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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19. 7. 13.~14.(주말)
●산행지: 낙동정맥 3/8구간 (아랫삼승령-피나무재)
●산행코스: 아랫삼승령-학산봉-쉰섬재-저시재-지경고개-독경산-창수령-울치재-맹동산-명동산-박점고개-포도산삼거리-장구메기-화매재-삼군봉-황장재-갈평재-대둔산-먹구등-명동재-느지미재-왕거암-대궐령-갓바위전망대-주산재-별바위봉-피나무재
●준비물: 2리터생수, 500cc생수3, 사과,딸기요굴트4, 정통파운드케익, 샌드6종류각1개, 사탕3종류
●거리: 약 74Km
●소요시간: 약 27h
●누구랑: J3클럽 정맥9차종주대 12명
●회비: 100,000원
●날씨:19~28도
●산행경과:
- 11:56 : 아랫삼승령
- 14:07 : 지경고개 (남자현선생)
- 15:18 : 독경산
- 15:30~16:00 : 창수령(자래목이)
- 17:05~17:16 : 울치재
- 19:06 : 맹동산
- 19:27~20:33 : 저녁
- 21:28 : 명동산
- 22:26~22:43 : 박점고개
- 23:18 : 포도산
- 00:51 : 장구메기(여정봉)
- 02:02~02:13 화매재
- 03:12~03:23 삼군봉
- 03:49~06:52 : 황장재
- 07:23 : 갈평재
- 08:21 : 대둔산
- 09:36 : 태행산
- 11:18 : 금은광이
- 11:52 : 두수람
- 13:10 : 내원마을
- 13:34 : 용연폭포
- 14:30 : 대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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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는 삼승령 굴바위봉을 경계로 백암온천이 있는 울진군 온정면에서 영덕군 창수면으로 넘어가고 곧 복숭아 주산지 지품면으로 갑니다.
내륙 낙동쪽으로는 황장재 직전 삼군봉에서, 영양군 석보면에서 청송군 진보면으로 넘어가고 곧 만나게될 청송읍과 주왕산면은 사과 주산지입니다.
영덕 영해에서 영양을 걸쳐 안동으로 오간 간고등어길이 황장재입니다.
이번 구간은 추산대장님이 창수령에서 족발, 막걸리, 산도복숭아를 지원해주시고 그것으로도 모잘라 장구메기와 화매재 중간지점에 음료와 물을 대포시켜 등짐이 한결 가벼울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저 따라다니기만 하는 타성에 젖다보니 그간 스스로 트랭글 따라가기도, 지도보기 조차도 하지않고 예습과 감만 가지고 쫒아다니고 있습니다.
대둔산에서 돌아나와야 되는데 태행산으로 대형 알바를 하며 띠지가 보이지 않아도 비탐구간이라 걷어낸 모양이구나 생각하고, 지금 가는 길이 먹구등일까 태행산일까 의심이 들긴했지만 중간에 지도한번 펼쳐볼 생각을 안했네요.
태행산 정상석을 보고서야 아차차!! 지도를 펼쳐보고 다시 먹구등으로 따라붙으려 했지만 본진과 3시간 이상 쳐져있어, 먹구등 직전에서 내원마을로 탈출을 결정하고 첨벙첨벙 계곡을 따라 트레킹, 용연폭포와 학소대를 구경하고 주왕산 대전사로 나와 고속버스로 상경합니다. 혼자라도 피재까지 가서 막차나 새벽에 상경할까도 싶었지만 월욜 스케쥴을 살리고 정맥 구간을 접기로 했습니다.
사람과 분위기 따위 신경 안쓰고 정맥만 보고 다니고 있습니다만 저로서는 먼저 트랭글 운영방법을 배우는게 급선무네요. 그래야 누구 도움없이 나혼자 다닐 수도 있으니깐요. 체력은 자신이 붙었는데 40km 넘어가면 발뒷꿈치 물집은 여전합니다. 담번에 혼자갈 때는 비행기모드 해제하고 따라가기라도 켜놓던가 갈림길에서 지도를 자주 보던가 이런 일이 없도록 연습을 또 한번 해야 되겠어요.^^ 덕분에 몇 년만에 주왕산 구경은 잘했습니다.
3-1 : 아랫삼승령-맹동산 26km , 3리터
3-2 : 맹동산-황장재 24km, 2리터+사과요굴트750cc
3-3 : 황장재-피나무재 27km, 3리터+딸기요굴트750cc
영양군 수비면 발리 전구간에서 이용했던 식당에서 점식식사를 하고 덕재를 넘어 장파리 지나 아랫삼승령으로 이동합니다.
