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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3일
말씀: 고후5:7
제목: 자녀를 향한 부모의 자세
오늘날은 아이폰시대, 아이패드시대, 미디어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요즘 핸드폰으로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은행업무, 정보공유, 보안시스템, 할 것 없이 핸드폰으로 그의 이루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핸드폰이나 인터넷이 조금만 느려보십시오. 이런 상황을 아이들이 못견뎌합니다. 인내심이나 자제력이나 배려심이 전혀 없는 이런 시대에 아이들이 살고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이런 시대에 우리가 과학을 누리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과학에 방치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가운데 영적인 삶, 신앙생활에서도 굉장히 제약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공영방송에서나 쇼프로에 복음주의 목사들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물어본답니다.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갈 수 있느냐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 그러면 당연히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분을 나의 주로 고백할 때’ 구원을 얻고 천국에 간다고 하면 관객들이 비소하고 웃고 조롱하고 그런답니다. 한국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성경책 읽고 있으면 바로 왕따 당합니다. 정신병자 취급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전도하잖아요, 그러면 감옥 갈 날이 분명히 옵니다. 그러니까 마음 놓고 신앙생활하든 시대, 즉 전도도 마음대로 하고 찬양도 어디서든 마음대로 부르고 하던 시대는 앞으로 힘들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왕따를 당할 각오를 하고, 비웃음거리가 될 각오를 하고, 어쩌면 불이익을 당할 각오를 하고 순교자적 사명을 가지고 이들이 복음을 믿고 그 복음의 삶을 살고 복음을 전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부모들에게 묻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들이 ‘예수그리스도는 진리요 그 분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을 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킬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이 때 마귀가 바로 정죄하지요. ‘네 나 잘 해라’
성도여러분 혹시 여러분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그리스도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그리스도 때문에 비웃음거리가 되고, 그리스도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에 감사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불평을 하시고 계십니까?
모세는 히브리서11:25, 26절에서 잘 나와 있지만, 하나님과 함께 고난 받은 것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고요,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제물로 여겼답니다. 이게 바로 종말론적 믿음이고 이런 종말론적 믿음을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가야할 길이며, 하나님이 이끄는 목적입니다. 모세는 왜 이렇게 세상 것을 다 버릴 수 있었습니까? 모세는 인생에서 제일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이 가장 축복된 길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상주시는 이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 것이 바로 삶속에서 그대로 실천되어 나오는 선택으로 이어졌기에 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마지막 때에 우리를 이끄시는 분, 우리의 안식을 마련하신 분, 우리의 본향을 아신다면 그리스도로 인해 수치를 당하고 멸시를 당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그 길이 영광을 길임을 알고 기뻐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체험해야 되고, 그러니까 그 나라의 것이 세상에서의 부귀와 영화와 권력보다 비교할 수없는 축복임을 알고 체험 할 때, 그 유산이 우리 자녀들에게 물러가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머리로 알고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고, 신앙생활 한다면 이런 어려운 시기를 믿음으로 싸우며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야할 때입니다. 가족 앞에, 자녀들 앞에 우리는 먼저 중보자의 사명을 감당해야합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주께로 이끄는 일을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금요일 4주에 걸쳐 신천지에 대해 cbs에서 마련한 방송을 연이어서 보고 있는데요, 부모들은 아이가 신천지에 빠지니까 그들을 상담소로 데리고 와서 상담을 받게 하는데 그의 전쟁수준입니다. 아이들은 안 받겠다고 하고 어떤 아이는 고3인데 이렇게 바쁜 날에 상담을 받아야하냐고 고3자녀가 말하니까 부모가 특히 아버지가 하는 말이 지금 고3이 문제냐, 공부가 문제냐, 네 인생이 문제다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녀를 신천지에서 끄집어내기 위해 매 주일 3-4번씩 신천지 본당 앞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요, 얼마나 신천지에게 수모를 당하는지 모릅니다. 자녀를 그 악한 무리 가운데서 끄집어내기 위해 직장도 사업도 다 내려놓고 싸우는 모습을 영상을 통해 보게 되었는데요,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우리 자녀들이 신천지에 빠져 있거나, 교회를 안 나가고 불신앙 속에 살고 있거나 이게 무슨 차이가 있나요. 지옥 가는 것은 같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것은 같지 않나요. 이런 각오로 신천지에 빠진 자녀를 꺼내기 위해 모든 삶을 투자하는 마음으로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해야 된다고 믿습니다. 세상의 교육철학, 세상의 학문적 원리가 자녀들을 절대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고요,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자녀들이 좋은 스펙으로 세상의 것을 다 쥐고 있다 치더라도 이것이 자녀들에게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변화 될 수 있는 것은 말씀 밖에 없습니다.
