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정자와 정치인의 공통점은? 사람될 확률이다.
정치인에 대한 농담은 많지만 난 이게 제일 웃긴다. 그럴 듯 하지 않은가.
난 정치가 우리사회에서 가장 낙후된 분야라고 생각하고 살았다(군대 빼고).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국민들은 대개 제대로 하고 있는데 빌어먹을 정치인들이 나라를 이 꼴로 만든다고 믿으면서. 생각이 바뀐 건 최근이다.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에서 유시민의 말을 듣고.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대략 이런 맥락이었다.
“정치가 썩었다고 하지만 사실 정치만큼 투명하게 비추는 영역이 있느냐? 우리 사회는 정치 이상으로 깨끗한가?”
듣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얻어 맞는 느낌이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는데다 듣고 보니 그의 말이 맞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행성을 세개나 갖고 계신 회장님의 말씀을 아무런 생각없이 믿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기업은 이류고 정치는 삼류라고 했던가? 워낙 정치인을 싫어하니 그토록 싫어하는 회장님의 말씀마저 그럴 듯 하네, 라며 인정하고 살았으니까.
하지만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어라! 여태껏 전혀 잘 못 생각하고 있었는 걸. 그러고보니 정치인만을 욕할 수가 없는 거네. 죄를 지은 인간이 나쁜 거지 죄가 무슨 죄가 있겠어, 라는 기분이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기분이었다.
뉴스에는 매일이 멀다하고 정치권의 비리와 그들의 권력투구와 아전인수의 논리와 자기 밥그릇 챙기기가 나온다. 그 때마다 나는, 저런 인간들 때문에 나라가 이 꼴이잖아,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유시민의 말을 빌리자면 비리를 저지르든, 나쁜 일은 하든, 대부분 매체에 드러날 정도로 열려 있는 사회인데 과연 사회는 그렇냐는 뜻이다.
맞다. 사회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정치인만을 욕하지 사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도 그리 깨끗하지는 않다. 직장만 하더라도 뇌물을 받는 사람도 많고, 이상한 인간이 승진을 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거래는 불공정일 때가 많고, 비정규직은 착취 당하고, 여성은 노동력은 대우를 못받는, 열거하자면 끝도 없고 어찌보면 정치권보다 더 썩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의 그런 부분들은 과연 매체를 통해서 얼마나 노출이 되며 얼마나 개선이 되는 걸까? 용산참사도 그렇고, 쌍용자동차도 그렇고, 삼성전자의 백혈병 문제도 그렇고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은 사회전반적인 문제지 과연 정치인들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유시민의 논리를 좀 더 확장하자면 그렇게 투명한데, 그러니까 누가 비리를 저리르고, 누가 말이 바뀌고, 누가 더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국정운영을 하는지 뻔히 보이는데, 그런 정치인이나 당에 투표를 하면서 과연 정치인만을 욕할 수 있는가로 볼 수도 있다. 틀린 말 없다. 재수씨까지 성추행하는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뽑는 우리들 아닌가. 이쯤되면 정치인의 문제 보다 국민 개개인의 문제가 더 크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정치이야기가 나오면 흥분하는 민족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정치에 무관심한 민족도 없다는 생각이다. 묻지마 지지와 양비론의 부동층이 대부분이니까. 묻지마 지지는 그나마 낫다. 그래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 어째튼 그 후보가 되서 만족스러울 테니까. 아무리 비리를 저지르고 국정운영을 잘 못해도 시멘트 지지율을 보내는 계층이 이해가 안되기는 하지만 그것도 자신의 선택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니까. 문제는 양비론의 무당파 중도계층이다. 한국의 정치가 발전의 속도가 더딘건(그래도 짧은 역사에 이 정도까지 온 건 대단한 것 아닌가) 이 사람들 때문이다. 정치를 터부시하고 누가 되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 계층 때문에 지금의 사회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물론 이 전의 나도 이런 사실에 자유롭지 못 하다).
선거의 핵심은 무엇인가? 가장 좋은 건 적임자를 뽑아 국정운영이 잘 되게 하는 거다. 금상첨화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희박하기도 할 뿐더러 가능성도 낮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 하나 잘 뽑았다고 나라가 하루 아침에 바뀔 리도 없다. 아무리 제왕적 대통력의 나라라 해도 권력 분립의 구조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최선을 뽑는다는 생각이 선거를 관심없게 만들기도 하고. 사실 최선을 뽑는 다는 것은 우리가 은연중에 받은 교육의 세뇌일 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악을 뽑는 다는 것인데 말이다.
