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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말씀으로 비쳐 본 유성교회 개척이야기
유성교회는 먼저 이름과 안부를 묻습니다. 어느 교단신자인지를 묻지 않습니다.
유성성당은 미사(성찬례)를 통해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기를 열망합니다.
유성 봉명동에서의 성공회 유성성당 축복봉헌미사
2013년 10월 13일 15:30
찬미예수님!
오늘 유성 봉명동에서의 유성성당 봉헌을 축하드리며 교우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가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a 성공회 유성성당이 1년 전인 2012년 9월 9일에 장대동(35평)에서 권미카엘주교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았고, 축복식 이후 일년 일개월 만에 이전하여 봉헌미사인 축복식을 하느님께 올립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올립니다. 아멘. 그에 앞서 충남대학교 정문 앞인 궁동(15평)에서 유낙준모세신부가 유성지역 개척사제로 명을 받아 선교형 교회 Mission Shaped Church로 설정하여 출발하였던 날은 축복식 6개월 전인 2012년 3월 4일이었습니다. 그러니 6개월간 개척교회로의 기도로 준비활동을 한 것입니다.
b 그 당시 성공회 대전나눔의집의 기관이 14개가 되어 일반사목인 교회(성남동성당)사목에는 유모세신부의 활동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판단하신 권미카엘 주교님의 결정으로 인해 성남동성당의 사목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사제는 항상 어디서든지 사회선교기관에서 일을 하더라도 교회의 일반사목을 항상 수행하여야 한다는 것이 그 당시의 유낙준신부의 성직자론이었습니다. 성남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그 다음 주(2012년 3월 4일)부터 곧 바로 사무실로 사용되는 궁동의 한 곳을 주일마다 미사를 올릴 수 있게 유낙준신부의 친구인 김진영(한국경영연구소장)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첫 미사를 올리게 된 것입니다. 유신부의 가족과 몇몇 지인으로 이루어진 9명이 대표이사 책상을 제대로 삼아 사무실 교회의 출발을 하느님께 올렸습니다. 주일 아침 10시부터 예배를 올리기 위한 참좋은 분위기를 위해 미사 전의 그 한시간 동안 진정한 가슴으로 하느님을 뵙고자 준비기도를 한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9명이 한결같이 한 몸으로 움직였던 시기였습니다. 주일미사를 마치면 주변에 있는 식당에서 애찬을 나눴습니다. 담소하며 나누는 애찬하는 우리의 모습은 이스라엘인들의 초기형태인 합비루(떠돌이)에 대한 삶의 모습과 겹쳐져 눈물이 흐르곤 했고 그 때마다 더 하느님만 매달렸습니다.
c 교구선교정책의 하나로 유성지역에 선교형 교회가 세워진 것은 아닙니다. 오직 사제의 하느님을 향한 고독한 마음과 외로운 결단을 불쌍히 여기신 하느님께서 놀랍도록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 주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유성교회의 시작은 이렇게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으셨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출발이었습니다. 또한 주위 동료사제들의 박수 속에서 사무실 교회가 출발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많은 신도들의 지원으로 선교형 교회가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성공회 선교가 갖는 균형잡힌 선교가 아니라 철저한 고독 속에서 유성지역의 선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또한 철저한 어둠 속에서 하느님을 찾았던 모세처럼 그렇게 유모세신부님은 선교형 교회인 사무실 교회를 오직 하느님만 의지하여 시작한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만 붙잡았기에 어떤 장소도 문제가 아니고, 어디인가도 문제가 안 되었습니다. 선교형 교회로 궁동의 3층의 15평 사무실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선교의 기초는 하느님 말씀으로 우리가 움직여질 때 이루어지는 것이지 머리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 여겼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푹 빠진 동료들과 신도들의 적극적인 기도로 이루어진다 하겠습니다.
