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1일, 국경없는의사회는 유럽연합(EU) 정책이 초래한 국경 안팎 참혹한 위기의 여파를 골자로 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죽음, 절망, 그리고 빈곤: 유럽연합의 이주 정책으로 인한 인명 피해(Death, despair and destitution: the human costs of the EU's migration policies)”를 표제로 한 해당 보고서[영문 보고서 보러 가기]는 의료진 및 환자의 직접적인 증언, 유럽 국경에서 실시된 20,000건 이상의 의료·정신건강·응급 진료 내용, 바다에서 구조된 8,400명이 넘는 생존자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으며, 유럽연합 정책 및 회원국들의 묵인과 유럽 지도자들의 점차 심화되는 비인간적인 정치적 수사(修辭)를 토대로 폭력적인 전술이 수용되고 있는 충격적인 실태를 드러낸다.
2015년에 소위 이주 ‘위기’가 발생한 이후, 국경없는의사회는 유럽연합과 회원국들에게 이주민과 난민들이 직면한 시급한 지원 및 보호 수요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할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해 왔다. 하지만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난민 및 이주민에 대한 폭력 일반화가 뿌리를 내렸고, 유럽연합 기관들은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가로막히거나 강제 송환되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은 니제르 및 리비아와 같은 제3국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겨울철에 이동하는 이주민들은 눈 덮인 산을 통해 프랑스로 향하기도 한다. 2020년 12월. ©Francesca Volpi
이러한 투자의 한 가지 예로 리비아 해안경비대가 있는데, 이들은 정기적으로 바다에서 사람들을 가로채 리비아 소재 구금센터로 데려가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일부 구금센터에서 활동하면서 전염병 확산을 부추기는 열악한 생활 환경을 목격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2023년 12월, 국경없는의사회는 환자들이 신고한 구타 및 인신매매, 성폭력, 고문 사례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보고서를 발간했다.[관련글 읽어보기] 2022년 1월부터 2023년 7월 사이, 구금센터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은 58명의 결핵(TB) 환자들을 진단 및 치료했으며, 중증 영양실조와 결핵을 앓고 있지만 구금되어 있는 동안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체중이 40kg도 안 되는 한 성인 환자의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유럽연합이 제3국을 통해 외주화된 폭력을 자행하고 이주민과 난민 대상 기본적인 의료 지원 및 안전에 대한 접근성을 거부하는 것과 유사한 행위는 니제르 및 세르비아, 튀니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폭력 행위는 유럽연합 국경 내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관련 증거가 다수 기록되어 있다.
저는 의사한테 ‘이곳에 머물고 싶고, 망명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는 ‘솔직히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이후에 국경경비대가 병원으로 와서 저를 감옥에 세 시간 동안 가두었어요. 그 후 저는 국경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_벨라루스에 머무는 국경없는의사회 환자
폴란드-벨라루스 국경 지대에서 폴란드 군인이 보초를 서고 있다. 2024년 1월. ©MSF/Jakub Jasiukiewicz
폴란드, 그리스, 불가리아, 헝가리 등 국가에서 반복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밀어내기(pushback)’ 행위도 국경없는의사회 팀에 의해 기록되었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은 유럽연합의 이주민 유입 억제 정책으로 설치된 물리적 구조물 때문에 발생한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사람들이 유럽연합 회원국들에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세워진 장벽 및 울타리는 2,000km가 넘으며 대부분 철조망으로 덮여 있고 카메라와 드론이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한 예시는 폴란드-벨라루스 국경 및 세르비아-헝가리 국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물 근처에는 각종 단속 당국이 주둔해 있는데, 이들이 안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행하는 굴욕적인 대우를 포함한 폭력적인 밀어내기는 신체적 부상 및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초래한다. 유럽 국가에서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은 유럽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폭력을 경험한 경우가 많다. 2023년 1-8월 사이, 이태리 팔레르모(Palermo)에서 지원받은 환자 57명 중 61%는 리비아에서, 58%는 구금시설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이러한 환자 중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폴란드-벨라루스 국경 지대에 설치된 철조망. 2024년 1월. ©MSF/Jakub Jasiukiewicz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육로를 통한 유럽연합 회원국으로의 유입을 차단했을 뿐만 아니라 해상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지원을 제공할 의무도 저버렸다. 유럽연합이 구조 책임을 비유럽 국가 소속 해안경비대에 떠맡기고 지중해에서의 수색구조 역할을 중단함에 따라 지중해 중부에서는 난파와 불필요한 죽음이 거의 일상처럼 발생하는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
인간적인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 난민과 이주민에 대상 폭력 및 박탈 정책을 허용하고 부추기려는 결정은 집단적 양심을 뒤흔드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유럽연합 지도자들은 오히려 비인간적인 정책들을 강화하고, 더 나아가 이를 환영하는 정치적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는 유럽연합이 옹호한다고 주장하는 핵심 가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입니다.”_줄리엔 부하 콜레트(Julien Buha Collette) / 국경없는의사회 운영팀 책임자
해상 난민들을 구조하고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수색구조 대원들. 2022년 5월. ©Anna Pantelia/MSF
유럽연합 및 그 회원국들은 이주민과 난민을 순전히 안보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며 이들을 비인간화하려고 하기보다 시급히 방침을 바꾸고 유의미한 해결책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전과 보호를 찾아 유럽연합 국경을 찾아온 이주민들에게 무의미한 죽음, 부상, 장기적인 트라우마를 너무 오랫동안 초래해온 본질적 문제 해결을 위해 하루빨리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