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헌
- 동양학자
한국에서는 명산이 많다. 명산이라 함은 바위와 물, 그리고 동식물이 서식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다. 산이 너무 높으면 사람이 살기 힘들다. 3천미터가 넘어가면 살기에 힘든 산이지만, 한국의 산들은 1천미터 내외라서 도사들이 거주하기에 좋다. 약초가 널려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화강암 바위가 많다는 것도 장점이다. 화강암은 정신세계의 영발(靈發)을 공급해주는 단백질원이니까 말이다. 화강암과 계곡물은 영발의 원천이다. 한반도의 대부분 산들은 이러한 영발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전체가 명당이라고 나는 본다.
한국의 산 가운데 도사들의 이야기가 많이 축적된 곳을 꼽는다면 금강산, 계룡산, 지리산이 생각난다. 물론 수없이 많은 산에 이야기가 있지만 우선 당장 예를 들기에 이 산들이 적당하다는 말이다. 금강산은 차력(借力), 축지(縮地), 둔갑(遁甲)과 같은 도술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계룡산은 주역(周易), 정감록(鄭鑑錄)과 같은 나라의 미래 예측에 관한 콘텐츠가 풍부하다. 계룡산은 한반도 중심부에 있기 때문에 사방에서 정보를 취합하는데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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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지리산은 어떤가. 가장 웅장한 산이다. 둘레가 무려 오백리이다. 거기에다가 육산(肉山)이다. 산에 들어가 살기에 가장 적당한 산이 지리산이다.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온갖 약초와 동식물이 서식했던 산이었다. ‘인삼 빼고는 다 있다’는 산이 지리산이다. 크고 깊어서 은둔생활 하기에도 적당하다. 지리산에 가서 굶어 죽는 사람 없고, 자살하는 사람 없다.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어떤 수가 생긴다. 참 후덕한 산이다. 생명을 살리는 산이다. 가진것 없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고갈되었어도 지리산에 들어가면 비전이 생긴다. 없는 사람을 품어주는 산이 지리산이다. 지리산에는 신선들이 많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청산에 숨어 살면서 근심걱정 없이 살기를 희망하는 불노장생(不老長生) 파(派)가 가장 선호했던 산이 지리산이었다. 선가(仙家)의 아지트였던 산이었다.내가 30년 전에 지리산을 돌아다닐 때 지리산에서 평생을 살았던 선배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는 청학(靑鶴)과 백학(白鶴)이었다. ‘南飛靑鶴雙溪寺 北來白鶴實相寺’라는 것이다. 지리산의 남쪽은 청학이 북쪽에는 백학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다. 남쪽으로 날아간 청학은 쌍계사(雙溪寺)가 되었고, 북쪽으로 날아온 백학은 실상사(實相寺)가 되었다는 설화이다. 선가(仙家)에서 불가(佛家)로, 학이 사찰이라는 데로 상징이 넘어가는 장면이다.지리산 남쪽에서 보통 사람들이 가장 살기에 좋은 곳은 악양(岳陽)이다. 묏부리 악(岳)이다. 지리산 남쪽의 양기가 뭉쳐 있는 지점이다. 악양 평사리는 원래 신선들이 살만한 동천(洞天)이었다. 들판이 넓어서 곡식이 풍부하다. 수천명이 살 수 있는 식량을 산출하는 들판이다. 그 넓은 들판 앞으로는 은빛 반짝이는 섬진강이 흐른다. 섬진강에는 은어와 재첩, 그리고 각종 물고기들이 풍부하다.한국에서 배산임수의 교과서적인 입지조건을 갖춘 곳 가운데, 평사리만한 곳도 드물다. 평사리 뒤쪽으로는 1천 미터가 넘는 지리산 영봉(靈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 있다. 거기에다가 온갖 약초는 다 있다. 이 약초만 뜯어 먹어도 산다. 박경리 소설 ‘토지’에 나오는 평사리. 이 평사리 일대에는 근래 10년 넘게 수백명의 방외지사(方外之士)들이 전국에서 숨어 들어와 살고 있다. 스님, 도사, 작가, 예술가, 건달, 낙오자 등등이 이 동네의 시골집을 하나씩 구해서 내부시설만 간단하게 고쳐 살고 있다. 보통 토굴이라 부른다.악양은 독특한 분위기다. 체제를 벗어난 해방적 분위기가 있으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충돌하는 이질적인 분위기가 있다. 다분히 탄트라적인 분위기이다. 이 방외지사들이 토굴 하나씩 장만해서 쏙닥하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동네. 삶의 방식도 가지가지이다. 현재 직장 명예퇴직하고 귀촌(歸村)하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도 바로 악양 평사리가 아닌가 싶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와 모악산에서 살다가 지리산으로 캠프를 이동한 박남준 시인을 만난 곳도 악양이 아니었던가. 삼국시대 이래로 지리산은 사회적 압박과 지배를 벗어날 수 있는 해방구였다.방외지사의 천국을 보통 악양 알프스라고 부른다. 영남 알프스도 있지만, 악양 알프스도 있다. 평사리 주변을 둘러싼 봉우리들. 형제봉, 구재봉, 칠성봉, 깃대봉을 비롯한 7-8개의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빙 둘러싸고 있다. 이 코스를 한 바퀴 도는 것도 훌륭한 등산 코스이다. 뒷산을 도는 것이다. 뒷산이 있는것 하고 없는 것은 차이가 있다. 방에도 병풍이 하나 쳐져 있으면 분위기가 산다. 웬지 뒷심이 느껴지는 것이다. -
