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는 뒷끝으로
어두워진 을지로 골목안이 촉촉한 비에 젖어, 간간히 비추는 불빛이 바닥을 물들인다.
우산을 받쳐들고 저녁을 먹으러 찾은 곳은 돼지갈비로 맛있다고 알려진 을지로 '안성집'이다.
비가 와서 그런가?
손님들이 꾸준하게 들어 오는것이, 이런날은 왠~지 그냥 집에 들어가기가 좀 서운타.ㅋ
돼지갈비 500g에 25.000원이란다.
양쪽 테이블에 두개씩 주문을 넣었다.
나중에 먹다가 소주, 맥주 가격을 보고는 괴기집이 아니고, 술집이군화!! 라고도.ㅋ
주방앞쪽을 보니, 구석진 한켠에서 몸집도 작으신 할머니가 열심히 고기를 굽고 계신다.
등 뒤로는 손님상에 나갈 고기가 그릇에 담겨져 있고, 그것을 일일이 초벌구이를 하고 계셨다.
구경삼아 다가가 인사를 나눴는데,
얼굴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으시면서 머리에는 젖은 수건까지 둘르시고 반가이 인사를 받아 주신다.
그러면서 고기를 들어 보여 주시는데
'뼈가 이렇게 붙은 진짜 갈비야!!' 하시며 자랑하시고.ㅋ
얼추 눈에 들어오는 것만 봐도 넘에 갈비대가 확연하다.
그렇게 할머니가 우리 고기를 초벌구이 해 주신것을
숯불은 아니지만, 식탁에서 다시 한번 잘 구워서 먹으면 된다.
살집이 튼실하고 도톰하니
초벌구이만 해 왔는데도 벌써 군침이 돈다.
한켠에 소스가 있는데
고기가 살짝 마른듯 하면 조금씩 발라가면서 구우면 된단다.
밑찬은 별도로 6.000원에 주문한 보쌈김치가 때깔 좋게 나왔다.
이 집에서 나름 유명세를 한다는 찬이라 궁금해서 시켜 봤는데
배추 한 롤에 6.000원이면, 가격면에서는 비싼.
겉은 배추 잎으로 야무지게 싸여 있고
속에는 무를 잘게 채 썰어서, 굴과 견과류를 넣었는데
김밥처럼 한 롤을 개인접시에 들고가서 고기와 함께 먹으면 된단다.
독특하다 싶은 보쌈김치의 맛을 보니 지나치게 단맛은 없는 것이, 간이 쎄지도 않고, 고춧가루 양념이 자극적이지도 않는, 강한 끌림이 있는 맛은 아니다.
그런데 아삭하고 개운한 식감은 마치 김치 샐러드를 먹는것 처럼 언제 먹었나 싶게 도둑처럼 없어져 버렸다.
결국 비싸다 여겨졌던 보쌈김치를 또 추가 시켰더라능.ㅋ
요번 갈비대는 어째 이리 크남. 응?
먹고 남은 갈비대는 잘 익도록 한켠에 두고, 열심히 갈비살을 구워먹는데
대체적으로 안성집의 양념은 다른 서울의 갈비집들에 비하면
단맛, 짠맛, 후추맛 등의 양념이 훨씬 순해서 입맛에 맞는다.
지나치게 양념맛이 과하면 금새 질리기도 하는데, 이 집 갈비는 먹을수록 땡기는 담백함이 있다.
얼굴이 볼그족족하게 먹고 있는데
고기 굽던 할머니가 오셔서는 우리 테이블에 고기를 뒤적거려 주신다.
다시 보니 머리에도, 어깨에도 젖은 수건을 둘르셨는데,
작은 체구에 말르신 체형이 우리 시골에서 보면, 새벽부터 저녁늦게 까지 일 잘 하시는 할머니들이 꼭 한분씩은 계시는 딱 그분이시다.
알고 보니 이 분이 '안성집'에 '안성댁', 주인 할머니셨다.
아드님은 계산대와 서빙등을 보시고, 할머니는 직접 손님상에 나갈 고기를 구우시는 모습에서 이 집이 왜 잘 되는지 납득이 되드라.
