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아 !
다들 무고들 하시겠지 ? 11월이라, 이해도 끝자락이 가까이 왔네그려 !
이달엔 뭘 친구들에게 소개할까 생각해보니, 10월 마지막주에 아내와
아들녀석 가족과 성묘차 고향 다녀온걸 풀어볼까 싶구먼,
올해도 전년처럼 내려간김에 1박하고 올 계획으로 부안 변산의 대명콘도
를 아들이 예약하려했는데, 아뿔사 방이 다차서 대기자 명단에 올렸으나
결국 빈방이 없어, 대안으로 전주한옥마을의 “전통한옥”에 빈방이 있어“
예약하고 1박2일 여정에 들어갔었네.
“익산 원불교 영묘묘원”에 모셔진 4분( 나의 조부모 및 부모 ) 께 인사
드리고, 다소 이르다 싶었으나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으로 내려갔는데
역시나 아직 붉은 단풍은 보기 어려웠네, 단풍이 절정에 달하면 인파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는데, 관람객이 적으니 여유있게 경내를
돌아다니며, 고즈넉한 산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오히려 지금 오기
잘했다 싶더군. 절입구 먹거리촌에서 도토리묵과 파전에 동동주를 걸치니
점심요기가 되었고...
이어서 전에는 가보지 못한 “백양사”로 옮겼는데, 절 경내에 상당한 넓이
의 연못이 있는게 백양사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랄까 ? 아울러 백양사를
포함한 내장산 국립공원이 “조선팔경” 임을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되었네.
전주 한옥마을의 전통여관 “豊南軒” 에 여장을 풀고, 거리 구경에 나섰
는데, 웬 인파가 그리 많은지 게다가 한복을 입은 젊은 연인들이 많길래
알아보니 한복 대여점에서 빌려들 입었더군. 거리의 노점상에게, 웬사람이
이리 많습니까 ? 말도 마싶쇼 이건 약괍니다, 추석때는 발디딜틈이
없었습니다 하더군,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있는 "경기전"등을 둘러보고
저녁시간이 되자 며늘아이가 식사할 장소를 미리 인터넷으로 찾아서 정한
남부시장 ( 한옥마을 인근이고 “豊南門” 옆 일대 ) 안 “조점례 피순대”
식당에 갔는데, 골목까지 긴줄이 늘어서 있어 할수없이 우리도 30여분
기다린 끝에 자리잡고 앉아 주문한 “피순대”와 “순대전골” 맛을 보니,
줄서는 이유를 알만하더군. 중,고등학교 다녔을때의 추억과, 현대화 되기전
옛 전주의 풍경을 간간히 아들녀석에게 설명해주며 마시는 소주가 왜 그리
맛있었는지...
그 시간이 그리 행복할 수 없었다네 ㅎㅎㅎ
다음날 아침 “풍남헌” 인근 “교동시래기국밥”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여관
을 나와 아내가 제안한 “선유도” 구경을 하고자 출발했는데, 선유도까지
개통되어있는 연육교 다리 보수공사 때문에 들어갈 수 없어, “신시도” 까지만
들어갔다 나오니까 어느덧 시간이 10시30분 가까이되어, 귀경하는 도중 적당한
곳 에서 식사하자 하고 의논 끝에, 아들이 인터넷에서 찾은 “서천수산물특화시장”
까지 올라가 시간을 보니 11시 30분, 1층 생선가개에서 횟감을 구입하면 2층
식당에서 삶거나 끓여주는 형식의 시장인데, 싱싱한 새우와 꽃게 그리고 광어를
선택해서 먹는데, 특히 새우를 좋아하는 며늘아이 하는말,
아버님 ! 이렇게 싱싱하고 맛있는 새우 처음인 것 같아요 하더구먼. 역시나
해산물은 싱싱해야 제맛을 알 수 있나봐...
( 천주교 “전동성당” 이야기를 해야겠구먼, 1898년 완공된 “명동성당” 보다 10년
늦은 1908년 V.L 프와벨 신부 설계로, 지어진 호남지역 서양식 건축물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큰 건물인데 이미 내외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네, 내가 머물던
숙소에서 가까워 투숙한 다음날이 마침 일요일이어서, 아내와 미사를 참례하는데,
5시30분 이른 새벽인데도 많은 신자들이 있어, 보아하니 외지 방문객들이 많은 것
같았었네 )
이번여행에서 느낀건...
우리나라 전국 어디나 볼거리가 있는 곳은, 관광지화 되어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니 자연 먹거리가 풍성해지고, 이래저래 전국이 모든면에서 상향 평준화 되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점이 었었네,
다음엔, 최근 읽은 “불의 나라” 작가 “박범신”의 산문집 “젊은 사슴에 관한 은유”중
“가난이 주는 감동” 내용이 너무 좋아 일부를 옮겨볼까 싶네,
전략 ~
아내는 내 면잠옷 선물을 가슴에 끌어안고 소리내어 울었다. 지금까지도 아내가 면
잠옷 하나를 선물 받았을 때처럼 폭발적으로 감격하여 우는 걸 본 일이 없다. 면잠옷
한 벌을 가지고 뭘 그리 우느냐고 아내를 달래다가 끝내 나까지 울음을 터트리고 말
았던 일이 엊그제 같다. 가난하지 않았다면 그런 감동은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난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이 우리가 풍요로웠던 시절보다 훨씬 더 불쌍 했다는 상투적
단정에 동의할 수 없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풍요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이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얻고 잃었는가 ?
예컨대, 숨가쁜 성장제일주의 관성을 좇아 살면서 우리가 얻은 것은 대형 텔레비전,
멎진 승용차, 발빠른 휴대폰 따위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대형 텔레비전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끼리조차도 모여 앉아 있을뿐 대화의 체널이 막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참된 나눔을 잃었고, 멋지고 힘있는 자동차 때문에 우리가 대대로 물려 주어야
할 상위 가치인 신선한 대기와 깨끗한 자연을 잃었으며, 휴대전화 때문에 우리들 자
신의 실존을 만나고 바라 보아야 할 참된 휴식을 잃었다. 어느덧 공룡처럼 비대해진
욕망에 떼밀려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조차 묻지않고 죽을 둥 살 둥 달려온 것은 아닌가.
가난 속엔 무엇보다 감동이 있다.
나는 무엇보다 면잠옷 한 벌에 감격해 울던 아내의 모습을 오늘날에도 자주 떠올리
며 산다. 그 시절보다 훨씬 풍요롭게 살고 있는 지금은 아내를 감동 시킬 수 없다.
감동은 절대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동이 없는 삶이란 돈이 많아도
황야나 다름없다.
"감동적인 사랑의 울림을 삶 속으로 불러들일 때이다"
다음 만날 때 까지 모두들 건강해라 !
죽전골 샌님
素 雲 이가
첫댓글 새벽에 쓰는 소운의 글을 읽고 감동받고 있네.가족끼리 여행하며 조상의 흔적도 만나보고,어릴적 고향의 모습도 둘러보고 참 평화로워 보여 부럽네...
가난한 때의 추억이 더 아름답습니다.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 계획에 차질이 있어도
예기치 못한 난관을 헤치며 즐겁게 여행을 다녀왔네요. 여유로운 그 모습 많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