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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염화실 인터넷방송법문 시작하겠습니다. 20강
지난 시간에 이어서 천수경 오늘은 준제주, 준제주를 할 차례입니다.
천수경 안에 있는 준제주를 수지 독송하고 주문으로 외우는 그런 주력공부를 하시는 분들도 간혹 있습니다. 천수경에는 ▮대다라니가 중심이지만은 ▮준제주도 사람들이 좀 관심을 갖는 것이고 그 다음 뒤에 나오는 관세음보살 육자대명왕진언이라고 ▮옴마니 반메훔 이라고 하는 것이 곧 나오는데 옴마니 반메훔도 관세음보살님의 정신이 담겨있는 그런 주문이라서 상당히 중요시 여기는 진언 중에 하나죠.
●准提功德聚
准堤眞言은 모든 공덕이 다 모여 있다. 공덕의 무더기다 그랬습니다.
그래놓으니까 준제진언도 외우죠. 중생들은 말하기가 무섭게 말에 따르고, 말에 떨어지고, 말을 집착하는 그런 습관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그렇게 광고가 많이 나돌고 선전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도 모르죠. 저런 선전 저런 광고에 누가 속겠나 싶지만은 또 그런 광고 그런 선전에 약한 것이 또한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그렇다고 준제주가 그런 시중에 떠도는 광고나 선전문과 같다는 뜻은 아닌데 준제주의 공덕은 온갖 공덕의 무더기다 이런 뜻이죠.
●寂靜心常誦
고요한 마음으로 아주 마음을 가만히 가라앉혀가지고 잡념 없이 이런 뜻이죠.
잡념 없는 마음으로 항상 독송할지니라.
●一切諸大難 無能侵是人
그렇게 하면은 일체의 모든 큰 어려움들이 무능침시인, 능히 준제주를 외우는 사람을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제 주문이야기를 하면서 즉심시불이라는 화두를 잘못 알아들어서 짚신이 부처라고 했어 서도 얼마나 정성스럽게, 얼마나 일심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그게 뭐 화두 같지도 않은 화두지만은 충분히 도를 이룬 그런 사실이 있고, 또 도를 이루는 데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런 말씀을 몇 번 드렸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가 좋고, 무슨 준제주가 좋고, 옴마니 반메훔이 좋고 , 어떤 이들은 혹 광명진언이 좋다 해서 광명진언을 하는 이들이 있고요, 혹은 아비라 기도, 옴 아비라 훔 캄스바하... 아비라 기도를 또 열심히 하는 이들도 있고 능엄주를 하는 이도 있고 하는 사람의 마음자세에 달려있는 것이지 어느 주가 특별히 좋다고 저로써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무슨 주문이든지 무슨 진언이든지 무슨 다라니든지 다 열심히 하면 거기에 따르는 공덕은 충분히 설명한대로 광고한 대로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제대로만 하면은요.
●天上及人間 受福如佛等
천상에서나 인간세상에서 복을 받는 것이 부처님과 똑같이 동등하게 받을 것이다
부처님복 만치 준제주를 잘 지니고 마음속에 간직해서 그 준제주의 정신을 실천하면은 부처님 복과 같이 그렇게 복이 많을 것이다
●遇此如意珠 定獲無等等
이 여의주를 만남으로 해서 결정코 無等等 무등등 같은 것이 없는, 최상, 비교할 수 없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가 되겠죠.
준제주는 아직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놓고
●淨法界眞言 옴 남
법계를 청정히 하는 진언 옴 남, ▮옴은 모든 법문의 모체다, 축복이다, 섭복이다, 찬탄이다, 뭐 별 별 의미를 다 가지고 있는 진언이란 말씀을 드렸습니다.
의미에 보면 ‘옴’자같이 많은 능력과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요, 제일 낫다고 볼 수 있겠어요. ▮남자는 이제 화대의 종자라 그렇습니다, 화대의 종자, 화대의 종자는 불씨라는 뜻이겠죠. 불씨는 어떻습니까? 성냥불 하나가 온 수미산을 다 태우고도 남죠. 그게 씨입니다. 씨의 특징인데, 특히 불씨의 경우 더욱더 그렇습니다. 남자는 옴 남 할 때 남 그런 의미를 가진 화대의 종자다 그랬습니다.
화대의 종자니까 그것은 곧 보리문이기도 하다 그런 뜻입니다.
