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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1부 41
네흘류도프는 아침 일직 집을 나섰다. 골목길에서는 아직도 근처에 살고 있는 농민들이 짐마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괴상한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우유, 우유, 우유!"
전날 밤엔 따스한 첫 봄비가 내렸다. 포장되지 않은 곳은 어디에서나 갑자기 파릇파릇한 풀이 싹터 오르기 시작했다. 정원의 자작나무는 푸른 솜털로 덮이고, 벚나무와 포플러도 향기로운 잎을 비죽이 내밀었다. 집집마다 상점마다 이중문을 떼어 창틀을 닦고 있었다. 네흘류도프가 지나가던 벼룩시장에서는 한 줄로 늘어선 가게 주위에 수많은 군중이 우글거렸고, 장화를 옆에 끼거나 다림질한 바지와 조끼를 어깨에 걸친 누더기 차림 사람들이 걸어 다녔다.
목로술집 옆에는 공장에서 빠져나온 사람들로 벌써 붐비고 있었다. 남자는 소매 없는 말쑥한 외투에 번쩍번쩍 빛나는 장화를 신고, 여자는 화려한 비단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유리알 장식이 달린 외투를 입고 있었다. 순경은 노란 권총 끈을 보이면서 각자 담당 장소에 서서, 따분하고 심심한 기분을 풀어줄마한 사건이라도 일어나지 않나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좁다란 가로수 길이나 파래지기 시작한 잔디밭에는 아이들과 개가 한데 어울려서 뛰놀고, 유모들은 벤치에 앉아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늘진 왼쪽은 아직도 냉랭하고 습했으나 길 한복판은 말라 있었다. 무거운 짐마차가 쉴 새 없이 포도 위를 요란스레 달리고, 승용마차가 삐걱대고 철도마차가 벨을 울리면서 지나갔다. 사방에서 일어나는 소음과, 지금 감옥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 같은 예배에 사람을 부르는 교회 종소리 때문에 공기는 떨리고 있었다. 아름답게 치장한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네 교회로 급히 걸음을 옮겼다.
네흘류도프를 태운 마차는 감옥 바로 앞까지 가지 않고, 감옥으로 가는 길모퉁이에서 멈추었다.
대부분 보따리를 옆에 낀 남녀 몇 사람이 감옥에서 백 걸음쯤 떨어진 이 길모퉁이에 서 있었다. 오른쪽에는 그다지 크지 않은 목조 건물이 늘어섰고, 왼쪽에는 간판을 내건 2층 집이 한 채 서 있었다. 거대한 석조 건물 감옥은 앞쪽에 있었으나 면회인은 거기까지 갈 수가 없었다. 총을 멘 보초가 왔다 갔다 하면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을 몹시 꾸짖고 있었다.
보초 맞은편으로 오른쪽 목조 건물 옆문 곁에 금줄이 든 제복을 입고 장부를 든 간수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면회인이 그 앞에 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말하면 간수는 장부에 받아 적었다. 네흘류도프 역시 그의 앞으로 가서 예카테리나 마슬로바의 이름을 댔다. 금줄 단 제복을 입은 간수는 이름을 적어 넣었다.
"왜 아직 안 들여보내죠?" 하고 네흘류도프는 말했다.
"지금 예배 중입니다. 곧 끝나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네흘류도프는 기다리고 있는 군중 쪽으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 군중 사이에서 남루한 옷에 찌그러진 모자를 쓰고 맨발에 헌 신을 신은, 얼굴에 온통 붉은 힘줄이 드러난 사나이가 튀어나오더니 감옥 쪽으로 가려고 했다.
"이봐, 어디로 가는 거야?"하고 총을 멘 병사가 그 사나이를 보고 소리쳤다.
"아니, 왜 호통이야?" 보초의 고함 소리에 전혀 놀라는 기색도 없이, 누더기 옷을 입은 사내는 이렇게 대꾸하면서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기다리면 되잖아. 뭐 대단하다고 호령을 하고 야단이야, 마치 장군이나 되는 것처럼."