식당이 50년이 넘어서 자리를 잡을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뒷짐지고 감독(?)하시는 다른 유명집들에 사장님과는 달리 뜨거운 불 앞에서 고기를 굽는 수고로움을 마다 않는 할머니가 참 대단하시다 싶었다.
물론 내돈 주고 밥먹으러 왔지만
더운데서 수고하심에 소주 한 잔 하시라 따라 드렸더니,
'안성댁' 오늘 한 잔 하셨다. 흐~
할머니 손끝이 야무지신가 찬도 손수 다 하신단다.
이건 물김치가 아니고 짠지다.
그러니 홀라당 국물 둘러 마시면... 난 모른당.ㅋ
여튼 짠지속에 무를 건져서 맛을 보면 할머니의 손 맛을 100% 느낄수 있다.
소금에 잘 절여진 무에 짠맛을 빼고는 약간의 단맛과 신맛을 첨가해서 물김치인냥ㅋ 이렇게 나왔는데
요 무의 개운함과 아작함은 여느 식당을 가도 보기 힘들 맛이다.
절대로 도시의 달콤한 새련된 맛은 아닌것이, 투박하고, 소박하고, 옛스러움에 여러번 리필을 해먹고, 잘 먹는다고 가져다 주시기도 하셨다.
쌈장 또한 맛을 보면, 집 된장맛이 물씬난다.
'언니, 집 된장 같으'하고 할머니께 여쭤보니
'같은게 아니고 기야' 하시면서 직접 메주써서 담그신 장이란다.
을지로 작은 골목안에 솜씨 좋은 왕언니가 이리 자리하고 계셨다니.
잘 익으라 뒀던 갈비대도 뜯고는
이집에서 잘 팔린다는 육개장으로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8.000원 하는 육개장은 생각만큼 푸지게 나오지는 않았고
일반적인 육개장의 모습또한 아니였다.
속을 뒤적거려보니 딱 고기하고 대파, 양파만 보인다.
아드님께 여쭤보니 원래부터 어머님이 육개장을 이렇게 계속 끓이셨단다.
보통의 육개장에는 잘게 찢은 고기에 고사리, 토란대등의 야채가 듬뿍인데, 이집엔 오리지널 고기만 있다.
그럼 이건 육개장이 아니고 고깃국.ㅋ
우스갯소리로, 이건 어쩜 부자집 육개장 스톼일~
양파와 대파의 달큰한 맛이 국물에 우러나오고, 역시나 고춧가루에 자극적인 맛이 없는것이 공기밥을 시켜서 말아 먹으니
고것이 아주 딱 제 궁합이드라고.
삭삭 긁어 먹으니 잘 먹는다고 작은 대접으로 육개장을 조금 리필해 주셨다.
콩국수도 고소하고 시원하게 다 먹고는 볼록한 배를 좀 두들겼다.ㅋ
을지로 안성집은
주력으로 나가는 돼지갈비나, 보쌈김치, 육개장에
지나치게 자극적인 양념이 가미되지 않아서 입맛에 맞았다.
밑찬에서도 개운하고 옛스러운 맛들이 느껴졌고
할머니가 직접 구워주신 고기맛은 더욱 좋았던것 같다.
언뜻 몇몇 매뉴는 가격이 비싼듯 싶기도 했지만
가격대비 맛이 흡족해서 막상 음식을 맛보고는 크게 게으치 않게 되는 집이였다.
[안성집]
주소 : 서울시 중구 을지로3가 208-1
전화 : 02-2279-4522
주차 :불가능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9시50분
휴무일 : 일요일(홀수날? 일요일날 방문땐 꼭 미리 확인 전화 하시길^^)
매뉴 : 돼지갈비 500g 25.000원, 육개장 8.000원, 보쌈김치 6.000원
(주변 방문맛집)
냉면로드10 을지로본점 우래옥/상위 1% 유명 냉면집의 불편한 진실 (http://blog.daum.net/da0464/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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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