화대라고 하는 것은 온갖 번뇌를 다 태운다는 그런 의미고 그것은 곧 깨달음의 문으로 통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가 진언 속에 포함 되어요
남자 화대의 종자다 하는 그런 뜻만 이해하시고, 그것은 보리문으로... 온갖 번뇌를 다 태우니까... 보리문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護信眞言 옴 치림
호신진언, 몸을 보호하는 진언, 옴 치림인데 ‘쓰림’이라고 본래 발음은 그렇습니다.
▮옴 자의 뜻은 똑 같고
▮쓰림은 妙吉祥種 묘길상종이다 그렇습니다.
문수사리 만주신리 이렇거든요 쓰리 여기서 옴 치림이라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만 묘길상의 종자입니다. 그래서 모두 통하고 있어요. 천수경의 첫머리에 정구업진언의 수리 수리 마하수리 하는 것이나 만수스리나 하는 것이나 치림이라고 하는 것이나 전부 그 어원을 찾으면 똑 같습니다. 그래서 묘길상의 종자...
몸을 보호하는데는 무엇이겠습니까? 身口意의 삼업이 길상스럽게 될 때 그때 내 자신을 잘 보호합니
다. 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말 길 상스러워야 되고, 행동이 길 상스러워야 되고, 생각이 길상스러워야 되고... 불보살처럼 항상 그렇게 길상스러운 身口意의 삼업을 가진 사람은 몸이 자신을 보호되게 금되어있습니다.
마음과 몸과 말을 함부로 하니까 침해를 받죠.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옴 치림의 뜻이고요
▮觀世音普薩 本心微妙 六字大明王眞言옴 마니 반메 훔
관세음보살 육자대명왕진언 옴 마니 반 메 훔!
티벳 불자들은 오로지 옴 마니 반메 훔 이거 하나만 열심히 외우는 것으로써 정진을 삼고, 수행을 삼고 불교 공부를 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거의 99% 티벳 불자들을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옴 마니 반메 훔, 옴 마니 반메 훔
중국 불교에 가면 아미타바 아미타불을 부르는 그게 불자들끼리 인사고, 티벳이나 네팔, 부탄 같은데... 정통 티벳 불교가 전해진 곳에서는 옴 마니 반 메 훔 이렇게 하면 불자들끼리는 다른 말은 안 통해도 그 말 하면 불자들끼리는 최상의 인사가 되거든요. 옴 마니 반메 훔 하면... 그대로 좋는 인사가 됩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바 하면 중국에서는 좋은 인사가 되듯이 그렇더라고요.
옴 마니 반메 훔
▮옴 자는 설명하대로고
▮마니는 여의주, 마니주라는 그런 뜻입니다.
결국은 우리 마음을 뜻하는 것이고,
▮반메, 파드메 라고 하는 연꽃이라는 뜻인데, 연꽃 파드메 연꽃을 표현하는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청연 있고, 홍연 있고, 백련 있고 그렇죠. 법화경은 백련을 뜻합니다. 백련경이라 이렇게도 하고, 그런데 파드메라고 하는 것은 홍연을 말합니다. 그래서 홍연이다 백련이다 거기에 색깔에 큰 의미는 있지는 않지만 연꽃이 불교의 꽃이고 부처님의 마음, 부처님의 사상, 정신을 연꽃 하나로 다 표현이 되죠. 이것은 곧 우리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옴’자나 ‘마니’나 ‘반메’나
전부가 궁극적으로는 우리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를 해도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연꽃도 결국은 우리 마음이 아무리 중생으로 이렇게 산다하더라도 근본정신은 청정하기 이를 때 없고, 또 ▮마니주라고 하는 것 여의주라고 하는 것이 세상에 뭐가 여의주겠습니까? 우리 마음 같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죠. 마음은 제일 뜻대로 됩니다. 생각한대로 마음은 되어요, 그러니까 속뜻은 전부 우리 마음을 표현 것이고
▮옴도 마찬가지입니다.
▮훔은 이구청정이라고 해서 때를 여읜 본래 청정한 자리, 역시 어떻게 보면 마음자리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 또 ‘훔’은 이구청정이면서 성스러운 말의 종자다. 이렇게도 표현해요. 성스러운 말은 바로 훔에서 나온다. 왜냐하면 마음이 아무 때가 없는 청정한 본심의 자리, 그것이 그대로 성스러운 말이 거기서 나올 수 있으니까 그래서 성스러운 말의 종자가 훔이다. 그리고 또 표면적인 뜻은 이구청정이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准提眞言 그 다음에 준제진언이 나오는데 준제보살의 진언이다
“나무 사다남 삼먁삼못다 구치남 다냐타 옴 자례 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 이거죠.