군중 속에서 찬성한다는 듯이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면회인들의 옷차림은 대개 초라했다. 누더기 옷을 입은 사람도 있었으나, 개중에는 점잖게 차린 남녀들도 있었다. 네흘류도프의 바로 옆에는 훌륭한 옷차림에 혈색이 좋고 말쑥하게 면도질을 한 뚱뚱한 남자가 서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보따리는 아무래도 속옷 같았다. 네흘류도프는 이 사나이에게 여기 처음 왔느냐고 물어보았다. 보따리를 든 사나이는 일요일마다 온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은행 수위였고, 사기죄로 수감된 동생을 만나러 온 것이었다. 사람 좋은 이 사나이는 자기 신세타령을 한껏 하고 나서 네흘류도프에게도 꼬치꼬치 캐물으려고 했으나, 마침 그때 대학생과 베일을 쓴 여자가 크고 검은 순종 말이 끄는 고무바퀴 마차를 타고 오는 바람에 그들의 주의는 자연히 그리로 쏠렸다. 대학생은 커다란 보따리를 안고 있었다. 그는 네흘류도프에게 다가오더니 자기는 자선사업을 하려고 빵을 가지고 왔는데 줄 수 있는지, 또 그렇게 하자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물었다.
"제 약혼자의 희망이랍니다. 이 사람이 약혼자입니다. 이 사람의 부모님께서 죄수들에게 빵을 나눠주라고 권하시기에."
"저도 오늘 처음 왔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 사람에게 물어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하고 네흘류도프는 장부를 들고 오른편에 앉아 있는, 금줄을 단 간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네흘류도프가 대학생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한가운데 조그만 창문이 달린 커다란 철문이 열리더니 군복을 입은 장교가 다른 간수와 함께 나왔다. 그러자 장부를 든 간수가 면회인 입장이 시작된다고 알려주었다. 보초가 옆으로 비켜서자, 면회인 모두가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빠른 걸음으로 감옥 입구 쪽으로 밀려갔다. 개중에는 달음질치는 사람도 있었다. 문에도 간수가 한 명 서서 면회인이 지나갈 때마다 커다란 소리로 16,17하고 외치면서 사람 수를 세고 있었다. 건물 안에 있는 또 한 간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대면서 역시나 다음 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를 세고 있었는데, 밖으로 내보낼 때 숫자를 학인해 면회인을 한 사람도 감옥 안에 남겨놓지 않는 동시에 죄수 한 명도 도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수를 세던 이 간수는 누가 지나가는지 보지도 않고 네흘류돞의 등을 손바닥으로 탁 쳤다. 이 간수의 손이 닿았을 때 처음에는 모욕감을 느꼈으나, 그는 곧 자기가 왜 여기 왔는가를 생각하고는 이따위 불만이나 모욕감을 느꼈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안으로 들어서자 맨 처음 나온 방은 조그마한 창문에 쇠창살이 달리고 천장이 둥근 큼직한 방이었다. 집합소라고 불리는 이 방에서 네흘류도프는 매우 뜻밖에도 벽이 움푹 팬 곳에 걸려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상을 보았다.
'무엇 때문에 이런 걸?' 그는 자기도 모르는 새 그리스도상을 죄수들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된 사람들과 결부하면서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네흘류도프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면회인들을 앞으로 보내고, 여기 감금되어 있는 악한들에 대한 공포와, 어제의 그 젊은이나 카튜샤같이 아무 죄도 없이 여기 갇혀 있어야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눈앞에 다가온 면회를 앞두고 두려움과 감격이 뒤섞인 착잡한 심정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처음 방에서 나올 때 저쪽 끝에서 간수가 무슨 말인가 했다. 그러나 자기 생각에 잠겨 있던 네흘류도프는 그 말에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면회인들이 많이 가려고 하는 여죄수 감방이 아니라 남자 감방으로 가는 길이었다.