그렇다. 사실 선거의 핵심은 차악을 뽑는 거다. 바꿔 말하면 최악은 면하는 것. 극단적으로 말해 히틀러 같은 인간을 뽑으면 안되는 것. 그것이 선거의 핵심이다.
최선은 선택의 영역이지만 차악을 뽑는 다는 것은 의무의 영역이다. 양비론으로 투표를 회피하기에는 정당성이 없다는 뜻이다.
가카의 집권기간을 보라. 차악이 아닌 최악을 뽑았을 때 나라가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 가를.
가카의 업적이나 비리는 퇴임 후에 밝혀지겠지만, 그런 문제를 떠나서 과연 이걸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면에서 가카는 최악이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의 투명성, 민의의 반영이 눈을 씻고라도 있었는가?
난 박근혜씨가 그런 생각으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구국의 혁명이라고 하든, 투명한 정치를 만들겠다고 하든, 언행이 일치되는 사람이라고 자신이 믿고 있든 말이다. 하지만 이 정권하에서 계파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이 정권의 거의 모든 정책들에 찬동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국정운영의 기조도 다르지 않다고 봐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 않은가? 그런데도 영남의 내 주위의 지지층은 가카는 이제 싫지만 박근혜씨는 잘 못 한 것도 없고 가카와 박근혜씨는 다른 사람이니 지지한단다. 대단한 논리다. 그래도 자신만의 논리로 지지라도 하니 그나마 낫다.
하지만 양쪽을 배제한 다수의 무당파 중도계층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 얘기가 나오면 네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는 냉소주의와 정치를 터부시하는 것이 마치 인텔리라도 되는 양하는 태도가 사실 정말 문제인 것이다. 이런 계층이야 말로 정국이 잘 운영될 때 혜택은 가장 먼저 받으려고 하면서 피해가 올 때는 자신에게 오기까지는 절대 정치에 관심을 가지려하지 않는 계층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야구의 볼배합인나 축구의 전술변화에 두는 관심만큼도 시사나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도 공부하지도 않는다. 그저 맹목적인 호불호가 있을 뿐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가카 치하에 있어도 되는 딱 그 수준의 국민이다. 싸잡아서 매도한다고? 나를 포함해서 그런 말 들어도 싸다. 전과가 있건, 법을 어겼건, 과거가 어찌됐든 잘 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가카를 뽑고, 설마하니 그 정도까지야 하겠어, 라고 생각하며 기권하거나 무관심했던 탓에 지난 오년의 시간을 당한 것 아닌가? 또 그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정말이지 서사모아로 이민가고 싶다. 항공권을 살 돈이 없어 문제지. 지지하는 게 자유 듯, 지지하지 않고 꼴보기 싫어서 떠나는 것도 내 자유지 않겠는가. 아무튼,
무라카미 하루키의 침묵이라는 단편을 보면 왕따를 당한 주인공이 이렇게 말하는 구절이 나온다.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아오키 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아오키 같은 인간은 어디에나 흔히 있고, 그 점에 대해서는 이미 포기하였습니다. 그런 인간을 보면,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관계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피하는 거죠. 피하는 도리밖에 없어요.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그런 인간은 금방 알아볼 수가 있어요. 나는 아오키에 대해서는 그 나름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기회가 올 대까지 잠자코 끈질기게 기다리는 능력, 기회를 확실하게 포착하는 능력, 사람의 마음을 실로 교묘하게 장악하고 선동하는 능력-모든 사람이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토악질이 올라올 만큼 싫어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능력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내가 새누리당을 보는 시각이다^^;)
그렇지만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아오키 같은 인간이 하는 말을 비판없이 받아들이고 그대로 믿어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말주변이 좋고 받아들이기 위운 타인의 의견에 좌지우지되면서 집단으로 행동하는 인간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잘못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손톱만큼도 묻지 않습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무의미하게 또 결정적으로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는 인간들입니다. 그들은 그런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그런 족속들입니다. 나는 한 밤중에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꿈꿉니다. 꿈 속에는 침묵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꿈 속에 등장하는 인간들에게는 얼굴이 없습니다. 차가운 물처럼 침묵이 모든 것에 축 베어들어 있을 뿐입니다. 침묵 속에 모든 것이 흐무흐물 녹아들어 있습니다. 내가 그런 상황에 녹아들면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 선거의 핵심은 차악을 뽑는 거다. 당신에게 최선의 선택이 없다면. 경험했지 않은가. 최악을 막지 않았을 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정치인을 욕하려면 투표 좀 하고 욕하고. 투표하기 전에 여러매체도 보고 다각적으로 생각 좀 하고 말이다. 물론 나도 하고 있다. 게다가 나는 새누리당 반대자지만 지지하는 쪽이 납득할만한 논리만 준다면 그 부분은 언제든지 고칠 용의가 있다. 상대나 나나 별로 가능해보이지는 않지만서도.