♤ 삼승령(三僧嶺/514m)
삼승령은 영양군과 창수면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 514m이다. 보림․집희암․자무기 등에 있던 절에서 스님들이 이 고개를 넘어 '영양과 서울을 왕래할 때 반드시 3명의 승려가 동행하여 넘었다 하여 삼승령이란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윗삼승령과 아랫삼승령으로 나뉘어져 있다. 지명의 유래는 윗삼승령과 아랫삼승령 사이 굴아우봉(747.3봉) 좌측으로 큰 바위가 3개 있는데 마치 승려의 형상을 하고 있어 삼승바위라 하고 그 곳을 중심으로 북쪽 고개를 윗삼승령, 아래쪽 고개를 아랫삼승령이라고 한다. 굴아우봉 동쪽으로는 깎아지른듯한 절벽이고 그 곳에 삼승바위가 있지만 정상에서 삼승바위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상을 내려오면서 나무사이로 모습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는데 보이는 옆모습이 마치 사람의 얼굴과 흡사하다.
아랫삼승령에서 잠깐 오르면 처음 만나는 조그마한 봉우리 학산봉입니다.
쉰섬재도 지나는군요.
어느 시절에는 재너머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던 요긴한 교통로였을텐데...
영화 밀정에서 활약한 상해 임정의 애국여성 남자현 선생의 시댁이 이곳 아래에 있는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입니다.
이름도 없는 고개를 또 지나고....
♤ 독경산(獨慶山/684m)
경상북도 영양군과 경계를 이루는 영덕군 북서쪽 창수면 창수리에 있는 산으로 삼승령을 비롯하여 창수령, 울치재 등과 이어져 있다. 정상에는 무인 산불감시탑과 헬기장이 있다.
창수면 수리 집희암마을의 성왕사·보림리 오현사·백청리에 걸쳐 있는 스님들의 독경 소리가 산 전체에 울려 퍼져 이름 붙은 독경산(讀經山/564m)과는 다른 산이다.
♤ 창수령(자래목이/울팃재/泣嶺/行哭嶺/918지방도/490m)
영덕군 창수면에서 영양읍 무창리로 넘어가는 해발 490m의 918번 2차선 포장도로로 창수면쪽에서 올려다 보면 자라의 목 같이 생겼다고 해서 자래목이라고도 한다.
작가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 배경지로 알려진 곳으로 예전에는 영해에서 내륙을 잇는 주요 길목이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20여 km 이어져 있는 산줄기를 통칭 서읍령이라 한다. 고려말 몰락해가는 왕족들이 한 많은 눈물을 뿌리며 이 고개를 지났다 하여 읍령이라 전해진다는 설화가 있는 곳이다. 고갯마루엔 "낙동정맥 영양5구간"을 알리는 안내판과 이동통신 안테나가 서 있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읍령(泣嶺) 혹은 울티재라고 불렸다고 한다. 실제로 현재의 창수령 남쪽에 비포장 울티재가 남아 있다. 고개가 너무 험해서 울면서 넘었다는 뜻이며, 후삼국 시대 때 왕건과의 전쟁에서 패한 궁예 부하들이 울면서 넘어 도망간 고개라는 설과 조선시대 백성들이 관리들에게 세금으로 바칠 곡물 등을 짊어지고 울면서 넘어간 고개라는 설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인근 동네 이름인 창수리를 따서 창수령이라고 이름붙였다. 일제가 군 경계선을 확정지을 때 정상보다 600m 정도 서쪽으로 그었고, 따라서 군 경계선과 창수령 정상 사이의 구간은 태백 산맥 서쪽이지만 행정 구역으로는 영덕이며 창수령은 창수리 한가운데 있는 고개가 되었다.
♤ 울치재(泣嶺)
조선조까지만 해도 영양은 영해부에 속한 작은 현이었습니다.
영양읍에서 영덕군 영해로 넘나들던 고개로 옛날 영양현이 폐현되고 영해부로 통합되면서 조세와 환곡을 짊어지고 이삼백리를 운반하다보니 힘들고 고통스럽고 서러워 울고 넘었다고 하여 읍령(泣嶺/울치재)이라고 불렀다는 선인들의 신산한 삶의 모습이 이 고개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또다른 이야기로는 재가 높고 험하여 옛날에는 석양에 이 재를 넘으면 필시 화를 당했다고 해서 울고 넘었다는 뜻으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 풍력발전(風力發電)
영양풍력단지는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다.
풍차를 이용하여 자연의 바람 에너지를 기계 에너지로 변환시켜 발전하는 방식
전력선을 공급할 수 없는 오지나 섬에서 실용되기도 한다. 풍력발전에는 직접식과 축전식이 있다. 직접식은 교류 풍력발전기를 직접 전력계통에 이용하는데, 풍차를 일정한 속도로 회전시키기 위해 풍속에 따라 날개의 기울기를 변화시키는 등의 제어장치를 달기도 한다.
축전식은 풍력발전기에서 얻은 전기를 축전지에 축적한 후 이용하는데, 이것은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하지만 설비비가 비싼 것이 결점이다. 이밖에 디젤 발전기를 함께 설치하기도 한다. 풍력 에너지는 바람을 받는 면적이 반지름 1m의 원일 경우 풍속이 10m/s이면 약 1MΩ의 전기를 얻을 수 있다.
