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인들의 응집력은 참으로 가공할 만 합니다.
그 누가 무언가에 대해 일단 한마디만 꺼냈다 하면 일거에 와~~ 하고 달려들어 완전히 거덜을 내버리니..^^ 우선은 그 열정에 감복하게 되지만, 종국엔 자연스레 브람스인들의 진지함과 해박함으로 생각이 미치게 됩니다.
무슨 얘기부터 할까요?
<소년중앙>.. 저와도 좀 인연이 있었지요. 내용 중에 ‘사진소설’이란 것이 있었어요. 소설의 본문과 함께 삽화를 싣는 대신, 실제 어린이들을 모델로 하여 소설 내용과 어울리는 사진을 촬영하여 함께 싣는 편제였지요.
아마.. 72년 쯤의 어느날, 수업 중이었는데.. 느닷없이 잡지사 기자들이 들이닥치더니, 담임선생님께 뭐라고 협조를 구하더군요.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니까, 이분들이 교실을 한바퀴 쭈욱 들러보고나선 저를 지목하는 거에요..^^
영문도 모른 채, 어린 마음에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다양한 포즈(?)로 사진촬영에 응해야만 했었죠. 물론, 그후론 주변에서 조금 유명해지긴 했습니다만… 제 평생 미디어의 위력을 몸으로 경험한 첫 사건이었습니다. 이렇듯 소시적엔 한 인물 한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지금은 풍상에 바래고 세파에 닳아서 삶에 찌든 몰골을 갖게 되었답니다.
다음은 <소녀의 기도>, 자연스레 저의 유치원 시절을 떠올리는 음악입니다.
유치원 보모(그땐 그렇게 불렀지요) 중에 백선생님인가?.. 하여튼 피아노를 주로 연주하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틈만 나면 이 곡을 연주하셨어요. 간식 시간에 이곡을 라이브로 들으며 삶은 달걀이랑 떡이랑 먹던 생각납니다. 아마 제가 제목을 기억한 첫 피아노 음악일 것 같네요.
유치원하니까.. 또 생각나는데, 졸업식 장면이지요. 제가 그땐 제법 모범적이고 영향력이 있던 생도였던지, 여러 중책들을 맡고 있었어요. 그 중엔 오케스트라 지휘도 포함 되었구요. 탬버린, 캐스터네츠, 트라이앵글, 큰북, 작은북.. 완전 타악 앙상블에 멜로디 악기라곤 선생님이 연주하는 피아노가 전부인 오케스트레이션입니다. 그럭저럭 합주를 마치고 그날의 하일라이트인 졸업생 대표의 답사 순서인데, 이 또한 물론 제 몫이었죠.
지금도 기억이 선한데 이 순간을 위해서 부산 국제시장에서 난생 처음 양복까지 하나 사 입었었죠. 그리곤, 답사를 시작하는데.. 이렇게 나갑니다..
“코흘리며 어머니 손잡고 유치원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 되었습니다…운운”
연습을 얼마나 했던지 지금껏 기억을 하고있어요. 그런데, 여기까지 잘 나갔다가 그 다음이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는 거에요. 그때의 정적.. 시간이 멈춰버린 속에.. 친구들, 부모님, 선생님의 눈동자들이 모두 저를 향하고, 제 머리 속은 일체의 메모리가 날아가버린 고청정의 진공상태가 되어버렸죠. 서서히 물기를 머금어가던 제 눈동자… 마침내 전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그날의 위기를 벗어났답니다. 지금도 기억이 선해요. 68년 2월입니다.
또 뭐였더라?
아, <달고나>.. 이게 뭔지는 알겠는데, 제겐 생소한 이름이네요. 전 초등학교 1학년때까진 부산에서 살았는데, 그곳에선 이 것을 ‘X과자’라는 다소 원색적인 (그러면서도 매우 사실적인)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답니다. 며칠전 일곱살된 둘째 녀석이 엄마를 졸라서 ‘달고나’를 해달라는 거에요. 그래서 이런 이름을 알게 되었네요. 이왕 만드는 것, 별모양, 달모양까지 찍어서 모양대로 뜯어가면서 먹었죠. 그날의 달고나는 세월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네요.
그만하죠. 추억의 사진첩을 들추게 만드는 이 따스함의 위력, 브람스만의 마력입니다..^^
그럼 좋은 오후 시간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