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은행원 박혜정 씨는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은행과 오랫동안 거래하면서 은행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은행거래 고수(高手)는 거의 없다. 고수들은 금리를 조정해 남보다 더 많은 이자를 가져가고, 더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받고, 더 낮은 수수료를 물며 환전을 한다. 자신들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은행을 활용한다.”
<은행의 사생활>이라는 책의 저자인 그는 신입 행원 시절 금리를 조정하는 고객을 만나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고객의 금리조정 요구에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니라, 금리조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는 것이다.
그가 밝힌 사연을 대화식으로 옮겨보면 이렇다.
고객: 매달 20만 원씩 들어가는 1년짜리 적금통장 하나 만들려고요. 금리가 얼마죠?
신입 행원: 1년짜리 적금은 현재 4.3%입니다.
고객: 금리가 왜 그렇게 낮아요? 금리 좀 더 주세요.
신입 행원: 네? 금리를 더 달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금리는 정해져 있는데요. (이때 선배 행원이 나선다.)
선배 행원: 고객님, 0.1% 더 드릴게요. 고객님께만 특별히 더 드리는 겁니다.
고객이 "A은행은 4.5%라던데, 여기가 내 주거래 은행이니 나에게 잘 좀 해달라"고 요구하면, 경우에 따라 4.5%, 4.6%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
박씨는 “시장에서 물건값 흥정하듯 은행에서도 금리를 흥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병아리 은행원 시절 알게 됐을 때 깜짝 놀랐다.”며 “은행도 상품에 마진을 붙여 판매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금리가 많이 높아지면 윗사람이나 지점장과 상의를 거치거나, 또는 본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박씨는 은행에 돈을 맡길 때는 은행원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라고 말한다.
“금리를 최대한 얼마까지 해 줄 수 있나요?” 또는 “금리를 조금 더 주면 안 되나요?”
대출금리도 마찬가지. 그는 대출과정에서도 금리협상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은행의 대출심사 뒤 대출금액과 금리가 제시되면 “나의 신용이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고 앞으로 이 은행과 열심히 거래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면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외화 환전 시에도 좀 더 좋은 조건으로 환전 가능하다고 그는 밝힌다.
박씨는 은행활용의 고수가 되려면 은행을 자주 드나들면서 은행원과 친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은행은 아는 사람에게만 친절하다는 것이 은행에서 일해 본 그의 주장이다. 은행원과 다소 친하지 않더라도 당당하게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아마 친하면 더 혜택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기존 대출자가 직장에서 승진할 경우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 이 규정은 사실 오래전에 도입돼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가던 사안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마이너스 대출금리가 동료들보다 높아 은행에 문의했더니 2년 전 부장으로 승진한 사실이 반영되지 않아 그렇다는 설명과 함께 금리를 1% 포인트 깎아주겠다는 제안을 하더라고 말했다. 해마다 대출계약을 갱신했지만, 은행은 그에게 금리를 낮출 수 있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 말 은행연합회는 ‘대출금리 모범규준’을 의결, 은행이 신용대출을 연장하는 개인고객에게 취업이나 승진 등으로 더 낮은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할 의무를 부과했다. 모범규준에 따르면 개인고객이 대출기간 중 취업이나 승진, 소득상승 등 사유가 생기면 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 신용등급의 상승, 재산의 증가, 은행의 우수고객 선정 때도 마찬가지다. 전문자격증(공인회계사나 의사, 변호사 등)을 취득해도 금리 인하 요구를 할 수 있다. 전문자격증의 범위는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고객의 금리요구권 행사에 따른 금리조정폭은 대략 0.6~1.3% 포인트로 추정된다.
대출금리 인하요구권이 도입된 것은 2002년이지만, 수익감소를 우려한 은행들의 소극적 태도(적극적인 설명기피)로 그동안 유명무실했다고 한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금융소비자 권리 강화에 나서자, 은행연합회가 모범규준제정과 활발한 시행방침을 밝힌 것이었다. 그런데 금리 인하요구권에 대한 적극적 설명은커녕 금융소비자들을 상대로 장난만 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 대출이자율을 고객에게 알리지 않고 마음대로 바꿨다가 징계를 받거나, 적발 이후에도 억지 해명에만 나서는 금융회사들의 사례가 잇달아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월 25일 금융감독원은 국민은행에 대한 종합검사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대출서류 내용을 임의로 바꿔 논란을 빚었던 이 회사의 관련 전·현직 임직원 6명이 감독 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이번 종합검사에서 국민은행은 299개 영업점에서 집단 중도금 대출을 취급하면서 업무 편의 등을 이유로 고객 동의 없이 대출거래약정서 9,543건의 대출금액이나 이자율 등을 바꾼 사실이 적발됐다. 원칙적으로 대출거래약정서는 고치면 안 된다. 부득이한 때는 채무자의 동의를 얻어 정정해야 한다. 금감원은 이 은행에 대해 신용대출에만 적용한 금리 인하요구권을 일부 담보대출(담보+신용)에까지 확대 적용토록 하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대출기한연장 시 금리 인하요구권 관련 내용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라고 명령했다.
한편 대표적 서민금융회사인 지역농협에서 고객 몰래 대출금리를 조작한 사례도 적발됐다. 경북의 한 농협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KBS가 최근 보도했다. 고정금리로 수천억 원씩 대출받은 계좌에서 이자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김모씨. 그가 확인해보니 금리가 고무줄 늘어나듯 6.9%에서 6.95%, 7.1%까지 늘어나 있었다는 것이다. 해당농협은 금리를 바꾸면서 우편으로 알렸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설령 우편으로 알렸다고 하자. 고정금리를 마음대로 바꿔도 되는가? 이건 초등학생 상식의 문제다.
금융소비자를 ‘호구’(虎口: 어수룩하여 이용해 먹기 만만한 사람)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