어느 대학생입니다. 이 학생은 목사님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이 학생은 성경을 30독을 넘어 했습니다. 성경암송구절도 굉장히 많은 구절을 암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세 가지로 요약해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을 아는 이성적 지식의 믿음으로가 아니라 이성적 믿음, 영적믿음, 선한 열매를 맺는 믿음, 체험적 믿음이 공유된 참 믿음으로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져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나님의 정신과 마음이 삶속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세 번째로, 내가 주인 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왜 신앙 생활하는데, 범죄를 저지릅니까? 왜 신앙 생활하는데 자살을 합니까? 왜 신앙생활을 하는데 정신적인 분열증상을 보입니까? 이런 세 가지의 이유를 잘 알아야 됩니다.
이 해답을 다시 한 번 바리새인과 서기관에서 찾아야합니다. 서기관 다섯 명이 모이면 구약성결을 그대로 씁니다. 그 만큼 성경에 탁월한 자이며 성경을 연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었고 외식하는 자들이었고 의식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도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못 박아 죽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과는 정 반대의 삶을 살았던 자들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잘 아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믿음을 종교행사로 이해합니다. 종교행사에 적극적이고 열심이면 믿음이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거짓말 하지 않거나 성실하거나 착하면 믿음이 좋다고 평가를 하지요. 그런데요 내 속을 말씀을 통해 비추어보십시오. 내 속을 누가 지배를 하고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내 삶을 주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속에 더럽고 추악한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이런 것을 하나 하나 드러내며, 씻어내며, 버리는 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성도들이 믿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야합니다. 여러분 신앙에 가장 중요한 상황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직면했을 때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나라를 보는 것이 왜 중요하냐하면 세 가지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 상급은 받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세상에서 승리하며 이기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진정한 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이는 세상에서,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은 것을 보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믿는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참 믿음으로 십자가의 복음위에 서면 보이는 세상보다 보이지 않은 세상을 더 명확하게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확신하느냐하면, 자기 목숨을 내어 놓을 정도로, 아니 그 나라를 위해 자기목숨을 내 놓는 확신적인 삶을 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보이는 세상보다 더 명확하게 확신하며 볼 수 있는 원리는 바로 참 믿음으로 십자가의 복음위에 서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통한다는 것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말씀이 내 마음에 비추어지면 회개의 삶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회개의 삶은 고침과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고요, 고침과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면 내 영혼이 소생하고 생명이 다시 부어지는 부흥의 때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동일하게 믿음으로 설명해 보자면,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이성적 믿음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고침과 회복의 역사는 영적인 믿음에 해당 될 수 있습니다. 내 영혼이 소생하고 생명이 다시 부어지는 것은 체험적 믿음입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떠나 심판의 대상인 저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저들의 심령을 주께로 이끄는 일이 바로 선한 삶을 살아가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교회 올해 목표가 참 믿음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참 믿음으로 복음위에 설 때 중보자적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승리와 이김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사시고 이런 삶을 유산으로 자녀들에게 물러줄 수 있어야합니다. 몇 주 전에 말씀드렸지만 이스라엘백성들이 꿀이 있고 젖이 있는 곳에서 꿀을 먹지 못하고 젖을 먹지 못했을 때 온 가족이 온 이스라엘백성들이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꿀이 있는 곳에서 젖 있는 곳에서 젖과 꿀을 먹는 때는 온 가족들이 그 꿀과 젖을 먹었을 뿐만 아니라 그 꿀과 젖이 유산으로 흘러갔다는 사실입니다. 그 기준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말씀으로 돌아와서 그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했을 때입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일어났을 때 젖과 꿀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떠나서 생명이 그치고 우상에 물들어 있을 때는 꿀이 있고 젖이 있었지만 그들이 먹지 못하고 이웃나라들이 먹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 자녀들을 향해 어떻게 해야 꿀을 먹을 수 있고 젖을 먹을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당제도가 생겼고 랍비제도가 생겼습니다. 철저히 말씀을 가르쳐서 젖과 꿀을 후손들에게 물러주는 일을 온전히 감다하기 위해 애를 쓴 것이지요. 이 부분을 다시 설명하자면, 젖과 꿀은 보이는 세상과 방법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나라의 것으로 먹고 마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에스라9:11-12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그런즉 너희 여자들은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하여 데려 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물려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들이 가지고 온 우상을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을 떠나고 생명이 그치는 것이지요. 결국 그것으로 인해 젖과 꿀을 먹을 수 없는데, 그런데 그런 일을 그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분을 따를 때에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물려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주게 되리라’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의 말씀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마땅히 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합니다. 어떻게 하면 꿀을 먹을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젖을 먹을 수 있는지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 자녀들을 철저히 말씀으로 양육해야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꿀과 젖은 부모로부터 흘러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그 꿀과 젖이 부모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이 중요한 대상이 될 때, 하나님이 그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그 신앙과 믿음이 자녀들에게 흘러가서 부모가 먹는 꿀과 젖을 자녀들이 먹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부모의 믿음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아셔야합니다.