d 시간이 지나며 처음에 보이지 않았던 거룩성의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궁동에서 장대동으로의 성당 이전은 공간의 거룩성의 문제로 옮긴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집으로, 기도하는 집으로는, 신비스러운 공간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거룩성의 공간으로 새로 태어나려고 미사 후에 새 건물들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이때 이종선요한신부님과 허광만요셉 사제회장교우에게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로 그들의 눈에 더 나은 거룩한 공간을 보이게 성령께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장대동으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생각한 돈보다 훨씬 많은 보증금이 있어야 공간을 마련할 유성지역이기에 이곳저곳을 수없이 찾아 나섰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습니다. 절망은 쌓여가는 가운데 기도를 했습니다. 그 기도로 장대동 쌀집의 2층이 보였습니다. 사무실교회에서 쌀집교회로의 이동은 전적으로 기도로 된 것입니다.
e 장대동의 유성성당의 공간 임대는 허요셉교우께서 500만원의 보증금을 임차해 주셔서 35평의 성당 작업을 하기에 이르렀고 기도 분위기로 점차 가꾸어 간 것입니다. 이 때 사제는 재정을 마련할 힘이 없었지만 선교의 열정만을 지닌 상태였습니다. 사제의 선교에 대한 열정과 신도의 선교에 대한 헌신적인 재정지원이 결합 된다면 교회개척은 반은 성사된 것이라 보면 됩니다. 선교는 이렇게 하느님이 보내 주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교는 하느님이 하시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는 하느님이 하시고 나를 그 도구로 쓰시기에 하느님께서 선교를 위해 사람을 보내 주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우리 성공회 선교에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하느님의 일꾼을 보내 달라고 꾸준히 하느님께 요청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요청을 거절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요청을 기다리셨다가 요청을 하면 즉시 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의 절실한 기도를 들어주시는 자비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자녀들은 나몰라라 하지 않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내 우선순위도 아닌 내 전부라 여길 때 선교는 이미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는 내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전제가 숨어있기에 선교에서 위험한 생각입니다. 하느님은 선교에서 내 전부여야 이루집니다.
f 유성 성당 쌀집교회는 남양주성당에서 준 탁자를 식탁으로 사용하고, 침례교목사가 주신 장의자를 교회의자로 쓰고, 개신교제단에 넓은 송판을 대어 임시 제단으로 삼았습니다. 성당의 큰 십자가는 가톨릭대학교가 있는 대학로의 성물상에서 직접 구입하여 성금요일에 그 십자가를 어깨에 지고 유성 장대동까지 순례하듯이 옮겼습니다. 또한 수난십자가는 이탈리아에서 오래 전에 제작된 것으로 지금도 우리를 지켜 주시듯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주님을 기억나게 합니다. 메나스 수도원장의 어깨에 손을 얹혀 놓은 예수님의 우정의 이콘(성화)은 양권석예레미아 성공회대총장신부님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프랑스에서 온 것으로 제게는 이콘기도로 하느님의 사랑에 빠지게 하여 개척시기의 어려움을 넘어서게 했던 것입니다. 이때 시리아의 예수님의 이콘과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콘과 램브란트가 그린 탕자의 귀향 이콘과 발씻김이라는 세족례식 이콘이 성당에 자리하게 되었고, 그 이콘들이 개척교회에서 제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때로는 저 이콘이, 어떤 때는 이 이콘이 힘을 줍니다. 다양한 이콘이 성당에 자리한 것이 기도할 마음을 생기게 하여 이콘을 매우 귀하게 여겼습니다.
g 쌀집교회는 주일미사에 집중하는 선교로 유낙준신부님의 설교와 미사후 애찬을 중심으로 삶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주중에는 성공회 대전나눔의집의 기관을 다니면서 채플로 영적분위기를 세우려고 사목활동을 하였습니다. 월요일, 화요일 및 수요일은 하루에 대개 4개 내지 5개 기관을 돌며 하느님 말씀을 전하며 함께 기도합니다. 목요일은 한 기관에서 전념하고 금요일은 쉼이 있는 가족과 함께 하는 날로 정하고 토요일은 주보작성을 하면서 주일미사 준비에 전념하였습니다. 주중에는 아침미사로 사제 자신을 위한 성무일과로 하느님으로부터 힘과 지혜를 얻는 시간을 하느님과 함께 보냈습니다.