풍력은 풍부하고 재생가능하고 깨끗하며 온실 효과를 유발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화석 연료를 대체하는 매력적인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풍력 발전단지 자체는 시각, 청각적인 거부감과 기타 다른 환경에 미치는 영향때문에 항상 환영받지는 못하고 있다.
♤ 당집
무당이 가장 보편화된 명칭이며, 이밖에도 무인(巫人)·무격(巫覡)이라고도 한다. 지역별로 각기 독특한 명칭이 있다. 서울·경기도 지역에서는 기자(祈子)·만신·박수(남자무당), 호남지방에서는 단골·단골레, 영남지방에서는 무당·무당각시, 제주도에서는 심방이라 한다. 무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속의 제의(祭儀)인 굿을 주관하는 사제로서의 역할이며, 이외에도 예언·치병 등의 역할을 한다.
무당의 유형은 크게 강신무(降神巫)와 세습무(世襲巫)로 나뉜다. 강신무는 무당이 되기 전에 '신이 내렸다', '신이 지폈다', '신이 들렸다' 등으로 표현되는 강신체험인 신병(神病)을 통해서 된 무당이다. 가계(家系)를 통해 이어지는 세습무와는 달리 남녀노소·빈부귀천의 차이없이 어느 계층, 어느 연령에서도 강신무는 나올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세습무는 무당의 가계에서 태어나 무업을 이어받아 된 무당을 말한다. 강신무가 한강 이북의 경기도·황해도·평안도·함경도와 태백산맥 서쪽으로 한강 북쪽에 해당되는 강원도지역에 분포하는 데 비해 한강 이남의 경기도·경상도·전라도와 태백산맥 동쪽의 동해안 일대의 무당들은 모두 세습무이며, 제주도지역에도 존재한다. 강신무의 경우 남녀가 모두 무당이 될 수 있지만, 세습무의 경우 동해안지방과 영호남지방의 무당들은 모두 여성이며 제주도에만 남녀 무당이 공존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강신무의 경우, 무당이 되기 위해서는 무병이라는 강신체험을 겪어야 하고, 무당이 되기 위한 제의인 내림굿을 해야 하며, 내림굿을 해준 무당으로부터 무업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는 수련과정을 거쳐야 한다. 비록 신이 내렸을지라도 큰굿의 절차를 주관할 수 없으면 정식 무당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강신무가 되는 과정에서 무업에 관한 것을 배우는 수련 과정은 필수적이다. 세습무의 경우 가계를 통한 무업의 전승으로 무당이 되며, 강신무의 무병 같은 강신체험이 없다.
강신무와 세습무의 성무(成巫) 과정의 차이는 다른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먼저 강신무의 경우 자신에게 내린 신을 모시는 신단(神壇)이 있는데, 세습무에게는 신단이 없다. 자신에게 내린 신이 없기 때문에 신을 모시는 개인신단이 불필요한 것이다. 강신무의 경우, 굿의 과정중에 신내림을 통해 신의 말인 공수를 인간에게 직접 전할 수 있으나, 신을 내릴 수 없는 세습무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강신무가 주재하는 굿에서는 무당 자신이 신들려 직접적으로 신의 역할을 하고 신의 말을 전하는 것이 중심요소가 되지만, 세습무가 주재하는 굿에서는 그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으며, 노래·춤·재담·놀이가 중심이 되어 연희성(演戱性)·예술성이 부각된다. 무악(巫樂)에 있어서, 강신무의 굿은 신내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타악기가 위주가 되며 가무(歌舞)의 가락과 속도가 몹시 빠르고 흥분된 도무(跳舞)가 뒤따르는데 세습무의 굿에서는 타악기 외에 취타악기·현악기까지 다양하게 동원되며, 노래의 가락이나 춤의 속도가 완만하다. 또한 굿의 과정에서 강신무는 각각의 신을 나타내는 신복(神服)을 입어야 되는 데 반해, 세습무의 경우 그러한 신복이 거의 없다. 그리고 세습무의 굿에서는 신의 하강로를 의미하는 기다란 신간(神竿)을 세우지만, 강신무의 굿에서는 무당 자신이 직접 신을 내릴 수 있으므로 신간이 필요없다. 한국 무속에서 이러한 강신무와 세습무의 구분은 사회의 발달과 함께 지역간의 차이가 사라지면서 점차 약화되어가고 있다.
♤ 맹동산(萌東山/756m)
풍력단지 맹동산을 가기 직전 동해쪽으로 400m 벗어난 곳에 명동산이 있습니다.
♤ 명동산(明東山 上峰/807.5m)
목장 임도 옆 절개지의 남은 부분인 이곳은 높이가 807.5m이다.
주위의 다른 산보다 높고 특히 바람이 세어서 나무들은 잘 자라지 못하고 풀들만 자란다고 하여 맹동산(민둥산)이란 이름이 붙여졌으며 높이는 756m이다. 지금은 그 반쪽이 잘려져 나가 도로로 변해버렸고 나머지 반쪽엔 옛 이름을 간직하고 싶은듯 조그만 정상석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의 위치는 낙동정맥이 백암산을 지나 동해바다와 나란히 하며 내려오다가 창수령(자래목이)에서 한번 곤두박질 치다가 주왕산 초입 황장재 중간지점이다. 광활한 목장이 있으며, 들머리인 삼의계곡은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흐르며 사계절이 공존하는 산이다. 활엽수가 많으나 강한 바람 때문에 우산과 같이 위가 벌어져서 자라는 모양을 한 나무가 많다.
