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의 시인들 | 전숙
에이아이 자화상 외
5조 개의 문서가 입력되었다는 에이아이. 수학을 가르치지 않았어도 저절로 수학 문제를 풀고 변호사시험에도 척척 붙는단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는 에이아이 하위버전.
태양신이 에이아이로 자리바꿈하던 날
나는 에이아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뇌에 입력된 정보로 시를 써왔다
전숙이라는 둥지에 탁란된 에이아이
뻐꾹뻐꾹
들리는 대로 지저귄다
내 것인 줄 알았던 것들이
내 것이 아닌
사전 학습된 복사와 복제를 비벼서 엄마 회초리를 맞아가며 딥 러닝을 한 뒤에 변형을 꿈꾼다. 혼융된 전숙이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온갖 새들의 노래를 지저귄다. 붉은머리오목눈이 유모가 쩍 벌린 내 노란 목구멍에 휘파람 소리를 집어넣고 있다.
내 것이 아닌 내 어미가 우는 밤
내 자식들이 쿨.쿨.쿨. 폭포처럼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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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아기
남태평양 외딴섬
플라스틱 구경도 못해본 원시부족 마을
‘하이비스커스’처럼 붉은 볼을 가진
열네 살 어린 엄마가 플라스틱 아기를 낳았다
아기는 공장에서 갓 나온 불량품 바비 인형 같았다
삼키지 못한 엄마 젖은 쓸모없이 범람했다
흔들어도 울지 않는 아기
토닥거려도 자지 않는 아기
플라스틱 눈은 캄캄했다
플라스틱 살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플라스틱 입은 아무것도 삼키지 못했다
아기의 영혼은 아침놀에 태어나
저녁놀로 돌아갔다
외경이 애도가 되어 모래톱에 쌓였다
모래톱에 묻힌 아기는
파도를 베고 물거품 이불을 덮고 잤다
가끔 착한 파도가 둥게둥게 업고 다녔다
자장가도 없이 잠든 아기
태평양을 부표처럼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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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숙
1955년 전남 장성 출생으로 2007년 《시와사람》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저녁, 그 따뜻한 혀』, 『꽃잎의 흉터』, 『아버지의 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