- 형제봉 정상부 주능선상의 바위협곡. /조선일보 DB
형제봉(兄弟峰). 1,150미터 높이다. 봉우리 2개가 형제처럼 있다고 해서 형제봉이다. 이 뒷산 봉우리 가운데 제일 높다. 형제봉 자락을 한참 타고 동네로 내려오다 보면 주막집이 하나 보인다. 제목은 ‘형제봉주막’이다. 시골 동네 구판장으로 쓰던 건물을 약간 개조하여 주막집으로 만들었다. 구판장이라 하면 구멍가게 비슷한 곳이다. 20평 남짓한 크기. 탁자를 4-5개 놓고 막걸리를 판다. 벽 주위에는 다녀간 사람들의 온갖 낙서가 어지럽게 붙어 있지만, 여기에 들어오면 웬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낭만적이다. 지리산 형제봉 밑에 있는 주막집이라! 산속 주막집인 셈이다. 주인장인 송영복(1957년생). 삶의 압박에 시달리던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2009년도에 지리산 악양으로 들어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 주막집을 열었다. 이 주막집 주인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기운을 가지고 있다.
욕심이 별로 없다. 욕심이 없어야 편하다.
크게 돈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도시 생활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산 속에 들어와 주막집이나 하면서 사람들 만나 이야기 하고 노는 생활을 즐기는 한량과(閑良科)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주는 귀를 가지고 있다. 들어주는 것도 공덕 아니던가! 토(土) 기운이 많다. 막걸리 한잔 하다가 흥이 나면 기타를 친다. 어둠이 내려 앉고 달만 떠 있는 지리산 산속 동네의 21세기 주막집에서 기타 소리를 듣는 느낌. 그거 참 묘하다.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상들이 대대로 살았고, 기도를 올렸던 이 형제봉 자락에서 기타 소리를 들으면서 막걸리 한잔을 하는 삶. ‘낫 배드’(not bad)이다. 지리산의 정기(精氣)가 나와 함께 있는데 무엇이 외롭단 말인가? 산에 들어오면 낮에는 느끼지 못했던 기운이 밤에는 다가온다. 불빛이 안 보이는 어둠. 이것이 음이다. 도시에서 느낄수 없는 어둠이다. 음이 부족해서 병이 생기는것 아닌가. 어둠이 되면 ‘寂然不動 感而遂通’(적연부동 감이수통:조용하게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어떤 느낌이 생기면서 사물의 이치와 통하게 된다)의 느낌이 다가온다.
형제봉 주막에는 지리산 동네의 이야기들이 모여든다. 그 중에서도 형제봉 산신이 도와줘서 목숨을 건진 이야기가 아주 솔깃하였다. 50대 초반의 토목 기술자가 있었다. 도로를 내고, 터널을 뚫고, 다리를 건설하는 기술자였다. 서울의 회사에서 죽어라고 일만 하던 이 중년 남자는 전원생활이 그리웠다. 산 밑에다가 토담집 하나 짓고 텃밭이나 가꾸며 살아 보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서울의 직장을 그만두기 전에는 불가능이다. 주말에라도 잠깐 내려갈 수 있는 시골집이 하나 없을까? 산 밑에 집 하나 장만하려고 여기 저기를 알아보려 다녔다. 그러던 중에 지리산 형제봉 자락에 전원주택이 하나 나왔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문제는 거리였다. 서울에서 지리산 형제봉 자락까지 오려면 5시간은 너끈히 걸리는 거리였다. 부인이 반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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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나리와 벚꽃이 활짝 핀 가운데 지리산 노고단 정상에 눈이 쌓여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지리산까지 어떻게 갈려고? 거기에다가 집을 사 놓고 얼마나 이용하려고? 헛 돈 쓰지 마라고!’ 여자는 백화점을 좋아하고 남자는 산 밑의 토담집을 좋아한다. 여자는 문명을 좋아하고 남자는 자연을 좋아한다. 와이프는 대개 토담집 반대한다. 그 부인은 평소 알고 있던 도사님을 만나서 이 문제를 상의하였다. 심천(深泉) 선생이었다. 심천은 80년대 초반 서강대학 재학시절에 학교 앞에서 데모하다가 경찰 곤봉으로 정수리를 심하게 얻어 맞았다. 머리뼈에 금이 갈 정도의 중상이었다.