외울때는 “옴 자례 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 이것만 열심히 외우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나무는 귀의한다, 받든다는 이런 뜻이고
▮사다남은 칠천만억 이런 뜻 입니다 칠천만억 그 삼먁삼못다 - 칠천만억
▮삼먁삼못다 부처님 이죠. 정등각, 칠천만억 부처님 그런 뜻입니다.
▮구치남은 본래 꽃띠남인데 이게 천만억이란 뜻입니다. 저 앞에는 칠이라는 그런 의미가 포함되어있고 여기는 이제 천만억이라고 하는 그런 뜻이 포함되어서 합해서 칠천만억 불모라는 그런 뜻이 되죠. 다냐타.
곧 설해 가로되 ”옴 자례준제 사바하 부림” 칠천만억부처님께 귀의하며 받드옵니다. 이런 의미가 되겠죠. 그래서 한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보다 준제진언 그 자체속에 칠천만억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준제진언을 외우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옛날 스님들은 진언 외우는 것을 주력하는 스님이다 이렇게 말했어요.
주력을 한다. 주문을 외운다. 이런 뜻이겠죠. 주력을 하는 스님들이 더러 있었어요. 심심치 않을 정도로 있었습니다. 뭔가 자기 업장을 녹이고 어떤 신비한 어떤 힘을 좀 얻고 싶기도 자기업장을 녹이고 싶기도 하고, 또 자기의 현재 인생을 다른 어떤 삶으로 전환시키고 싶은 그런 마음에서 어떤 제3의 힘을 은근히 바라는 심리가 주문을 외우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주문에는 대게 그런 어떤 분위기가 사실은 조금은 있거든요, 그런데 불교를 그렇게 보는 것은 바람직한 불교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바람직한 불교는 대승불교 또는 선불교에서 아주 화반탁출!!! 모든 것을 다 들어 내놓고 그야말로 손가락을 하나 세우든지, 꽃을 하나들어 보이든지, 주장자로 한번 내리치든지... 보고 듣고 하는 이사실의 어떤 진실성, 그 위대성!!! 여기에 촛점을 맞추는 있는 것이죠. 그것이 우리의 생명이고 또 불교의 생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옴 자례 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
옴 자례 주례, 이것은 뭡니까? 준제진언의 진정한 모습인데, 준제진언을 외우면서 ▮옴 자의 뜻은 어디가나 늘 한결같습니다.
▮자례주례는 동회, 유행존!
움직이고 또 돌아가고 행하는 그런 동회 流行尊이시여,
▮준제라고 하는 것은 주례 준제, 이렇게 하면 頭上淨界尊이시여 이런 의미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妙意淸淨尊 묘의청정존이시여
유행존이시여, 두상정계존이시여, 묘의존이시여!
그러니까 자례 주례 준제 이렇게 하고 사바하는 성취되고
▮부림하는 것은 정륜왕의 종자. 가장 높은 이마라고 하는 그런 의미인데 이마 위에 있는 법문을 상징하는 내용의 종자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부림이라고 하는 게요. 부림이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진언에도 더러 붙어 있기도 하죠.
다시 말씀드리면 옴 동회 유행존이시여, 두상정계존이시여, 묘의청정존이시여
사바하 그리고 부림은 종자니까 사실은 정륜왕의 종자니까 뭐라고 해석하기는 좀 그렇죠. 종자는 사실은 해석이 잘 안되지 않습니까? 대강 이제 진언의 뜻을 억지로 해석하자면 그런 뜻입니다. 30~ 40%나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천수경안에 있는 진언을 연구한 바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我今持誦大准提 卽發菩提廣大願
내가 지금 대 준제진언을 지송합니다. 가지고 외웁니다. 곧 보리의 광대원을 발해지이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크고 큰 원력이 발해지이다
●願我定慧速圓明 願我功德皆成就
그래서 원컨대 내가 정과 혜가 빨리 원명해지고 선정과 지혜가 뚜렷이 밝아지고 밝아지를 원합니다. 원컨대 내가 공덕이 다 성취되기를 원합니다. 원컨대 내가 승복 아주 훌륭한 복으로 두루두루 장엄돼지이다. 勝福 좋은 복이 장엄되어야지 좋지 않이 한 복이 많이 장엄되어 가지고 이리 끄달려 다니고 저리 끄달려 다니고 그렇게 하면 인생 헛살 수가 많지요
또 복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냉정하게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요, 세속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복은 미안하지만 ▮濁福, 흐린 복이라 그렇게 표현하고 아무리 가진 것이 없고 없는 게 오히려 좋죠. 벼슬도 없고 가난하고 최소한의 그런 의식주만 해결된다면은 이렇게 부처님 법을 만나서 마음의 안녕을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서 마음의 행복을 모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원리를 알고 진리를 알아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행복을 누리 줄 아는 이러한 복을 ▮淸福이라 그래요 맑을 청 맑은 복이다.