자연마을로는 산밑골(삼의골), 상삼의, 중삼의, 하삼의, 맹동산, 벙이골 등이 있다. 산밑골은 마을이 산 밑에 자리잡았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벙이골은 금박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인데 벙이(부엉이)가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맹동산을 돌아가는데 석양에 용오름이 피어 올릅니다.
♤ 봉화산(烽火山/헬기장/732m)
조선시대에 통신수단으로는 봉화와 역참이 있습니다.
봉화는 일방통신일 뿐만 아니라 너무 느립니다. 몽골제국이 중국을 정벌한 뒤 이슬람제국을 쳐부수고 동유럽까지 전선을 확대시킬 수 있었던 이면에는 엄청나게 빠른 통신수단인 역참제도가 있었습니다. 몽골제국의 통신수단인 역참제도는 30km마다 역참을 설치하여 말을 갈아타면서 하루 352km를 달렸다고 하니 부산과 한양 정도 거리는 하루 반이면 충분한 속도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역참을 이용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치밀한 전략을 세웠더라면 임진난이나 병자호란 같은 큰 전쟁을 당하더라도 좀 더 유리한 상황에서 전쟁을 치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위급시 불빛이나 연기로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위급 상황을 전달한 봉수대는 우리가 하는 낙동정맥 부산 다대포에서 한양 목멱산까지 12시간 만에 신호가 전달되도록 설계됐다고 합니다.
나라에 병란이나 사변이 있을 때 신호로 올리던 불. 낮에는 연기를 올리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하던 봉수대가 있는 산으로 산의 이름을 봉화산이라고 추정을 하여 본다.
우리나라에 봉화 제도가 도입된 것은 정확하지 않으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봉화 관련 기록이 나와 그때부터 있었겠구나 하고 추정하고 있다. 이것이 정비되는 것은 고려 의종 때부터이며, 이 때부터 봉수제도가 더 복잡하게 정비된다.
•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 평상시에는 불/연기를 1번만 올린다. 2급 상황에는 2개, 3급 상황에는 3개, 4급 상황에는 4개를 올린다.
• 각 봉화대마다 봉수업을 맡은 군인인 방정 2명과 고려 시대의 평민인 백정 30명을 배치하고, 평전 1결을 지급한다.
이후 이대로 죽 내려오다가, 세종대왕대에 와서 더 체계적으로 정비된다. 이때부터 전국의 모든 봉수가 집결하는 중앙 봉수대인 서울 목멱산 경봉수, 해안/국경 변방에 설치된 연변봉수, 경봉수와 연변봉수를 연결하는 내지봉수의 체계가 잡혔다. 이 외에 기간선로상의 핵심 봉수부대인 직선봉수(직봉), 이를 보조하는 간선봉수(간봉), 직위/지역별 봉수대의 관장 책임을 가진 직위와 봉수대에 배치되는 봉수군의 수 등이 결정되었다.
이때에는 현재 우리가 흔히 보는 봉수대의 모습으로, 주로 불과 연기의 수로 정보를 전달했다.
• 평상시에는 1거
• 적이 해상이나 국경에 나타나면 2거
• 해안이나 변경에 접근하면 3거
• 아군 군함과 전투가 벌어지거나 국경을 침범하면 4거
• 적이 상륙하거나 국경에 침범한 적과 교전이 벌어지면 5거를 올렸다.
• 만일 비나 바람, 안개 등으로 불과 연기로는 잘 전달되지 않을 경우 나팔로 큰 소리를 내거나 조선시대에 개발된 신호용 포인 신포를 쏘며, 조선 후기에는 호준포를 쏜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직접 봉수군이 다음 봉수대까지 죽어라 달려가 소식을 전달하였다.
봉수대의 간격은 변방 지역에는 10~15리 이하, 내륙지역은 상대적으로 멀어 서울에서 먼 곳은 20~30리, 서울과 가까운 곳은 40~50리 간격이었다. 하지만 종종 70리 간격도 있었다고 한다. 봉수대에 일이 생겨 다음 봉수대로 뛰어가야 할 봉수군들은 그런 경우 아주 죽어났다.
이렇게 봉수대를 관리하는 봉수군은 주로 봉수대 근처 지역부민이 선발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봉화 전달이 제대로 안되면 다음 봉수대까지 몇십리길을 뛰어가는 등 험악한 사태가 종종 발생하며, 봉수대가 보통 전망이 좋은 산꼭대기 같은 곳에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지형이 험악하고 기후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장시간 감시활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봉수대가 불을 크게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장작이나 불쏘시개, 불씨등을 현지까지 잘 운반해서 적재한 다음, 항시 잘 관리하고 유지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봉수군이 되면 생업따위는 포기하고 이 일에 전념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일이 힘들고 어려워서 칠반천역 중 하나였다고.
