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7-30
2. 빛과 어두움(27-30장)
27장과 29-30장은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얻은 승리를 다룬다. 28장은 사울이 무당의 동굴에서 도움을 받고자 할 때의 무서운 실패를 묘사하고 있다. 물론 다윗이 언제나 여호와의 뜻 안에서 행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적의 보호 아래 살기 위해 가드(Gath)로 돌아갔을 때 그의 믿음은 실패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27장). 그는 전에 그곳에서 어려움을 당했으나(21:10-15), 이제 그는 600명의 강력한 무리의 지도자로서 훨씬 나은 접대를 받았다. 그러나 다윗이 적의 영역을 여행하는 때이므로 왕에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고(27:10-12) 블레셋이 모였을 때에는(29:1) 다윗은 거의 자기 백성과 전쟁을 할 뻔하였다! 육신의 지혜에 의존할 때에는 반드시 괴로움으로 끝나게 된다. 다윗이 자기의 본심을 드러내는 일과 그의 백성을 죽이는 일을 막게 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28장과 30장 사이의 대조점은 현저하다. 사울은 여호와를 떠났으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였다(28:6). 반면에 다윗은 용기를 주시며 방향을 제시해 달라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30:6-9).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사 55:6)는 말씀을 사울은 마음에 새기지 못했다. 하나님은 다윗이 자기의 소유와 백성을 되찾게 해 주셨을 뿐 아니라 적들에게서 탈취한 전리품을 모을 수 있게도 하셨다! 우리는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사림들에게 전리품을 나누어 주는 그의 은혜로운 정신과 유다의 장로들에게 선물을 보낸 그의 친절을 높이 평가한다. 이러한 선물은 정치적인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사울이 밤중에 무당의 동굴을 찾아간 것을 살펴볼 때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28장). 사무엘은 죽었고 그가 살았을 때도 사울은 그의 사역을 진실로 존경하지 않고 있었다. 인간이 가진 참된 친구를 늦게야 깨닫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사울이 의지할 유일한 방도는 무당을 방문하는 일이었으며 이 일은 율법에 금지된 것이었다(레 20:6). 사람이 여호와께 등을 돌릴 때에 그 종말이 어디까지 가는 것인지 놀랄 일이다. 무당의 부름을 받아 사무엘이 나타난 것에 대해서는 끝없는 논란이 일어 왔다. 사실은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1)사무엘이 나타난 것은 여호와께서 하신 일이며 무당의 기능 탓이 아니었다.
(2)무당은 사무엘이 나타나자 놀랐다.
(3)사무엘은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줄 특별한 멧세지가 있었기 때문에 왔다.
무당이 다른 사람과 짜고 사무엘로 분장했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울이 온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사단이 이러한 업적을 성취할 수도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무게있는 멧세지를 사단이 전하도록 하실 리가 없으며, 또한 그의 말씀이 정죄하고 있는 일을 실행하는 데 인준을 하실 리가 없기 때문이다. 무당은 사무엘이 나타난 것을 본 유일한 사람인 듯하다. 사울은 사무엘의 음성만 듣고(20절) 사무엘의 형태는 보지 못한 것같다(12-14절). 사무엘상 15장 35절과 16장 1절에서 사무엘과 사울의 분리가 이루어졌고, 왕은 더이상 그를 보지 못할 것이었다.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사울왕이 이같은 사악한 행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빛 가운데 행하지 않고 어두울 때 행했다. 그는 자신을 변장하였고(그러나 사실상 그의 본래의 성품이 드러났다), 한 여인이 율법을 어기는 것을 허용하였으며, 자기 민족과 가족과 군대와 자신에게 수치와 패배를 안겨 주었다."
삼상 31
3. 삶과 죽음(31장)
다윗이 그의 친구들에게 선물을 보내고 있는 동안에 사울과 그의 가족은 전쟁터에서 옷을 벗김을 당하고 있었다! “육의 생각은 사망이다“(롬 8:6)! 길보아는 드보라(삿 4-5장)와 기드온(삿 7장) 시대에 큰 승리를 안겨준 곳이었다. 그러나 이 날에는 비극적인 패전의 장소가 되었다. 하나님은 사울을 버렸고 반역한 왕에게 남은 일이란 죽음뿐이었다. 무죄한 아들 요나단이 아버지의 죄로 인하여 고난을 받아야 했던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사무엘하 1장 1-10절에는 사울의 죽음에 대한 또다른 설명이 나와 있다. 이 두 기사를 조화있게 정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울은 그가 패전한 것을 알았다. 그는 산 채로 잡혀서 적에게 엎드러지기를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를 모욕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칼 위에 엎드러짐으로 자기의 생명을 끊으려 하였다. 그러나 이 일로 그는 죽지 않았으며 그의 창에 기댄 채 살아있었는데(삼하 1:6) 아말렉 사람들이 따라와서 그 일을 끝냈다(그러나 사무엘하 1장에 나오는 아말렉 사람이 진실을 말하지 않고 다만 그가 왜 사울의 왕관과 팔찌를 가지고 있는지 그 이유를 다윗에게 설명하기 위하여 이런 이야기를 말한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는 아마도 사울을 죽여서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에“ 다윗에게 상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사울의 죽음에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 사울이 아말렉을 죽이기를 거절했으므로(15장) 반대로 그들 중의 하나가 그를 죽였다. 우리가 처리하지 않음으로써 범한 죄들은 결국 우리를 패망시키는 원인이 된다. 사울은 그의 왕관을 잃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적은 사울의 죽음을 얼마나 기뻐하였을 것인가 ! 이 승리가 그들의 거짓 신들의 산당에 어떠한 영광을 가져다 주었을 것인가 ! 사울은 살아 있을 때나 죽어서나 자기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했다(빌 1:20-21). 길르앗 야베스의영웅적인 사람들이 왕족의 신성함을 더럽힌 시신들을 구해내 적절한 장사를 지냈던 일은 칭찬할 만하다. 그들은 시체들이 앞으로 더욱 모욕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하여 불태웠다. 한 때는 사울이 이 백성들을 구해냈는데(11장), 이 장사가 그에게 갚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었다. 다윗은 후에 그 뼈들을 가져다 무덤에 묻었다(삼하 21:12-14).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을 때 다윗은 그들이 전왕을 존중한 것을 인하여 이 용감한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삼하 2:5-7).
사울의 비극적인 생애와 죽음은 우리에게 많은 실천적인 교훈을 준다.
(1)큰 죄들은 인내하지 못하거나 불완전한 순종, 변명하는 등의 작은 일들에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2)어떤 죄에 사로잡히게 되면 점점 더 나쁜 죄에 빠진다.
(3)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들과도 동행하지 못한다.
(4)핑계들은 고백을 대신할 수 없다.
(5)타고난 재능이나 능력도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6)순종을 대신할 만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