돈 많으면 돈 심부름해야죠, 벼슬이 높으면 벼슬 심부름 해야죠, 자기는 잃어버리는 거예요. 돈도 없고 벼슬도 없어서 오로지 진리의 가르침만 있으면 그 걸로써 인생을 얼마든지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 수가 있다는 거죠.
사실은 사회가 아무리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하고 산업이 발달해가지고 무슨 1년에 개인 소득이 3만불, 5만불이 아니라 1년에 개인이 벌어들이는 소득이 백만 불이라고 합시다. 백만 불이라고 한다 하더라도 그 걸로써 행복의 열쇠가 되지 못하거든요. 그건 우리가 살아와본 경험으로 충분히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1년에 소득이 백만불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의식주... 먹고 입고 머무는 살아가는 것 이거 하나 해결하자는 것이지, 그 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닙니다.
옛날에 연간소득이 천불일 때도 그저 의식주 문제하나 해결이고, 백만불 되어도 의식주문제 하나 해결이지 궁극적으로 보면 그래요
사실은 아껴쓰고 적게 소비하고 또 적게 벌어도 충분히 의식주는 우리가 헛 소비만 하지 않고 아껴서 쓴다면은 얼마든지 의식주는 나누어가면서 해결할 길이 얼마든지 있는데... 다 사람 욕심이죠.
아무리 많이 벌고 아무리 큰 회사를 운영한다 하더라도
의식주 문제 하나 해결하는 것이지 사실은 다른 것 아닙니다.
그러니 청복이다, 탁복이다. 하는 말도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좀 마음에 안 드는 소리고, 무슨 구름 잡는 소리고, 현실성 없는 소리다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도 우리가 한 번 쯤은 들어 볼 필요는 있습니다. 또 그렇게 사는 사람도 적지도 않고요! 돈도 크게 욕심내지 않고, 벼슬도 크게 욕심내지 않고 그저 이치에 눈을 뜨고 스스로 만족하며 사는 그런 사람도 적지 않다 하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願我勝福遍莊嚴
훌륭한 복으로써 두루두루 장엄하여지이다!
물질이 풍부하고 돈이 많고 벼슬이 높아서 어떤 불교적인 이치를 제대로 알아서 제대로 만 활용하고 쓸 줄 알면 그 이상 더 좋은게 없죠.
그러나 사람의 능력이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벼슬이 높으면 벼슬시중을 들어야 되고 돈이 많으면 돈 시중들어야 되고 하다보면 그렇게 제대로 쓸 줄 아는 연구를 할 기회가 없습니다. 돈이 많아도 어떻게 쓰야 잘 쓰는지 전혀 모르죠.
그런데 대해서 관심이 없으니까? 그런 공부를 안했으니까? 전혀 뭐 제대로 쓸 줄 알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두루두루 좀 안목을 넓혀서 살아야 되고 그래야 되는데 ... 한쪽으로 치우치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願共衆生成佛道
원컨데 다 함께 모든 중생들이 불도를 이루어지이다.
준제진언을 외우면서 세운 원력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이러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 계정혜 삼학이 원명해져서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고 다른 중생도 다 깨달으지이다... 하는가장 불자로서 성인의 가르침을 배우는 사람으로서 정도로 인도해주는 그런 가르침이죠.
如來十大發願文여래십대발원문 총원이라 그렇게 하지요
●願我永離三惡道, 원컨대 내가 삼악도를 영원히 떠나지이다. 지옥 아귀 축생이죠. 물론 그런 것은 없어야 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지옥 아귀 축생들에게 또 기웃 기웃 하죠.