하지만 이렇게 봉화를 운영하는 효과는 확실하게 나왔다. 이론적으로 최상의 상황을 가정하고 실험했을 때, 부산 부산진에서 한양까지 약 2시간만에 변고를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현실은 시궁창이라 실제로는 시간이 훨씬 더 걸렸지만 말을 달리거나 사람이 걷는 것 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를 기대할 수 있었다.
♤ 명동산(明童山/812m) - 화림지맥 분기점
경북 영덕군 창수면·지품면과 영양군 석보면에 걸쳐 있으며, 영덕 읍령(泣嶺, 527m)의 산줄기가 뻗어내려 형성된 산으로 높이는 812m이다. 속곡계곡이라는 이름의 청정 계곡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계곡 근처에서 자생하는 약초는 약효가 좋기로 이름나 있다. 예로부터 지품면 쪽 산기슭에 닥나무가 많아 인근 지역에서 한지생산이 이루어졌다. 산에서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가 이루어지고, 산 주변에서는 고랭지채소가 많이 재배된다. 경상북도 영덕군과 영양군 지역에서 해안과 내륙을 구분하여 주는 산이다.
♤ 화림지맥 (華林枝脈)
낙동정맥 봉화산 지나 포도산 못 미쳐 명동산 남쪽(0.7km)에서 동쪽으로 분기한 화림지맥은 영덕군 지품면, 축산면을 가르고 국사당산, 영덕읍 화림산과 삿갓봉을 지나 강구면 강구항에서 동해로 맥을 다하는 길이 32.7km의 산줄기로 출발점은 영양군 석보면과의 경계이지만 분기점 출발 이후 오롯이 영덕군에 속하고 영덕읍, 영덕군청을 스쳐지나므로 영덕지맥으로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북으로는 송천, 남으로는 영덕오십천을 흐르게 한다. 강구항에서 오십천 건너로 내연지맥을 마주본다. 화림지맥은 내연지맥과 함께 낙동정맥 주왕산에서 흘러내린 영덕오십천을 오롯이 감싸며 강구항에서 바다로 내보낸다. 강구항은 글자 그대로 江口, 강의 하구다.
♤화림지맥 개념도
♤ 박점고개
영양쪽 삼의리 박점마을과 영해쪽 속곡리를 연결하는 비포장 산악임도로 승용차도 통행이 가능할 만큼 노면상태가 좋은 편이다.
♤ 모대산(帽帶山/748m) 또는 포도산(葡萄山) - 경북 영양군 석보면 삼의리
경북 영덕군 지품면과 청송군 사이에 있는 고개인 황장재(黃腸-, 405m)로부터 뻗어내린 산줄기가 형성시킨 산이다. 산의 형세가 사모(紗帽)와 각대(角帶)를 두르고 공손히 절을 하는 것과 같아 모대산(帽帶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포도산(葡萄山)이라고도 불린다. 산 아래로는 영덕과 안동을 이어주는 34번 국도가 지나간다.
또 머루산이라 했는데 포도산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더군요. 산이 깊다보니 개화기 천주교신자들이 숨어들어 박해를 받았던 곳으로 나와 있습니다. 동료의 밀고로 대구 시내로 나가 처형되었다는 순교지입니다.
♤ 삼의리(三宜里)
영덕군 창수면 지품면을 경계로 하여 높은 산이 가로 막혀 바다 바람이 불어 오다가 삼의산과 노루산에 걸려서 영양에는 피해를 주지 않는다. 활엽수가 많으나 강한 바람 때문에 우산과 같이 위가 벌어져서 자라는 관목의 모양을 한 나무가 많다. 산하곡(山下谷) 혹은 삼의곡은 본래 진보군 동면의 지역으로서 높은 산 밑이 되기 때문에 산밑골이라고 하였다. 1914년에 행정구역을 고칠 때에 화매동의 일부와 석보면이 요원동 일부를 합하여 삼의골이라고 불렀으며 석보면에 들게 된다. 그러니까 산밑골이란 소리를 바꾸어 한자로 뒤쳤을 때 삼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삼의계곡(三宜溪谷)
삼의계곡은 영양군비지정관광지로 선정되었으며 휴가철에 많은 피서객들이 모이고 있으며, 삼의계곡의 특징은 해발 300 ~700m에 위치하며, 계곡따라 도로가 있고 푸른 숲이 있고, 맑은 물이 항시 흐르고 있는 계곡이다. 삼의계곡(三宜溪谷)은 크고 작은 폭포가 많은데, 널찍하고 하얀 화강암이 곳곳에서 계곡물을 가로막아 시원한 물소리를 토해내고, 그 중 물줄기가 완만하게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 장구매기(여정봉/630.5m)
630.5봉(5만 지도에는 632.1봉)에 오른다. 이 산봉에 "낙동정맥 여정봉" 이라 씌여진 자그마한 팻말이 세워져 있고 정수리부에는 낡은 삼각점이 있다. 주위로는 참나무를 베어내 지나온 방향으로 제법 시야가 트이는 곳이다. 630.5봉은 박점고개와 화매재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고 지형도에 그어진 마루금을 살펴보면 이 일대가 메기의 머리모양을 하고 있으며 630.5봉은 메기의 주둥이 부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장구메기란 지명은 이 일대의 묵정밭 분지가 장구의 잘록한 부분처럼 패여 들어가 그렇게 불려지는지? 메기 머리의 형상을 한 지형이라서 인지 알쏭달쏭하다. 어째든 이곳 지형은 묵정밭을 가운데로 두고 한 바퀴 삥 돌아 나가며 심한 맥돌이를 하는 지형으로 메기의 눈 부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과수원 옆에 초산대장님이 대포시킨 음료와 물을 보충하고....
