에서 품성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은 짐승의 품성을 나타낼 것이다. 18. 육백육십육. 2세기 이후로 666을 판독하기 위한 시도로써 가장 많이 사용된 방법은 게마트리아(gematria)라는 방법이었다. 이것은 히브리어, 헬라어 또는 라틴어 알파벳이 가지고 있는 숫자를 이용하여 계산하는 방법이었다. 그 결과로 숫자 666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나왔다. 이 수는 네로와 칼리굴라와 같은 로마 황제와, 모하멧이나 나폴레옹 또는 히틀러 같은 사람들도 이 수에 해당된다고 한다.
또한 재림교회에서 오랫동안 견지하여 온 로마 교황의 삼중관에 있는 VICARIUS FILII DEI(비카리우스 필리 데이: 하나님 아들의 대리자)를 가리킬 수도 있다.
V(5) + I(1) + C(100) + A(0) + R(0) + I(1) + U(5) + S(0) + F(0) + I(1) + L(50) + I(1) + I(1) + D(500) + E(0) + I(1) = 666. 이 방식의 해석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첫째, 게마트리아 방법을 사용할 경우 나올 수 있는 결과는 무제한적이다. 그 많은 결과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에는 논란의 소지가 많다.
둘째, 요한은 요한계시록 어느 곳에서도 신원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게마트리아를 사용하지 않았다.
666으로 표현된 짐승의 숫자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만 어느 정도 신뢰할만한 결론을 도출할 수는 있다. 6은 하나님의 수인 일곱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인간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666은 세 개의 6이 한 벌로 구성되어 있다. 바벨론의 수학은 60진법에 기초되어 있으며 기초적인 계산 단위는 6과 60이었다. 더욱이 숫자 6은 바벨론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숫자였다. 60은 바벨론 최고의 신들의 숫자였다. 이것은 느부갓네살 왕이 왜 금 신상의 높이는 60 규빗, 너비를 6규빗으로 하였는지에 대한 설명이 된다(단 3:1).
바벨론의 사제들이 입었던 통속적인 부적에는 다음과 같은 신비로운 숫자가 사각 안에 6 줄 6 열로 배열되어 있었다. 각 줄의 가로로 배열된 수의 합과 각 열의 세로로 배열된 수의 합이 111이며 6줄 6열전체의 합이 666이 된다.
1, 32, 34, 3, 35, 6 = 111
30, 8, 27, 28, 11, 7 = 111
20, 24, 15, 16, 13, 23 = 111
19, 17, 21, 22, 18, 14 = 111
10, 26, 12, 9, 29, 25 = 111
31, 4, 2, 33, 5, 36 = 111
111, 111, 111, 111, 111, 111 = 666
결론적으로 6은 바벨론의 수이다. 하나님의 수는 7인 것과 대조적이다. 7에서 1을 빼면 6인 것처럼 완전한 하나님의 속성과 대비하여 인간의 불완전함을 뜻한다. 하나님의 계명에서 한 계명이라도 지키지 않는다면 모두 지키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또한 사람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다. 그러나 완전한 주일)은 6일이 아니고 7일이다. 그러므로 제칠일인 안식일이 없는 일주일은 완전한 주(週)가 아니다. 그러므로 제칠일 안식일을 6일 중의 한 날인 첫째날로 대치한 것은 바벨론의 숫자 6과 일요일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일요일이 짐승의 표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8. 해를 입은 여자의 붉은 용
1.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의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3.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이 해산하려는 용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창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2:1-6) 말씀 아멘!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주요 단락은 12장부터 시작한다. 이곳부터 작은 두루마리(계 10장)의 내용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요한계시록의 전반부는 그리스도의 승천 시로부터 재림까지의 전(全) 기독교시대를 망라하고 있다. 후반부(12:1-22:5)는 특별히 종말의 시기와 이 세상 역사의 최후의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 여자 : 로마 가톨릭의 어떤 주석가들은 이 여자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전체의 예언 해석의 흐름을 살펴볼 때 그와 같이 해석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임이 확실하다. 여자는 구약과 신약에서 자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사 54:5, 렘 3:20, 호 2:16, 암 5:2, 고후 11:2, 엡 5:31-32).
요한계시록의 다른 곳에서 정결하고 신실한 여자는 일관되게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고, 음녀는 불신실한 자들을 상징한다(계 17:1, 6, 계 19:7-8). 이러한 증거들을 종합하여 보면 12장의 여자는 하나님의 백성, 즉 교회를 상징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결혼관계를 당신과 구속받은 당신의 백성들과의 연합을 상징하게 하심으로써 영광스럽게 하셨다. 그리스도 자신은 신랑이며 교회는 신부인데, 그분께서는 당신께서 택하신 신부에 대하여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라고 말씀하신다(아 4:7).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 이 구절은 요셉의 꿈이 강력하게 암시되어 있다(창 37:9-10). 그의 꿈에 나타난 해 달 별들은 야곱과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대표한 것이며, 이들로부터 이스라엘 12 지파가 나왔다.