학교를 휴학하고 요양하기 위해서 통도사의 산내의 작은 암자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암자에서 요양을 하였지만 어느 정도 몸이 좋아지면서 불교 좌선의 맛을 알게 되었다. 앉아 있으면 저절로 2-3시간 동안 참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父母未生前’(부모미생전)에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라는 화두가 자연스럽게 떠 올랐다. 나는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부모님 뱃속에 있기 전에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좌선을 하려고 방석에 앉아 있으면 이 화두가 떠올랐다. 그러던 어느날 그 의문이 사라지게 되었다. 의문이 사라지면서 몸의 기혈이 자동적으로 열리고,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전생과 미래가 눈에 보였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게 혹시 잘못된 공부가 아닌가 싶어서 전국의 사찰을 돌면서 점검을 받으려 다녔다.
도가 높다는 제방의 선지식들을 친견하러 다녔다. 공부의 객관화 작업이었다. 내 공부가 과연 맞나? 엉뚱한 길로 가지는 않았는가? 그러다가 지리산 자락의 어느 수행자로부터 ‘금강경’의 ‘應無所住 而生其心’(응무소주이생기심)에 대한 도담(道談)을 나누다가 가슴과 머리가 시원해지는 체험을 하였다. 키는 170센티 정도. 체격은 보통 체격이다. 이야기도 톤이 높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별로 화를 내는 경우가 없다. 항상 알듯 말듯한 웃음기를 띠고 있는 스타일이다.
심천 선생이 남편이 형제봉에 집을 사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부인으로부터 듣고 나서 어드바이스를 하였다.
“남편이 그동안 가족 벌어먹여 살린다고 직장에서 20년 넘게 고생하지 않았느냐. 그 보답으로 남편 벤츠 한 대 사준다고 생각하고 그 집을 사줘라. 남편이 전생에 형제봉 산신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형제봉 밑에 집을 얻어 살게 되면 수명이 연장된다. 그러니 남편 의견에 반대하지 말고 집을 구하는데 동의해라!”
형제봉에 집을 구하는 일과 남편 수명이 어떻게 상관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 인연의 쓰리쿠션은 참으로 복잡 미묘하고, 인간의 상식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부인은 심천 선생에 대해 평소의 신뢰가 있었다. ‘무슨 까닭이 있으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셨겠지’하고 형제봉 밑에 매물로 나온 전원주택을 구입하였다. 은행 대출을 받는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남편은 이 집을 사 놓고 기뻐서 잠이 안올 지경이었다. 금요일 오후에 회사 일이 끝나기만 하면 부리나케 5시간 넘게 운전을 해서 형제봉 집으로 달려오곤 하였다.
회사일이 힘들고 짜증날 때마다 지리산에 갈 생각하면 하면 그 짜증이 없어졌다. 서울에서 차를 몰고 악양 입구에 들어서면 마음의 고향에 들어선다는 설레임이 다가오곤 하였다. 이 남편은 시간 날때마다 집을 고치기 시작하였다. 토목 기술자였다. 전 주인이 쌓아 놓은 축대도 해체한 다음에 새로 쌓기로 하였다. 마당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포크레인도 부르고 작업 인부도 2-3명 불러서 공사를 시작하려고 할 즈음이었다. 그때 회사에서 마침 일이 생겼다. 남미(南美)에 출장갈 일이 생긴 것이다.