♤ 화매재(911번지방도/336m)
화매재는 영덕 지품면과 영양 석보면을 연결하는 고개로 영양군을 알리는 대형 안내판이 서 있고 차량통행은 뜸한 편이다. 북쪽으로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의 화매마을이 있다. 이 화매리의 화매마을과 同名을 하고 있는 화매재이다. 남쪽의 경북 영덕군 지품면 황장리의 황장마을과 북쪽의 화매마을을 연결하는 고개인데 현재는 911번 도로로 신설되어 있다.
♤ 시루봉(삼군봉/532m)
西쪽으로 경북 영양군 석보면 답곡리, 東으로 영덕군 지품면 황장리, 南으로 청송군 진보면 괴정리를 경계하고 있는 해발532m의 무명봉을 언제부터 인가 시루봉이라는 표지기가 붙어 있다. 산세의 모습은 삼각기둥형으로 뾰쪽한 모습을 하고 있다. 청송군, 영덕군, 영양군 세군의 경계에 위치하여 삼군봉이라고도 한다.
동계스포츠클라이밍을 5년간 유치(한번 유치하면 5년간 경기)했던 청송 얼음골이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 황장재(黃腸岾/34번국도/334m)
황장재는 영덕과 안동을 연결하는 2차선 국도지만 고개마루는 4차선 오르막 차도이며 안동 간고등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고개다. 해산물이 귀했던 안동지방인지라 인근 강구, 후포, 축산의 해산물이 운반되던 주요 육로로, 이동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 등짐장수들의 애환이 서린 고개이기도 하다. 항구에서 갓 잡아낸 고등어는 보부상들에 의해 이 험준한 황장재를 넘어 신촌에서 하루밤을 묵은 뒤 안동으로 이동되었고, 전라도 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은 부산을 거쳐 낙동강 하구를 타고 안동포구로 올라온 소금배와 만나 안동고유의 염장문화를 만들어 지금의 특산물인 "안동 간고등어"를 탄생시키게 했으니 험준한 황장재를 넘어야 했던 안동의 지리적 조건이 또 다른 음식문화를 만들어 낸 셈이다. 일설에 의하면 진보에 있는 신촌약수는 한 등짐장수가 황장재를 넘다가 도적을 만나 낭패를 당하여 가까스로 도망쳐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사경을 헤메던 중 신촌에 있는 빨간물이 솟는 샘터에서 그 물을 마신 후 정신이 맑아지고 상처를 치유한 이후로 약수의 효험이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이로 인해 각종 피부염, 속병환자가 몰려들어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신촌이라는 동네가 형성되었다 한다.
♤ 갈평재(445m)
영덕 지품면 지품리와 청송 진보면 괴정리의 경계이다.
상당히 큰 돌무더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통행량이 많았던 고개로 보인다.
이정표(먹구등 6.81km, 황장재 2.1km, 안하곡1.8km, 갈평동 2.4km)가 파손되어 땅바닥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고, 갈평재에서 대둔산까지 고도차 460m의 완만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 대둔산(大遯山/905m)
남쪽 발 아래 노루용추계곡 건너로 주왕산 일주능선인 장군봉-금은광이-먹구등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참나무 숲 사이로 조망되는 것이 고작이다. 진행방향 정면인 남서쪽으로는 태행산(太行山,933m)-중태산(679m)-방광산(519m)으로 이어지는 길이 뚜렷하다. 산경표에 따르면 주왕산의 옛 이름인 주방산(周房山) 직전 죽현(竹峴)에서 방광산(放光山)으로 이어지는 짧은 지맥이 표기되어 있는데 그 지맥 분기점이 바로 이곳 대둔산이 아닐런지? 주왕산의 옛 이름 중의 하나가 대둔산이며, 일부 지형도에는 대돈산으로 표기되어있기도 하다.