●願我速斷貪瞋癡, 원컨대 내가 속히 탐진치 삼독을 끊어지이다
●聞佛法僧, 원컨대 내가 항상 불법승을 들어지이다. 부처님이라고 하는 말,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
는 말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단체라고 신도가 되었든 승단이 되었든, 단체를 승가, 이렇게 합니다. 협의 뜻으로는 출가승을 승가라고 이렇게 하지만 대승적인 입장에서는 승단하면은 우리 불자 사부대중 전체를 뜻하죠.
어째든 그런 소리 늘 듣고 산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보통 인연이 아닙니다.
여기 그런 서원을 세워섭니다. 원컨대 불법승 삼보에 대한 이야기를 늘 들으면서 살아지이다. 그것만으로도 참 좋은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싶어요.
●願我勤修戒定慧, 그러면서 내가 말만 듣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열심히 열심히 부지런히 부지런히 계정혜 삼학을 열심히 닦아지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시간도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願我恒隨諸佛學, 항상 모든 깨달은 분들을 따라서 배우기를 원합니다. 제불이라고 하는 말은 모든 사람, 모든 깨달은 사람을 따라서 배우기를 원합니다. 심지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서도 배우고 아이들의 떠들고 장난치는 데서도 우리가 깨우칠 것이 있고 그렇지요 그런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願我不退菩提心, 원컨대 내가 항상 깨달음이라고 하는 궁극적인 목표 그 마음에서 물러서지 않아지기를 원합니다
●願我決定生安養, 그래서 결국은 안양국에 태어나기를 결정코 틀림없이 안양국에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안양이라고 하는 것은 극락세계를 안양국이라고 하고 그야말로 이것은 염불이니까 약간 염불사상이 곁들여있습니다.
●願我速見阿彌陀, 원컨데 내가 빨리 아미타부처님 보기 원하옵니다
●願我分身遍塵刹 願我廣度諸衆生, 내가 온 몸을 온 세계에 어디든지 다 나누어가지고 분신을 해가지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를 원하옵니다 이렇게 열 가지 발원문인데 여래께서 세우신 발원문이 천수경에도 들어와 있고 부처님 가신 길을 우리가 또한 본받아서 원을 세운 것으로 염불을 삼고 있습니다.
四弘誓願 우리가 잘 아는 사홍서원이죠
●衆生無邊誓願度 煩惱無盡誓願斷
●法門無量誓願學 佛道無上誓願成
중생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맹세코 내가 건지기를 원하옵니다
번뇌가 무진하다하더라도 끝이 없다 하더라도 맹세코 끊기를 원합니다.
법문이 한량없다 하더라도 맹세코 다배우기를 원합니다
불도가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맹세코 내가 다 이루기를 원합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자성중생서원도
내 마음속에 있는 중생을 맹세코 재도하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번뇌를 맹세코 끊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법문을 맹세코 배우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불도를 맹세코 이루기를 원합니다.
自性衆生誓願度 自性煩惱誓願斷
自性法門誓願學 自性佛道誓願成 참 사홍서원 좋죠.
그 다음 총귀의라 해서 發願하고 나서 歸命禮三寶라 다시 또 三寶에게 목숨바쳐 귀의하고 예배합니다.
南無常主十方佛 南無常主十方法, 南無常主十方僧 이렇게 되어있죠.
상주시방불 - 늘 계시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고 받드옵니다
상주시방법 - 늘 계시는 시방의 모든 가르침에 귀의하고 받드옵니다
상주시방승 - 늘 항상 계시는 시방의 모든 사부대중에게 귀의하고 받드옵니다
이렇게 삼보에게 귀의하고 천수경이 혹 여기까지 끝나는 그런 천수경도 있죠
그건 회향이 빠졌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다음에 구체적으로 다 갖추어서 보면
淨三業眞言
옴 사바바바 수다살바 달마 사바바바 수도함 이게 이제 또 따라옵니다
삼업진언, 개단진언, 건단진언, 정법계진언이 나오죠. 그래서 이런 것들을 다 구체적으로 갖추었을 때 천수경이 완전한 천수경이 된다. 그렇게 이제 봅니다.
●옴 사바바바 수다살바 달마 사바바바 수도함
책이 좀 혼란이 생겨가지고 약간 淨三業眞言, 삼업을 청정하게 하는 진언 그렇게 되어있죠.