점차 몸이 지쳐가기에 아침미사 후 또는 저녁 일과 후에 운동장을 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직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를 청하는 기도로 운동장을 돌며 운동하였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생활이기에 저녁 9시면 취침에 듭니다. 어쩌다 밤 11시에 잠이 깨어 밖을 보다가, 그 시간대에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저들이 사람인가?’ 신도들은 늘 사제의 건강을 염려합니다. 저렇게 일하다 쓰러지지 않을까? 일하다가 보니 한 달에 한 두번만 집에 가는 상황이 속출했습니다. 가족과 충분한 시간을 공유하시길 바라는 신도들의 기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중부지역의 노샘턴의 팀신부님의 사목활동을 곁에서 보면서 저의 활동보다도 3배 더 사목활동하시는 것을 보고 귀국하면 그렇게 사목활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사제의 모든 삶은 바로 사목입니다. 아직도 이에 미치지 못해 신도들에게 항상 죄스럽습니다.
h 장대동에서의 유성성당 초기에는 성공회 대전나눔의집의 실무자들이 돌아가면서 미사에 참여하였고 그것은 단순히 신앙체험의 날이 되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도 나눔실무자들의 지속적인 주일참례가 힘이 되어 서울 등 외지에서 대전으로 오신 새 교우들도 주일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습니다. 온 교우들이 합심하여 오직 하느님만을 향한 나날이었습니다. 그러한 힘으로 2012년 9월 9일에 축복식을 받아 유성성당을 하느님께 봉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날 “오직 하느님의 힘으로!”라는 성공회 유성교회 개척이야기를 책으로 발간하였습니다. 이 축복식을 준비하면서 성가대의 찬미가 있었고 이를 기초로 성가대가 출범합니다. 축복식 전에는 주일미사와 애찬이 주였다면 축복식 후에는 성가대와 대도(중보기도)모임이 형성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시간을 하느님과 얼마나 공유하는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축복식 이후 20명대의 교우들이 주일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2012년 9월의 축복식 이후 성가대가 정식 출범하면서 주일미사 참례 신도수는 30명대로 늘었습니다. 아울러 수요만도가 수요미사로 바뀌고 기도 중심의 신앙생활을 세우는 중입니다.
i 개척교회인 유성교회에 힘과 용기를 주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대전교구 어머니연합회가 주최한 성가제에서 ‘사랑상’(으뜸상)을 유성교회 성가대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이를 계기로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과 자비로 살 수 밖에 없다는 고백을 유성교회의 교우들이 할 수 있었고, 그러한 삶을 통하여 하느님은 찬미받기를 원하셨으리라 믿습니다. 하느님을 경험하는 교회로 거듭 태어나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아름다운 선율로 이루어진 주교좌성당의 성가대가 우리 유성교회를 위하여 자리를 내주셨던 것이고, 수도원의 감미로운 선율로 이루어진 전주성당의 성가대가 개척교회인 유성교회에게 성령의 자리를 안내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유성교회 성가대는 더 풍성한 감사 찬미를 하느님께 올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은혜의 선물인 유성성당의 성가대는 성가를 기도로 찬미를 드리게 됩니다. 시편은 인간의 숨은 구석까지 드러내어 찬미를 드리는 시입니다. 거기에는 하느님을 만나는 인간의 처절함이 담겨 있고 하느님의 신비에 감사하는 겸손이 있습니다. 개척교회에 성가대가 맨 먼저 선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유성성당에 주신 놀라운 선물입니다. 볼품없는 개척교회이지만, 그리고 사제관도 변변치 못하지만 그 사제에게서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에 우리의 가슴은 뛰었고 그 감사를 찬송으로 올렸던 것입니다.