남미 어느 나라로부터 댐 공사를 수주 받았는데,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전문가들과 함께 현장을 사전 답사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남미에 열흘정도 기간으로 출장가는 일은 드물게 발생하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출장비 1천만원 가량을 지원해주는 출장이었다. 본인도 남미에 여행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형제봉 집 고친다고 이미 인부도 오기로 했고, 공사 장비까지 도착해 있는 상태였다. 도저히 출장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회사에는 ‘집 공사 때문에 출장을 못 가겠다’고 양해를 구하였다. 남미행 비행기를 아쉽지만 포기해야만 하였다. 그 뒤로 몇일 있다가 비극적인 뉴스를 들어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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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미 헬기 추락사고 현장. /조선닷컴
남미에 출장 갔던 일행들이 현지에서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로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댐 공사 현장을 둘러보기 위하여 헬기를 타고 가다가 일행들이 죽는 사고였다. 그 뉴스를 접하면서 부인은 머리칼이 쭈빗 솟았다. ‘이럴수가 있는가! 어찌 이런 일이!’ 심천 선생이 말한 ‘남편이 수생(數生) 전부터 형제봉 산신과 인연이 있어서, 형제봉에 밑에서 살면 목숨을 연장한다는 말이 이 일이었단 말인가!’하는 상념이 번개처럼 스쳤다. 지리산 남쪽으로 내려온 끝자락인 악양에 차를 타고 들어설 때마다 2개의 봉우리가 서 있는 형제봉을 바라본다. 형제봉 산신이 정말로 있단 말인가? 악양의 봉우리 봉우리 마다 신령스런 기운이 감싸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전설은 과거완료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보통 사람이 그것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부동산과 開運
심천(深泉) 선생과 부동산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부동산을 구입하면 이처럼 운이 바뀔 수 있는 것입니까?”
“바뀔 수 있습니다. 삼성의 고(故) 이병철 회장을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기운이 좋은 명당 터를 구입하면 그 터의 에너지를 그 구입한 사람이 받는 것 같습니다. 서울 신세계 백화점 터, 남산 밑에 있던 장충동 저택, 태평로 본관, 한남동의 승지원 터, 수원의 삼성전자 공장 터 들을 보면 대개 명당입니다. 이런 터를 구입할 때마다 삼성의 운이 한 단계씩 점프 하면서 올라갔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생 시절 살던 터가 있고, 중학생 때에 맞는 터가 있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 수준에 맞는 터로 이사갔다고나 할까요. 운이 바뀔때마다 좋은 명당 터를 소유할 수 있기도 하고, 반대로 좋은 명당 터를 손에 얻음으로써 운이 바뀌는 수도 있습니다.”
“형제봉 집 같은 경우도 그런 경우입니까?”
“크게 보면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이 경우는 그 남편이 전생부터 형제봉과 인연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다른 사람이 형제봉에 산다고 해서 모두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특수한 경우죠. 특별한 묘용(妙用)이 발생하는 터는 숙생(宿生)의 인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터와 그 사람이 전생부터 인연이 있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쉽게 이야기 하기가 힘든 부분입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 될 수가 있지, 이건 어떤가, 저건 어떤가 하는 식으로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영발(靈發)의 세계는 붕어빵 찍듯이 기계적으로 반복해서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발의 세계는 의도가 없고, 순수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 되어야 효험이 있다는 말이다. 어떤 이익을 위해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면 헛방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때는 맞다가도 어떤 때는 전혀 맞지 않기도 한다.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어야 영발이 발생한다.
도덕경에 보면 ‘인법지’(人法地)라는 구절이 있다. ‘사람은 땅을 본 받는다’는 의미이다. ‘땅을 본 받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땅의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영향을 어떻게 받지? 그 기운으로 받는다. 여기에서 기운, 즉 기(氣)를 이해하지 못하면 본 받는다는 의미를 이해할수 없다. 대지(大地)에서는 기(氣)가 방출되고 있다. 이 땅의 기운은 인간의 뇌세포와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를 깔고 있어야 이해가 된다. 이 전제에 동의하지 못하면 ‘인법지’의 깊은 의미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지에는 기운이 작용한다고 믿었던 것이 인류의 수천년동안 전통이다. 그래서 대지를 지모신(地母神)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가이아’도 결국 지모신이라는 이야기이다.
명당은 지모신의 젖꼭지에 해당하는 지점에 비유할 수 있다. 그 젖꼭지도 수천 종류이다.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젖이 진한 곳도 있고, 약한 곳도 있다. 어머니 젖을 먹고 힘을 내기 마련이다. 대학교에 들어가 활동량이 많아지면 젖의 양이 많이 나오는 곳에 터를 잡는 것이 좋다. 어떤 젖을 먹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총체적으로 풀이한다면 인연(因緣)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그만큼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