자녀들에게 자장 중요한 대상이 친구라면, 친구에 의해서 삶이 결정됩니다. 친구가 내 인생에 슬프게도 하고 기쁘게도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친구의 사랑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 사랑을 얻지 못하면 무너져버립니다. 부모 다 소용없고 미래 다 소용없습니다. 방으로 들어가서 숨고 우울증에 걸리고 모든 삶을 포기하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만이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대상이 된다면, 자녀에 의해 부모가 끌러 다니고, 자녀가 잘 하면 기분이 좋고 못하면 괴롭고 자녀에 의해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고 죽을 것 같고 살 것 같고 이 모든 것이 자녀에 의해 결정이 됩니다. 자녀가 잘 못 될까봐 두려운데 정작 자녀들이 잘 못되면 부모는 다 무너집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대상의 의미라면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대상이 되었을 때, 자녀들의 자아상이 왜 건강해 지냐하면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의미가 되면 친구가 많으면 좋겠지만 친구가 없어도 친구의 관심을 받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으로 인해 자족하는 삶은 바로 바울이 가장 중요한 인생의 의미를 하나님께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요하든 궁핍하든, 건강하든, 건강하지 못하든, 어떤 경우라도 삶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를 하나님께 둔다면,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을 만난다면, 친구, 관심, 남녀의 사귐과 헤어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을지라도, 억울함을 당한다 할지라도, 부모를 잃었다고 할지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이런 것에 의해 인생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갖추고, 만족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고 친구도 많고 재미있고 그러면 좋겠지요, 그러나 이런 것이 없다 할지라도 삶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삶의 최고 가치를 하나님께 두기 때문입니다. 잠시 아픔이 있고 잠시 슬픔이 있고 잠시 우울한 면이 있고, 잠시 눈물이 나고 하겠지만 삶을 흔들어 놓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자녀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 보십시오. ‘학교가면 친구 없이 혼자 생활해라, 왕따 당할 각오해라, 이빨 몇 개 부러질 각오해라, 그렇게 될 때 친구들에 의해서 네 인생이 결정되지 않을 것이며, 그들 앞에 종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학교에서 왕 노릇할 수 있다’이렇게 이야기했을 때 이 말을 이해하고 동의하면 그 아이는 하나님께 삶의 가치와 인생의 중요한 대상이 하나님이 된 아이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자녀들에게 동의가 안 되고 반발하고 그 말로 인해 부모와 자녀가 장벽을 발견하면 이미 그 아이는 친구에 의해 삶이 결정된 아이들입니다. 그렇다면 부모인 본인의 삶이 정말 하나님을 인생의 최고 가치로 두고 삶을 살았는지 확인해 보셔야합니다. 그런데 나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대상은 하나님이다, 그런데 자녀들이 왜 이럴까 생각한다면 그 자녀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이처럼 자녀의 삶은 부모로부터 결정되는 경우와 확률이 큽니다. 그런 차원에서 하나님이 인생에 최고의 가치로 두고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대상이 되는 삶을 산다면 그 신앙이 자녀에게 흘러가서 하나님이 자녀들을 그렇게 만들어 낼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과정에서는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시간에서도 차이가 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젖과 꿀을 먹을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신앙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고 신앙의 본이 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최고 가치 있는 자리,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교육을 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요 그 이유 중의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자녀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면 당연히 올바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승리와 축복된 삶은 올바른 선택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빛과 어두움을 안다면 당연히 빛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말씀에 의해 결정한다면 당연히 축복된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 걱정하는 것보다, 자녀들의 인성이나 성품에 대해 걱정하는 것보다, 자녀들의 행위와 언어에 대해 걱정하는 것보다, 자녀의 성적에 대해 걱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녀들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느냐, 그리스도께서 진리로 계시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두느냐는 말인데요, 이 문제만 해결되면 여러분들은 다른 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하나님으로 인해 일평생 이끌리는 복된 은혜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통해 자녀에게 믿음의 유산이 물러가고 또 부모가 하나님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삶이 자녀에게 젖과 꿀을 유산으로 물러주는 은혜가 있음을 알고 부모가 먼저 하나님말씀에 거하며 자녀들을 그 말씀으로 이끄는 복된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