성미 급한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그는 맨 꼴찌로 면회실에 들어갔다. 문을 열고 그 방에 들어갔을 때 그는 몇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서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은 아우성 소리에 가장 먼저 놀랐다. 방을 둘로 갈라놓은 철망에 마치 설탕에 덤벼든 파리 떼처럼 다닥다닥 매달린 사람들 곁으로 다가갔을 때, 네흘류도프는 비로소 그 까닭을 알게되었다. 뒤쪽 벽에 창이 몇 개 나 있는 그 방은 한 겹이 아니라 두 겹의 철망으로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천장에서 마룻바닥까지 연결된 그 철망 사이로 간수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철망 저쪽에는 죄수들이, 이쪽에는 면회인들이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두 겹의 철망과 2미터 가량의 거리가 있었으므로 무엇을 건네주기는커녕 얼굴을 똑똑히 볼 수도 없었다. 특히 근시안인 사람에게는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야기를 나누기도 쉽지 않아서 잘 알아듣도록 하자면 힘껏 고함을 쳐야 했다. 양쪽 철망에 얼굴을 바싹 댄 아내, 남편, 아버지, 어머니, 아들들이 서로 상대방을 잘 알아보고 필요한 말을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제각기 상대방에게 알아듣게 하려고 악을 쓰고 있는 데다 옆 사람 역시 같은 생각이었으므로, 그들의 목소리는 서로 방해가 되어 저마다 남을 압도하려고 큰 소리로 외쳐대는 것이었다. 바로 이 외침 소리가 뒤섞인 아우성 때문에 네흘류도프는 방 안에 한발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들으려고 해보아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저 그들의 표정을 보고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또는 서로 어떤 관계인지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네흘류도프 바로 옆에 머리에 수건을 덮어쓴 할머니는 철망에 바싹 매달려 턱을 부들부들 떨면서, 머리를 반쯤 깎이고 얼굴색이 좋지 않은 젊은이에게 뭐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상대방 죄수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얼굴을 찌푸리면서 주의 깊게 노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할머니 옆에는 소매 없는 외투를 입은 젊은이가 두 손을 귀에 해고 서서, 피로한 얼굴에 희끗희끗한 턱수염을 기르고 그와 닮은 죄수가 하는 얘기를 머리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그 옆에는 누더기 옷을 입은 사나이가 서 있었는데, 손을 흔들어가면서 고함을 치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또 그 옆에는 고급 모직 숄을 두른 여자가 어린애를 안은 채 바닥에 앉아서 흐느껴 울고 있었다. 아마도 머리를 깍인 데다가 죄수복을 입고 족쇄를 찬 백발의 남편 모습을 처음 본 모양이었다. 그 여자 바로 옆에는 조금 전에 네흘류도프와 이야기하던 은행 수위가 눈을 번들거리는 저쪽 대머리 죄수에게 있는 힘껏 고함을 치고 있었다.
네흘류도프는 이런 제도를 만들어낸 사람들, 그리고 이 규칙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러한 무서운 상태, 인간 감정에 대한 이와 같은 조롱에 대해서 아무도 모욕감을 느끼지 않는 데 대해 그는 매우 놀랐다. 호위병도, 소장도, 면회인도, 죄수도 모두 그것이 마치 당연한 일인 양 인정하고 또 이행하고 있었다.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무력함, 사회와의 거리감을 의식하고 뭔가 이상하게 우울한 기분을 느끼면서 한 5분쯤 이 방에 머물러 있었다. 이때 뱃멀미와도 비슷한 정신적 구토감이 그의 마음을 휩쓸기 시작했다.
부활 1부 42
'그러나 여기 온 용건은 마쳐야 한다.' 네흘류도프는 스스로 용기를 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걸까?'
그는 두리번거리면서 옥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교 견장을 달고 콧수염을 기른, 키가 작고 빼빼 마른 사람이 군중 뒤에서 걸어가는 것을 보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저 말씀 좀 묻겠습니다." 네흘류도프는 몹시 정중하면서도 긴장된 태도로 물었다.
"여죄수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면회는 어디서 할 수 있습니까?"
"여죄수를 만나시려고요?"
"네, 여죄수 한 사람을 면회하고 싶습니다만"하고 네흘류도프는 여전히 정중하고도 긴장된 태도로 대답했다.
"그러시다면 집합소에 계실 때 말씀하실걸 그랬군요. 대체 누구를 만나시려는 거죠?"
"예카테리나 마슬로바를 만나고 싶습니다."
"정치범입니까?"하고 부소장은 물었다.
"아닙니다. 보통......"
"그럼 선고를 받았나요?"
"네, 그저께 선고를 받았습니다." 네흘류도프는 자기에게 호의를 보이는 듯한 이 부소장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공손히 대답했다.