j 2013년 3월이 되면서부터 주일미사참례교우의 수는 30명대가 되었습니다. 그럴 즈음 장대동 쌀집교회인 유성성당의 공간이 좁음을 신도들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계약기간은 내년 3월로 1년 남았음에도 성당이전에 대해 논의가 시작된 것입니다. 아울러 성공회 유성교회가 지역과의 결합도구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각자의 처지에서 기도를 하게 됩니다. 교인들은 각자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공동체도 나름대로 하느님을 향한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공동체가 바라는 기도 또한 하느님께 바쳐야 합니다. 교인이 늘면서 새 공간을 물색하면서 속히 이사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관할사제는 교인 전체 공동체의 기도로 그러한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고 공동체의 기도인 대도모임을 시작하게 됩니다. 봉헌축복미사를 올리는 오늘이 바로 대도모임 23번째입니다. 대도모임은 주일 미사를 드리기 한 시간 전에 하느님께 올립니다. 대도모임에서 꾸준히 기도를 올리는 가운데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아 장대동에서 봉명동으로 성당을 옮겨 하느님께 봉헌미사를 올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기도로 하느님께 여쭤보아야 합니다. 하려고 하는 일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을 위한 그러한 결정인가, 하느님 마음으로부터 출발한 것인가?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이 바로 대도입니다. 대도를 드림으로써 유성성당이 하느님 마음으로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고자 한 것입니다. 오늘 이 봉헌미사자리는 바로 그렇게 아침마다 대도를 하느님께 바친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아멘.
k 여름의 어느 날 장대동 쌀집교회의 좁은 공간에서 미사중 열기를 식히려는 냉풍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실내 공기가 탁해지면서 한 교인이 어지럼증으로 졸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신앙의 열정이 넘쳐 몸이 약해진 것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하느님께 온전히 삶을 바치고자 한 신도들의 모습에 사제는 놀랐던 것입니다. 공간이 넓은 곳으로 ‘당장 옮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대도모임으로 하느님께 우리의 요청을 거듭 간청했기에 믿음에 믿음을 더한 상황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마련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믿음을 가진 확신은 믿음 없는 이가 보면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믿음이 더한 확신은 현실의 온갖 장애물을 넘어서는 추진력을 줍니다. 신도들은 하나같이 새 공간을 찾느라 분주했습니다. 유성시가지에서 이러한 가격대가 나타나지 않았을 텐데 우리 앞에 우리 조건에 맞는 공간이 보인 것입니다. 오래된 건물로 겨울에 수도관의 어는 문제가 있지만 이겨내 보자는 마음으로 공간을 결정하게 됩니다.
오래된 건물이라 한주간 허요셉사제회장교우께서 그림을 작성하고 조감도까지 윤프란시스가 조각해오셨고 서베다교우의 전공실력으로 전기선을 새것으로 바꾸고 구베네딕트교우의 아이디어로 기존의 칸막이를 이용해 저비용으로 재배치하였으며, 벽틈과 천장을 도색하고 벽전체를 도배하고 문을 새로 고쳐달고, 교우들이 전체청소를 하고 유리창을 닦았습니다. 그 다음 주일미사 후에 이사하는 날이었습니다. 전교우들이 들고 일어나 짐을 싸고 이사를 한 것입니다. 이사로 인하여 온 몸의 수고에 감사하여, 백선희루도비까교우께서 제공한 만찬을 나누며 교우들이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추석명절 다음날에 인천부평 한 목사님이 장의자를 주셔서 그것을 3층 건물에서 내려 차에 옮겨 유성으로 싣고와 다시 3층으로 올렸습니다. 그 일들을 하는 동안 힘든 노역으로 인해 허요셉사제회장교우는 허리에 온통 파스를 붙여야 했고 파스냄새가 진동하였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유성교회를 세우기 위해 헌신하신 분이 허요셉사제회장교우입니다. 그 곁에서 이종선요한신부님은 허리통증에도 아랑곳 않고 희생정신으로 유성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55명의 교우가 주일미사에 참례하심으로 인하여 애찬도구들을 새롭게 마련하는 시기가 온 것이기에 이에 따라 그릇들을 준비하고 큰 그릇, 작은 그릇들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제 애찬실 바닥에 코일을 설치하는 작업이 남아 있습니다. 모자른 재정도 하느님께서 보내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을 살리신 것처럼 우리가 하느님을 꼭 붙잡는 한 앞으로도 우리를 살리실 것입니다.