▮옴은 이제 말씀드린대로 중요한 뜻이 있고 사바바바 본성이 청정한
▮사바바바 수다 까지가 본성이 청정하다 그런 말입니다.
▮사바바바 本性본성이고 ▮수다 淸淨청정이란 뜻이고요
▮살바 달마 一切法일체법이죠.
▮살바는 늘 들었듯이 一切, ▮달마 法법이 않습니까? 일체법이여
▮수도함하는 것이 내 자성도 청정하여 하리라, 하여지이다 원하는 입장으로 하면은 하여지이다 그렇게 됩니다.
開壇眞言, 단을 여는 진언이다 그렇게 되어있는데 옛날에는 지금같이 절이 그렇게 많거나 그렇지 못했죠. 그래서 어떤 의식을 할 때 특별한 의식을 할 때 야단법석을 많이 했잖습니까? 밖에다 차려놓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를 생각해서 단을 연다 하는 그런 뜻이 있습니다.
●옴 바아라 놔로 다가다야 삼마야 바라베 사야훔 인데
옴 바아라 바즈라죠 금강의문이여 열어지이다, 금강의문이여 열어지이다
바아라 놔로 다가다야, 삼마야 바라베 사야훔, 삼마야는 삼매죠.
삼매에 두루 들어가 지이다, 삼매에 두루 들어가 지이다
단을 열고 법석을 마련하면은 결국은 그러한 마음가짐, 금강의 문이 열리고 그 속에서 어떤 일심으로 정진하는 그런 삼매의 분위기에 두루 들어가지이다! 그런 뜻이 담겨있습니다
建壇眞言, 단을 열었으니 세운다는 이런 뜻 이죠
●옴 난다난다 나지나지 난다바리 사바하
불공도 대충 대충하거나 청소도 대충 대충하거나 절에서 은어로 잘 쓰는 소리가 그 건단진언으로 해 이렇게 말을 해요. 그러면 대충대충 얼른얼른 시간 없으니까 얼른얼른 대강해서 치워라 이런 뜻으로 건단진언으로 해라하는데 여기 건단진언과는 전혀 서로 뜻이 다르죠. 그러나 그런 말을 익히 사찰에서는 써왔습니다.
옴 난다난다 나지나지 난다바리 사바하
●난다난다, 단을 이제 세우니까 작당 단을 만드는 무녀신이여! 또 단을 세우는 무녀신이여! 희열의 낙원을 가지고 와서 유지 하소서! 사바하! 난다난다 나지나지 난다바리 사바하! 단을 세우면서 단을 만들고 단을 세우고 그래서 법희선열의 낙원으로 유지가 되도록 해주십시오! 하는 그런 발원이 담겨있습니다.
그 다음에 정법계진언 인데 또 앞에서 옴 남 있었죠.
옴 남자가 정법계진언 이라고 되어있었는데 여기는 이제 남자의 설명입니다.
羅字色鮮白 空點以嚴之, 범서를 그려가면 설명을 해야 되는데 라자가 이렇게 기역자처럼 쓰고 기역자 그 위에 점을 하나 딱 찍어요, 점을 하나 찍은게 그게 이제 남자데 그 남자는 처음에 라 자를 쓰고 위에 점을 찍으니까 남 이렇게 되어요. 우리 철자법처럼 범서도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라자는 색이 선백하다 색으로 보면 텅 비어서 깨끗하고 맑다, 거기에다가 공점이엄지라 둥근 점을 갖다가 위에다가 장엄을 한다. 그러면 남돼요
如彼髻明珠라, 그 남자의 모양이 상투위에다 아주 값진 밝은 구슬을 올려놓은 것과 같이 그렇게 뚜렷하다. 이것입니다. 그래 옴자나 남자나 글자 범서를 쓸 때 제일위에 있는 동그라미가 ‘ㅁ’에 해당되는 것인데 그걸 구멍이 뚫리게 하면 안돼요
구슬이 구멍이 뚫리면 됩니까? 그 속이 꽉차있어야지 진짜 좋은 구슬은 속이 꽉차있어야 됩니다. 옴자나 쓸 때 위에 구멍이 없게 꽉 차게 점을 꼭 찍어야 되고
남자 쓸 때도 위에다 마지막에 점을 꼭 찍어야 되요 거기 계명주에요!