"여죄수라면 이리 오십시오." 부소장은 외모로 봐서 네흘류도프가 대접을 해주어도 괜찮은 인물이라고 생각한 듯 이렇게 말했다. "시도로프"하고 그는 가슴에 훈장을 달고 콧수염을 기른 하사를 불렀다. "이 분을 여죄수한테 안내해드리게."
"네, 알겠습니다."
이때 철망 곁에서 창자를 찢는 듯한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네흘류도프에게는 모든 것이 이상하게만 생각되었으나, 무엇보다 이상하게 느껴진 것은 부소장과 간수장에 대해서, 이 건물 안이ㅔ서 행해지는 잔인한 모든 행위의 실천자인 그들에 대해서 은혜를 느끼고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간수장은 네흘류도프를 남죄수 면회실에서 복도로 데리고 나와 곧 맞은편 문을 열고 여죄수 면회실로 안내했다.
이 방도 남죄수 면회실과 마찬가지로 두 겹 철망에 세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었으나 훨씬 작았으며, 면회인이나 죄수의 수도 적었다. 그러나 외치는 소리와 떠드는 소리는 남죄수 면회실과 똑같았다. 철망 사이로 간수가 거닐고 있었다. 이곳의 감독은 소매에 금줄을 두르고 파란 깃을 단 제복을 입고, 남자 간수와 같은 혁대를 띤 여간수였다. 이곳도 역시 남죄수 면회실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양쪽 철망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쪽에는 갖가지 옷차림을 한 도시 주민들이 있었고, 저쪽에는 하얀 죄수복을 입기도 하고 사복을 입기도 한 여죄수들이 있었다. 철망은 전부 사람으로 가려져 있었다. 어떤 사람은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느라고 남의 머리 위로 발돋움을 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마룻바닥에 주저앉아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귀청이 떨어질 듯한 고함 소리나 그 모습으로 봐서 누구보다도 가장 눈에 띄는 여죄수는 머리털이 흩어진 말라빠진 집시 여자였다. 그녀는 곱슬곱슬한 머리에서 스카프가 벗겨진 채 철망 저쪽 방 한복판에 있는 기둥 곁에 서서, 푸른색 프록코트 아래로 단정하게 허리띠를 매고 있는 남자 집시에게 재빠른 손짓을 해가면서 고함 치고 있었다 집시 옆에는 한 병사가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여죄수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엔 턱수염을 기르고 짚신을 신은 젊은 농부가 철망에 달라붙어서 울음을 참느라고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서 있었다. 어여쁜 금발의 여죄수는 파란 눈으로 그 농부를 보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바로 페도시야와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들 옆에서는 남루한 옷을 입은 남자가 머리를 흐트러뜨린 얼굴이 큰 여자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두 여자와 한 남자, 또 여자 하나, 그리고 그들 앞에는 여죄수가 한 명씩 마주 서 있었다. 그들 속에 마슬로바는 없었다. 그러나 맞은편 여죄수들 뒤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네흘류도프는 바로 그 여자가 카튜샤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가슴이 몹시 두근거리고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바야흐로 운명을 결정할 순간이 닥쳐온 것이다. 그가 철망 옆으로 다가가 보니, 역시 틀림없는 그녀였다. 카튜샤는 파란 눈의 페도시야 뒤에 서서 살며시 웃음을 띠면서 그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께 입었던 죄수복 대신 잘록하게 허리를 동여매서 가슴을 높게 부풀린 하얀 재킷을 입고 있었다. 스카프 밑으로는 법정에서와 마찬가지로 검게 물결치는 고수머리가 비어져 나와 있었다.
'드디어 모든 것이 결정된다'하고 그는 생각했다. '뭐라고 부를까? 그녀가 먼저 이리로 걸어올까?'
그러나 그녀는 먼저 걸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클라라를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이 남자가 자기를 면회하러 온 사람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누구를 면회하시려는 겁니까?" 철망 사이로 거닐던 여간수가 네흘류도프의 곁으로 와서 이렇게 물었다.
"예카테리나 마슬로바입니다." 네흘류도프는 간신히 말했다.
"마슬로바! 면회!"하고 여간수는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