ㅣ 유성성당이 개척교회입니다. 기존의 성공회 성도를 모아 개척한 교회가 아닙니다. 다른 신앙생활을 접한 사람들로 구성된 개척교회이기에 성공회의 균형잡힌 성숙한 신앙생활의 본보기로 이려미드보라교우의 재속수도자의 삶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김바우로-김비비교우는 성공회 신앙부부로서 성공회 신앙의 선함과 밝은 생활을 보여 주시어 성도들이 기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매주 서울서 내려와 복사 사역을 맡는 영원한 청년인 구베네딕트교우의 헌신적인 신앙생활을 통해 성공회 청년의 전형적인 생활을 보여 주신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할 때 성공회의 전형적인 신앙인이 요청되는 바입니다. 자신을 앞세우지 않으면서 하느님 말씀으로 살려는 모습은 성공회 신앙으로 이것은 인간적인 향내를 풍기는 하느님을 향한 아름다운 삶입니다.
또한 유성성당에는 어린 아기들이 많습니다. 교회개척초기에는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만 성당의 교인과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아기들이 많아졌습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생명의 신비감을 느끼기에 가장 합당한 존재는 아기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입니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많은 별처럼 자녀를 주신 것은 분명 복입니다. 아기들로 인하여 하느님의 복이 풍성하게 넘치는 유성성당이 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또한 가족단위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성가정이 늘었습니다. 대가족의 해체로 대부분 핵가족 형태만을 경험합니다. 핵가족화되는 현실에서 가족단위의 신앙생활이 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혈연이 아닌 이들이 모여 결합하는 새로운 혼합가족이 등장하고, 홀로가족도 출현하는 이 시대에 가족단위의 신앙생활은 생명존중의 가치를 일깨우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폐함으로 치닫는 현대의 피로사회에서 가족의 힘은 지친 사람에게 기운을 주는 성가정이라야 할 것입니다. 기존 가족구조가 크게 변화하는 우리시대에 하느님의 시각에서 성가정의 가치와 방향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현재 유성교회는 70대 1인, 60대 1인, 50대 7인, 40대 16인, 30대 16인, 20대 9인, 10대 5인, 아기 7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난 2013년 9월 셋째 주일에는 55명의 교우들이 참석하여 유성성당 축복식 이후 1년 만에 가장 많이 참례하였습니다. 주일미사 참례성도가 40명대에서 50명대로 진입한 것입니다. 20~30명의 신도예배에 익숙한 성공회 사제인 저에게 새로운 사목활동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그 새로움이 위험하기도 하여 고답적으로 움쿠리기도 하고 그 새로움이 주는 신선함으로 인하여 새로운 창조작업을 시도하기도 하는 위험에 제가 직면해 있습니다. 성공회 교회에서 항상 50명대에 갈등사건이 터져 힘들어 했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 자리에 선 것입니다. 이 시기에 신도들과 사제가 식별력을 키우는 기도가 요청됩니다. 사제와 가장 가깝고 가장 열심했던 관계가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이 이 시점이기에 하느님이 전부임을 고백하는 기도로 무장해야 할 것입니다. 선교의 정당성과 선교의 다양성 사이에 나타나는 긴장이 선교의 깃발을 더 휘날리게 하는 역동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m 오늘 유성구 봉명동에서의 56평의 성전을 봉헌하기에 앞서 유성성당 교우들이 하느님께 바친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이 기도의 제단이기를 빕니다. 하느님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겼다는 것이 오늘 봉헌미사의 제물이기를 바랍니다. 