상투위에다 올리는 구슬과 같은 것... 置之於頂上이라
정상이다. 나자의 정상에다 딱 두므로 해서 남자가 된다
●眞言同法界 無量衆罪除
그래서 진언이 법계와 하나가 된다. 그래서 ‘옴 남’하는 것은 남은 뭐라고 그랬죠. 화대의 종자 지혜의 불로 모든 것을 다 태워 버린다. 그런 것의 종자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한량없는 죄의 장애를 다 제거한다.
●一切觸穢處 當加此字門
一切觸穢處 일체의 더러운 곳이 닿는데 마다 當加此字門, 일체촉예처에 탁예처라고 발음한다는 라는 그런 표현도 있습니다. 굳이 뜻이 틀리지 않아요. 촉예처 더러움이 닿는 곳, 일체 더러움이 닿는 곳에 바로 당가차자문 바로 이 글자를 갖다 붙여라 이런 뜻이 되겠어요.
그래서 옴 마니 반메 훔을 문위에다 갖다 붙이기도 하고, 나가는 문에, 현관문에, 방에 온데 갖다 다 붙이기는 그런 것도 있고 불자의 집을 표시 하는 데는 옴 마니 반메 훔, 옴 남 이런 주문을 본래 옴남을 붙이도록 천구경에는 그렇게 되어있는데 옴 마니 반메 훔을 붙이죠! 옴 마니 반메 훔도 좋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붙여놓고 무슨 특별한 기대를 하기보다는 그 진언의 정신과 사상을 우리가 몸소 받아들여서 하나라도 실천에 옮기는 그런 자세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羅字色鮮白 空點以嚴之 如彼髻明珠 置之於頂上
이것은 범서의 남자를 모르면 이 해석이 잘 안돼요. 그래서 천수경 번역본에 보면 틀리게 해석한게 종종 이제 보입니다
그 다음에 나무 사만다 못다남 남...
나무 귀의한다 사만다 보변이죠
못다남은 부처님이란 뜻이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널리 두루 계시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받드옵니다.
그리고 남 람이 아니고 남이에요 남... 남이 화대의 종자고 또 주문을 하거나 진언을 하거나 밀교에서 소위 금강경의 전형구가 옴자 남자 이런 것이 붙여지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태장게(?)의 전형구 무슨 금강경의 전형구 이 어렵고 복잡한 말이 있습니다 그건 다 밀교에서 전문적으로 하는 말이고요
이렇게 해서 우리가 사는 법계를 청정하게한다... 청정하게 하는 것은 지혜의 불로써 우리의 번뇌를 몰아내고 세상을 환하게 밝혔을 때 ... 그 때 법계가 청정해지는 것이지... 달리 불을 켜거서 청정하게 한다든지 불로 태워서 청정하게 한다든지 하는 그런 이치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뜻을 잘 알고 보면 수긍이 가고 어떻게 우리가 행동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천수경 강의 8회에 걸쳐 천수경 강의를 모두 마치는데, 천수경강의나 어떤 경전의 강의라 하더라도 불교의 가르침, 부처님 조사스님들의 가르침이란 인생을 정말 이치를 알아서 이치에 맞게... 지혜롭고 슬기롭게 살 때만이 행복하고 평화롭다.
진정한 행복과 진정한 평화는 이치를 깨달아서 그 이치에 잘 맞게 살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이걸 가르켜주는 것입니다. 그 외 다른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런 가르침을 우리가 배우면서 정말 하나 하나 이치를 깨우쳐서 이치에 맞게 순리대로 사는 그런 지혜를 닦아가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천수경을 마치고요, 내일, 모레 쉬시고 다음 월요일부터는 초발심자경문! 가지고 공부를 할까 합니다. 이번 인터넷 강의는 하다보니까 예불문, 반야심경, 천수경 이렇게 했어요, 이게 이제 우리 스님들이 절에 들어오면은 공부해가는 순서입니다.
그 다음에는 당연히 초발심자경문을 공부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 순서대로 다음 월요일부터 계초
심학인문 이라고 하는 것부터 공부하는데 저기 염화실 자료실에 올려져 있습니다.
자료실에 것을 복사해서 사전에 좀 살펴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초발삼자경문은 출가한 사람들을 위주로 한 것이지만은, 요즘 또 일반불자들도 상당히 많이 공부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저희들도 여기서 한번 할까? 그런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강의 여기까지 입니다. [예불문 제20강 녹취 :인터넷 전법도량 염화실 녹취전법행자 자혜성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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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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