♤ 먹구등(820.8m)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와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을 연결하는 고개로 높이 820.8m이며, 주왕산국립공원 내 깊숙이 험준한 지형에 있다. 먹구등이라는 명칭은 근처에 평평한 돌이 있어 그 돌에 올라 구르면 소리가 울린다고 해서 ‘벅구등’이라고 하다가 소리가 변하면서 먹구등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벅’은 야무지게 긁거나 문지르는 소리 또는 엷고 질긴 종이나 천 따위를 한 번에 찢는 소리나 모양을 뜻하는 단어로, 바위에 올라 구르면 이와 같은 소리가 났다고 전해진다. 먹구등은 주왕산국립공원 내 태백산맥에 속하는 산줄기에서 북서쪽의 732.6m 고지와 남동쪽의 왕거암(王居巖)[907.4m] 사이에서 고도가 약간 낮아지는 높이 820.8m의 안부(鞍部)에 자리한 고개이다. 먹구등 부근에서 서쪽으로도 산줄기가 이어지는데, 서쪽 방향으로는 금은광이[812.4m]가 있다.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 경상계 불국사층군 각력질 안산암이 분포한다. 북쪽의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방면으로는 영덕오십천이 발원하여 북류하며, 남쪽의 청송군 주왕산면 방면으로는 주방천이 발원하여 서류한다.
♤ 명동재
경북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에 있으며, 높이는 875m이다.
♤ 느지미재(640.7m)
경북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에 있으며, 정맥길에서 명동재와 왕거암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에 내원동 사람들이 가까운 영덕장을 보기 위하여 지름길인 이 재를 넘어야 했다. 내원동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고개를 넘어 영덕의 장을 보고 돌아오면 저녁 늦게 이 재를 넘는다 하여 사람들은 이 재를 느즈미재라 불렀다고 한다.
♤ 왕거암(王居岩/907.4m)
왕거암은 주왕산 산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데, 주왕산에 얽힌 전설속의 주왕(周王)이 거처한 바위라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러나 정상 부근은 싸리나무로 둘러쳐진 헬기장으로 되어 있고, 삼각점 옆으로 나무에 왕거암이란 팻말이 붙어 있다. 조망은 기대할 수가 없다.
♤ 대전사
주왕산 매표소를 지나면 곧장 만나게 되는 사찰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周房寺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 절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을 하였으며 대전사라고 하는 이름은 고려 때의 스님인 나옹대사가 주왕의 아들인 대전도군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한다.
♤ 주왕산의 유래
주왕산은 전설의 산이다. 신라 말, 당나라의 주도라고 하는 인물이 반란에 실패한 후, 주왕산으로 숨어들었다가 신라의 토벌군에 의해 토벌되면서 산 이름을 주왕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청송의 향토 사학자들에 따르면 주왕산의 유래는 주도라는 인물보다는 신라시대의 인물인 김헌창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난을 일으킨 김헌창이 이 주왕산에서 최후를 맞이하였고, 그의 아들 김범문은 주왕산에 은거하면서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북암, 운수암, 주왕암, 대전사 등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은 周王事蹟라고 하는 책자에 의해 밝혀지고 있는데, 김범문의 제자인 낭공대사가 920년에 기록하여 비기 형태로 전해지던 이 책자는 왕거암 서쪽 사창암에 묻어 두었던 것을 1034년 11월 11일에 출토하여 개봉하였다고 한다.
♤ 별바위봉(745.2m)
별바위봉은 옛날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이 별바위 사이에 떠오른 별을 보고 소원을 빌었더니 장원급제했다는 전설이 서린 곳으로 최고의 조망을 자랑한다. 서쪽 절벽 아래로는 왕버들로 유명한 그림같은 주산지와 이전리 일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팔각산을 비롯하여 내연산, 동대산, 향로봉이 아스라히 어림된다. 북으로는 주왕산 일대의 크고 작은 준봉들이며 가메봉-왕거암-대궐령을 잇는 능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 피나무재(470m)
피나무재는 주왕산(721m)을 비롯하여 무포산(718m)과 무장산(641m)이 속해 있는 경상북도 청송군 동부의 부동면(雰面)에서 이어지던 914번 지방도가 내룡리와 봉산리를 거쳐 영덕으로 넘어 가는 고갯마루다.
주왕산국립공원 북쪽의 경계를 나타내는 태행산입니다.
주왕산국립공원 달기폭포에서 금은광이로 가는 월외계곡입니다.
금은광이삼거리입니다. 이런 지명은 주로 일제시대 자원수탈로 금은광을 개발했던 전력이 있던 곳입니다.
주왕산국립공원 큰골과 월외계곡을 나누는 두수람능선입니다. 주왕산의 상류부분을 형성하는 곳이죠.
먹구등에 달라붙기 직전 시간계산을 해보니 두시간 이상 떨어져 따라붙기엔 늦었더군요.
탈출하는게 낫겠다고 마음먹고 내원마을쪽으로 내려오는데 6,70년대 숯을 구워 팔았는지 돌담 흔적이 마을터는 분명한데 다래넝굴 가시덤불로 길은 사라지고 계곡을 따라 첨벙첨벙 내려오는데 물이 차가워 발은 시렵고 끝은 보이지 않고...
학소대 이전 상단에서 내려다 본 용추폭포입니다.