성질이 변화무쌍하고 감정기복이 큰 사제로 인해 유성교회 신도들이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수고를 다 아셔서 신도들의 수고를 최소 30배로 보상해 주시는 하느님이시기에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돈은 하느님의 것이기에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가 이어지고, 그로 인해 하느님께 바침으로 성전이 아름답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봉명동의 유성성당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성전만 바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바치는 것이고 우리의 수고와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그동안 신도회장 이명훈토마스아퀴나스교우와 사제회장 허광만요셉 교우께 감사의 마음을 올리고, 봉명동의 성전을 봉헌하기에 수많은 작업을 하신 주교좌성당의 서베다교우에게도 그리고 끊임없는 기도와 정성을 다해 주신 유성성당과 이웃성당의 신도교우 여러분에게 감사를 올립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봉헌하여 가난한 사람을 위한 성당인 성남동성당을 축성할 때 눈물이 났습니다만 오늘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새로 지은 성전을 봉헌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는데, 단상에 올라 에즈라사제가 하느님의 법전을 읽을 때 이를 듣고 이스라엘백성들이 울었을 때 에즈라사제의 말입니다. “이 날은 너희 하느님 야훼께 바친 거룩한 날이니 울며 애통하지 마라(느헤미아8:9). 이 날은 우리 주님의 날로 거룩하게 지킬 날이니 슬퍼하지 마라. 야훼 앞에서 기뻐하면, 너희를 지켜주시리라(느헤미아8:10).” 하느님께 예배를 올릴 성전도 없고 잠을 잘 사제관도 없을 때를 생각하면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에즈라사제의 마음이 이렇게 제게 다가올지 몰랐습니다. 유성교회 개척을 한지 1년 8개월 9일째 하느님께 예배를 올릴 거룩한 성당이 봉헌되는 날이니까요. 오늘은 큰잔치를 벌이는 날입니다.
n 거룩한 집은 하느님이 머무시는 곳입니다. 결국 하느님의 집은 거룩한 곳입니다. 바로 우리 유성성당이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집입니다. 우리들은 하느님께 우리의 속을 고백하는 기도를 올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일미사를 이 성당에서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여 신도들이 힘과 기운을 받는 신앙생활이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묵시21:3).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묵시21:4).”
남편은 직장에서 밀려나 퇴직하고, 사업을 하다가 어려움에 처하고, 아이가 부모와 의견이 다르다고 집을 나가고, 보증섰다가 모든 재산을 날려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고, 말실수로 인해 깊은 관계가 깨져가고 있고, 내 안의 인색한 사랑과 가족이기심 때문에 더 확장된 사랑으로 살지 못함이 바로 우리들 모습이기에 하느님 뵐 면목이 없는 죄인임을 회개합니다.
바로 그러한 회개가 서는 자리가 유성성당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의 출구전략이 서는 곳이기도 합니다. 주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기마음대로 사는 방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바로 유성성당 안에 있습니다. 그 삶을 보여 주었기에 10년간, 20년간, 30년간, 수십년간 대대로 지속된 그리스도와의 우정을 기반으로 신뢰 높은 유성성당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유성성당은 집나간 아들이 돌아와도 따뜻하게 맞이하는 아버지의 품과 같은 곳이기를 바랍니다. 현대인의 신앙의 위기를 넘어 설 그곳이 유성성당이려면 신앙을 하느님에게 두고 그 신앙을 단단히 해야 합니다. 하느님 자리에 자신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신앙생활로 신앙의 위기를 넘어서길 바랍니다.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생명이심을 고백하는 신앙생활로 서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성공회 유성성당이 대전교구뿐 아니라 한국교회의 빛이 될 것입니다.
오늘 유성성당을 축복하여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이러한 고귀한 신앙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이 성당에서 여러분의 믿음을 더해가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