P.S.
1.평소에 포털 인기 기사 대부분이 스포츠나 연예계 소식이다. 거기에 가지는 관심의 1/100만 정치에 관심을 가진다면 정말이지 정치인들이 정국운영을 이 따위로 하지는 못 할거다.
2.정치를 터부시하는 것이 인텔리인양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자체가 이미 인텔리 계층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일단 터부시 할 만큼 정치를 아는 지도 모르겠고(그래서 나는 터부시 안한다) 안다면 터부시하면 어떤 피해를 보는 지 알테니 그럴 수가 없을 거고 말이다. 게다가 시민의 자격은 성인이 되면 주어지지만 거기에 맞는 시민의식은 개인이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거다. 아쉽게도 말이다. 옛날과 달리 피를 흘리고 얻은 게 아니라서 대단한 자격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정치를 터부시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3. 임시글로 저장했을 뿐 공개를 하지 않았는데, 간만에 낮잠이나 자고 하루 쉬고 있다가 훅에 들어와 보니 갑자기 글이 공개되어 있어서 부리나케 썼다. 반도 안 쓴 글이고 임시글이었는데 왜 올라와 있는 지 모르겠지만(아니면 내가 저장을 공개로 설정하는 실수를 했던가) 아무튼 한 시간을 날려 먹었다. 에이~.
4. 나는 새누리당을 싫어하고(이유는 백만 사십 한가지 정도 댈 수 있다) 민주당의 정치운영을 보면 새누리와 큰 차별성도 없으면서 정치적 머리까지 나쁜 것 같아서 화딱지가 나고 통합진보당 쪽을 보면 구당권파 때문에 꼴도 보기 싫다(아마 3% 지지도 확보하지 못 한채로 다음에는 당이 사라지던가 극소수정당으로 명맥만 이어 가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악의 선택은 할 생각이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선거의 마지노선은 최악의 선택을 막는 의무가 중요하니까.
5. 스파르타에서는 노예가 똑똑하다 싶으면 야밤에 그 집에 들어가 노예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렸다. 똑똑한 인간들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수록 정국운영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다. 그런 면에서 가카의 정국운영은 잘잘못을 떠나 통치면에서는 고수의 경지에 오르신 분이다. 국민들의 관심은 비리를 비리로 덮고 그 덮는 속도도 빨라서 비리를 파악하기도 전에 다른 비리로 돌려서 정신없게 만들고, 학생들은 경쟁력이란 이름으로 오렌지를 오륀쥐로 발음하도록 하는 요상한 교육으로 내모니 말이다. 생각과 비판도 에너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법인데 진을 다 빼놓고 후다닥 넘어가니 그 통치술이 그저 대단하다고 할 밖에.
6. 제발 교육과정에 철학(윤리와 정치까지 포함해서) 좀 넣어달라. 패스 논패스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영어 수학에만 목매달고 그것도 입시위주의 교육만 하니 이 나라 요직에 있는 인간들이 철면피들이 많은 것 아닌가. 어찌 그리 염치도 없는 인간들이 설쳐댈 수 있는지. 단적인 예로 대법관 후보라는 인간이 법을 어겨놓고 그 정도는 별거 아니라고 말하고 사죄하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임명하려고 하는 인간들도 그게 뭐 흠결이냐는 생각이고. 이런 인간들을 최소한의 상식이라도 있다고 볼 수 있는가 말이다. 도대체 자신들이 졸업한 대학에서는 어떤 교육을 시키길래 이런 사고의 인간들이 나올 수 있는 지 그저 신기하지만 할 따름이다. 나름 대한민국의 최고 학부들이라고 말하는 곳인데 동문이고 교수고 부끄럽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