왼쪽이 학소대입니다.
높은 절벽 위에 학이 둥지를 틀고 고고히 날아다닌다 하여 학소대라 하는... 경치좋은 곳에 학소대란 지명이 많습니다.
대전사를 향해 계곡을 걸어나오는데 원숭이 대가리모양의 바위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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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혼자서 먼저 진행하드니, 태행산으로 진행 하셨군요, 천천히 팀원들과 함게 진행하시면 좋을덴데ㅇㅅ 老 松
후미에서 천천히 따라 갔는데, 그렇게 알바할곳이 없던대요, 넘 급히 가느랴 길을 자세히 안보고 가신것같습니다...
더운날에 고생 많이 하셨고, 늘 배려에 감사 드립니다... 화성이라는 아름다운
국공한테 걸리구도 저렇게 웃을수 있는 여유가 있는거보니
그래도 날머리까지 와서 걸려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서일지두 모르겠네요
1년안에 비탐 안가면 되는거니
이 또한 추억으로 남겨야겠습니다
수고하셨으요~~^^
컨디션이 워낙 좋다보니 조금 앞서서 나갔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번이 첨은 아니지요??
그전까지는 이해를 하려했습니다
이번구간은 비탐구간이라 되도록 갠 행동 자제하고 같이 이동하는 방향으로 하자구
사람보고 정맥에 오지 않으셨다하니 갠 산행이 맞는듯 합니다
앞으로도 갠적으로 진행하실생각이 있으시다 하시니
갠 산행으로 전향하시는것도 괜찮겠습니다
골짝님!
저에게 자세한 팀분위기를 설명해보라고 요구하는거로 봐도 되겠죠?
난 주위 눈치보며 유리한 쪽을 택하는 사람 아니에요.
설명할필욘 없습니다
개인 산행 하시는것이 적성에 맞는듯 하다고 말씀드린것뿐입니다
팀분위기를 보면 한심하지만 말하기가 쪼잔해 무시하고 지나는겁니다.
원래 저는 사람들하고 무작위로 쉽게 막 어울리거나 하지 않습니다.
산행을 위해 사람은 만나지는 거고요, 항상 산을 먼저 앞에다 놓습니다.
적성에 맞는 정도가 아니라 그래야 사람에 대한 기대도 실망도 없다는걸 젊은날의 초상처럼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이죠.^^
유구무언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담에는 같이 ㅎ
같이 가는게 그닥 재미가 없습니다.
제가 단순하지를 못해서요.^^ ㅎㅎㅎ~
장거리 산행하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네! 대장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작가해도 되겠습니다.
속도도 엄청빠르군요.
이더운 여름에요.
ㅎㅎㅎㅎㅎ
이 후기는 여러 곳에서 발췌해 짜깁기 한것입니다.
가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되시라고요.^^
태행산 쪽으로 산삼이 몇뿌리 널려 있느데 못 보셨나 봅니다. ㅎ
알바 덕에 시원한 주왕산계곡 즐기시고 좋은 경험 하셨다 하세요^^ 더운날 고생하셨습니다.
글게요. 덕분에 주왕산 계곡 깊이 돌았습니다.^^
월외계곡으로 내려 금은광이 방향을 못잡고 있는데,
포항 현대자동차? 에서 단체로 오신 분중에 J3회원님이 저를 알아보고 알려 주시더군요. ^^
지맥이란게 뭔지 알듯 하더군요. 길이 없는 그 가파른 능선에도 "배창랑과그산군들"이란 표지기가 보이고...
추산대장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지원 감사드립니다. 신세진 팀원들에게 그 마음 전염?^^ 될거로 믿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트랭글보다는 오룩스맵이나 e-산경표
오룩스맵은 무료입니다...
먼길 고생하셨습니다
발뒷꿈치가 통증이 온다는것은 몸에 이상증조를 미리 알려주기에..
잘치료하십시요..
멋진 발걸음 응원합니다
발뒤꿈치 통증이 아니고 복숭아뼈 아래부분에 물집이 잡힌다는 겁니다.
드레싱밴드를 붙이고 가는데도 그러니 담번엔 그 부위에 초칠을 할까봅니다.^^
담에 이것으로 응급처방해보십시요
상처부위에 최고입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트러불에 응급조치로 보호도 되고요.. 참고하십시요
넵! 신발이 작은지, 보법이 잘못 되었는지, 뒷볼이 유난히 넓은지 원인을 모르겠네요.^^ 40km 넘어가면 불편합니다. 감사~~^^
볼링치다 손까졌을때
계속쳐야하고
아픈데스치니
이것바르면 그런것자체가 없습니다금방 응고되고
좋은성과보십시요
태행산.금은광이쪽은 송이버섯이 많이 나오는곳인데 사전 답사하신듯합니다. 무더운 날씨에 고생하셨습니다
네! 대장님! 그곳 두수람에 대장님 표지기가 의외였고 너무 반가웠답니다.^^ ㅎㅎ
3년전인가? 주왕산 환종주하면서 달아 두었지 싶습니다