이 여자는 아가서에 나오는 솔로몬의 신부와 닮았다(아 6:10). 여자의 머리에 있는 관은 ‘스테파노스’로써 승리의 화관을 가리킨다(계 2:10 주석 참조). 여자의 관에 달린 열두 별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신약교회의 열두 사도를 상기시켜 준다. 구약의 교회는 열두 지파로 대표되고, 신약의 교회는 열두 사도로 대표된다.
“구약에 열두 부조들이 이스라엘을 대표한 것처럼 열두 사도는 복음 교회의 대표자가 되었다.” (사도행적, 19)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들은 희생의 면류관을 쓸 것이다” (시대의 소망, 223)
한 큰 붉은 용. 용은 헬라어로 ‘드라콘’이다. 이 말에서 영어의 dragon(용)이 나왔다. 용은 리워야단관 라합과 같은 고대 근동의 신화적 존재이다(사 27:1, 욥 26:12, 사 51:9).
구약에서 이 두 해양 괴물은 이스라엘을 압제하였던 악한 원수의 세력들의 은유적 표현이었다. 계 12:9에서 용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하였다. 이것은 창 3장에 나오는 뱀이 하와를 유혹한 사건을 암시하고 있다. 뱀은 최초의 인간 부부를 속여 땅에 죄를 가져왔다. 즉 용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대원수를 가리키고 있다. 용의 색깔인 붉은 색은 피흘림과 죽음, 압제, 악한 행실 또는 죄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계 6:4 주석 참조)
머리가 일곱이요 : 용의 일곱 머리는 사탄이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기 위해 이용하였던 왕국들을 대표한다.
뿔이 열이라 : 뿔은 정치적 권세들에 대한 상징이다(계 17:12).
열 뿔은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넷째 짐승의 열 뿔이다(단 7:7).
이 뿔들은 로마제국이 붕괴된 후 열 부분으로 나눠진 왕국들을 상징한다(단 7:23-24).
일곱 왕관 : 용의 머리에 있는 왕관은 헬라어로 ‘디아데마’이다. 이것은 왕이 쓰는 관을 가리킨다(계 2:10 주석 참조). 이것은 진실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분을 대적할 완전한 권세와 능력을 가졌다고 하는 사탄의 거짓 주장을 암시한다. 용은 기본적으로 이교로마의 배후에서 활동하면서 그리스도를 죽이고 이어서 그분의 추종자들을 멸하고자 애쓰는 사탄을 가리킨다. “용은 사탄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계 12:9 참조). 사탄은 구주를 죽이기 위하여 헤롯의 마음을 충동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최초의 몇 세기 동안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들에게 도전한 사탄의 주된 대리자는 로마 제국이었으며, 이교가 그 나라에서 압도적 세력을 가진 종교였다. 그러므로 용은 원래 사탄을 대표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또한 이차적인 의미에서 이교 로마를 상징한다.
꼬리. 꼬리는 사탄이 인간을 오도해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그를 따르도록 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만에 대한 상징이다(계 9:10 주석 참조).
용의 꼬리는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졌다. 이것은 단 8:10-11을 상기시킨다. 요한계시록에서 별들은 천사들을 상징한다(계 1:20).
땅에 던져진 별들은 하늘의 천사들이었음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광야 : 광야는 하나님께서 여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피난처이다. 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폭정을 피해 광야로 피하였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고 만나를 내려 먹이셨다. 각 시대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광야로 피하게 하셨다. 로마에서는 카타콤이라는 지하동굴이 피난처가 되었고, 중세 암흑시대에는 산속의 동굴이 피난처가 되었다.
천이백육십 일 : 계 11:2의 마흔두 달에 대해, 또한 일 일을 일 년으로 계산하는 연일원칙에 대해서는 단 7:25의 주석을 보면 더 확실하게 알수 있다.
교회의 박해는 천이백육십 년의 전 기간 동안 계속되지는 않았다. 당신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극렬한 시련의 시기를 단축시키셨다. 구주께서는 교회에 임할 ‘큰 환난’에 대하여 예언하시면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 24:22)고 말씀하셨다. 사실상 박해는 종교 개혁의 영향을 받아 1798년이 이르기 전에 이미 끝났다.
인간이 악한 천사들의 숫자를 알 수 있다면, 그들의 계략과 활동을 알 수 있다면, 교만과 경박한 언동이 훨씬 적을 것이다. 사탄은 마귀들의 왕이다. 그가 다스리는 악한 천사들은 그의 명령을 행한다. 그들을 통하여 사탄은 온 세상에 그의 대리자들의 수를 늘려 나간다. 그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악을 배후에서 관장한다. 어둠의 정사와 권세가 숫자도 많고 활동도 지속적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용기가 꺾이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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